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70)
751화 별이 돼서 하늘에서 보시죠 (2)
고작 하수구 뚜껑이 열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는 폭탄 소리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이었다.
시선이 몰린 다음이었다.
고개를 내밀었던 최종일이 단숨에 상황을 이해한 얼굴로 하수구에서 올라왔다.
철컥!
어깨에 걸어 두었던 소총을 앞으로 돌린 최종일이 CIA 요원들을 향해 총구를 겨눌 때, 이두희, 우희승,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줄줄이 나왔다. 그리고는 나오는 대로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소총을 겨눴다.
소총과 권총은 위력 자체가 다르다.
어떻게 하지?
연달아 올라오는 요원들과 그들이 지닌 소총에 당황한 CIA 요원들이 시선을 마주칠 때였다.
마지막으로 강찬이 위로 올라왔다.
“갓 오브 블랙필드?”
누군가 강찬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CIA 요원 쪽에서 놀란 음성이 나왔는데, 이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젊은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어떻게…?” 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염병, 권총을 겨눈 새끼들이 놀란 척하기는?
팔을 뻗은 채 상대를 겨누고 버티는 모습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대치 상태에서는 우발적으로 방아쇠를 당겨도 양쪽 모두 개죽음을 당하는 거다.
강찬은 피투성이가 돼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이 새끼 때문이겠다.
CIA가 절대 넘겨줄 수 없는 놈?
“마누엘 야닉입니다.”
입가에 핏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허은실이 강찬의 예상을 사실로 증명해 주었다.
깡다구는 진짜.
세상이 알아주는 용병 기업의 대가리이자, 악독하기로 소문난 마누엘 야닉을 상대로 버텼던 모양이었다.
‘고생했다. 이제부터 나한테 맡겨.’
허은실을 향해 눈짓을 던진 강찬은 소총을 뒤로 돌려놓은 상태로 제라르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는 권총을 뻗은 채 버티고 있는 CIA 요원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지시하면 앞쪽 요원들은 무조건 자세를 낮춰. 그런 뒤에 기관총을 연사로 갈긴다.”
우리말로 전한 지시였다. 또한, 최종일이 강찬과 함께 작전에 나서서 연사로 갈기라는 명령을 들은 최초의 순간이기도 했다.
‘다 뒈졌어, 이 개새끼들!’
강찬의 등장 이후로 부쩍 달라진 요원들의 눈빛에 살기가 번들거리는 순간, 강찬은 숨소리를 들었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지켜야 할 사람이 간절할 때면 나는 세상이 천천히 흘러가!
그럴 때 거치적거리면 대가리 터지는 거고.
죽여 달라고?
그럼 죽여 주지.
적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의미로 강찬이 피식 웃었고, 왜 분위기가 이렇게 살벌하게 돌아가, 하는 느낌으로 CIA 요원들이 당황해 권총을 든 팔을 더욱 앞으로 밀어낼 때였다.
“오랜만입니다, 무슈 강.”
결정적인 순간을 파고드는 것처럼 로버트가 앞으로 나섰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은 막고 싶은 눈치였다.
“무슈 강! 우리가 원하는 건 마누엘 야닉의 사망입니다. 마누엘 야닉의 머리와 심장에 방아쇠를 당겨 주시면, 원하시는 장소까지 안전하게 경호하겠습니다.”
피식.
강찬은 정말이지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로버트. 너도 칼튼 숀이 감염을 퍼트리는 짓에 동조했다는 걸 알고 있었나?”
영어로 던진 질문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권총을 겨눈 CIA 요원들이 시선을 주고받는 앞에서 로버트는 답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네가 지휘했던 그린베레 대원들 사이에 감염이 번지고 있다. 그런데도 한다는 짓이 부대를 폐쇄하고 그 안에서 그냥 뒈지라고 가둬 두었고. 그걸 알고도 칼튼 숀의 지시에 따라 가장 중요한 증인을 살해하겠다고 이렇게 달려온 거냐?”
로버트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내가 마누엘 야닉을 데려가는 대신, 감염의 치료제를 미국에도 주마. 너의 선택은 뭐냐?”
“치료제가 있습니까?”
얼이 반쯤 빠진 듯한 표정으로 로버트가 질문을 내놓은 직후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강찬의 심장이 느닷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표정을 바꾼 강찬은 천천히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빠르게 CIA 요원 놈들을 훑었다.
저 개새끼!
앞을 향한 건 맞지만, 중간에 있는 총구 하나가 교묘하게 방향을 틀어서 로버트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었다. 언젠가 샤흐란이 강찬의 뒤통수를 겨눴던 것처럼 말이다.
“로버트? 선글라스, 갈색 머리칼, 세 번째 줄에 선 놈의 권총이 너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다. 돌아보지 마.”
