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59)
740화 용병? 지랄을 해라 (2)
이 미친놈!
신광선의 얼굴 위로 써 놓은 듯 또렷한 감정이 올라왔다.
– 깨어나면 귀찮을 거 같아서 힘껏 찍기는 했는데, 진짜 목뼈가 부러진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지금 그게 문제야? 너는 진짜 괜찮아?”
– 팔이 부러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뻔뻔한 대꾸를 들은 김형정도 결국 기가 막힌 심정의 웃음을 보이고 말았다.
“고맙다.”
– 팀장님.
통화를 마치기 위해 인사를 전한 신광선을 유인강이 묵직하게 불렀다.
– 숫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게 임무를 주지 않았다면 살아 있는 내내 팀장님을 원망했을 겁니다.
그런 뒤에 김형정의 번민을 따끔하게 질책하는 듯한 뜻을 전했다. 힐끔, 신광선이 김형정을 살피는 순간이었다.
– 임무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야 한국에 가서 심도원 선배를 찾아뵐 면목이 선 거 같습니다.
“알았다. 몸 챙기고, 조금 뒤에 부원장님과 우리 직원들 도착할 테니 용의자 넘기는 것까지 신경 써.”
– 고생하셨습니다.
통화를 마친 신광선이 종료 버튼을 눌렀다.
“707 출신이라고 했었지?”
“예. 우리 회사만 보면 용우 바로 뒤 기수인가 그럴 겁니다.”
김형정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모니터에 시선을 주었다.
버텨 다오. 이렇게라도.
국가정보원이 바로 설 때까지 기둥이 되어 주고, 새로운 요원들이 들어오면 지금의 경험을 내려 다오.
참 오랜만에 느껴 보는 통쾌한 심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모니터에 올라온 정보를 확인하는 김형정의 눈가에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
칼튼 숀은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집무실 안을 서성였다.
“찾았나?”
–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보다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정보총국 요원들이 대놓고 멕시코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미친 인간들!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 멕시코에서 활동 중인 DEA(미국 마약단속국) 요원들에게서 총격과 정보총국 요원들의 이동에 관한 문의가 계속 들어오는 것도 문제입니다. 모른다고 잡아떼고 있지만, 반나절이면 그들도 내막을 알게 됩니다.
“끄응.”
이대로 덮으면 맥퍼슨이 강찬의 손에 넘어가겠고, 달려들자니 미국에서까지 넘어가는 정보총국 요원들과 실제로 전쟁 가까운 교전을 벌이게 생겼다.
“무슈 강의 위치는?”
– 10분 뒤 착륙입니다. 무장한 정보총국 요원들이 납치된 인물이 거주하던 건물과 무슈 강이 도착할 간이 활주로를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어서 감시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지?
요원들을 있는 대로 퍼붓는 한이 있더라도 맥퍼슨이 지내던 건물만은 날려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던 칼튼 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강찬, 그와 영혼의 파트너라는 제라르, 이번 사건을 봐서 알겠지만, 물불 안 가리는 한국 요원, 거기에 미국 내 요원들마저 모조리 멕시코로 보낼 만큼 충성심 가득한 문바키, 그들에게 달려들어 봐야 승산은 거의 없었다.
“무슈 강을 따라가면 납치된 장소 정도는 알게 되겠지?”
– 그렇기는 합니다.
알아 봐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CIA 멕시코 지부장의 답이 뜨뜻미지근했다.
“납치됐다고 하고, 멕시코 정부와 경찰의 도움을 받는 건 어떤가?”
– 미국 국경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벌어진 총격전입니다. 마약 갱단과 요원들의 충돌로 마무리한 데다, 사망한 용병의 처리까지 있어서 도움받기 쉽지 않습니다.
칼튼 숀이 입술을 뒤틀 때였다.
삐익. 삑. 삐익. 삑.
그의 책상에 있는 인터폰이 날카롭게 울었다.
“다시 연락하지.”
