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66)
747화 왜 맨날 이러냐, 진짜! (1)
쫓는 놈, 쫓기는 놈, 들여다보는 놈, CIA가 모든 능력을 동원해 마누엘 야닉을 추적하는 사이에 정보총국은 CIA의 감시 위성 방향과 요원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 뉴욕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CIA 요원들의 움직임에 따라 제라르에게 정보를 건네고 있습니다.
“멕시코의 상황은?”
– 마누엘 야닉이 결정적인 약점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완전히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렇다면 멕시코는 이만 철수하지. 그곳에서 얻어 낸 건?”
– 장비가 몇 가지 있는데 분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듯합니다.
상황을 보고받던 문바키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 장비를 한국 국가정보원 디지털 분석실로 보내는 데, 가장 빠른 방법이 뭐지?”
– 직접 가져가는 게 가장 빠릅니다.
“분실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바로 출발하라고 전해.”
– 알겠습니다.
안느와 통화를 마친 문바키는 옅은 웃음을 그렸다.
끝나 간다, 이 빌어먹을 싸움이.
무엇보다 궁지에 몰린 칼튼 숀이 이성적인 판단을 잃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그 증거였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문바키는 모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현장 책임자를 두고도 굳이 안느를 통해 지시를 전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녀가 라노크에게 정보총국의 상황을 전달해 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바키를 지켜 가며 키워 준 것처럼 안느를 차기 정보총국장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강찬 역시 같은 생각이라고 믿었다.
현장에 직접 나서고 싶었을지 모를 안느에게 비밀 정보조직을 맡긴 것과 위험한 현장에서 배제하고 상황을 통제하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을 보며 짐작한 내용이었다. 또 하나, 현장 책임자와 간부들이 자연스럽게 안느의 지시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다.
갚아 준다. 받았던 은혜를.
언젠가 이 싸움이 끝나면 안느에게 정보총국을 넘겨주고서 홀가분하게 한국으로 날아가 강찬과 함께 돈가스부터 불고기, 곱창, 그리고 현지에서 마시는 폭탄주를 즐겨 볼 생각이었다.
무서운 사람들.
한편이어서 다행이지, 강찬, 제라르, 석강호, 거기에 라노크와 바실리가 적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한국에서 강찬과 충분한 시간을 보낸 뒤에 말이다.
문바키는 아가데즈의 빛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 마을을 다시 일으킬 계획도 있었다.
오랜만에 행복한 미래를 떠올린 덕분에 문바키는 또다시 넉넉하게 웃었다.
***
얻어 낸 정보들을 김형정에게 보내 주었지만, 천중명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인원과 수송기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 천 회장의 뜻이 곧 신의 뜻이라 믿소. 바라는 것들을 이루실 거요.
스마트폰 건너편에서 우즈만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답을 전해 주고 있었다.
“우즈만 왕세자님. 저를 믿으십니까?”
– 내가 세상에 나서 신께 가장 감사드리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천 회장을 만난 일이고, 더불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일이오. 무슨 요청을 하려고 그러는지 몰라도 편하게 말해 주면 좋겠소.
“감염의 치료제를 준비할 때가 된 거 같습니다. 비밀리에 제조해야 한다는 것과….”
– 오! 천 회장!
채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마치 신의 계시를 직접 듣는 것처럼 우즈만이 탄성과 함께 천중명을 불렀다.
“정해진 시점에 무료로 배포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 과연! 다른 사람 같으면 규모를 짐작조차 못 할 수익을 예상하며 들떠 있을 텐데, 천 회장은 확실히 다르구려. 그런데 굳이 비밀로 해야 할 이유가 있겠소? 또한, 치료제를 준비할 수 있는데 왜 시간을 끌어야 하는지도 설명해 주실 수 있소?
“우리가 치료제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변종을 퍼트릴 우려가 있습니다.”
– 아!
“또 하나는 변종을 퍼트릴 인물과 조직을 괴멸시킨 뒤거나, 그런 계획을 세우지 못하도록 조치한 뒤에 보급하고자 시간을 기다리는 겁니다.”
– 흠.
천중명의 설명을 진중하게 받아들인 우즈만이 나직하게 신음을 뱉었다.
– 무슈 강이 애쓰고 있는 게 그런 이유요?
“그렇습니다, 우즈만 왕세자.”
– 혹시 내가 도움을 줬던 한국의 요원이 모가디슈에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인지 알려 주겠소?
“테러범으로 몰렸던 요원이라면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나름의 정보조직을 운영하는 데다, 아랍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소식을 접할 우즈만이었다. 소말리아에서의 시아파 근거지 파괴, 이용우의 존재까지 이미 아는 상황이어서 굳이 다른 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 우선 천 회장이 요구한 일들을 처리하고 다시 연락하겠소.
