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55)
736화 입국이 어려울 텐데? (1)
전용기의 타원형 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던 덩어리 구름이 실처럼 묻어나며 스쳐 간 다음이었다.
“우리의 제거 목표는 CIA 국장 칼튼 숀이다.”
강찬은 기다리는 요원들을 향해 목표를 내놓았다.
이미 알고 있던 요원들이 각오한 눈빛인 반면, 지금 막 타깃을 알게 된 요원들은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정보총국의 지원을 통해 미국으로 잠입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멕시코로 이동 중이다.”
믿음은 이런 순간에 빛난다.
제라르 외에는 처음 듣는 내용이었는데 특히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는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이었다.
“멕시코에서 밀입국 루트를 이용해 미국에 잠입할 계획인데 컨테이너 뒤에 숨어 있으려니까 약이 오르더라고.”
또 뭐가 있나?
눈가를 좁히는 대원들을 향해 강찬은 특유의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적에게는 섬뜩한 느낌이겠지만, 아군에게는 무한한 믿음을 심어 주는 바로 그 웃음이었다.
“일본의 정보국 국장 사사키가 이동 중에 통화한 놈이 있다. 짐작으로는 그 인간이 점조직에서 칼튼 숀의 한 단계 위에 있는 놈인 거 같다.”
잡는 거구나!
점조직의 위에 있는 놈을!
요원들의 확신에 찬 시선에 답하는 것처럼 강찬은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놈들이 실행하려는 계획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하다. 감염,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전쟁, 지금껏 내가 참으며 버텼던 건 국가정보원을 바로잡는 것과 동시에 전쟁을 일으킬 위와 아래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아! 그래서 지금까지의 일들이 벌어졌던 거구나!
강찬의 설명에 따라 대원들의 표정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이런 순간에 사명감을 불태우는 요원들이라니, 빛나는 눈으로 강찬을 바라보는 저 요원들이 돌아갈 때도 모두 함께할 수 있을까?
어쩐지 좌석 중간에 심도원이 앉아 간절하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강찬은 잠시 볼을 씰룩였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서 놈들이 얻으려는 게 뭔지, 감염을 통해 얻는 이익이 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대로 기다리다가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벌어지면 감염만큼이나 끔찍한 참상이 벌어진다.”
강찬은 최종일부터 유강미까지, 요원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이래서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나선 거다. 대한민국을 덮치려는 전쟁을 막아 내는 임무라서. 평화유지군이 예멘까지 날아간 것도 같은 이유고.”
사명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각오가 요원들 틈에서 후끈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멕시코의 누에보 레온 지역이다. 어떤 방비를 했는지, 몇 놈이 지키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곳에 있는 놈을 제거해야 한다. 한반도를 계속 찝쩍대면 숨어 있는 놈이든, CIA 국장이든, 가리지 않고 제거할 거라는 독기와 각오를 이번에 반드시 보여 준다.”
이렇게 날아가 붉은 꽃으로 스러지면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한 채 국가정보원의 벽에 별로 남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독종들이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는 모른다.
“어렵고 힘겨운 임무다. 죽으면 불법 입국자 사망으로 처리된다. 그 모든 걸 감당하더라도 태극기를 건드린 놈들에게 우리가 돌려줄 건 철저한 응징밖에 없다.”
“임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하는 것처럼 최종일이 다부지게 답을 내놓았고, 주변에서 뜨거운 시선을 한 요원들이 올라오는 각오를 삼키기 위해 볼을 씰룩이고 있었다.
***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CCTV를 통해 세상을 관찰하고 지배하는 절대자, 이따금 중국과 일본, 미국의 정보국 수장들과 은밀하게 만나거나 통화하는 것으로 세상일을 주무르는 능력자, 맥퍼슨은 본인의 모습이 계시를 던지는 신과 흡사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을 들여다보던 CCTV가 느닷없이 고장 나면서 화면이 새카맣게 변해 버린 상황이 맥퍼슨에게 달려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번 임무를 맡은 이후 처음으로 맥퍼슨은 두려움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도 다른 곳 아닌 멕시코의 누에보 레온에서 말이다.