통화를 급하게 마친 칼튼 숀은 책상에 올려진 인터폰의 스위치를 눌렀다.
“무슨 일이야?”
– 백악관에서 긴급 통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일 참 더럽게 꼬인다. 하기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바로 앞에서 대대적인 총격전이 벌어졌으니 보도 방송들이 날뛸 테고, 덩달아 백악관이 날카롭게 변할 만도 하겠다.
“바로 전화하겠다.”
인터폰에 답한 칼튼 숀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에 스마트폰의 번호를 찾았다.
이대로 있다가 맥퍼슨이 뭐라도 지껄이면?
번호를 찾던 칼튼 숀은 잠시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맥퍼슨을 찾아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점점 더 칼튼 숀을 향해 조여 오는 죽음의 고리를 벗는 게 급한 일이었다.
마음을 정한 칼튼 숀은 굳은 표정으로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맥퍼슨이 당했소.”
– 스페츠나츠를 밀어냈다는 성과를 얻은 뒤고, 상대방이 한 명이라는 사실에 잠시 방심했던 모양인데, 우리 직원 일곱 명을 혼자 상대했다는 말만큼은 믿을 수가 없어 조사 중이었소.
“당연하게 정보총국 요원들이 도왔을 거요. 당장 앞서가던 트럭 운전사가 정보총국에서 파견한 요원이었다는 점만 봐도 짐작할 수 있지 않소?”
다독이는 듯 칼튼 숀이 정황을 전한 다음이었다.
“어차피 무슈 강이 활동을 시작했고, 스페츠나츠까지 다시 동원된 상황이오. 이렇게 있다가 당하느니 정보총국의 모든 시선이 몰린 틈을 노리는 건 어떻소?”
– 예멘 공항을 말하는 거요?
칼튼 숀은 답을 하지 않았다.
– 알았소.
그런데도 상대방은 분명한 답을 내놓고 전화를 끊었다.
일단 시선을 돌릴 테고.
독한 표정을 한 칼튼 숀이 뉴욕의 도심을 내다볼 때였다.
삐익. 삑. 삐익. 삑.
전화를 독촉하는 인터폰이 다시 울렸다.
***
절대 용서하지 못하는 원수의 자식, 유리 바스첸코를 바라보는 강철규의 심정이었다. 힘없던 시절에 말이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던 우리의 젊은 피들이 저 개 같은 부대 놈들의 손에 귀와 귀를 쇠꼬챙이로 뚫린 채 죽어 있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의 귀와 귀에 날카롭게 갈아 댄 철심을 박아 가며 죽이고, 남일규가 ‘서울 구경’이라는 잔인한 응징을 했던 이유 또한 조국의 소중한 젊은 피를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고, 몸부림이었다.
그런 내용을 모르지 않는 강찬이 저런 놈들을 보냈을 때는 이유가 있겠다. 이런 식으로라도 해서 지금 싸우는 적을 무너트려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을 거다.
“태산아. 저놈들은 네가 지휘하는 게 좋겠다.”
차동균, 곽철호, 안타깝게 희생된 양동식 소령을 통해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졌던 처절한 사투를 강태산은 이미 들었다. 그래서 늙어 버린 수사자의 눈에 담긴 감정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불어나 영어로 지시를 내려야 해서 그게 좋을 거 같습니다.”
뜻을 헤아려 주는 강태산이 기특해서 강철규는 피식 웃었다. 그런 뒤에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부원장을 믿는다. 이렇게라도 적을 상대하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너희도 이해해 다오.’
하늘에 있을 대원들에게 진심을 전한 강철규는 느긋하게 시선을 내렸다. 이런 순간에 적대감을 심어 주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강태산과 후배들에게 돌아온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남는다.
“이름이 뭔지 물어봐 주겠니?”
“예, 학장님.”
강철규의 요구를 받은 강태산이 질문을 던졌고, 예의를 지키겠답시고 자세를 바로 한 러시아 지휘관이 답을 내놓았다.
