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74)
755화 닥치고 있으라고 했지? (3)
우즈만과 문바키, 안느, 세 사람과 연달아 통화를 마친 강찬은 각오를 담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바깥 정리는 끝났다. 저 문을 나서면 어떤 결과를 받을지 모르지만, 목숨을 던져 가며 당부했던 우리 동료의 요구대로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다.”
철커덕! 철컥! 철컥!
제라르부터 최종일, 그리고 요원들이 소총의 노리쇠를 거칠게 당겼고, 벽에 기대앉아 있던 허은실이 유강미의 팔을 붙잡고서 몸을 세웠다.
CIA와 목숨 걸고 맞섰던 요원들이었다.
허은실만 그런 게 아니라 셔츠를 붉게 물들인 요원들과 팔이나 가슴에 붕대를 감은 요원들도 많았다. 특히, 앞쪽을 맡았던 요원들은 CIA 놈들의 총에 가슴이나 팔, 다리를 다쳤다. 그런데도 최후가 될지 모를 임무에 나서겠다며 손을 들었다.
맞붙어 싸운 탓에 귀 아래가 찢어진 요원, 눈동자에 핏물이 올라온 요원, 먼지 구덩이에서 꺼내 온 것처럼 보이는 허은실, 강찬은 확인처럼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차례로 돌아본 뒤에 정보총국 요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건 우리 싸움이다. 공연히 피 흘릴 필요 없어.”
“부총국장님. 조금 전 팔을 든 의미를 뒤늦게 들었습니다. 시작을 함께했으니 마지막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통화하는 도중에 제라르와 뭔가 이야기하더니 아마도 아까 상황에 대해 들은 모양이었다.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보며 피가 끓었다는 건가?
어떤 면에서는 냉정하게 느껴질 만큼 이성적인 정보총국 요원이 강찬의 지시를 받고도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제라르에게는 이미 함께 가겠다고 뜻을 밝힌 모양이었다.
“대장. 함께 가시죠?”
대화를 지켜보던 제라르가 괜찮지 않겠냐는 투로 슬며시 끼어들었다.
목숨이 여벌로 있어서 하나쯤 버려도 되는 사람이 있겠나. 그런데도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보여 주는 의지와 독기, 강단에 전염돼서 함께 피 흘릴지언정 외롭게 보내지 않겠다는 각오가 정보총국 요원의 눈에 가득했다.
그들의 눈을 강찬이 들여다보는 순간이었다.
“부총국장님. 우리 요원들에게도 질문 한번 해 주십시오.”
함께 가겠다던 정보총국 요원이 뜻밖의 요청을 건네고는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미친 새끼들.
죽으러 가는 길이 뭐가 좋다고?
그렇더라도 이 정도 각오라면 함께 피 흘릴 자격은 갖춘 거다.
“CIA가 제안을 해 왔다. 우리의 안전한 귀국과 칼튼 숀을 만나게 해 주는 대신, 치료제를 내놓고 면담 후에 안전하게 보내 달란다.”
프랑스어로 내놓은 설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엿이나 처먹으라고 하고, 밀고 들어갈 생각이다. 미친 짓에 함께할 요원이 있나?”
프랑스어로 던진 강찬의 질문이 창고에 나직하게 깔린 뒤였다. 일곱 명쯤 되는 프랑스 요원들이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분위기, 조금 전 바라보던 시선, 그리고 손을 드는 동작으로 알아본 모양이었다. 우리 요원들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프랑스 요원들을 지켜보았다.
***
CIA 안전부장 그릭 허먼은 삶과 죽음이 갈리는 절벽 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 그린베레에 감염이 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소?
‘나는 몰랐다. 이번 사태는 CIA가 비밀리에 수행한 작전 때문이다.’
전화로 연결한 대통령의 질문에 담긴 의도는 분명했다.
이런 순간에 짐작 정도는 했었다고 솔직한 답을 해 봐야 남는 건 불명예스러운 해직과 오랜 기간에 걸친 수감 생활밖에 없는 거다.