무언가 생각이 있는 눈치였으나 우즈만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왕세자님.”
– 신의 가호가 우리 천 회장과 함께하실 거라 믿소.
천중명 역시 캐묻지 않은 채 통화를 마쳤다.
어둠의 끝에서 먼 하늘이 밝아 오는 것처럼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
징그럽게 힘겹던 싸움의 끝자락이라는 생각에 천중명은 오랜만에 만족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
그게 입으로 들어가냐!
소말리아의 카페에서 입이 터지도록 계란 프라이를 입에 넣는 이용우를 자밀라가 흘겼다. 커다란 눈을 뒤튼 거라 하얗게 드러난 흰자위가 자밀라의 감정을 여실히 보여 주는 데도 이용우는 또 아랑곳하지 않고 토스트를 반으로 접어 욱여넣고 있었다.
어쩌면 인간이 저러는지, 컵라면 두 개에 밀폐 용기로 판매하는 김치 한 봉을 다 먹고 나더니, 아침까지 정말이지 잠만 잤다.
이용우가 뒤척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팔을 옆으로 툭 돌리면 가슴이 뛰어 제대로 잠조차 못 잔 자밀라는 사기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접시를 깔끔하게 비우고서 커피잔을 들던 이용우가 그제야 자밀라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왜 안 먹어?”
“입맛이 없어요.”
질문 봐라.
틀림없이 자기가 먹겠다며 가져갈 거다.
자밀라의 표정을 살폈던 이용우가 의미를 알기 어려운 웃음을 지은 뒤에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달각.
여유롭게 잔을 내려놓은 이용우가 고개를 들었다.
“나도 힘들어.”
“뭐가요?”
“너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와 한방에서 자는 거.”
딸꾹, 이용우의 답을 들은 직후에 자밀라는 느닷없이 딸꾹질이 시작될 정도로 놀랐다.
아니야, 속으면 안 돼.
이러다가도 이 사람은 장난이라며 사람 자존심 밟을 거야.
“아버님의 소망이 뭐였는지 잊었어?”
왜 이렇게 진지하게 이러지?
“여자라는 이유로 갇혀 살지 말고 꿈을 이루며 살기를 바라셨다. 그걸 위해서 너 대신 목숨을 던져 줄 각오까지 세웠던 거고.”
흘기던 눈빛을 푼 자밀라는 의아한 심정으로 이용우를 똑바로 보았다. 서빙을 하던 남자 종업원과 수염이 덥수룩한 사장이 ‘도대체 어떤 관계지?’ 하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에 조금만 늦었어도 놈들이 아니라 내가 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널브러졌을 거다. 이러고 다니는 동안 외롭게 기다리다가 사고를 당해도 달려가지 못해.”
반쯤 남은 커피를 내려다보았던 이용우가 시선을 들었다.
“네가 요원이 되는 거? 남자는 고문이랍시고 못 박고 손톱 뽑다가 최악의 상황에 목이 썰리고 끝나지만, 여자는 달라.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래.”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털어놓는 순간이어서 자밀라는 침묵한 채 이용우에게 계속 집중했다.
“이번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하자.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학원부터 시작해. 그렇게 대학에 진학해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해.”
“진심이에요?”
이용우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죽을 길을 찾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어요?”
“어젯밤에 봤잖냐?”
“밤에 함께 있는 게 힘들다면서요?”
“그거야 뭐 건장한 남자다 보니까.”
이런 순간에 뽀빠이처럼 오른팔을 접어 보일 필요가 있을까?
자밀라가 한숨을 내쉴 때였다.
번득, 이용우의 눈빛이 문을 향해 달렸다.
자밀라가 채 시선을 돌리기도 전이었다.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 이용우가 상체를 길게 늘였다. 조금이라도 권총을 빠르게 뽑기 위한 동작이라는 사실을 자밀라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사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미스터 리?”
자밀라가 고개를 돌린 테이블 바로 옆에 아랍 특유의 흰색 원피스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하릴 하지즈 왕세자님이 잠시 오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그렇고, 30분 뒤로 합시다.”
너한테는 선택권이 없어.
곱슬머리에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 뒤에 엄지로 카페 입구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엄지를 따라 자밀라는 상체를 돌렸다.
이용우가 버티는 상황에 대비한 모양인지 역시나 하얀 원피스를 입은 남자 대여섯 명이 카페 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이, 씨.”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이용우가 무릎을 짚으며 상체를 구부렸고,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철컥!