“그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게르만의 집사가 조심하는 표정으로 건넸던 조언도 새삼 떠올랐다.
충격은 연달아 달려들었다.
얼이 반쯤 빠진 표정을 한 맥퍼슨은 정면 벽에 매달아 놓은 TV로 시선을 들었다.
도로를 막은 탱크와 장갑차, 완전하게 무장한 군인들이 적색 봉을 휘두르는 모습이었다.
[중국 정부는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북경과 상하이를 폐쇄했습니다. 이번 폐쇄에는 화이트 울프와 기갑사단이 동원되었고, 때문에 내전이 벌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일고 있습니다.]그게 아니라고 이 멍청이들아!
“중국 국가안전부 부장 왕진상이 살해됐단 말이다! 세계적인 보도 채널이라는 곳이 엉뚱한 소리만 지껄이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주먹을 움켜쥐던 맥퍼슨은 두려움에 밀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버럭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감염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는데 내용이 파악됐습니까?] [감염은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예멘에서 확인된 감염이 현재 중국과 미국에서 발견되었고, 이라크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감염에서 특이점이 있다던데요?] [중국과 미국의 경우, 군부대 근처에서 감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중국군과 미군이 예멘, 혹은 특정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지 않았냐는 의혹도 일고 있으나 현재 확인된 바 없습니다.]탱크와 장갑차가 도로를 막은 중국의 상황에 이어 예멘의 한산한 거리 풍경이 이어졌고, 마지막에 데스크에 앉은 앵커의 얼굴이 올라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일본 정부는 몇 시간 전 있었던 전투기 간의 교전이 단순 오해로 빚어졌다는 내용을 공식 발표했습니다.]연달아 들어오는 속보에 흥분한 것처럼 앵커의 음성은 높았다.
교전이 단순 오해?
정보국 국장 사사키 요시하라가 한국에서 살해됐는데 그걸 이렇게 덮어?
지금 보고 있는 속보는 맥퍼슨 역시 처음이었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TV 화면에서 발표장 단상에 나서기 전 걸음을 멈춘 일본 방위성 각료가 고개 숙여 인사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최근 발생했던 러시아 전투기와 자위대 전투기의 충돌은 비행을 미리 통보했던 통보문이 누락되는 바람에 일본의 영공 침해로 오인한 자위대의 실수로 인한 것입니다. 본 방위성은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며,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관해 사과드립니다.] [러시아와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는 건가요?] [통보문이 어떻게 누락된 건지 설명해 주십시오!]기자의 질문이 연달아 나왔는데도 각료는 짧게 고개 숙인 뒤에 옆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중국과 일본의 정보국 수장이 살해된 일이 이런 식으로 사소한 외교 마찰조차 없이 처리된다고?
깊은 물 속에서 진흙을 헤치고 달려드는 거대한 메기처럼 더욱 진해진 두려움이 책상 곁으로 다가와 맥퍼슨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느낌이었다.
‘무슈 강…?’
그 순간, 맥퍼슨은 승용차에서 내려 화면을 보며 피식 웃던 강찬의 모습을 떠올렸다. 퍼뜩 고개를 돌린 맥퍼슨은 책상 위에 놓인 디지털 기기의 버튼을 눌렀다.
– 예, 미스터 맥퍼슨.
“무슈 강의 현재 위치가 어떻게 되나?”
– 정보총국이 지원한 전용기를 이용해 비행 중입니다. 미국으로 향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입국이 어려울 텐데?”
질문을 던지던 맥퍼슨은 섬뜩한 감각에 시선을 돌렸다.
미국의 입국이 어렵다면 멕시코로 오면 된다.
오고 있구나! 이리로!
목표가 맥퍼슨인지는 모르지만, 멕시코로 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중간에서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해 주면 된다.
“예멘 공항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지금 당장!”
– 당장은 어렵습니다, 미스터 맥퍼슨.
“비용을 더 요구하는 거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지불한다고 해!”
