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54)
735화 끔찍하군 (3)
정보총국이 준비한 전용기였다.
김포공항의 활주로 끝에 도착한 전용기가 이륙 알람을 울리고는 잠시 멈췄다.
후우우우-웅.
뒤를 묶었던 줄을 풀어 버린 것처럼 튀어 나간 전용기가 활주로를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강찬은 창으로 시선을 돌려 김포공항 주변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좀 강해진 나라로 보이십니까?’
함께한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고, 개인적인 친분도 깊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런 순간이면 빛바랜 태극기를 남겨 준 송창욱이 떠오른다.
의지를 지닌 눈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대한민국을 사랑하느냐는 닭살 돋던 질문 때문일까?
“라면 드시겠습니까?”
속 빠진 프랑스 놈!
모처럼 품은 감상을 라면으로 깨?
시선을 돌린 테이블 건너편에서 다예를 흉내 낸 것처럼 뻔뻔한 표정을 한 제라르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식.
고맙다.
창을 보는 강찬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 위로해 주고자 뻔뻔한 표정으로 라면을 권하는 제라르의 이 마음이. 제라르와 다예가 없었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대장? 라면 드시겠냐고 물었습니다.”
“됐다.”
더는 다예를 흉내 내지 못한 제라르가 볼을 우그러트리며 웃는 사이, 높다랗게 떠오른 전용기의 창밖으로 하얀 구름이 가득했고,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아래쪽에서는 건물과 도로들이 윤곽만 보였다.
“그런데 대장. 커피콩 말입니다. 치료제라는 게 확인됐으니 생산을 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강찬은 뻔뻔한 표정을 지운 제라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 감염의 원인과 감염균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치료제라고 내놓으면 신뢰를 얻기 어려워. 부작용도 문제고. 거기에 치료제를 만든다는 정보를 적이 입수해서 다른 감염균을 퍼트리면 시간과 노력, 비용만 허비한 꼴이 된다.”
설명을 바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짙은 눈썹 아래 제라르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 보였다.
“지경그룹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맞아. 첫 번째는 천중명, 두 번째는 프랑스 정보총국, 마지막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순이다.”
“힘을 모으시려는 거군요.”
전반적인 치료제 생산은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지경그룹, 라노크와의 약속, 정보총국 문바키에 대한 예우, 부총국장의 책임감으로 프랑스, 시아파를 두들긴 이후의 수습을 위한 포석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한 강찬의 뜻을 제라르는 바로 알아들은 눈치였다.
밤을 꼬박 새운 참이었다.
최종일부터 요원들 모두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길고 힘들었던 지난밤을 잊어 가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이동 간에는 잠이 최고다.
“자기 전에 한잔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운치를 아는 놈!
강찬의 표정을 읽은 제라르가 조용하게 몸을 일으켰다.
***
말도 안 될 만큼 작은 것에 엄청난 행복을 느낄 때가 있는데 정문 수리 작업을 끝낸 대원들의 표정이 꼭 그랬다.
“와!”
간식으로 제공된 라면과 김치에 환호하는 대원들을 보며 차동균이 흐뭇하게 웃었다.
살아 있는 건 이래서 좋다.
어떤 임무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그래서 다음에도 이 좋은 라면과 김치를 함께 먹자.
구릿빛 얼굴에 단단한 눈빛을 한 차동균이 대원들을 돌아볼 때였다. 까만 피부에 찢어진 눈을 한 석강호가 다가왔다.
이 양반이 라면과 김치를 보고도 여유를 부려?
“안 드십니까?”
“나는 끓이는 옆에서 벌써 먹었지.”
그럼 그렇지.
세 봉씩 먹는다고 해서 ‘삼봉 선생’이라고 불리는 석강호가 라면을 두고 여유를 부릴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차동균이 픽 웃었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대원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석강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대장인데? 잠시만. 여보세요?”
차동균을 바라본 상태에서 석강호는 몇 마디 답을 한 뒤에 통화를 마쳤다.
이런 통화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대장이 우리 요원들하고 출발했다네.”
출발? 어디로?
눈가를 좁히는 차동균을 향해 석강호가 바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닥치는 대로 적의 꼬리를 자를 거라서, 반대로 저쪽도 대장의 신경을 분산시키려고 들 거란다.”
“우리를 노리겠군요.”