배운 놈인데?
눈빛과 태도, 알지는 못하지만 능숙하게 들리는 프랑스 억양까지, 강철규는 배운 놈의 목을 돌려 보고 싶다는 욕망을 지그시 누른 눈빛을 하고 지켜보았다.
“정식 이름은 드미트리 유리 바스첸코라고 하는데, 편하게 유리 바스첸코라고 부르면 된답니다.”
이름 참 귀찮네.
강철규의 눈빛을 받은 유리 바스첸코가 또다시 상체를 세웠다.
피식.
저놈은 강철규에 관해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적대감이 아니라 존경하는 표정과 눈빛을 하고 있는 게 이해되지 않지만 말이다.
멀리서 트럭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서 강철규는 시선을 돌렸다. 곧장 달려오는 것으로 봐서 지경그룹에서 보낸 트럭이 분명했다.
“학장님?”
“봤다.”
트럭에 올라타면 곧바로 작전 지역으로 이동한다.
어쩌면 피와 눈물로 뒤엉킨 삶에서 마지막으로 나서는 작전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철규는 달려오는 트럭을 애잔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
데그마다 호텔의 객실에 들어선 이용우는 여행용 가방을 한쪽에 세워 두고서 창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 뒤에 열려 있는 커튼의 속지를 당겨서 안을 가렸다.
“저기요.”
자밀라가 이용우를 부른 직후였다.
창에서 고개를 돌린 이용우가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웠다.
뭐가 있어요?
놀란 눈으로 자밀라가 바라볼 때였다.
냉장고, TV, 침대 아래, 하여간 객실 안을 털다시피 뒤진 이용우는 마지막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안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난 다음이었다.
이용우는 욕실에 있던 커다란 수건 한 장을 들고나왔다.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했어?”
“언제 목숨을 노릴지 모른다면서요? 절대 시선을 끌지 말라고 했던 분이 택시 요금 5달러 깎겠다며 공항 앞에서 시간을 끈 건 왜 그런 거예요?”
“그거.”
자밀라가 말했던 상황이 떠오른 듯한 반응을 던진 이용우가 다시금 창가로 향해 벽에 붙어섰다.
“아까 호객꾼들하고 다툰 건 내가 도착했다는 걸 여러 사람에게 알리려고 그런 거야.”
이건 또 뭔 소리야?
“우선 호객꾼들이 만만하게 볼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리려던 거고, 다음으로 이곳에서 장사해 볼 생각이라고 떠든 건 장사 밑천 털어먹을까 욕심내는 사기꾼들 찾아오라는 의미인 거지.”
“그 사람들이 도움이 돼요?”
“사기꾼들은 내가 요원인 거 모르니까. 적어도 내 돈을 노리는 동안만큼은 이거저거 내가 원하는 사소한 정보를 가져다줄 거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려 줄 거거든.”
경험은 이런 거구나.
자밀라는 이제야 공항에서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이용우가 보였던 모습들을 이해한 눈치였다.
“방을 함께 써서 불편할 텐데, 죽는 거보다는 나아.”
“말했던 거잖아요.”
답을 한 자밀라는 그제야 창가 안쪽에 놓인 테이블에 앉았다.
“저녁 먹으러 나갈 테니까 그때까지 쉬어.”
“이곳은 안전해요?”
“우리가 나갈 때까지는.”
자밀라에게 답을 한 이용우는 습관처럼 창 아래 도로를 살폈다.
노리는 놈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경고로 택시를 조심하라고 했었다. 거기에 강찬은 최대한 시끄럽게 굴어서 적의 신경을 긁어 대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강찬이 그런 지시를 내렸을 때는 다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걸 거다.
‘목숨을 노리는 놈들에 맞서서 최대한 시끄럽게.’
강찬의 눈빛을 떠올린 이용우는 날카롭게 건너편에 있는 2층 건물들을 살폈다.
***
정보총국에 이렇게나 많은 요원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공항에 내린 강찬 일행을 향해 소총을 건 정장 차림의 요원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부총국장님.”