강찬은 이런 일에 절대 헛소리를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정도는 지닌 눈치였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노리는 권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로버트가 볼을 씰룩였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칼튼 숀이 따로 지시를 내린 모양인데 너의 선택은 뭐냐?”
“저를 믿어 주시겠습니까?”
나직하게 오가는 대화를 알아들은 제라르가 힐끔 시선을 준 다음이었다.
“한때는 전우였으니까. 적어도 네가 그린베레 대원들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믿어 주지.”
로버트가 굳은 결심을 하는 순간이었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강찬이 지적했던 놈의 총구가 로버트를 완벽하게 겨누는 모습이 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제라르!”
강찬이 제라르를 부른 직후에,
“사격하지 마!”
몸을 돌린 로버트가 양팔을 벌린 자세로 강찬의 앞을 막았다.
멍청이!
방아쇠를 당기는 놈 앞에서 왜 팔을 벌리냐고!
“총 내려…!”
로버트의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철컥! 푸슝! 퍼윽!
강찬은 로버트를 노리던 놈의 오른쪽 어깨를 터트렸다.
긴장한 상황에서 터진 총성이었다.
“쏘지 마! 쏘지 말라고!”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는 로버트가 앞으로 달려가며 팔을 휘저었는데, 당황한 요원들의 방아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놀란 CIA 요원들이 자세를 낮추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철컥! 푸슝! 푸슝! 푸슝!
강찬은 가장 앞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세 놈의 어깨를 연달아 터트렸다.
비키라고, 이 멍청아!
사격을 멈추면 아군이 죽는다.
푸슝! 푸슝! 푸슝!
“사격 중…!”
타앙! 타아앙! 타앙! 타아앙! 타앙!
CIA 요원 뒷줄에서 갈긴 권총이 거짓말처럼 로버트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타앙! 타아-앙! 타앙! 푸슝! 푸슈슈슝! 푸슈슝!
이미 걷잡기는 틀린 상황이었다.
양쪽 모두 지닌 총기를 대놓고 갈기는 상황에서 국가정보원 요원 두 명이 바닥에 무너졌고,
푸슈슈슈슝! 타앙! 푸슈슈슈슝! 타아앙! 푸슈슈슈슝!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 그밖에 지하 통로에서 올라왔던 요원들이 일제히 갈겨 대는 소총에 CIA 요원들이 뒤로 튕기듯 몸을 흔들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타아-앙! 타앙! 푸슈슈슈슝! 푸슈슈슈슝!
상황은 길지 않았다.
무엇보다 앞쪽에 서 있던 놈들의 오른쪽 어깨와 팔을 강찬이 먼저 터트렸고, 그 뒤로 소총을 긁어 댄 탓에 길게 이어질 상황도 아니었다.
“부상자 빼고, 무기 회수해!”
강찬의 지시를 받은 요원들이 어깨와 배에 총을 맞은 우리 요원 둘을 옆으로 빼냈고, 핏물이 가득한 CIA 요원 사이로 뛰어들어 바닥에 떨어진 무기들을 거뒀다.
강찬은 자세를 낮춰 피거품을 토해 내는 로버트를 들여다보았다.
“특수팀이…, 올 겁니다. 얼른…. 가십시오.”
그린베레를 구해 달라고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억울하게 희생될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싶었던지. 얼른 가라는 말과 달리 강찬의 소매를 꽉 붙잡았던 로버트가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철수한다! 서둘러!”
강찬의 지시를 받은 요원들이 부상자 두 명과 허은실을 챙겼고, 이어서 빠르게 하수구를 향해 움직였다.
***
30분이 다 되도록 내려오지 않는 이용우를 협박하려는 모양이었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남자들과 허름한 바지에 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대놓고 몰려들었다.
그냥이나 몰려왔나?
그중 절반은 아예 어깨에 AK 소총을 걸치기까지 해서 아무리 이용우가 날고 긴다고 해도 혼자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호텔 위층을 향해 고개를 든 남자들이 이죽거리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부으응! 덜컹. 부으으응.
호텔을 향해 꺾인 도로에서 지프와 트럭이 거칠게 달려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뭐야?
시선을 돌렸던 남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소총을 얼른 내렸고, 행여나 오해받을까 염려한 것처럼 몸을 돌려 가리기까지 했다.
부아아앙.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지프의 뒤에 중기관총을 걸은 것도 두려웠지만, 그보다 더 섬뜩한 건 평화유지군 군복을 입은 대원들이었다.
끼이익.
몰려든 남자들 앞에서 멈춘 지프의 조수석에서 동양인 남자가 훌쩍 뛰어내렸다. 체형이 단단했고, 눈매가 매서웠지만,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검은 땅의 지배자?”