– 왜 대답을 못 하는 거요? 알고 있었소?
“국장이 외부 조직과 벌인 사건입니다.”
짧은 고민 끝에 그릭 허먼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 지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그 밖에 중동 지역에서 거센 항의와 함께 모든 교류를 끊겠다는 경고가 연달아 들어오고 있소. 또한, 뉴욕에서 일어난 총격에 관해 밝혀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오.
그걸 나더러 어쩌라고?
볼멘소리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불평이 달려온 다음이었다.
– 아랍에서 걸려 온 전화를 들어 보면 하나같이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말하던데 혹시 아는 게 있소?
마지막까지 비겁하게 들리는 대통령의 질문이 넌지시 들어왔다. 누가 뭐래도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그릭 허먼의 남은 인생이 결정된다.
“칼튼 숀 국장이 중국과 일본, 시아파 세력과 손잡고 한국과 수니파 전체를 함정에 몰아넣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감염을 퍼트린 것에 대한 응징만큼은 반드시 하겠다는 요구입니다.”
– 하아!
대통령이 답답한 속내를 커다란 한숨으로 드러냈다. 하기는, CIA 국장을 임명한 장본인이 대통령이라 문제가 밖으로 나가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나눠야 할 테니 한숨이 나올 만도 하겠다.
– 하나씩 확인합시다. 정보총국과 우리 CIA가 맞서면 승산과 후폭풍이 어느 정도요? 내 생각으로는 군과 마약을 상대하는 정보조직을 지닌 우리가 좀 더 유리한 게 아닌가 싶은데?
“프랑스는 정보총국 아래 정보국을 별도로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유럽과 아랍, 아프리카가 치료제를 얻기 위해 돌아서는 상황도 예상하셔야 합니다.”
답을 들은 대통령은 또다시 뜨거운 숨을 먼저 내쉬었다.
– 한국인 부원장은 왜 칼튼 숀 국장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거절한 거요?
“말씀대로 희생에 대해 응징하겠다는 뜻입니다. 그의 성격상 칼튼 숀을 제거하지 않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 기가 막히는군. 아무리 정보총국의 이름을 등에 업었다고 해도 한국의 정보기관 부원장이 CIA 국장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거요?
대통령의 한탄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문 안쪽으로 상체를 넣은 요원이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뻥긋거렸다.
‘무슈 강, 출발! 이곳으로 오는 거 같습니다!’
뭔 인간이 이렇게 잔인해!
최소한 대책을 세울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냐!
갑갑한 심정에 주먹을 움켜쥐었던 그릭 허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말씀하신 그 인물이 이곳을 향해 출발한 거 같습니다! 지침을 주십시오!”
–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소?
“한국의 정보기관 부원장이 뉴욕의 CIA 본관을 향해 출발했다는 보고입니다.”
대통령에게 들리지 않도록 입 부근을 손으로 가린 그릭 허먼이, “인원은?”이라는 질문을 던졌고, “프랑스 정보총국 요원들까지 모두 이십여 명 이상입니다.”라는 답이 바로 나왔다.
“이십여 명이 출발한 걸 보면 칼튼 숀을 내놓든가, 아니면 뉴욕의 CIA 건물 앞에서 대놓고 총격전을 벌이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 미쳤군.
“그는 원래 모든 면에서 제정신이 아닌 인물입니다.”
– 그런 사람이 어떻게 프랑스와 한국의 정보국 2인자가 된 거요?
“미스터 프레지던트! 지금은 지침을 주셔야 할 때입니다!”
– 지금 내게 소리친 거요? 칼튼 숀과 CIA가 일을 이렇게 만들도록 안전부장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소?
“소리치거나 비난하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음성이 높아졌던 그릭 허먼이 사과를 내놓을 때, 문에 매달린 요원이 바깥을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그 직후였다.
– 참모 회의를 할 테니 우선 그를 달래서 돌려보내시오. 총격전은 절대 안 돼.
