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68)
749화 왜 맨날 이러냐, 진짜! (3)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유강미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화장실 입구를 CIA 요원들이 둥글게 싸고 있는 모습이 말이다.
“뭐야?”
“이 안으로 들어간 모양인데 보시는 것처럼 막아서고 있습니다.”
제라르가 건넨 우리말 질문에 유강미가 빠르게 답했다.
‘저 남자는 뭐야?’
제라르를 모르는 CIA 요원들의 적대적인 눈빛과 함께,
‘일 터지는 거 아냐?’
정체를 알아본 요원들의 걱정 섞인 시선이 함께 달려들고 있었다.
그 직후였다.
제라르를 따라 달려온 CIA 요원 두 놈이 급하게 멈추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분위기를 살폈고, 이어서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정보총국 요원들이 달려오던 속도를 줄이며 몰려들었다.
‘여기 뭐야?’
‘다른 곳으로 가자.’
화장실을 찾아왔던 여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섰고, 바로 옆에 있는 남자 출입구를 향해 다가왔던 남자들도 움찔했다가 몸을 돌리고 있었다.
“안에 있는 거 확실해?”
“여자 한 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못 들어오게 막고 있습니다.”
다시 우리말로 질문을 던졌던 제라르가 여자 화장실 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안을 향해 곧장 들어갔다.
어딜 들어가려고?
겹겹이 서서 앞을 막았던 요원 한 명이 가슴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콰악! 콰득! 퍼윽!
놈의 어깨를 잡아챈 제라르가 목을 휘감고는 옆구리에 뾰족하게 세운 중지를 찍어 넣었다.
철컥!
놀란 CIA 요원 한 명이 권총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대뜸 국가정보원 요원이 권총을 꺼내 양팔을 뻗으며 겨눴고, 이어서 정보총국의 요원들과 앞을 막아선 CIA 요원들이 비슷한 자세로 권총을 들고서 좌우로 움직였다.
누구라도 방아쇠를 당기면 얼마나 죽을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를 순간이었다. 얼굴을 찌르는 듯한 긴장이 날카롭게 퍼져 나갈 때,
이 자리에서 끝을 보자고?
씨익.
처음 권총을 꺼낸 놈을 향해 제라르가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재킷 안에서 권총을 꺼내 목을 끌어안은 요원의 뒤통수에 바싹 붙였다.
“스탑 잇! 풋 더 건 다운!”
“퍽 유!”
권총을 내려놓으라는 놈에게 시원하게 욕을 갈긴 제라르가 유강미를 비롯한 요원들에게 짧게 시선을 던졌다.
“내가 이 새끼 머리통을 터트리면 일제히 사격해.”
먼저 우리말, 다음으로 프랑스말로 전한 지시였다.
씨발! 미국에서 이 정도면 할 만큼 하는 거지!
뒤늦게 정보총국 요원이 건넨 권총을 받은 유강미까지 양팔을 쭉 뻗어서 제라르를 겨눈 놈의 귀 바로 위를 노리는 상황이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급하게 피하고, 경비원들이 뛰어왔는데, 이쪽 분위기를 보고는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풋 더 건 다운!”
CIA 요원 놈이 버럭 고함을 지르는 순간, 제라르가 다시금 씨익 웃었다.
이제 갈긴다.
뒤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휘자인 제라르가 갈기라고 했으니까 일단 갈기고 본다!
철컥, 소리가 나도록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완벽하게 사격할 자세를 잡는 순간이었다.
“사령관님.”
뒤편에서 달려온 중년 남자가 어설픈 프랑스어 억양으로 제라르를 불렀다. 요원의 목을 팔로 휘감은 제라르는 놈의 뒤통수에 총구를 붙인 상태에서 시선만 주었다.
“로버트?”
“저를 기억하십니까?”
제라르는 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물러나겠습니다.”
“권총을 들이밀고서 할 말은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제라르의 답을 들은 로버트가 고개를 돌렸다.
“권총 내려! 그리고 3층에서 철수한다! 얼른!”
마지막에 로버트가 “나우!” 하고 외친 고함이 얼마나 컸는지, 화장실 앞 통로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천천히 팔을 내린 CIA 요원들이 안도하는, 그러나 불만이 가득한 시선과 표정으로 천천히 화장실 앞에서 빠져나갔다.
우리는 아직 지시 못 받았어!
유강미를 비롯한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정보총국 요원들이 물러나는 CIA 요원들을 따라서 권총을 겨누는 상황이었다.
“이제 요원을 풀어 주십시오.”
로버트의 요구를 들은 제라르가 권총을 내렸고, 이어서 목을 감싸고 있던 놈을 휙 밀었다. 우리 쪽 요원들이 권총을 아래로 내린 직후였다.
터억.