선글라스를 착용한 요원이 프랑스어로 강찬에게 인사한 뒤에 대기시켜 놓았던 차량을 가리켰다.
“한국의 요원과 체포한 용의자는?”
“CIA가 워낙 집요하게 따라붙어서 차량에 함께 있습니다.”
한적한 곳에 숨겨 두었다고 믿으며 미친 듯이 찾아다닐 CIA의 콧잔등이를 제대로 갈긴 듯한 대응이었다. 답을 들은 강찬이 피식 웃었고, 제라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우리의 이동 방법은?”
“차량에 탑승하셔서 한국의 요원과 용의자를 만나시고, 중간에 방향을 바꾸겠습니다. CIA는 부총국장님이 용의자가 지내던 건물에 들어가는 줄 알고 추적할 겁니다.”
문바키가 제대로 해낸 모양이었다.
강찬은 최종일을 향해 가까이 오라는 투로 눈짓을 던졌다.
“이동하는 도중에 차량을 바꿔 타라고 하거나 혹은 목적지를 바꿀 수 있으니까 참고해서 요구대로 따라.”
최종일도 처음 듣는 지시였다. 그런데 지시를 들으며 짐작하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사명감에 불타는 눈빛으로 최종일이 “알겠습니다, 부원장님.” 하는 답을 내놓았다.
“짐작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중간에 바로 미국으로 빠져나간다. CIA는 우리가 목표한 건물로 들어간 줄 알고 있을 테니 놈들의 시선이 이쪽에 모두 몰렸을 때, 달려가서 칼튼 숀을 제거하자.”
지시를 마친 강찬은 뒤편에 대기 중인 요원들을 돌아보았다.
“조용하게 내 지시를 전달해. 그리고 요구가 있으면 빠르게 움직여.”
지시를 마친 강찬은 이제 그만 움직이자는 투로 선글라스를 착용한 요원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쪽입니다.”
강찬의 움직임과 경호원처럼 주변을 감싸고 움직이는 요원들을 어디에선가 감시하고 있겠다. 그렇게 이동하는 모습을 추정해서 강찬의 위치를 짐작할 테고.
‘얼마 남지 않았다. 모가지 잘 보관하고 있어.’
독한 각오를 띄운 강찬은 요원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 뒤에 문을 열어 주는 대형 승합차에 올랐다.
뒷좌석이었다.
깁스한 왼팔을 목에 건 지지대에 걸쳐 놓은 국가정보원 요원이 강찬을 보고는 얼른 반대편 문 쪽으로 몸을 비켜 주었다.
강찬이 탔고, 그 안으로 다시 제라르가 들어오는 바람에 비켰다고 해도 국가정보원 요원과 어깨가 닿을 만큼 바싹 붙어 앉았다.
핏물이 많이 튀었는지 셔츠와 재킷에 시커멓게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유인강?”
“그렇습니다. 누구십니까?”
젊어 보여서 설마 하는 표정이었다.
“부원장이다.”
“예? 정말 부원장님이십니까?”
“젊어 보이기는 하지? 의심스러우면 김형정 본부장에게 전화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여기 제라르에게 들어도 되겠다. 프랑스어가 되면 정보총국 요원들에게 물어봐도 좋겠지.”
강찬의 태도, 상체를 기울여 흐뭇하게 바라보는 제라르, 조심하는 정보총국 요원들의 모습을 차례로 돌아본 유인강이 상체를 똑바로 세웠다.
“국가정보원 멕시코 지부 유인강입니다.”
그런 뒤에 강찬을 향해 깍듯하게 고개 숙이며 인사했고, 그 직후에 승합차가 움직였다.
“대테러팀을 부활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원장님. 그리고 이런 임무를 맡겨 주신 점에도 깊게 감사드립니다.”
얼핏 보기에는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무역회사 직원처럼 보이는 유인강이 강찬을 똑바로 본 채 건네 온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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