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65)
746화 평생 너의 가슴에 담아라 (2)
우르르 달려간 CIA 요원들이 건물 위편으로 올라갔으나, 그때까지 현장에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CIA 요원들이 맥퍼슨을 매단 밧줄의 끝을 확인한 다음이었다.
“얼른 올려!”
요원들을 인솔했던 책임자가 무전기를 들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위쪽 부분을 이중으로 감았습니다. 완전히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최소 5분은 걸렸을 겁니다.”
– 건물에 숨어 있을 가능성은?
“우리처럼 정보총국도 본부 주변에 위장 사무실을 두었을 건 분명한데, 임의로 건물 전체를 수색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 끄응.
속 터지는 보고를 연달아 받은 탓인지 칼튼 숀이 무전기에 대고 신음을 토해 냈다.
“사건을 넘겨받기 위해 경찰이 와 있습니다. 처리지침을 주시면….”
– 비관 자살로 처리하는 것까지 일일이 지시해야 하겠나?
칼튼 숀이 한 단어, 한 단어를 씹듯이 지시를 건넸다. 이럴 때 더 건드리면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처리하겠습니다.”
무전을 마친 책임자는 확인처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리저리 겹친 형태로 세워 둔 경찰차의 경광등이 요란하게 번쩍이고, 그사이 취재를 나왔는지 방송용 조명이 건물 입구를 밝히고 있었다.
“잡아!”
“그쪽에서 더 당겨!”
맥퍼슨의 몸뚱이를 끌어 올린 요원들이 옥상 바닥에 내려놓느라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
CIA 국장을 체육관이나 하수관 통로로 부르고,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제거하라는 요구를 쉽게 던지던 맥퍼슨이 에이치 빔으로 만든 구조물 아래 바닥에 처참한 형태로 놓여 있었다.
‘잘못 건드렸어.’
맥퍼슨의 시체를 보며 책임자는 입술을 뒤틀었다.
전임자의 복수라는 명분과 국장인 칼튼 숀의 개인적인 탐욕에 맥퍼슨을 하수인으로 부릴 만큼 막강한 조직의 후원까지 더해지면서 초반은 분명 계획대로 진행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정보총국 출신 게르만의 집사가 제거되더니,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였던 맥퍼슨이 건물에 매달린 시체로 발견되면서 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엉망으로 변했다.
되돌릴 수 있을까?
책임자가 건너편의 CIA 본부 건물을 돌아볼 때였다.
“구조대가 왔습니다. 이송하라고 할까요?”
요원 한 명이 다가와 그의 시선을 끌었다.
“자살이다. 경찰 보고서까지 확인하고 돌아와.”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책임자는 비참하게 널브러진 맥퍼슨의 얼굴을 눈에 담은 뒤에 걸음을 옮겼다.
***
창으로 다가선 강찬은 블라인드 틈을 벌려 몰려든 경찰차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하여간 일 다 끝난 뒤에 몰려드는 거 하나는 최고다.
피식 웃은 강찬은 맞은편에 우뚝 선 CIA 건물로 시선을 들었다. 꿩도 아니고, 창마다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서 머리를 감춘 모양새인데 맥퍼슨의 시체 탓에 벌집을 건드려 놓은 것처럼 시끄러울 게 분명했다.
그러게 적당히 하지 그랬냐.
애국자라는 명예와 적당한 부를 손에 쥘 위치에 있는 CIA 국장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욕심을 부리다가 인생을 망친 거다.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부러워하는 자리에 앉았는데도 말이다.
‘멍청이.’
상황을 확인한 강찬은 창에서 물러나 중앙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로 움직였다.
서부 시대의 카우보이처럼 제라르가 굵은 밧줄을 감고, 최종일을 비롯한 요원들이 각자 권총과 탄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놈들이 물러가고 나면 CIA 건물 지하와 옥상에서 동시에 몰아 대는 칼튼 숀의 사냥을 시작한다. 문제는 CIA가 허술한 조직이 아닌 데다, 요원들 숫자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다들 무사히 돌아가야 할 텐데?
테이블의 중앙에 자리한 강찬은 확인처럼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이런 임무에 나서서일까, 아니면 CIA 국장을 제거하는 임무가 주는 부담감을 떨치기 어려워서일까, 최종일을 비롯한 요원들의 표정에 긴장이 서려 있었다.
꼭 한 사람, 허은실만큼은 귀찮은 일을 앞에 둔 사람처럼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하여간 다른 건 몰라도 깡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저렇게 태평하지?
질문이라도 해 볼까 하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찬의 스마트폰이 좀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게 어떠냐는 듯 울었다.