혹시 목을 부러트렸나 싶을 정도로 무너져 내리는 요원을 달려가 안은 로버트가 물러나 있는 CIA 요원에게 눈짓을 던졌다. 세 놈이 다가와 기절한 것처럼 늘어진 한 놈을 부축해 물러난 다음이었다.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나직하게 프랑스어로 뜻을 전한 로버트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몸을 돌렸다. 그의 뒷모습과 힐끔대며 물러나는 CIA 요원들을 확인한 제라르가 유강미를 찾았다.
“들어가서 안을 확인해.”
권총을 아래로 든 상태에서 유강미가 문을 열었는데, 허리에 양손을 얹은 흑인 여자가 입구를 막고 있었다.
“노우!”
아래로 내린 권총을 보고 움찔했지만, 흑인 여자는 유강미도 안 된다는 것처럼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어떻게 할까요?
유강미가 시선을 돌린 직후였다.
“익스큐스미, 마담.”
프랑스어 억양이 묻은 부드러운 제라르의 음성이 입구를 막고 선 흑인 여자에게 달려갔다. 그런 뒤에 제라르는 깊은 눈매 끝에 고맙다는 감정을 담았다.
“우리 동료 한 명이 이곳으로 들어갔습니다. 한국인 여성 요원입니다. 그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달려왔고, 보다시피 겨우 길을 열었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영어에 프랑스어 억양을 섞으면 이렇게 감미로울 수 있구나. 그뿐이냐? 외로워 보이는 깊은 눈매, 상처받은 영혼인 양 볼을 가로지른 흉터, 그리고 갈색이 뒤섞인 금발, 유강미마저 반쯤 홀린 듯한 표정으로 제라르를 바라볼 정도였는데, 흑인 여자는 아예 넋을 빼앗긴 듯한 표정이었다.
“동료가 맞아요?”
“보시다시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도움과 친절을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그게….”
“이번 도움에 감사하는 의미로 프랑스로 초대하겠습니다.”
“당연히 도와야지요! 그럼요!”
수문장처럼 화장실 입구를 지키던 여자가 비켜났고, 그와 동시에 제라르가 눈짓을 던졌다.
우르르.
유강미와 국가정보원 요원, 정보총국 요원 세 명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이 숙녀분의 연락처를 받아. 그리고 숙녀분의 가족분 모두를 프랑스로 정식 초청해.”
“위-.”
빠르게 다가온 정보총국 요원이 이름과 연락처를 받기 위해 한쪽으로 안내했는데, 흑인 여자는 계속 제라르를 향해 의미 있는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제라르가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다.
권총을 품에 넣은 유강미가 서둘러 나왔다.
“화장실 변기 위쪽 통풍구가 열려 있습니다. 기어간 흔적은 있는데 끝부분까지 텅 비어 있습니다.”
잠시 눈가를 좁혔던 제라르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요원을 반으로 나눈다. 절반은 위로 올라가서 옥상 환기구를 살피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건물 뒤편 외벽과 지하 기계실을 확인한다! 너는 다시 들어가서 통풍구를 원래대로 만들어 놓고 나와.”
제라르의 지시를 받은 유강미가 안으로 들어갔고, 밖에 있던 인원의 절반이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있던 로버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멀찍이 뗐다.
– 대답 못 하겠어!
얼마나 고함을 지른 건지, 쩍쩍 갈라진 칼튼 숀의 음성을 주변에 있는 CIA 요원 모두 들을 정도였다.
“제라르 드 미르미에가 어떤 인물인지 아시잖습니까?”
– 그렇다고 CIA가 미국 땅에서 물러나는 게 말이 돼! 그것도 결정적인 단서일지 모르는 장소에서!
“지시하시면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체포하겠습니다.”
지시를 주라. 그러면 가서 방아쇠를 당기겠다. 대신 책임은 현장 책임자가 아니라 지시 내린 국장의 몫이다.
도전적으로 던진 대꾸였다.
의미를 짐작한 모양인지 내내 꽥꽥대던 칼튼 숀의 고함이 더는 들리지 않았다.
“환풍구와 배수관까지 모조리 조사했지만, 딱히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정보총국이 한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놈들을 감시하는 겁니다. 마누엘 야닉이 얌전히 잡힐 리 없으니 소란이 일어나면 그때는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체포하겠습니다.”
분통은 터지는데 가서 총질하라기는 껄끄럽고, 칼튼 숀의 뜨거운 숨소리가 연달아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왔다.
– 놈들이 권총을 지니고 있으니까 경찰을 동원해.
“알겠습니다.”
칼튼 숀의 지시를 받은 로버트가 다부지게 대꾸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경찰을 부른다고?
CIA 요원에게도 권총을 들이미는 놈들에게?
요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앞이었다.
‘둘, 셋, 넷….’
로버트는 스마트폰 액정을 내려다보며 오른손 손가락을 접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로버트입니다.”
