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57)
738화 입국이 어려울 텐데? (3)
능력 있는 직장인 복장을 한 유인강은 건물 바깥에 세워 둔 승용차의 운전석에 올랐다.
부르릉. 부으으으-응!
시동을 걸기 무섭게 튀어 나간 유인강은 도로에 합류하고 나서야 안전벨트를 당겨 고리에 걸었다.
부아아-앙.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빠지라고?
문바키가 그랬던 것처럼 화난 맹수의 모습으로 이를 드러냈던 유인강이 그 위에 야릇해 보이는 웃음을 얹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인원 줄였다고 해서, 임무를 가려 하면 그건 직장인이지 조국을 위해 일하는 요원이 아닌 거다.
도로 끝에서 출발해도 고작 세 시간이면 국경에 도착한다. 어느 곳에서 타깃이 합류할지 모르니 최대한 서둘러 휴게소에 가는 게 중요했다.
부아-앙!
“선배가 만든 기회죠?”
가속 페달을 깊게 밟은 유인강은 앞쪽 유리를 통해 보이는 멕시코 하늘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2년 전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갔던 길에 찾아가 고개 숙이는 유인강을 심도원은 복잡해 보이는 미소로 반겨 주었다. 둘이서 방이동 고깃집에 앉아 소주를 기울일 때였다.
“사표 백 번쯤 생각했었다.”
“선배님?”
안타깝게 부르는 유인강의 잔에 소주를 따라 주던 심도원은 바닷속처럼 깊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사표를 내겠다고 결심한 날 밤이면 거짓말처럼 강명구 팀장님이 꿈에 나온다. 믿기냐?”
신기한 일인 건 분명한데, 아무튼 심도원은 이런 거로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 놓고는 진짜 무서운 눈으로 날 노려보시는 거야.”
유인강은 강명구 아래에서 오래 생활하지 못했다. 대신 선배들을 통해 그가 어떤 사명감을 지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엄청나게 들었다.
“인강아.”
“예, 선배님.”
심도원이 나직하게 부르는 통에 유인강은 얼른 상체를 세웠다. 옆자리에서 보면 회사 높은 양반이 술자리에서조차 아래 직원을 괴롭히는 모습일 텐데, 유인강은 오랜만에 마주한 그 시간이 그렇게 좋고, 든든했었다.
유인강을 불렀던 심도원이….
지잉. 지잉.
태양을 향해 빠르게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유인강은 삽시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검정 테트린 US 1709, 3763, 누에보 레온 16킬로미터 지점]핸들 위로 스마트폰을 들었던 유인강은, “됐어!” 하는 혼잣말과 함께 스마트폰을 옆으로 툭 던졌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유인강이 10킬로미터 이상 앞서 있다는 점이었다.
“용병 아니라 용병 할아비들을 데려와도 미국 못 가!”
띡똑띡똑. 띡똑띡똑.
각오를 뱉은 유인강은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넣고서 나무판자로 화물칸을 높인 트럭의 뒤로 차선을 옮겼다. 그리고서는 사이드미러로 뒤쪽을 확인했다.
***
계획 확인했고, 각오도 나눴으니 이제는 임무를 위해 출발할 시간이었다.
“회장님은 못 오십니까?”
“아무래도 일이 많으시잖나.”
인사를 못 한 게 아쉬워서 질문한 강성태를 곽대출이 다독여 주었다.
“평화유지군의 이동 시간을 아무리 정확하게 파악한다고 해도 작전 시간을 명확하게 정하기는 어렵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이 전화기를 이용해서 숫자를 보낼 건데, 9를 찍으면 9분 뒤에 공격하라는 신호다. 오케이?”
“예.”
위성 전화를 받아 든 강성태가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이었다.
“커피라도 한잔하고 헤어져야지.”
넉넉하게 웃은 곽대출이 강성태를 붙들었다. 솔직히 강성태는 곽대출의 이런 여유가 좋았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우리 관리 지역이니까 여기서는 편하게 있어도 돼.”
강성태를 붙든 곽대출이 시선을 돌렸고, 도깨비 대원들이 당연하다는 듯 몸을 돌렸다.
“한국에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커피 식기 전에 돌아올 거지?”
“그럼요.”
창고를 가로지른 강성태는 살포시 열어 둔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섰다. 어둠에서 벗어나 아직 남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은 상태에서 스마트폰을 꺼냈고, 이병렬의 번호를 눌렀다.
하울링이 묻은 신호음이 몇 차례 울린 뒤였다.
– 이병렬입니다, 보스.
여유를 보이려는 이병렬의 대꾸가 날아들었다.
“별일 없어?”
– 일은 뭔 일이 있어? 한가하니까 이쪽은 염려하지 않아도 돼.
이병렬의 대꾸를 들은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무슨 일이야?”
– 뭐가?
“목소리가 다르잖아. 내가 걱정하지 않게 적당히 넘기려는 모양인데 그게 더 신경 쓰인다. 괜찮으니까 말해.”
– 표시 났어?
“많이.”