히죽 웃는 석강호의 눈이 벌써 번들거리고 있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단단하게 뜻을 전한 차동균은 김치 얹은 라면을 입에 넣는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저 대원들이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무기를 들 때,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싶은 적이 있다면 알려 주면 된다. 목숨을 수업료로 받아 내면서 말이다.
볼을 씰룩인 차동균은 대원들의 위로 펼쳐진 예멘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뿌옇게 뒤덮은 흙먼지 사이로 옅게 보이는 태양과 하얀 구름이 느긋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양범은 창밖으로 보이는 활주로를 보고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정복을 입은 인민군이 겹겹이 두 줄로 서서 통로를 만들었고, 가장 앞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인민해방군 별 세 개와 두 개 수준인 상장과 부상장이 서 있기 때문이었다.
전용기가 멈추고 문이 열린 다음이었다.
“부장님?”
겁이 덜컥 올라온 표정의 하진관을 향해 차갑게 웃어 준 양범은 재킷을 매만지며 수송기를 나섰다.
양범이 활주로에 발을 내디딘 직후였다.
절대 여유를 줄 수 없다는 것처럼 두 사람이 곧장 다가왔다.
“정치위원과 부정치위원이 함께 마중 나올 줄은 몰랐는데?”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이 공항에?
한국을 노린 작업이 실패했고, 이미 감염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왕진상마저 제거되었으니 급하기도 하겠다.
“부부장. 한국에서 모셔 온 분을 정중하게 모셔.”
양범의 지시를 받은 하진관이 쭈뼛대며 움직이지 못했다. 정치위원을 보자 양범이 정식으로 국가안전부 부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저런 놈을 데리고 일을 했으니 왕진상이 제거됐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모셔 온 분이 있습니까?”
“외교부 차관이다. 비밀리에 이동한 거니까 자세한 건 들어가서 설명하지.”
“알겠습니다.”
정치위원이 고갯짓을 던지고서야 하진관이 바쁘게 움직였다.
겹으로 늘어서서 통로를 만든 인민군, 온통 인민군으로 들어찬 복도와 엘리베이터, 양범의 입국을 외부에 보이지 않으려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인민군을 동원해 외부 시선을 차단한 건, 양범을 제거했을 경우, 입국한 흔적마저 깔끔하게 지울 계획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일까?
양범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활주로와 청사 입구, 통로, 그 어디에도 화이트 울프 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처참하게 죽거나, 인민을 살릴 기회를 얻거나.
각오를 다지는 양범의 시선 앞에서 통로 끝에 도착한 정치위원이 입구를 지키는 간부를 향해 눈짓을 던졌다.
계획을 준비하고, 인민군을 불러들였을 인물이었다.
녹색의 인민복 어깨 위에서 번쩍이는 휘장, 잘 잡힌 바지 주름, 금테가 번쩍이는 모자, 저것들이 중국 안에서 권위를 세워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민의 안전과 대외적인 능력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문을 열어 준 간부를 지나친 양범은 태연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주석이 공항에?’
눈부신 창을 배경으로 앉아 있어서 검은 윤곽이 먼저 들어왔지만, 양범은 중앙에 앉은 인물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다녀왔습니다.”
태연하게 답하는 양범을 물끄러미 보던 주석이 담배를 들고 있던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 직후였다.
좌우에 있던 직원들이 움직여 의자와 테이블을 놓아주었다.
창을 따라 길게 늘어선 테이블 중앙에 주석이, 그리고 좌우로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이 장식품처럼 길게 앉아 있는 앞이었다.
“앉지?”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인 양범이 자리에 앉자 직원들이 차를 따라 주었다.
“국가안전부장이 제거됐다던데?”
“일본의 정보국 국장 사사키 요시하라와 손잡고 한국에 저질렀던 범죄들이 발각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우리 부장을 사살했는데 조용히 돌아왔다?”
“제가 직접 제거했습니다.”
“후-.”
불편한 심기를 보이는 것처럼 주석은 재떨이에 담배를 툭 던졌다. 아직 불이 남은 담배에서 가느다랗게 피어오른 누런 연기가 아슬아슬한 양범의 처지를 보여 주는 느낌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계산이 없을 리는 없고, 왕진상을 제거하고서 우리가 얻은 건 뭐지?”
“감염에 대한 공동 대처, 향후 치료제의 제공, 전쟁 억제입니다.”
“치료제라….”
“우리는 인민의 숫자가 가장 큰 무기입니다. 지금까지 당이 이룬 업적 역시 다른 어느 나라도 가지지 못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했다고 믿습니다.”