– 경찰을 부르는 건 잠시 미루고 놈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도록 따라붙어.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로버트가 또다시 바로 답하고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영화관 입구에서 비켜난 곳이라고 해도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 있어서 연달아 시선이 날아들고 있었다.
“아까 그 남자가 누구기에 양보하신 겁니까?”
억울한 감정을 담뿍 담은 요원의 질문이었다.
스마트폰을 넣은 로버트가 같잖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여기 절반은 죽었다.”
“그들도 죽을 거 아닙니까?”
“후-.”
거듭 대드는 요원의 질문에 로버트는 터지는 속을 내뿜는 것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에 번쩍 고개를 들고 질문한 요원에게 곧장 다가갔다.
콰악.
왼손을 뻗은 로버트는 요원이 낀 선글라스를 낚아챈 뒤에 코가 닿을 정도로 그의 눈에 바싹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가 시리얼 처먹고 있을 때, 나는 미국의 모든 특수부대 훈련을 통과했고, 지옥 같은 전투에 달려갔었다. 이런 내가 얌전히 지휘받고, 죽인다는 한마디에 조용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는 인물이 있다.”
서열이 높은 개가 이제 막 젖을 뗀 새끼의 버릇을 고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 제라르가 방아쇠를 당겼다면, 여기 있는 인원 절반이 죽었을 거다. 그 정도에서 끝낼 수 있다면 절대 말리지 않았을 텐데, 아까 말한 인물이 나서면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CIA가 없어질 수 있어.”
그런 인물이 있다고?
으르렁대는 로버트의 표정에 질린 상태에서도 요원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명심해라. 무슈 강 혹은 갓 오브 블랙필드라는 이름을 지닌 인물을 만나거나, 그와 영혼의 파트너 두 사람, 프랑스인 제라르, 한국인 석강호, 이 세 사람을 보면 일단 양보해.”
으르렁대던 로버트가 요원을 향해 같잖다는 웃음을 그렸다.
“오늘 이 자리에 무슈 강이 있었다면, 국장이 달려왔어도 너는 죽었다. 알았나? 알았냐고!”
“예, 써!”
워낙 다부지게 밀어 대는 로버트의 기세에 눌린 요원이 얼른 답을 내놓았다.
***
CIA는 맹탕이 아니었다.
부으으응! 부으응!
무슨 일이 있어도 뉴포트 센터에 도착하지 못한다!
건물을 나서기 무섭게 SUV와 덩치가 큰 승용차들이 줄줄이 따라붙더니 홀랜드 터널을 통과하고부터는 아예 들이받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부아아앙. 끼기긱!
휙 달려드는 SUV를 피해 배관 공사 승합차가 급하게 핸들을 틀었고, 놀란 주변 차량들이 연달아 클랙슨을 울렸다.
부아아앙! 끼기기기기긱!
중앙선을 훌쩍 넘었던 배관 공사 승합차가 그 상태로 대뜸 왼편 도로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끼기긱! 콰작! 콰자작! 빠아앙!
휘청이는 차량 두 대를 들이받은 배관 공사 차량이 차선을 타고 질주할 때, 뒤편에서는 서너 대의 SUV와 승용차들이 일반 차량을 들이받고 인도까지 넘어가 처박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차를 막아!”
바로 뒤에 따라붙은 CIA 요원이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질러 대는 사이 앞쪽의 신호가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부아아아-앙!
그런데도 배관 공사 차량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속도 줄이지 말고, 따라붙어!”
조수석에 탄 요원이 고함을 꽥 지른 직후였다.
앞차를 들이받을 것처럼 달리던 배관 공사 승합차가 왼쪽 중앙선을 넘고는 반대편 방향을 향해 급하게 돌았다.
끼기기기긱!
왼쪽이 허공에 붕 떴던 승합차의 바퀴가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콰앙! 콰자작! 콰앙! 콰아앙!
승합차를 바싹 쫓던 SUV와 승용차들이 다시금 신호에 걸려 멈춰 서 있던 차량들을 연달아 들이받았다.
끼기긱. 부으으응.
부서진 차량을 제외한 SUV 두 대와 승용차 세 대가 배관 공사 차량을 따라 방향을 틀고는 커다랗게 엔진음을 터트렸다.
***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하루,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받던 칼튼 숀은 분을 이기지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사격하겠습니다!
“멍청아! 우리가 정보총국 요원에게 사격하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CIA 활동이 모두 막혀! 그러니까 우선 들이받으라고!”
– 쥐새끼처럼 빠져나가….
콰아아앙!
거친 엔진음을 배경으로 보고하던 요원의 전화에서 귀청을 찢는 충돌음이 들린 다음이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악을 바락바락 써 대는 칼튼 숀의 외침에도 대꾸는 없었다.
“하아. 하아.”
보고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스마트폰을 내린 칼튼 숀은 거친 숨을 연달아 내쉬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