강성태의 답이 넘어간 직후에, “귀신 다 됐네.” 하는 이병렬의 대꾸가 건너왔다. 잠깐 사이였다. 이병렬은 브리핑하듯 조태완과 박노익이 털어놓은 걱정거리들을 간결하게 전해 주었다.
“빠르면 내일 출발한다. 함께 돌자.”
– 여기는 신경 쓰지 마.
“병렬아.”
강성태는 나직하게 이병렬을 불렀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남들 모르게 조용히 들어갈 테니까 여수에 달려갔던 것처럼 불쑥 가자.”
– 아, 이 팔랑귀! 다른 사람 말에는 이러지 않는데 이상하게 보스가 흔들면 팔랑댄다니까!
강성태가 먼저 웃었고, 이병렬이 뒤따른 것처럼 웃음을 흘렸다.
– 알았어. 나라 구하는 것도 아닐 테고, 빨리 좀 들어와.
“알았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가 액정을 바라볼 때였다.
“커피 가져다줄까?”
“들어가겠습니다.”
머리를 빼꼼히 내민 곽대출의 질문에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안다미와의 통화는 이동 중에 하는 게 좋겠다.
***
얼마나 화가 치밀었는지 살짝 벗어진 바실리의 이마가 벌겋게 달아올랐을 지경이었다.
“이 바실리를 농락해?”
분통을 터트린 그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고, 이어서 번호를 눌렀다.
– 강찬이다.
이 기본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대꾸 좀 봐라!
“내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어떤 일을 했는지 알 거 아닌가?”
– 알아.
“끄응.”
뻔뻔하기 그지없는 강찬의 대꾸에 불끈 솟구치는 분노를 삼키기 위해 바실리는 신음까지 흘렸다. 맹세컨대 태어나서 이런 무시와 분노를 참아 낸 최초의 순간이고, 그만큼의 인내심을 발휘한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 스페츠나츠 때문인가?
“이봐…, 주연. 이유가 분명해야 할 거다.”
한 번 더 참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찬이 헛소리를 하면 적과 손을 잡더라도 바실리를 무시한 대가를 처절하게 돌려준다. 이를 뿌드득 씹은 바실리가 독한 각오를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 장소와 필요한 인원 모두 내가 정하기로 했다. 또한, 내 명령에 무조건 따르되 반항하면 사살해도 괜찮다는 조건이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마저 모두 받아들였다. 덤으로 일본의 멍청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역할까지 했단 말이다.”
너무 오랫동안 주연이라고 받들다 보니 자연스레 눌려 버린 걸까, 아니면 본능이 조금 더 참아 보라며 바실리를 붙들어서일까. 분노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 고함을 지르고자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말끝은 차분했다.
– 바실리? 유리 바스첸코를 후계자로 키우고 싶었던 거 아냐?
“분하지만 그렇다.”
왜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답하냐고!
하다 하다 이제는 본인의 태도에 분노가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 아프리카의 작전을 비무장 왕과 검은 땅의 지배자 강태산이 지휘한다는 걸 알고 있나?
“뭐? 뭐라고?”
강찬이 없다는 사실만 알려 줬지, 유리 바스첸코는 그런 내용을 보고하지는 않았다.
– 몰랐던 모양이군. 안드레이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숨겨서 키우다 보니까 외부에서 인사할 기회가 없었겠지. 그 바람에 비무장 왕과 강태산을 몰라봐서 보고하지도 못했을 테고. 그런 아쉬움 때문에 안면을 넓혀 주려고 공항에서 운전을 맡겼던 거 아닌가?
“알고 있었나?”
진짜 더럽게 고분고분하네!
천하의 바실리가 말이지!
– 비무장 왕과 검은 땅의 지배자와 함께하는 합동 작전이다. 내가 없어야 비무장 왕, 강태산과 좀 더 편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
“그런 면까지 배려했다니, 주연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군.”
– 이제 서운한 마음이 풀렸어?
“꼭 그런 건 아니었다.”
피식.
한 걸음 물러나는 바실리에게 언제 들어도 언짢은 강찬 특유의 웃음이 날아들었다.
– 그래? 나는 끝장을 보자는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 아무튼, 모스크바의 의장에게 엄청난 인내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자존심을 콱 짓밟는 말과 함께 통화가 끊겼다.
“안드레이, 이 미련하고 멍청한 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지옥에서라도 마주치게 되면 내가 갈가리 찢어서 지네 먹이로 던져 주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바실리는 기반을 망가트린 안드레이를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
회색 군복 바지와 편한 면티 위로 방탄조끼를 걸친 용병들에 둘러싸인 상태로 맥퍼슨은 대형 SUV에 올랐다.
개인 경호원이 일상인 멕시코였다.
용병들은 거리낌 없이 기관총을 어깨에 걸었고, 허리와 방탄조끼에 권총과 탄창을 매달았다. 맥퍼슨이 탑승할 때까지 SUV를 빙 둘러쌌던 용병들이 차례로 올라탔고, 곧바로 출발했다.
도로에 들어선 맥퍼슨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울린 다음이었다.
– 칼튼 숀입니다.
맥퍼슨이 원하던 음성이 들렸다.
“출발해서 도로에 합류했소. 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겠소?”
