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71)
752화 별이 돼서 하늘에서 보시죠 (3)
방을 나선 다음이었다.
습관처럼 복도의 끝과 비상계단을 살핀 이용우는 안내하듯 앞을 걷는 강태산과 평화유지군 대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특수부대의 장비나 복장은 어느 곳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다만, 강태산의 왼쪽 어깨에 매달려 있는 대검만큼은 그 어떤 특수부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무장인 게 분명했다.
대한민국이 더럽게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 말이다.
악과 근성, 깡다구만으로 비무장 지대를 지켰던 대원들의 특수한 선택이었다는 사실과 그 전통과 정신을 증평의 특수팀과 평화유지군이 받았다는 내용을 어지간히 유명한 특수부대 대원이라면 모두 안다.
비무장팀은 정말 가진 거 없고, 장비 부족한 환경에서 스페츠나츠와 백랑대, 특수8군단과 맞붙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비무장 왕’이라는 전설과 ‘서울 구경’이라는 처절한 응징을 만들었다.
피눈물 어린 특수부대 선배들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걸까?
증평에서 지랄 맞게 달려들던 강태산은 ‘검은 땅의 지배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왼쪽 어깨 뒤에 매달아 놓은 대검의 의미를 온 세상 특수부대에 요란하게 알렸다.
솔직히, 증평의 훈련장에서 강태산은 그럴 싹수가 보였다.
“잠 좀 자자!”
훈련에 지친 대원이 하소연처럼 고함을 질러도 강태산은 희한한 걸음으로 내무반의 끝과 끝을 오가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염병을 떨더니 두 달 정도 뒤에는 눈을 감고 있을라치면 오는지, 가는지, 전혀 모를 정도로 소리 없이 움직였다.
진짜 충격은 모의 시가전이었다.
시멘트 바닥 위로 돌과 건물의 파편이 가득한데, 자세를 낮춘 채 건물의 벽을 타고 움직이는 강태산에게서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날 밤부터, 염병할 동기들이 모조리 내무반을 오가며 지랄들을 떨어 댄 걸 생각하면 아직도 고개가 저어질 정도였다.
“달려! 달리라고!”
헐떡이는 동기의 어깨를 붙들고 달리는 모습은 또 어땠나?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마! 뒤에 오는 게 적이라니까! 너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전부 멈춰서 총질을 해야 한다고!”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직후에 강태산은 이용우를 찾았다.
“군장 좀 받아 줘!”
나쁜 새끼! 박중상도 있는데 왜 나를!
당장 욕이 튀어나올 지경인데도 이용우는 지쳐 있는 동기의 군장을 받아 목덜미에 얹었다. 그때였다. 자세를 낮춘 강태산은 바닥에 주저앉은 동기를 당겨서 등에 멘 군장 위에 가로로 얹었다.
“끄응.”
원체 지독했던 인간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신음을 뱉어 냈을까? 하여간 강태산의 그런 모습이 동기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만은 분명했다.
“끄으!”
널브러진 동기를 짊어지고 힘겹게 달리는 강태산과 군장을 하나 더 얹은 이용우, 동기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의 허리를 잡아 줘 가며 달렸다.
독종, 독종, 말은 많이 들었고, 이용우도 동기들 사이에서 지독하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강태산에게만큼은 반의반 정도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1년을 죽어라고 매달렸던 훈련의 마지막 과정이었다.
지정된 시간 안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추격조에 잡히면 탈락하는 훈련에서 강태산은 동기를 짊어지고서 통과했다.
“허억! 헉. 허억. 허억.”
군장을 풀지도 못한 이용우가 바닥에 누워 헐떡일 때였다.
“허억. 헉. 고맙다.”
비슷하게 군장을 등받이처럼 깔고 누운 강태산이 거친 숨소리 틈에서 짧게 인사를 건넸었다. 얼마나 지쳤는지 시커멓게 죽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적당히 좀 하자, 씨발.”
“나중에 네가 위험하다고 해도…. 이렇게 할 거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하늘이 쪼개져도 지킬 거라고.”
군장을 깔고 누운 탓에 침대를 세운 것처럼 상체가 들려 있던 이용우는 고개를 돌렸다.
“다음부터 짊어질 거 있을 때는 나 말고 중상이 불러.”
그때 이용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던 강태산이 피식 웃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세월이 흘러서 소말리아의 호텔을 함께 나서고 있었다.
호텔을 나선 다음이었다.
시아파 놈들을 지켜보는 강철규와 곽철호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 같으면 거수경례로 인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복장도 그렇고, 무엇보다 시아파 놈들이 지켜보는 앞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용우는 깍듯한 태도로 강철규와 곽철호를 향해 차례대로 고개 숙였다.
피식.
담긴 감정과 전하는 감동이 확실히 원조라고 느껴지는 웃음을 강철규가 보여 주었고, 그의 곁에서 자밀라를 눈에 담았던 곽철호가 조금 더 바싹 다가왔다. 그리고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시아파 놈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소개하고 인사하지 말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함께 가야 하나?”
