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6)
597화 물건 찾았다 (1)
눈싸움하는 사람들처럼 강태산과 로일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꺼내야 할 때였다.
“로일 박사. 연구팀이 원하는 게 뭡니까?”
로일은 강태산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연구팀을 호위하는 게 나와 우리 팀, 외인부대에게 내려진 임무입니다. 희생자가 나오지 않으려면 어젯밤처럼 말도 안 되는 적들이 나타나는 이유 정도는 알아야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어서 묻는 겁니다.”
“내가 뭔가 감췄다는 건가요?”
“감췄다기보다 말하지 않은 게 있다면 출발하기 전에 알려 달라는 겁니다.”
보고했으니 지시를 받아야 한다.
출발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한 이준호가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애꿎게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물론 소총에 방탄조끼, 수류탄, 권총, 대검으로 무장한 새우여서 어지간한 상어도 때려잡을 수준이지만 말이다.
“하나씩 정리합시다. 어젯밤의 적들이 로일 박사를 노린 겁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로일 박사가 알아내고 싶은 게 있는 것처럼 적들도 로일 박사에게서 얻어 내거나 알고 싶은 게 있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왜 로일이 이 험난한 길을 가야 하는지, 그 끝에서 얻으려는 게 뭔지. 그러나 알고 가는 것과 누군가 희생되고 난 뒤에 아는 건 과정부터 결과까지 너무나 다른 일이었다.
“로일 박사. 우리 대원들과 외인부대원들을 보세요.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어떤 적이 나와도 연구팀을 두고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대신 적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되면 한 명이라도 희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망설이고 있었다. 로일은. 단순히 호위 임무를 위해 함께하는 평화유지군 지휘관에게 내용을 털어놓아도 될까 하는 망설임이 그녀의 눈에 분명하게 올라와 있었다.
“미안한데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영어로 오간 대화였다. 그리고 이준호를 비롯해 강태산의 팀은 영어 대화를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로일 박사. 여기 이준호 소위는 내게 문제가 생기면 호위 팀을 지휘해야 합니다. 로일 박사에게서 들은 내용 중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이준호 소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알았어요.”
로일의 답을 들은 강태산은 이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출발을 잠시 미룬다. 주변 경계를 확인하고, 기다려.”
“예, 대위님.”
팽팽한 신경전에서 빠져나가게 된 새우가 다시 붙잡힐까 무섭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둘만 남았다고 해서 커피를 앞에 두고 테이블에 앉을 건 아니어서 강태산은 이제 털어놓으라는 시선으로 로일을 돌아보았다.
“체내에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넣는 실험을 했었던 건 말했죠? 그때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동물들이 나왔어요. 반응 실험을 위해 그중 몇 마리에 진통제를 투입했는데…….”
곤란한 것처럼 주변을 돌아보았던 로일이 다시 강태산에게 시선을 주었다.
“몇몇 실험 대상에서 엉뚱한 반응이 나왔어요. 레스베라트롤 효과와 비슷한데, 체내에 있는 백색 지방을 갈색 지방으로 변환해서 사용하는 거예요. 포도나 시나몬을 먹었을 때처럼요. 물론 그 몇백 배의 반응이었고요.”
염병, 어렵네.
강태산의 표정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심장이 멈추면 죽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생명의 순리예요. 그런데 심장이 멈춰서 사망한 상태에서도 블랙헤드 에너지가 뇌를 살려 두고, 아까 말한 갈색 지방이 근육을 움직이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죽은 뒤에도 움직인다는 거 아닙니까? 그건 어젯밤에 봤으니 알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적들이 로일 박사에게 원하는 게 있는지, 있다면 그게 뭔가 하는 점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서 강태산은 궁금한 점을 확실하게 짚었다.
“연구는 상상보다 많은 돈을 사용해요.”
“로일 박사. 알아듣기 쉽게 말해 주십시오.”
“연구 의도, 과정, 반응, 결과, 그 외에 모든 자료가 연구 비용을 지원해 준 곳으로 보고된다는 의미예요.”
그런 의미였나?
강태산은 처참한 몰골의 적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로일 박사의 연구가 연구비를 지원해 준 곳으로 흘러갔고, 누가, 어떤 이유나 과정인지는 몰라도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했다는 증거였다.