그러나 그가 뒤집어쓴 두건과 왼쪽 어깨에 걸어 둔 대검을 확인한 남자들이 혼잣말처럼 닉네임을 부르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기가 부러졌다.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이 정도로 그러면 서운하지.
마치 그렇게 보여 주는 것처럼 연달아 멈춰 선 지프와 트럭에서 또다시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줄줄이 뛰어내렸다.
그뿐이냐?
마지막에는 복장과 무기가 다른 러시아 부대 스페츠나츠까지 줄줄이 내려와 강태산의 주변을 지켰다.
철컥. 철컥. 철컥.
훈련받은 특수부대 대원들을 반군 나부랭이가 감당하기는 어렵다. 거기에 가장 먼저 내린 남자가 검은 땅의 지배자라면 더더욱 대들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
얼마 만에 보는 동기인지 모른다.
함께 진흙탕 뒹굴고, 모형 도시에서 시가전으로 붙어서 씩씩대던 강태산이 지금은 한 마리 젊은 사자처럼 지프에서 내리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이용우는 픽 웃었다.
개새끼들.
나한테는 협박도 잘만 하더니, 태산이를 보고는 빌빌 기어?
한쪽으로 밀려나 눈치를 살피는 시아파 놈들을 내려다보던 이용우는 안쪽 침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준비해.”
“예.”
덤덤하게 옆에 두었던 외투를 집어 드는 자밀라를 이용우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 지금 누구 만나러 가는 건지는 아냐?”
“모하마드 암만 하릴 하지즈, 이라크 왕세자님이요.”
당연한 투로 답하는 자밀라를 보며 이용우는 이상하게 한숨이 푹 나왔다.
“너, 이라크 출신 여자다. 그런데도 왕족과의 회담에 그런 모습으로 참석하는 거다. 자칫하면 시아파의 타깃이 돼.”
“알고 있고, 각오도 했어요.”
잠드는 거 깨워서 라면 좀 먹었다고, 아예 정신 줄을 놨나?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외투를 앞으로 든 자밀라가 그런 이용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왕세자님이 자존심이 많이 상하시겠죠. 함께 지켜보는 수행원들이 그 자리에서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누군가 나를 지켜줘야죠.”
어젯밤 일로 자존심 좀 상했다고 목숨을 걸어?
워낙 당찬 대꾸에 이용우가 답하지 못할 때였다.
쾅쾅쾅.
거친 문소리가 이용우와 자밀라의 시선을 확 당겼다.
큰소리쳤고, 평화유지군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거친 문소리에 자밀라는 겁이 덜컥 올라온 반응이었다.
하여간, 겁을 내면서 저래.
고개를 흔든 이용우는 빠르게 문 앞으로 움직였다.
“누구십니까?”
“이용우? 강태산이다.”
굵어지고, 강해진 느낌이지만 확실히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강태산의 음성이었다. 긴 세월을 지나 다시 만나는 동기를 떠올리며 이용우는 문고리를 당겼다.
문을 당기는 만큼 먼저 왼편 어깨에 걸린 대검이 눈에 들어왔고, 이어서 강태산의 얼굴이 넓어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처럼 드러났다. 소총을 앞으로 들고 총구를 내린 강태산과 뒤를 지키는 대원 두 명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 다음이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용우와 강태산은 동시에 픽 웃었다.
“보기 좋다?”
“야전 생활이 좋으면 너도 오든가.”
“야전보다는 이쪽이 적성에 맞아.”
같은 생각이라는 투로 강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철이 가는 길 지켜 준 거 고맙다. 어머니 살펴 준 것도.”
“미안하다.”
“네 잘못이 아니잖아.”
짧은 다독임으로 이용우의 심정을 받은 강태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만 가자. 학장님께서 기다리신다.”
“학장님? 강철규 학장님도 오셨어?”
“시아파 전체가 달려들어도 너는 문제 없을 거다.”
“잠시만.”
이용우가 안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벽 안쪽의 침대에 있던 자밀라가 조용하게 걸어 나왔다.
뭐냐, 이 상황은?
함께 왔다는 사실을 몰랐던 강태산이 정말이지 의아한 눈으로 자밀라를 살핀 다음이었다.
“인사하자. 이쪽은 자밀라. 이라크에서 구해 낸 분인데 부원장님께서 함께 가라고 하셔서 왔고.”
우리말로 먼저 자밀라를 소개한 이용우는,
“이 친구는 평화유지군 강태산 대위.”
자밀라에게 아랍어로 강태산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평화유지군 강태산입니다.”
“네. 자밀라입니다.”
영어로 오간 대화의 끝에서였다.
“이제 움직이자.”
표정을 가라앉힌 강태산이 요구했고, 이용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