“그렇습니다. 부원장님께서 함께 움직이라고 지시하셨었고, 또 혼자 호텔에 두면 납치나 살해의 위험이 있습니다.”
“알았다. 여성분과 함께 지프에 타.”
“대령님. 시아파가 보는 앞에서 얼굴을 드러낸 여자가 외간 남자와 함께 차에 타고 움직이면 이 여자는 무조건 살해 대상이 됩니다.”
힐끔 시아파 놈들을 돌아본 곽철호가 “그럼 여자분만 태워.”라는 말을 던지고는 대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여기 지프 조수석에 타.”
이용우가 건넨 아랍어 요구를 자밀라가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곳에 강철규와 강태산이 없었다면, 또 평화유지군이 아니었다면, 시아파 놈들이 명예를 지키겠다며 달려들기 꼭 좋은 장면이었다.
‘여자잖아? 그것도 아랍 여자?’
시아파 놈들이 따귀를 맞은 것처럼 자존심 상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자밀라는 덤덤하게 잘 버텼다.
“출발하겠습니다. 출발해!”
강철규에게 짧게 보고한 곽철호가 출발을 알렸다.
이미 정해 놓았던 모양이었다.
강태산이 선두, 강철규가 중간, 곽철호가 후미를 지휘했고, 지프와 트럭이 움직이는 양쪽으로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소총을 앞으로 든 채 걸었다.
‘멋지네.’
강철규와 강태산의 왼쪽 어깨에 걸린 대검을 보며 이용우는 정글에서의 처절한 삶을 알려 주려는 늙은 사자와 존경심을 가득 담은 혈기왕성한 젊은 사자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비무장 왕과 검은 땅의 지배자가 함께 지키는 상황에서 이곳을 습격할 놈이 있을까?
생각이 달리던 이용우는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옅은 웃음을 눈가에 달았다.
강찬은 완벽하게 무력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까불지 마라. 진짜 다 죽는다.’
그것도 하릴 하지즈와 그가 가장 믿는 시아파를 상대로 말이다. 심지어 자밀라를 보내서 자존심까지 짓밟는 모양새를 연출했는데, 강찬에게 의도가 없다면 이건 말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앞쪽에서 데그마다 빌딩과 줄줄이 매달린 간판을 보며 이용우는 나직하게 각오를 다졌다.
***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칼튼 숀은 상황을 확인하고 온 간부 두 명을 눈에 담았다.
대치 상황에서 강찬이 했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책상 건너편에 앉은 간부 두 명은 유리로 만든 방패를 중간에 세운 것처럼 사무적인 태도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엮이기 싫습니다.’
두 사람의 태도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칼튼 숀이 볼을 씰룩일 때였다.
“국장님. 어떤 식으로든 발표를 하셔야 할 시간입니다.”
왼편에 앉은 안전부장이 나직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저 꼴을 좀 보라지.
책상 앞의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그 위에 깍지 낀 손을 올려놓은 안전부장의 모습이 얼마나 거만한지 주택 담보 대출금을 독촉하는 은행원처럼 보였다.
덮을까? 아니면 미국과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히는 한이 있더라도 대대적인 사살 작전을 벌일까?
고민보다는 상황 확인이 먼저니까.
“현재 경계 상태는?”
“라과디아 공항을 비롯해 뉴욕 근처의 모든 공항에 전용기와 자가용 비행기의 이륙을 금지시켰고, 주요 도로를 경찰이 통제하고 있습니다. 주 방위군도 지시와 동시에 투입할 수 있도록 대기 상태입니다.”
그들 모두를 동원해서 사살하라고 지시해?
목구멍을 뚫고 올라온 지시를 칼튼 숀이 꿀꺽 삼키는 순간이었다.
“국장님?”
시계를 들여다보았던 안전부장이 결단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칼튼 숀을 보았다.
“테러로 발표해.”
그게 최선입니까?
마치 그런 눈빛으로 책상 앞에 앉은 두 명의 간부가 칼튼 숀을 바라보았다.
“주 방위군에 협조를 요청하고, 용의자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사살하라고 지시해.”
“테러 단체에 관해서는 뭐라고 할까요?”
“탈레반과 손잡은 무장단체로 하지.”
분명 질문에 대한 답과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도 두 명의 간부는 원하는 답이 아니라는 투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들이?
“로버트가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의식을 잃기 직전에 충격적인 내용을 요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밖으로 새 나가지 않도록 할 방법이 있지 않나?”
“그러기에는 그린베레 출신을 포함해 현장에 있던 요원들의 증언이 문제가 됩니다.”
“증언?”
“오늘 대치 상황에서 무슈 강이 의도적으로 우리 요원들의 어깨와 손목만을 노렸다고 진술했습니다. 또한, 마누엘 야닉을 데려가는 것으로 치료제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전적인 시선으로 칼튼 숀을 본 안전부장이 차가운 느낌으로 말을 이었다.