“여보세요?”
– 천중명입니다. 통화 괜찮습니까?
“말해.”
강찬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창가로 움직였다.
– 시아파의 근거지 세 곳을 부상자 한 명 없이 깔끔하게 해결했답니다.
결과를 들은 강찬은 피식 웃었다.
곽철호와 강태산 대신 천중명이 먼저 연락한 걸 보면 지금쯤 철수하는 모양이었다.
– 한 가지 소식이 더 있습니다. 마누엘 야닉의 경력을 확인하던 중에 사모펀드를 운영한다는 내용이 있길래 자금의 출처를 살펴봤습니다.
그러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전문 분야가 따로 있는 거다.
– 여보세요?
“듣고 있어.”
맞장구치지 않는 강찬의 성격이 재미있다는 것처럼 가벼운 웃음이 먼저 들렸다.
– 중국에서 건너온 채권을 CIA에서 받아 돌렸습니다.
“중국에서 건너간 게 확실해?”
– 중국 정부가 돌린 건지, 개인적으로 유통한 건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중국에서 채권이 넘어간 것만은 분명합니다.
양범이 다시 힘을 얻은 게 정말이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소식을 듣고 난 다음이었다.
– 송금 기록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스위스의 은행을 거쳤고, 영국과 프랑스, 미국의 투자은행을 통해 달러와 유로화로 세탁한 뒤에 마누엘 야닉의 펀드에 넣었습니다.
천중명의 설명을 들은 강찬은 눈가를 좁혔다.
“말대로라면 CIA와 마누엘 야닉이 단순히 용병만 고용한 관계가 아니라는 건데?”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 새끼들 봐?
고개를 갸웃했던 강찬은 피식 웃었다.
안드레이가 이동 루트와 명단을 모두 넘긴 스페츠나츠,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을 CIA, 마누엘 야닉을 잡으러 갔던 스페츠나츠가 된통 깨진 이유가 이제야 확실히 드러난 느낌이었다.
마누엘 야닉이 뒈지겠네.
강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 마누엘 야닉이 어디에 자금을 돌렸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참 오랜만에 강찬의 호기심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질문이 넘어왔다.
“뭔데?”
– 채권을 풀어 만든 자금을 돌리고 돌려서 중국과 멕시코, 브라질, 미국을 거치는 펜타닐의 유통망을 만들었습니다. 그 외에 용병을 모집하고 운용하는 자금과 원유 거래를 하는 척하면서 시아파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쪽을 내가 잘 몰라서 그런데, 그런 자금을 마누엘 야닉 혼자서 다 돌릴 수 있나?”
– 절대 불가능합니다. 잠시 뒤에 거래했던 투자은행들을 보낼 텐데, 그 소유자들을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소유자? 투자은행 소유자들이 모두 관련되어 있나?”
– 투자은행 위원회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위원회라고?
고개를 불쑥 들었던 강찬은 모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투자은행에 있는 계좌도 파악할 수 있나?”
– 이미 확보했습니다. 우리가 확보한 정보를 언론사에 뿌리면 CIA는 당분간 힘을 쓰지 못할 겁니다. 또 하나, 어차피 불법적인 방식으로 만든 자금이니 이번에는 우리가 뒤통수를 때려 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뒤통수를? 어떻게?”
– 과거에 코인을 해킹했던 방식으로 계좌를 털어 낼 수 있는지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런 자금이라면 차라리 어려운 사람에게 돌리는 게 훨씬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천중명 같은 인물에게 걸리면 아무리 강찬이라고 해도 통장이 탈탈 털리는 건 일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드는 계획이었다. 물론 나중에 처절한 응징이 가겠지만 말이다.
“나쁘지 않은데? 알아낸 계좌들을 김형정 본부장에게 바로 보내 줘. 디지털 분석실에 전달해서 천 회장이 원하는 걸 손에 넣게 해 달라고 하면 돼.”
– 그런 능력이 있습니까?
“내가 보증하면 될까?”
– 재미있겠군요. 그렇다면 통화는 이쯤에서 마치죠.
바실리를 흉내 내는 것도 아닐 텐데 인사조차 없이 통화가 끊겼다. 그런데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죄를 짓는 건 이렇다.
징그럽게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주접들 떨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귤처럼 조각조각 속을 드러내는 거다.
위원회?
염병들 떨었다.
“뭡니까?”
액정을 보고 있던 강찬은 테이블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졌던 제라르의 곁으로 움직였다.
천중명에게서 들었던 내용을 전한 다음이었다.