“나를 가르치는 건가?”
“그렇게 들리셨다면 제 말주변이 부족한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주석 동지.”
조국을 위해 온갖 일들을 결정하고 처리하지만, 단 한 사람 조국을 대표하는 사람에게만은 대들지 못한다는 원칙, 이것이 바로 정보국의 숙명이었다.
“한국이 치료 약을 주지 않는다고 우리가 못 만들 거라 생각하나?”
“만들어 낼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엄청난 희생자가 나오게 됩니다. 인민의 숫자가 얼마나 줄어들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희생자가 많을수록 우리 중국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국이 치료제를 주지 않으면?”
“그 약속을 보장하는 증거로 한국의 외교부 차관을 조용하게 데려왔습니다.”
확인처럼 주석이 고개를 돌렸고,
“신원 확인했습니다. 이동명 외교부 차관이 분명합니다. 일본과 손잡았다는 이유로 국가정보원에서 체포했던 인물입니다.”
정치위원이 꼿꼿한 자세로 답을 내놓았다.
이제 나온다.
양범의 미래가.
“원하는 게 복직인가?”
“우선 그렇습니다, 주석 동지.”
“다음은 뭐지?”
“화이트 울프와 기갑사단을 동원해 베이징과 상하이를 봉쇄하겠습니다.”
주석의 눈이 빠르게 정치위원에게 향했다가 곧바로 양범에게 돌아왔다.
“왕진상을 지원하던 군벌을 숙청하겠다?”
“그들이 감염의 예방을 방해하면 그 뒤는 걷잡지 못하게 됩니다.”
“흐음.”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양, 다시금 주석은 고개를 비틀며 양범을 노려보았다.
“하나만 묻자. 한국에 대한 자네의 생각과 평가.”
“할 수만 있다면 한반도를 우리 중국의 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만큼 욕심나는 자리이고, 그 안에서 태어나는 인물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욕심이 불끈 솟은 모양이었다.
주석의 입 끝이 씰룩였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그들은 귀속되거나 복종하지 않습니다. 적이냐, 동지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는 동지를 선택했습니다.”
“진심으로 한국을 손에 넣을 방법이 없다고 믿나?”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천재와 능력자, 거기에 위기 상황에 튀어나오는 근성이 한국을 이끄는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을 죽여 버리지 않는 한, 한국을 손에 넣을 방법은 없습니다.”
“한국인의 적은 한국인이라는 말뜻을 알 텐데?”
“왕진상이 정치, 경제, 문화계 인물들에게 손을 뻗친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얻은 게 중국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라는 점도 생각해주십시오.”
양범의 답이 나간 직후였다.
빛이 가득한 창을 배경으로 윤곽만 보이는 주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안전부 부장으로 임명하겠다. 지금부터 원하는 공작을 펼치도록.”
“화이트 울프의 동원 권한이 필요합니다.”
“베이징만큼은 봉쇄 전에 미리 통보해.”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양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가안전부 부장으로 몸을 돌린 양범을 향해 문 앞에 서 있던 하진관이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
테트리스 게임에 서 있는 성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궁전의 가장 위층을 바실리는 업무용 공간으로 선택했다.
이 정도는 돼야 러시아 정보국 의장의 권위가 서는 거지!
운동장으로 보일 만큼 넓은 공간을 사치스럽게 텅 비운 그는 침대보다 커 보이는 나무 책상 하나를 달랑 놓았다.
러시아에 도착해 바실리의 궁전에 도착한 직후였다.
“일본 총리가 전화 연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흥.”
코웃음을 뱉어 낸 그는 집무실로 들어섰다.
입구에서 책상까지 꽤 걸어서 책상에 도착한 바실리는 엉덩이를 걸친 자세로 유선 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바실리요.”
그가 말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통역이 “바실리 데쓰” 하는 일본어를 전달했다.
– 바실리 의장? 다카하시 총리입니다.
다카하시의 음성 아래에서도 역시나 나직한 러시아 말이 들렸는데 이름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바실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 우리 정보국 사사키 요시하라 국장이 한국에서 살해됐습니다. 바실리 의장이 참석했던 자리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나오시는지 심히 유감입니다.
“유감?”
툭 던진 반문 뒤에 바실리는 “흥!” 하는 코웃음을 잊지 않았다.
– 절대 러시아의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 한국에 항의하고, 국제법에 준해서….
“이봐요, 총리.”