“이제 내용은 알겠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로일 박사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결정적인 답을 내놓을 순간에서 로일이 또다시 망설이고 있었다. 예고편, 비상통로 안내, 광고까지 다 봤는데, 막상 본 영화가 시작되지 않는 느낌이어서 강태산은 덜컥 올라오는 짜증을 지그시 눌렀다.
“멕시코와 중국 일부 지역, 아프리카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저렇게 죽지 않는 사람들이요.”
“블랙헤드 에너지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곳에서 저런 괴물들을 만든다는 겁니까?”
“그보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자연적으로 퍼진다고 봐야 해요. 마치 전염병처럼요.”
염병할, 제대로 터졌네.
로일의 말을 듣고 나서 강태산이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증상이 나오기까지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조건을 이루는 허들이 낮아지는 것도 문제예요. 심지어 동물들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나오고요. 내가 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곳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란 모양이에요.”
처음이었다.
모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로일이 추측을 말한 건.
“가장 먼저 이런 증세가 나온 게 바로 이곳이에요. 그래서 프랑스 방역관리청에 신청했고, 이곳을 살펴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저들이 나를 노린다면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어요. 내 몸이요.”
뭐라는 거야?
강태산은 초록빛 로일의 눈을 바라보며 이어질 설명을 기다렸다.
“블랙헤드에 노출된 뒤에 나도 진통제를 사용했거든요.”
“살아 있는 항체라는 겁니까?”
요점을 제대로 질문한 학생을 대하는 교수처럼 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증상이 어떻게 퍼지는지, 현재로는 저렇게 되면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 불안하겠죠.”
“그렇다면 로일 박사를 살해하면…. 미안합니다. 아무튼, 그들이 원하는 실험을 하려면 로일 박사가 살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죽으면 입을 다물 수 있죠. 그리고 말했죠? 단백질 반응을 일으키는 블랙헤드 에너지는 심장이 정지해도 반응한다고요. 나를 죽여서 신체 일부만 가져가도 얼마든지 실험할 수 있어요.”
궁금해서 물었더니 해괴하기 그지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뭔가 꽉 막힌 느낌에 강태산은 가지를 아래로 길게 늘어트린 나무들을 돌아보았다. 저것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결정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고, 반대로 엄청난 적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이어서 강태산은 강찬을 떠올렸다.
그는 절대 주변 사람이 죽게 두지 않는다. 그러니 이토록 위험한 장소에 달랑 강태산 팀과 외인부대 소대 하나를 보냈을 때는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원하는 게 있다는 의미였다.
‘이제 네 차례다.’
그게 정답이었나?
강철규가 해 주었던 의미 모를 당부도 다시금 떠올라서 강태산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해내야지.’
그리고 피식 웃는 강태산을 로일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움직여야 할 때였다.
강태산은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준비를 마친 외인부대와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태산이 시선을 돌리기 무섭게 지루함을 대신해 팽팽한 긴장이 달려들었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합시다. 만약 로일 박사에게 문제가 생기면 방아쇠든, 물이든, 주저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예요. 캡틴 강.”
짧고 냉정한 대화의 끝에서 로일이 몸을 돌렸다.
***
문바키가 배치한 정보총국 요원들이 연신 굵직한 정보를 가져오고, 제라르를 통해 평화유지군의 활동이 속속 들어왔다.
“여보세요?”
그만큼 아침부터 강찬의 전화기도 쉴 틈이 없었다.
– 김형정입니다, 부원장님.
“말씀하세요.”
강찬의 지시가 무시된 뒤였고, 조만간 직위마저 뺏을 거라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부원장이라는 직책이 정말이지 하찮게 느껴지는 통화였다.
– 이집트를 비롯한 위험 상황의 요원들 모두 철수했습니다. 철수 과정에서 확인했지만, 현지 경찰이 체포에 나선 이유를 모르겠다는 답변이 전부였습니다. 그 외에 이라크에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이어진 통화에서 김형정은 빠르게 현지 상황을 알려 주었다.
“현지에 남은 요원 이름은요?”
– 이용우라고 말씀드린 대로 얼마 전 은퇴한 요원입니다. 문제는 우리 쪽 요원들이 철수하도록 이라크 특수 경찰과 경찰특공대가 길을 열어 준 뒤라 이후로 벌어질 사태에 지원하기가 어렵습니다.
“바그다드라고 했죠?”
– 예. 알-무타나비라고 찾기 쉬운 장소입니다.