“지시가 없었고, 심지어 발사하지 말라고 지시했는데도 요원 중 일부가 현장 책임자인 로버트를 향해 먼저 발사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들 모두의 입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미 뭔가 결정하고 찾아온 거구나!
보고를 들은 칼튼 숀은 심장을 꺼내 냉동실에 넣은 것처럼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백악관에서는 국장님이 결단을 내려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특히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칼튼 숀이 반사적으로 책상 위의 인터폰을 내려다보았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결단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면 좋겠군.”
“멕시코의 인물부터 오늘 사건에 관련된 내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대국민 사과를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백악관이라고 무사할 거 같은가? 당장 다음 선거에서 절대 견디지 못해!”
“치료제를 강탈하려는 마누엘 야닉을 체포하기 위해 한국의 국가정보원, 프랑스의 정보총국과 은밀하게 벌인 작전이었다고 발표하셔도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칼튼 숀을 향해 안전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슈 강과 어떤 식으로든 합의하셔야 합니다.”
“그가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믿나?”
“다른 방법이 있다면 선택하셔도 됩니다.”
담보인 주택을 경매로 내놓아야 한다는 은행원처럼 안전부장은 깍지 끼었던 두 손을 벌려 보였다.
“상황도 국장님에게 불리합니다.”
“무슨 뜻이지?”
“소말리아에 있는 하릴 하지즈가 조금 전에 무슈 강의 대리인을 맞아들였습니다. 평화유지군을 대표하는 지휘관 캡틴 강이 현장을 통제하고, 전설이라고 평가받는 학장까지 참석해서 정보 활동을 하는 나라의 모든 정보기관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게 내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군.”
“하릴 하지즈가 무슈 강의 지시를 받거나 손을 잡으면 우리는 치료제를 얻을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치료제야 어디에서든 구해서 복제하면 그만이야!”
“그 치료제를 생산하는 국가가 사우디아라비아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칼튼 숀의 뒤통수를 세차게 때리는 듯한 내용을 안전부장이 냉정한 음성으로 내놓았다.
“현실을 보십시오. 시아파가 피의 복수를 부르짖어도 정신적 지주인 하릴 하지즈가 다독이면 잠잠해질 테고, 거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우즈만이 치료제까지 공급하게 됩니다. 그 모든 게 무슈 강의 덕분이라고 선전하면 우리가 설 자리가 아예 없어집니다.”
“후!”
한마디, 한마디가 숨통을 조이는 느낌이어서 칼튼 숀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나더러 무슈 강을 만나라는 건가? 이미 CIA 국장을 살해한 경력이 있는 자를?”
“선택은 국장의 몫입니다.”
‘거절하면 우리 손으로 국장을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안전부장의 마지막 말이 칼튼 숀에게는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의 음성처럼 잔인하게 들렸다.
***
하수구를 통해 달린 강찬은 처음 들어갔던 골목으로 빠져나왔다. 그사이 정보총국 요원들은 아예 승합차를 박스로 뒤덮어 가렸고, 골목 입구에는 미국에서 흔하게 보는 SUV를 가져다 놓았다.
“부총국장님. 지금 이동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치료를 위해서도 잠시 이 건물에서 지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총탄이 스친 모양이었다.
왼쪽 팔뚝이 뜯긴 자리에 피가 배어 나온 천을 감은 정보총국 요원이 주변을 살피며 빠르게 권했다.
이런 걸 굳이 거절할 필요 있을까?
“부상자부터 옮겨!”
피투성이인 부상자 두 명과 팔뚝, 혹은 옆구리를 다친 요원들을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는 동안 강찬은 제라르, 최종일, 우희승과 밖을 지켰다. 정말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도 박스로 가려 놓은 건물 바깥 도로에서 연달아 경찰차의 경광등 불빛이 골목 안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부총국장님!”
문을 잡은 정보총국 요원의 음성을 들은 강찬은 눈짓을 던졌다. 먼저 최종일과 우희승이 안으로 들어갔고, 이어서 뒷걸음질로 들어간 제라르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상점으로 사용하던 공간인가 싶은 내부였는데 허리 높이 위쪽에 있는 창을 판자로 가려 놓았고, 이런저런 자재가 있는 것으로 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가 중단한 모양새였다. 그래서인지 뒤늦게 총탄에 다친 부위에 붕대를 감는 요원들의 모습이 조금 더 힘겹게 눈에 들어왔다.
“뉴욕 근교의 모든 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의 이륙을 막았고, 경찰이 외곽 도로를 통제 중입니다. 주 방위군이 대기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빠르게 전하는 보고를 들으며 강찬은 구석에 묶어 놓은 마누엘 야닉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저 새끼 하나 잡자고 손해가 엄청났다. 하지만 멕시코와 뉴욕에서 보여 준 이런 모습이 건드리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경고로 오래도록 남는 거다.
‘견뎌. 그래서 우리 함께 돌아가자.’
그나마 정리된 바닥에서 치료받는 요원 두 명에게 시선을 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강찬의 스마트폰이 나직하게 울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