– 비용 문제는 절대 아닙니다, 미스터 맥퍼슨. 그보다는 와셀그룹의 마누엘 야닉의 신원이 드러나는 바람에 러시아의 스페츠나츠와 교전이 있었습니다. 현 상태에서 와셀그룹의 용병을 동원하면 지금까지 이용했던 모든 루트가 드러나게 됩니다.
“알았으니까 공격하라고 요구해!”
– 미스터 맥퍼슨.
보고하는 남자의 착 가라앉은 음성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맥퍼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마누엘 야닉이 완벽하게 은신할 때까지 와셀그룹의 용병은 이용하지 못합니다.
“후-. 그렇다면 지금 이동하겠다.”
– 목적지를 알려 주시면 준비하겠습니다.
어디로 가지?
고개를 비튼 맥퍼슨이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
육중하게 내려앉은 수송기가 활주로를 끝까지 달린 뒤에야 방향을 틀었다.
오랜만에 다시 온 평화유지군 본부였다.
거대한 운동장, 그 앞에 학교 건물처럼 서 있는 4층과 부속 건물들, 그 앞에 나와 있는 군인들, 수송기에서 내린 로일은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평화유지군 본부를 돌아보았다.
세상에!
예멘에서 치열한 전투도 꽤 치렀다. 그런데도 강철규와 강태산, 대원들은 짧은 인사를 마치고 곧바로 활주로 끝에 준비된 또 다른 수송기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반나절 정도의 여유를 기대한 건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군인이라고 해도 이렇게 바로 출발할 줄 몰랐다.
인사 정도는 해도 되잖아!
로일은 황급하게 강태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작전을 마치면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그때까지 감염균을 밝혀줄 거라 믿겠습니다.”
다가선 로일의 입을 막는 것처럼 강태산이 먼저 소망을 내놓았다. 그런 뒤에 뒤편에서 다가오는 두 명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장팔모 소령님은 전에 뵈었으니 아실 테고, 이분은 한국의 국가정보원 김형정 본부장님입니다. 연구와 관련해서 필요한 부분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두 사람이 오는 것을 봐서 소망을 먼저 전했던 모양이었다.
“학장님은 뵙고 왔다. 어려운 임무지만, 학장님 잘 모시고, 무사히 돌아와. 그때 밥 먹자.”
“감사합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한국말로 인사한 강태산이 다시금 경례를 보인 뒤에 기다리는 수송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처음 볼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기다란 활주로 끝을 향해 걸어가는 강태산의 뒷모습은.
죽음을 무릅쓰더라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겠다며 나서는 강태산의 뒷모습을 로일은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
살면서 말이다.
여유라는 것도 좀 즐겨야 하고, 손에 쥔 힘도 누려야 살맛이 나는 게 아니겠나. 그런데 그 본능적인 욕구가 이병렬 아래에서는 함부로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었다.
이병렬이 얼마나 독하게 구는지 하다 하다 지친 조직원들 입에서 “얼른 큰형님이 들어오셔야 좀 쉬지 않겠냐?”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강남 용역 사무실에 들른 이병렬은 눈매를 날카롭게 뜨고서 맞은편 조태완의 말에 집중했다.
“아무튼, 추종 세력으로 분류되는 자잘한 조직이라서 딱히 뭐라 할 건 없는데 그런 새끼들을 조용하게 불러 모으는 건 누가 뭐래도 찜찜하지.”
“모사 친 대가리가 누군지 아십니까, 형님?”
“아직 모사인지 확실치는 않고.”
“깡패는 행사로 모이는 게 아닙니까? 그걸 아는 놈들이 조용하게 모이는 게 모사지, 다들…, 다른 게 있습니까, 형님?”
조태완과 박노익이 있는 자리였다. 하마터면 다들 돌대가리만 모인 거라 머리 쓸 놈도 없다는 말을 할 뻔했던 이병렬이 순간적으로 뒷말을 꿀꺽 삼켰다.
“보스가 계속 외국에 있으니까 이 기회에 신강남파 구역 먹어 보겠다며 주접떠는 놈들이 하나둘 생기는 모양이다. 솔직히 오래 참기도 했고.”