“칼튼 숀을 잡는 일이 조금 더 쉬워졌다. 그래서 말인데, 제라르. 인원 절반을 데리고 움직여.”
“마누엘 야닉을 잡을 생각입니까?”
확실히 이놈은 긴말하지 않아도 속을 알아본다.
“CIA가 마누엘 야닉을 제거하려 움직이고 있을 거다. 가서 상황 먼저 살펴보고, 할 수 있다면 그 새끼를 데려와.”
요원들을 돌아보았던 제라르가 “위.” 하는 답을 내놓으며 씨익 웃었다.
***
불을 끄자 한 걸음쯤 떨어진 침대에 누운 상대방의 숨소리가 고스란히 귀로 들어왔다.
상대방이 마법의 양탄자를 탄 왕자님이 아니라 분위기나 무드, 배려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이용우지만, 그래도 자밀라에게는 아버지 아닌 남자와 단둘이 밤을 보내는 첫 경험이었다. 그것도 한집에서 각자 방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한 걸음 떨어진 침대에 누워 있는 상황이었다.
죽음을 바라는 이용우의 눈을 들여다본 뒤였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감정이 이용우에게 달려갔고, 홀로 두면 죽을 자리로 뛰어들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모가디슈까지 함께 왔다.
이용우가 자밀라를 소 닭 보듯 하는 거 괜찮다.
자밀라가 봐도 피부 하얗고 부드러운 한국 여자를 만나서 결혼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가 처절하게 짓밟힐 운명이었던 자밀라를 구해 주었듯이 지금은 이용우가 나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에 만족한다.
자밀라가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창가에 있는 침대가 나직하게 삐걱댔다.
뭐지?
조심스럽게 눈을 뜬 자밀라의 시선 속에 조명이 꺼진 창을 배경으로 침대에서 벗어나는 이용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아니면 적?
예상을 완벽하게 뒤엎는 것처럼 이용우가 소리조차 내지 않는 걸음으로 자밀라의 침대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밀라의 침대를 향해 상체를 반쯤 숙였다.
왜?
아무리 참으려 해도 몰려드는 긴장을 이기지 못한 자밀라는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여동생 하자며 털털하게 대하더니 결국은 남자였다는 건가?
“컵라면 어디에 뒀냐?”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이용우의 나직한 질문이 자밀라의 뒤통수를 세차게 때렸고, 이어서 짧은 순간에 혼자 떠올리던 상상, 각오, 미래를 단숨에 부쉈다.
용병 탓에 저녁을 부실하게 먹은 건 맞다.
“침 삼킨 거 알거든? 너도 배고픈 거 맞잖아. 컵라면 어디 뒀어?”
알라딘이 데리고 다니는 원숭이만도 못한 인간!
침대에 모로 누워 있던 자밀라는 독한 심정으로 눈을 떴다.
***
책상에 앉아 밤을 꼬박 새운 칼튼 숀은 이성이 절반쯤 날아간 표정으로 밝아진 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완벽하다고 여겼던 계획이 어느 순간 뒤틀리더니 지금은 사소한 지시마저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 강찬 한 사람 때문일까?
아니면 준비에서 뭔가 실수가 있었을까?
A4 용지를 꺼내 놓고 원래 계획과 실패한 내용을 차분하게 정리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진한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책상에 올려 둔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마누엘 야닉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 같았다.
하다못해 낙오한 놈들만 모아 놓은 용병 회사 대가리를 제거하는 일조차 뒤틀릴 거 같아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놈을 찾아. 그리고 반드시 제거해.”
– 알겠습니다.
독한 지시를 마친 칼튼 숀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 쥐새끼가…?”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주체라고 해도 놈은 돈을 인출하지 못한다. 그런 걸 빤히 아는 놈이 숨었다면 CIA가 제거할 거라고 예상했다는 의미였다.
가만?
분통을 터트리던 칼튼 숀이 불쑥 상체를 세우고는 블라인드를 내려놓은 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 강찬이 마누엘 야닉마저 손에 넣는 건가?
생각이 달려간 칼튼 숀은 빠르게 스마트폰을 집고서 버튼을 눌렀다.
– 로버트입니다, 국장님.
“감시 위성, 정보원, 그 외에 CCTV까지,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망을 이용해서 마누엘 야닉을 찾아!”
– 그렇게 하면 정보총국의 움직임을 놓칠 수 있습니다.
“마누엘 야닉이 무슈 강의 손에 넘어가면 타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 커! 그러니까 내 지시대로 시행해! 당장!”
– 알겠습니다.
고함과 함께 지시를 전한 칼튼 숀은 백 미터를 달린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토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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