바로 맞은편에 앉았는데도 자밀라는 이용우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는 동작을 못 봤다. 워낙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허리가 아니라 소매에 감춰 뒀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들고 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 사람?’
엄지로 뒤를 가리키며 협박하던 남자의 눈과 눈 사이에 총구를 바싹 들이민 이용우의 눈빛을 보며 자밀라는 또 한 번 놀랐다.
상처받은 표범?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시원하게 방아쇠 당기고 끝장을 보고 싶다는 감정이 번들대는 이용우의 눈빛에 가득했다.
자밀라가 없었다면 이용우는 분명 이 자리에서 앞에 선 남자의 머리통을 터트렸을 거다. 그러면서 자밀라는 이용우가 일어서며 뱉어 냈던 “에이, 씨!” 하는 짜증의 원인을 알 거 같았다.
죽을 자리였는데, 자밀라가 있었던 거다.
“해 보고 싶으면 뒤에 있는 놈들에게 신호 보내. 그런 게 아니면 나한테 어설픈 협박 하지 마. 알았냐?”
바깥에 있는 남자들이 무기를 꺼냈을까?
궁금했지만, 자밀라는 시선을 뒤로 돌리지 못했다. 대신 놀라거나 당황한 심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꼿꼿한 자세와 태연한 표정으로 안쪽에 있는 점원과 주인을 바라보았다.
“잠깐 보자는 건데 이럴 필요가 있소?”
“30분 뒤라고 말했다.”
“알았… 소. 그럼 30분 뒤에 앞쪽 데그마다 빌딩 1층으로 오는 것으로 알겠소.”
볼을 씰룩인 남자가 몸을 돌린 다음이었다.
그가 문을 나서도록 권총을 아래로 내린 채 바라보던 이용우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달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협박하던 남자가 나갔고, 고개를 돌려 확인한 바깥에 서 있던 남자들마저 사라졌는데도 이용우는 권총을 대놓고 테이블에 올렸다.
‘뭐예요? 왜요?’
자밀라가 커다란 눈동자를 움직여 권총과 이용우에게 눈짓을 던진 다음이었다.
“길 건너편에 아직 두 놈 남아 있거든. 아까 잘했다. 그러니까 여기 주인하고 직원이 보는 동안은 태연한 척해.”
죽음을 향해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았는데 자밀라를 지키고자 인내한 모양이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자밀라는 생긋 웃었다.
‘조금 전 상황을 보고도 그런 웃음이 나오는 거냐?’
이용우가 눈가를 좁힌 채 자밀라를 살피고 있었다.
***
위기를 넘겼다고 해도 마음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부족한 인원이 무엇보다 문제였고, 이제는 며칠 분밖에 여유가 남지 않은 식품과 생필품의 보급도 시급했다.
우리를 잊지 않았을 거다.
분명 뭔가 계획이 있을 거다.
석강호와 차동균은 물론이고, 대원들 역시 그런 믿음으로 견디는 눈치였다.
돼지갈비, 짜장면, 초코파이, 낙지볶음, 갈비탕, 또 뭐가 있지?
온갖 종류의 음식을 떠올린 석강호가 입맛을 다실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오래 참았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액정을 확인한 석강호는 씨익 웃으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나요.”
– 시간이 없으니까 우선 내용만 전할게. 반나절 안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필요한 식량과 생필품, 그리고 병력을 데리고 도착할 거다.
“어라? 그럼 라면하고 김치는 어떻게 되는 거요?”
– 사우디아라비아 병력에게 공항을 인수인계해 줘. 그 뒤에 차동균과 대원들은 수송기를 통해 본부로 이동하고, 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제공하는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가.
강찬의 지시를 들은 석강호가 목을 길게 빼냈다.
“뭐요? 무슨 일인데 나만 한국에 가라는 거요?”
– 이쪽 일 마치는 대로 나도 들어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참! 하동선 있지? 그 인간은 그냥 사우디아라비아 병력에게 맡겨.
“간부들은요?”
– 부록을 따로 빼내면 되겠냐?
“푸흐흐흐.”
강찬의 독특한 표현을 들은 석강호가 특유의 웃음을 흘린 다음이었다.
– 거의 다 온 거 같으니까 가서 며칠이라도 쉬고 있어. 그 뒤에 함께 할 일이 좀 있다.
“대장은 괜찮은 거요? 손 모자라면 내가 바로 가겠소.”
– 괜찮으니까 먼저 가 있어.
“알았소.”
통화를 마친 석강호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양팔을 천천히 들었다.
“아후-.”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뒤였다. 공항 활주로가 내려다보이는 창을 향해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며칠 지나면 강찬과 함께할 거라는 기대감에 나온 웃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