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53)
734화 끔찍하군 (2)
아프리카에서는 흔하게 맡던 냄새였다.
제라르, 다예, 강찬은 그런 냄새 속에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잠자고, 다 했었다.
“이게 무슨…!”
엘이디 등이 은은하게 비추는 방에 들어선 홍진용이 왕진상과 사사키의 시체를 보고는 뒷걸음질을 하기 위해 버둥댔다.
“이게 뭐야!”
콰앙.
잡힌 멱살을 뿌리치려 애쓰는 홍진용을 강찬은 벽으로 세차게 밀었다.
이럴 때, 최종일은 정말 손발 잘 맞는다. 그가 조용하게 문을 닫았고, 그 직후에 빠져나가던 피비린내와 역한 냄새가 좀 더 강렬하게 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왜 이러십니까?”
삽시간에 방을 채운 악취와 침묵에 질린 것처럼 겨우 내놓은 질문이었다.
피식.
무섭겠다, 시체를 벽에 기대 놓은 방에서 보여 주는 이 웃음이.
강찬은 고갯짓으로 안쪽 벽을 가리켰다.
‘보라고!’
두 번이나 고갯짓을 던지고서야 홍진용이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새하얗게 빛나는 엘이디 조명 아래여서 그런가.
새하얗게 변한 낯빛 탓에 이마에 뚫린 구멍의 세세한 굴곡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닦아 낸 눈가와 코 위로 얇게 흘러내렸던 피가 굳어서 강찬이 보기에도 섬뜩한 느낌이었다.
“왼편이 중국 국가안전부 부장 왕진상. 그 옆에 있는 놈이 일본 정보국 국장 사사키 요시하라.”
직책과 이름을 들은 홍진용이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강찬을 찾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두 사람을…. 우리 국가정보원이, 아니 부원장 당신이…, 죽인 거네?”
“후-.”
문을 닫았고, 그 앞을 최종일이 지키고 있으니 도주할 염려는 없는 거다. 나직하게 숨을 내쉰 강찬은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서 구겨진 홍진용의 재킷과 셔츠 깃을 바로잡아 주었다.
“말을 할 때는 생각을 좀 해. 가뜩이나 독이 올라 있는데 말꼬리로 장난치면 듣는 사람 기분이 좋겠어, 나쁘겠어?”
탁탁.
말을 마친 강찬은 아이를 어르는 어른처럼 홍진용의 왼쪽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솔직히, 일부러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감정을 담지 않으려고 해서인지 이상하게 김미영을 흉내 낸 듯한 말투가 나왔다.
“질문에 대답 안 해?”
“기분 나쁩니다.”
“그래.”
탁탁.
번득이는 눈빛에 놀라 답을 내놓는 홍진용의 뺨을 강찬은 다시금 툭툭 때렸다.
“이걸 어떻게 수습할 생각인… 입니까?”
질문을 받은 강찬은 벽에 기대서 다리를 길게 펴고 앉아 있는 왕진상과 사사키를 힐끔 돌아보았다.
“왕진상은 전 중국 국가안전부 부장과 현직 부부장이 해결할 거고, 사사키는 러시아의 바실리 의장이 책임질 거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믿습니까?”
피식.
“우리는 이렇게 살아. 뒤통수에 칼을 들이대면 일단 똑같이 해 주는 거. 해결도 마찬가지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약속이니까 믿어 두는 게 좋아.”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요?”
“그때 봐서 해결하면 되지.”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야?
질문을 던졌던 홍진용이 확인하는 것처럼 또다시 고개를 돌렸다가 몸서리치고는 강찬을 찾았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그러니까 어쩌자고 중국과 일본의 인물들을 국가정보원에서 살해한 겁니까?”
“이 두 놈이 밀입국의 방법으로 요원을 파견해서 펜타닐과 그 밖의 약품을 불법 거래했고, 우리 요원을 살해하라는 지시까지 내렸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국과 일본을 건드려서 뭘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이거 대통령님께 보고하면 부원장 당신은 직위 해제로 안 끝나!”
책임을 느껴서 흥분하는 거라면야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투정 부리는 민정수석의 버릇을 바로잡아 줄 필요는 있는 거다.
쫘아악.
강찬이 손을 휘두르면서 왼쪽 뺨을 얻어맞은 홍진용의 얼굴이 바닥에 주저앉은 왕진상과 사사키를 향해 홱 돌아갔다.
“말꼬리 조심하라고 했지? 너도 저 사이에 앉고 싶어서 그런 거면 그렇게 해 주고.”
“아닙니다.”
“그래! 이렇게 말하니까 얼마나 좋으냐?”
탁탁탁탁.
참 신기하지?