“잠시만요.”
지도를 찾아 위치를 확인한 강찬은 시선을 힐끔 돌렸다. 원체 정보니, 분석이니 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석강호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긁어 대며 지루한 심정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 부원장님. 어려우실 줄은 알지만…….
미안한 모양이었다.
지시를 무시한 일, 강찬을 밀어낼 거라며 원장 하동선이 대놓고 떠들어 대는 상황이 말이다.
“이쪽에서 최대한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부원장님.
통화를 마친 강찬은 고개를 돌렸다.
“태산이는?”
“아포코에서 은고우아라 방향으로 출발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게 위성 사진입니다. 예상대로 그쪽에서 제거할 계획으로 보입니다.”
의자의 방향을 돌린 제라르가 바퀴를 이용해 강찬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이게 이틀 전 사진, 이건 어제 사진입니다. 그리고 여기 점들이 지프와 트럭들입니다. 차량을 이쪽에 몰아 두었고, 이후로 병력 이동은 없었습니다.”
사진을 내려다본 강찬은 피식 웃었다.
은고우아라로 향하는 숲 안에 뭔가 있거나, 연구팀이 절대 그곳에 도착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 앞에서 위성 사진을 설명한 제라르가 강찬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동식 소령은?”
“콩고 공항에서 대기 중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찬은 스마트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짧은 틈 뒤였다.
– 양동식입니다.
굵직한 양동식의 음성이 들렸다. 정보국 대가리를 사살하라는 임무가 취소된 데다,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으니 지루했을 법도 했다. 그런데도 양동식의 음성에서 불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소령님. 강찬입니다.”
– 말씀하십시오.
“코드 일곱입니다. 칠면조와 함께 일사육공칠, 일오점칠이육삼육으로 이동하세요.”
– 지시 확인하겠습니다. 일사육공칠, 일오점칠이육삼육으로 이동, 코드 일곱.
“확인했습니다.”
– 이동하겠습니다.
답은 분명하게 양동식이 했다. 그런데 코드 일곱이라는 음어를 들은 석강호가 내내 심드렁하게 있던 표정을 싹 밀어 버리고는 일어나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뭐요?”
제라르 역시 눈빛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위원장님을 만나고 올 테니 준비하고 있어.”
“위, 카피땐.”
제라르가 볼의 흉터를 우그러트리며 웃었고,
“푸흐흐흐.”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석강호가 누르고 눌렀던 웃음을 터트렸다.
***
두두두두두.
기관총을 겨눈 대원 둘이 열어 놓은 헬기 통로에 매달렸는데도 호기심 많은 바람은 끝없이 달려들었다. 그래 놓고는 무장한 평화유지군과 차갑게 빛나는 양동식의 눈에 질린 모양으로, 곧바로 헬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코드 일곱이라고 했다.
음어로 말하니까 멋지게 들릴 수 있는데 함정에 빠진 대원을 구하라, 그리고 주변의 적을 모조리 사살하라는 살벌한 지시였다.
두두두두두두.
호위를 위해 좌우를 함께 나는 헬리콥터를 보며 양동식은 문득 시간이 더럽게 빨리 흘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발에서 탈락했다며 빽빽 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평화유지군 소령으로 대원들을 이끌고 있었다.
정말 가능할까?
아프리카에서 평화유지군이 제아무리 특별한 존재라 해도 세상의 모든 나라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정권이 바뀐 대한민국 정부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팠다.
피부로 와 닿는다. 지금의 위기가.
구하러 가는 대상이 강태산이라는 사실만 봐도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상황이었다.
가끔은 말이다. 아주 가끔.
강찬이라는 인물이 어떤 계획을 지니고 있는지 들어 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물어 봐야 피식 웃는 게 전부겠지만, 그래도 알고 싶을 수는 있잖나.
생각의 끝에서 양동식은 강찬을 흉내 내듯 피식 웃었다. 그런 뒤에 왼팔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지옥에 던져 놔도 그쪽 놈들 다 죽이고 걸어 나올 놈이니까 강태산 걱정은 할 거 없고.”
“예?”
“아니다.”
옆에서 반문하는 대원을 돌아본 양동식은 턱없이 그 대원의 등을 다독였다.
얼른 좀 가자.
다른 놈들 다치기 전에.
그런 뒤에 갑갑한 심정을 대신해 헬리콥터의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