걱정을 내놓은 조태완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안 그래도 업장 하나 도와달라며 아래쪽 동생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개새끼들. 누가 업장 못 하게 막았나? 쉽게 처먹으려고 전주 눈탱이 치고, 출연하는 애들 캐라 떼먹으니까 망하는 걸 왜 동생한테 그래?”
“그런 놈들이 어디 생각이라는 걸 합니까? 그저 형님, 형님 하면서 우리 쪽 엔터 연예인 한번 싸게 출연시킬 욕심에 매달리는 거지요.”
조태완과 박노익의 대화를 지켜보던 이병렬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보스가 자리를 비운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오는 현상이었다. 빈자리를 메우겠다며 죽어라 뛰어다니기는 한다. 그러나 멋진 외모에 시원한 한 방, 숨 쉴 때마다 진하게 풍겨 나오는 카리스마를 대신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참! 병렬아. 서울 외곽에서 태국 여자애들 돌리는 놈들이 있단다. 한번 알아봐.”
“여자 말입니까?”
“그래! 태국 마사지라고 하는데 끝에서, 알지?”
출신은 어쩌지 못하는지 나이 든 박노익이 둥그렇게 만 왼손 호구 부분을 오른손 손바닥으로 때리며 천박한 소리를 만들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신강남파가 절대 금지한 여자 장사부터, 아래쪽 소규모 조직이 조용하게 모여서 단합 대회를 한다고 설치고, 고문 자리에 앉은 박노익에게는 노골적으로 업장 도와달라는 청이 들어온단다.
“교창이 형님과 의논해서 아래쪽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
“그래! 알고서 눈감았다가 뒤통수에 칼 맞느니 우리가 냄새 맡았다는 것 정도는 알려 주는 게 좋겠지. 다녀와. 대신 동생들 좀 규모 있게 데려가.”
“예, 형님.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래. 살피자.”
고개 숙여 인사한 이병렬이 조태완의 사무실을 나온 다음이었다.
“나오셨습니까, 형님.”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던 조봉진의 인사를 받으며 이병렬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철컥. 철컥.
“후-.”
담배를 든 손을 감싸 불을 붙인 이병렬은 강남의 빌딩 틈으로 좁게 보이는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나라 구하냐, 씨발.”
“예? 형님?”
“아니야, 인마.”
“예, 형님.”
귀국하지 않는 강성태를 원망하는 욕설을 뱉었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거기에 본능이 이대로 계속 두면 안 된다는 경고를 사정없이 날리고 있었다.
“봉진아. 강서구 섭우랑 대림동 종환이 좀 신월동 나이트로 오라고 해.”
“예, 형님.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스마트폰을 꺼내서 구석으로 움직인 조봉진을 바라보던 이병렬은 담배를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강성태를 대신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담배 연기에 담아 뱉어 냈다.
“지금 출발한답니다, 형님.”
“가자.”
조봉진이 열어 주는 승용차의 뒷문으로 이병렬이 들어선 다음이었다. 사무실을 지키던 덩치들이 달려와 순서대로 고개를 깊게 숙였다.
승용차가 출발한 뒤에 이병렬은 상체를 세우는 덩치들을 힐끔 돌아보았다. 목덜미에 엄지손톱만 한 거미가 내려앉은 것처럼 뒤통수가 께름칙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믿을 만한 놈이 있으면 좋다.
덩치 되고, 성격 단순한 데다, 흉악한 인상인데도 가끔 보고 싶은 놈, 뒷좌석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이병렬은 저장된 번호를 찾아 눌렀다.
– 김진용입니다, 형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님?
“바쁘냐?”
– 자리만 지키는 겁니다, 형님.
이 새끼는 바쁜 거 빤히 아는데도 꼭 이렇게 대답한다.
“신월동에서 보자.”
–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이병렬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서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때 서달수까지 있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서달수를 떠올렸던 이병렬은 호수에 던진 작은 돌멩이처럼 은은하게 퍼지는 미소를 날카로운 눈매 아래로 그렸다.
김진용, 서달수, 조봉진 같은 동생들과 생활했고, 강성태라는 보스 모셨으니, 이 정도면 나름 잘 산 깡패 아닌가 싶어서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