– 전용기라서 레이더에 위치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멕시코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 시간은 더 비행해야 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프랑스 놈들이 달려들 가능성은 어떻소?”
– 우리와 정보총국 모두 서로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달려든다면 우리 요원들이 나설 명분이 됩니다. 숫자도 비슷하고, 실력이야 우리 쪽이 더 뛰어나니 그 부분 역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늘 여유롭게 지시를 내리던 맥퍼슨의 채근이 칼튼 숀은 통쾌한 모양이었다. 그가 한껏 여유를 담은 음성으로 장담을 내놓았다.
– 아! 한국의 국가정보원에서 요원 한 명을 보낸 모양입니다. 아마도 따라붙으며 위치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린 모양인데 정 거치적거리면 함께 움직이는 용병들에게 적당히 제거하라고 지시하십시오.
“제거해도 되겠소?”
– 멕시코 갱단인 줄 알고 제거했다고 하면 한국의 국가정보원이나 무슈 강, 정보총국도 뭐라 하지 못합니다.
그렇군.
정보국의 속성이야 칼튼 숀이 맥퍼슨보다 한 수 위겠다. 혹시나 해서 맥퍼슨은 대형 SUV 내부를 돌아보았다.
운전석, 조수석, 그리고 맥퍼슨의 옆자리까지, 소총과 권총을 소지한 특수부대 출신 용병이 세 명 앉았고, 앞서가는 SUV에 네 명이 탑승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에서 보낸 달랑 한 명은 내리는 순간 벌집이 될 수밖에 없겠다.
“그럼 잠시 뒤에 봅시다.”
–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껏 여유를 보인 칼튼 숀과의 통화를 마친 맥퍼슨은 엉뚱한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이럴 때 한국의 요원이 아니라 강찬 한 명이 따라오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나. 적당한 곳에서 용병들을 시켜 벌집을 만들어 버리면 근심거리의 대부분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말이다.
아쉬운 심정으로 창밖을 보던 맥퍼슨의 입가에 느닷없이 잔인한 미소가 스쳤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에서 요원 한 명을 보냈다고 하더군.”
힐끔 뒤를 본 조수석의 용병과 옆에 앉은 용병이 동시에 같잖다는 웃음을 보였다. 하기는, 스페츠나츠와 붙어서 이겨 낸 용병들이니 달랑 한 명 달려오는 요원쯤 가소롭기도 하겠다.
“CIA 국장 말로는 멕시코 갱단인 줄 알고 사격했다고 하면 항의도 못 한다던데, 어떤가? 본보기로 삼는 게?”
맥퍼슨의 제안이 나온 직후에 조수석에 앉았던 용병이 고개를 돌렸다.
“제거하라는 뜻입니까?”
“우리에게 접근하는 동양인 한 명일 테니 쉽게 눈에 띌 테지? 발견하는 대로 사격하면 끝나는 일 아닌가?”
“보시다시피 다른 차량이 많은 도로입니다. 달리는 차량에 다짜고짜 총격을 가하면 우리가 살해한 게 됩니다.”
“민간군사기업의 이미지가 있을 테니 이해는 하지만 아쉽군.”
“그보다는 작은 접촉을 통해 차를 멈추고, 다툼이 일어났다는 핑계로 제거하는 게 좋습니다. 총기를 지녔으면 좋고, 아니면 우리가 지닌 권총 하나쯤 던져 놓으면….”
계획을 풀어놓던 용병이 왼손의 손날로 허공을 슥 그었다. 그거로 끝난다는 의미였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
생각만 해도 통쾌한 일이어서 맥퍼슨은 환한 얼굴로 용병의 계획을 받아들였다.
남은 건 한국인 요원을 찾는 일이었다.
조수석의 용병이 무전기를 통해 방금 세운 계획을 앞에 달리는 SUV에 전할 때였다.
하늘이 맥퍼슨의 뜻을 받아들인 걸까?
시선을 돌린 맥퍼슨의 눈에 나무로 화물칸 벽을 높인 트럭을 뒤따르는 승용차가 들어왔다.
“저기! 저 승용차 운전자를 보게!”
손가락으로 승용차를 가리켰던 맥퍼슨은 혹여나 한국인 요원이 알아볼세라 얼른 팔을 내렸다.
이쪽에서는 운전자의 뒷모습만 보인다.
“오른쪽 차선 트럭 뒤의 승용차 운전자를 확인해.”
– 운전자 동양인, 그 외에 탑승자는 없습니다.
무전기를 통해 확인한 내용을 전달받는 순간이었다. 트럭보다 빠르게 달린 덕분에 맥퍼슨이 탄 SUV가 승용차의 바로 곁을 지나치고 있었다.
용병은 물론이고, 맥퍼슨도 승용차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저놈 봐?
곧 죽게 생긴 놈이 오히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SUV를 확인하고 있었다.
“준비해.”
조수석의 용병이 지시했고,
철커덕.
동시에 맥퍼슨의 곁에 앉은 용병이 소총의 노리쇠를 거칠게 당겼다. 맥퍼슨이 슬쩍 돌아보았는데 긴장은커녕 세 명의 용병 모두 새로운 서류를 받아 든 직장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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