홍진용의 눈가에 조심하는 기색이 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저 두 사람 잘 봐둬. 그리고 중국 국가안전부 부장과 일본 정보국 국장이 죽은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도 확인해.”
무슨 뜻이지?
이해하지 못해 흔들리는 홍진용의 눈을 보며 강찬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두 놈을 제거한 게 국가적인 부담으로 오지 않는다. 대신 여기 대원부터 오늘 내 지시를 받았던 대원들과 요원들이 저들의 제거 대상이 되지.”
정말 그런가?
먼저 최종일을 보았던 홍진용이 확인처럼 바닥에 주저앉은 두 사람을 보았다. 전혀 모르던 세상을 단박에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시체 두 구가 악취를 풍기며 눈 아래 있는 상황이었다.
혼란한 표정으로 홍진용이 시선을 가져온 다음이었다.
“조만간 반드시 감염 혹은 국지전과 같은 위기 상황이 온다. 그때도 지난번처럼 헛소리를 늘어놓으면 너도 저렇게 돼. 알았어?”
망설이는 홍진용을 향해 강찬이 눈가를 좁히는 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조금 전 얻어맞았던 통증이 살아난 것처럼 홍진용이 급하게 답을 내놓았다.
“또 하나, 오늘 일이 민정수석의 입에서 한마디라도 나오거나, 대통령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순간, 너, 너의 가족, 한 푼이라도 불미스러운 돈거래를 한 인간들 모두 저렇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설마?
이번 협박만큼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하기는 대한민국 민정수석이 살해당할 거라고 누군들 쉽게 생각하겠나.
“그리고 국가정보원 틀어쥐겠다고 생각하지 마라. 너를 제거하는 데 우리 요원들 손 더럽히기 싫어서라도 프랑스 정보총국 이용할 거니까.”
“아!”
뒤늦게 강찬에 관한 정보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정보총국 부총국장이라는 위치도 생각났고.
“민정수석님. 앞으로 국가정보원의 자율권이 보장되고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공손하게 말을 전한 강찬은 아직 답을 하지 않은 홍진용의 눈을 매섭게 들여다보았다.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느낌에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직장인들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길게 내리쬐는 햇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장비들, 이륙을 위해 대기한 비행기들, 활력을 뿜어내는 활주로 주변을 바실리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강찬이 저렇게 서 있다면 카리스마 넘쳤을 텐데, 구부러진 등과 축 처진 어깨를 한 바실리의 뒷모습은 오늘이 그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대한민국이고 김포공항인 듯 처연한 느낌을 피워 냈다.
나이 든다는 게 저런 건가?
얼음장 같던 바실리가 구부러진 등과 처진 어깨를 하고 쉽지 않았던 삶의 마지막을 예견해야 하는 거?
제라르가 복잡한 심정으로 바실리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였다. 기다리던 러시아의 수송기가 앞쪽에서 다가왔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수송기를 확인한 바실리가 제라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총사령관은 국적을 바꿀 생각인가?”
그런 뒤에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내놓았다.
“표정을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주연을 따라다니나 보군.”
“대장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신념대로 살아왔습니다.”
“신념?”
“외인부대의 구호입니다. 부대가 나의 조국.”
“흥! 프랑스인들은 이상하게 말을 비트는 나쁜 버릇이 있어.”
제라르의 신념을 들으며 부족했던 안드레이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내내 답을 요구했던 바실리가 정작 듣고 나서는 작은 눈매를 뒤틀었다.
제라르에게 완전히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바실리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 있는 멍청이는 절대 인물이 아니니까 적당한 핑계로 작전에 던져서 제거하는 게 좋겠다.”
역시 바실리, 마지막 인사 대신 하진관을 무지막지하게 평가한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늙어서 약해진 거야, 변덕이 심해서 그렇게 보인 거야?
바실리가 들어선 전용기를 제라르가 물끄러미 바라볼 때였다.
“부부장. 강찬 씨가 넘겨준 인물을 조용하게 태워.”
“예.”
한마디 지시로 하진관을 떼어 낸 양범이 조용하게 다가왔다.
“강찬 씨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해 주십시오.”
“조심히 가십시오.”
짧은 인사를 나누는 틈이었다.
전용기에 바싹 붙인 승용차에서 이동명을 꺼낸 중국 요원들이 에워싸듯 그를 안고서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지켜보던 양범이 무표정하게 전용기를 향해 걸었고, ‘인사를 따로 하나, 아니면 그냥 갈까?’, 전용기의 문과 제라르를 번갈아 보았던 하진관이 어정쩡한 동작으로 올라가고 나서 문이 닫혔다.
저런 모습이 하진관의 수준이겠다. 왕진상이 그의 배신을 걱정하지 않는 딱 그 수준 말이다.
잠시 뒤였다.