짜증이 잔뜩 올라온 음성으로 바실리는 다카하시의 의견을 뚝 잘랐다.
“그 일본의 정보국장이 중국의 국가안전부 부장 왕진상과 손잡고 우리 정보국 국장이자 스페츠나츠 사령관인 안드레이를 살해한 건 어떻게 계산해 줄 셈이오?”
– 그게 무슨…?
“그렇지! 당연히 말하지 않았겠지. 그래 놓고 내 항의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총을 꺼내 드는데 멀쩡히 죽어 줄 사람이 누가 있겠소?”
– 의장은 그 자리에 없으셨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다카하시의 질문에 바실리는 또다시 “흥!” 하는 코웃음을 먼저 던졌다.
“어떤 인간이 보고했는지 모르지만, 나를 아예 바보로 만드는군. 누구요? 그걸 보고한 인간이?”
– 우리 정보조직이라고만 하겠습니다.
“보시오, 총리. 중국도 왕진상 부장의 사망을 조용하게 덮고 있소. 안드레이를 살해한 책임과 보상을 왕진상으로 대신하겠다는 거지. 좋소. 정 이번 일을 파헤치고 싶다면 조사단을 파견하시오.”
분노와 짜증을 얼마나 적절하게 발라 놓았는지 통역하기도 전에 음성만으로도 바실리의 감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도 조사단을 파견할 테니 합동으로 처리합시다. 대신 일본 정보국이 안드레이를 살해한 정황이 나오면 일본 정부는 그에 대한 합당한 사과와 보상을 해 줘야 할 거요.”
– 너무 급작스러운 제안이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급작스러운 제안? 내가 전투기를 보냈던 건 죽은 안드레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지. 이 정도에서 끝내겠다는 엄청난 인내였고. 그런데도 총리가 굳이 들춰 보자면 사양할 마음이 없어.”
– 아니, 일단 검토할 시간을….
“일본 정부가 공동 조사단을 파견하든, 보상을 제시하든, 전쟁을 택하든, 그건 원하는 대로 하시오. 다만, 총리의 항의에 답하는 의미로 전투기와 항모를 함께 보내 드릴 테니 어디 누구의 의지가 더 강한지 확인해 봅시다.”
음성이나 내용으로 봐서 이대로 전화를 툭 끊어도 전혀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 사사키 요시하라 국장이 정말 안드레이 사령관을 살해했습니까?
“조사단을 파견하시오.”
전화를 끊지 못하게 붙잡는 것처럼 질문이 날아왔고, 바실리는 성격대로 시원하게 답을 넘겼다.
해볼 테면 해보자.
다른 말을 붙일 상황도, 분위기도, 그럴 인물도 아니니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 우리 일본 정부와 총리대신인 나 다카하시는 러시아 정부와 바실리 의장을 신뢰합니다.
“흥! 빠르기도 하시군.”
– 이번 일을 원만하게 풀어내기 위해 양국이 상호 방문하는 건 어떻습니까?
“안드레이의 시체가 아직 썩지 않아서 말이오. 그럼 이만 끊겠소.”
다카하시의 제안을 뚝 자른 바실리가 세상 귀찮은 일을 내려놓듯 수화기를 툭 던졌다.
“주연을 잘못 만난 조연의 비애로군.”
그러면서 짜증 가득한 얼굴로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
요원들과 대원들은 꿈꾸는 걸 반기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꿈의 내용을 의식하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작전에 나서기 직전 악몽을 꾼 사람은 빠져도 좋다는 제안을 하겠나.
의식을 잃어버린 것처럼 깊은 잠에 빠졌던 강찬은 전용기 내부의 건조한 공기를 목으로 느끼며 깨어났다. 그리고 강찬이 눈을 뜬 것을 알아챈 것처럼 제라르가 몸을 비틀며 상체를 일으켰다.
“오랜만에 푹 잔 거 같습니다.”
제라르의 음성에 잠이 깬 모양이었다.
“커피 드릴까요?”
눈이 빨갛게 올라온 최종일이 피를 권하는 드라큘라처럼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말이 신호라도 된 양 요원들이 하나둘 눈을 떴다.
어차피 깨어난 참이다.
“다들 일어나는 분위기니까 10분 뒤에 브리핑하자.”
“전달하겠습니다.”
강찬의 지시를 받은 최종일이 몸을 일으켜서 뒤편의 요원들을 향해 움직였다.
커피 마시는 사람, 화장실 다녀온 사람, 10분은 훌쩍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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