후아아아아-앙.
“부대가 나의 조국.”
활주로를 힘차게 솟아오르는 전용기를 향해 건네는 것처럼 제라르가 느긋하게 혼잣말을 뱉어 냈다.
***
민정수석이 돌아간 직후였다.
강찬은 국가정보원 부원장 및 대테러 팀장 지시로 내렸던 비상령을 해제했고, 요원들과 함께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첫 번째 요구가 봉지 커피였다. 그것도 사치의 끝처럼 느껴지는 두 봉짜리로 말이다.
부원장실로 들어간 최종일은 책상에 앉아 모니터에 집중하는 강찬 앞에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뭐야? 혼자 무슨 맛으로 마시라고 이래? 그러지 말고 얼른 가서 한잔 더 가져와. 담배가 있으면 더 좋고.”
“저는 사령관님이 오시면 함께 마시겠습니다.”
“그때도 마시면 되지.”
강찬의 권유를 못 이기는 척 최종일은 방을 나섰다. 그런 뒤에 탕비실로 들어가 다시 다시 봉지 커피 두 봉을 종이컵에 부었다.
달달한 커피 냄새 속에서 최종일은 담배와 라이터를 집었다. 물론 재떨이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 굳이 재떨이를 들고 가면 운치 없다는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부원장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최종일은 민정수석 홍진용을 상대하던 강찬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 홍진용이 병원으로 실려 갈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말이다. 강찬은 홍진용을 앞에 두고 참고 참았다.
믿기기나 하나, 인내심을 발휘하는 강찬이?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 못지않게 부와 권력을 누릴 남자, 일본 정보국장을 불러 이마에 직접 방아쇠를 당길 정도로 물불 안 가리는 강찬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는 심도원처럼 밀려나 울분을 삼키는 대원들이 없도록 하겠다는 각오로 악착같이 참아 낸 거다.
방으로 들어선 최종일의 손을 확인한 강찬이 피식 웃으며 종이컵을 들었다.
“담배 여기 있습니다.”
“함께 피울 거 아니면 놔둬.”
“그럼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뻔뻔하게 나서는 최종일이 재미있다는 투로 웃은 강찬이 담배를 받아서 불을 붙였다.
“후-.”
어려 보인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이십 대 후반에서 서른 초반으로 생각할 외모인데 조금만 함께 지내 보면 그런 생각 싹 없어진다.
강찬의 힘겨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어서, 최종일은 전투를 마친 뒤 뻔뻔한 대원의 표정으로 커피를 마셨고, 담배를 피웠다. 누가 뭐래도 이런 순간에 뻔뻔함은 석강호가 지상 최강이지만 현재 그가 없으니 어쩌겠나. 이렇게 흉내라도 내야지.
“출발 준비는?”
“전원 대기하고 있습니다.”
강찬이 물었고, 최종일이 답한 다음이었다.
문이 열리며 제라르와 우희승, 이두희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고생했어.”
제라르의 보고를 강찬이 받았고, 이어서 봉지 커피를 만들기 위해 이두희가 움직였다.
“언제 출발합니까?”
“커피 마시고 바로.”
“스페츠나츠를 지휘하는 대장을 또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바실리가 급한 거지.”
최종일은 못 알아들었다. 바로 옆에 있는 제라르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눈가를 좁히고 있었다.
“적의 계획은 감염 아니면 전쟁이다. 두 가지 모두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든 힘을 잃으면 죽는 싸움이 시작되는데 안드레이가 모조리 흩트려 놓았으니 속이 새카맣게 타겠지.”
강찬의 설명이 떨어진 직후였다.
봉지 커피를 만들기 위해 갔던 이두희가 급하게 들어왔다.
“부원장님. TV에 나오는 속보를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말을 전하면서 움직인 이두희가 구석에 있는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외국 보도 전문 방송을 그대로 가져온 모양이었다.
영어로 적힌 방송사 로고가 오른편 위로 보였고, 아래에 길게 이어진 영어 자막 위로 속보라는 한글이 덧씌워져 올라와 있었다.
영상은 공중에서 촬영한 바다와 섬의 모습이었다.
[다시 전해 드립니다. 러시아의 전투기 30여 대가 일본 영해를 침범해 비행하면서 일본의 자위대와 기총 사격 수준의 교전이 벌어졌습니다.]피식.
영상을 보던 강찬이 특유의 표정으로 웃었고,
“내가 잘못 본 건가?”
이해하지 못할 혼잣말을 제라르가 내놓았다.
일본 정부를 해결한다던 게 이런 식은 아닐 거잖아?
얼이 빠진 느낌으로 최종일이 TV 영상을 볼 때였다.
“사사키 요시하라는 해결됐고.”
최종일의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강찬의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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