비겁한 지시를 던진 대통령이 전화를 끊었다.
강찬을 달래서 돌려보내라고?
아예 죽으라고 하지!
“부장님? 어떻게 할까요?”
“우리 요원들은?”
“그들이 탄 승합차의 앞과 뒤에 붙어서 함께 이동 중입니다.”
“미치겠군.”
강찬의 성격에 제지하거나 누구라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뉴욕이 벌집 쑤신 꼴이 될 테고, 이후에 내막이 밝혀지면 미국과 CIA의 위신이 저 아래 하수구 정도에 처박힌다. 그 뒤에 그릭 허먼은 청문회를 거쳐 교도소로 직행할 테고.
“젠장!”
문제는 또 있었다.
어찌어찌 강찬과 그 일당들을 모조리 사살하고 덮으려 해도 로버트와 현장에 있던 요원들이 살아 있는 한, 무조건 뒤탈이 생기는 거다.
솔직히 말하자.
이 정도 문제로 끝날 수 있다면, 독한 심정으로 로버트와 요원들을 제거하겠다. 그런데 그 뒤에 미쳐 날뛸 문바키와 정보총국, 지겹도록 강찬의 지시만 따르는 아프리카의 그 미친 병력을 누가 감당하겠나.
“안전부장님?”
“무슈 강에게 전화를 연결해.”
“알겠습니다.”
독촉하던 요원이 득달같이 달려나갔다.
***
염병들 떤다.
승합차에 앉은 강찬과 제라르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창밖을 돌아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대형 SUV와 승용차들이 몰려와서 강찬 일행이 탄 배관 공사 승합차와 아이스크림 승합차를 빽빽하게 둘러싼 채 달리고 있었다.
방향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옆으로 비켜 주기는 했지만, 놈들은 약속한 것처럼 CIA 본부를 향한 도로의 앞쪽을 차지했다.
그냥 둬도 눈에 띄는 배관 공사 차량과 윙크하는 서양 눈사람이 그려진 아이스크림 승합차를 시커먼 대형 SUV와 승용차가 겹겹이 감싼 상태로 달리는 거라서, 인도를 지나던 다양한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요란한 행렬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간 일 크게 만드는 거 하나는 대장을 따를 사람이 없을 겁니다.”
주변을 둘러싼 차량을 돌아본 강찬은 대꾸 대신 피식 웃었다.
그 직후였다.
“미사일 하나 갈기면 끝입니다.”
주변을 훑어본 제라르가 경고와 함께 시선을 가져왔다.
제라르만이 아니었다. 요원들 모두 혹시나 휴대용 미사일, 혹은 이쪽을 겨누는 놈이 없는지를 살피느라 잠시도 시선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미사일 날리고 총을 갈기기 시작하면 우리가 절대 불리한데, 그렇더라도 얌전히 죽어 줄 마음은 없으니까 최대한 뉴욕을 시끄럽게 해 줘야지.”
다부진 답을 한 강찬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꼭대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건물들을 눈에 담았다.
“태산이와 평화유지군이 고스란히 남았다. 멕시코에 있는 유인강, 이용우, 박중상 같은 놈들이 있는 한, 오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손해 보는 거 없어.”
죽음을 각오했구나!
강찬의 각오를 들은 요원들이 고개를 힐끔 돌렸다가 앞으로 가져갔다.
양보라는 게 말이다.
한 번, 두 번, 고개 숙이고 나면 다음번에는 알아서 기어 주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막판에는 받아들이지 못할 요구를 내놓고도 항의한다는 이유로 화를 내거나 주먹을 내지르는 게 힘의 논리였다.
개새끼들.
사람을 봐 가면서 눈알을 부라려야지.
허은실부터 이런 임무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다니까.
피식 웃은 강찬이 창에 매달린 것처럼 바깥을 감시하는 요원들의 뒷모습을 볼 때였다.
“다예가 이걸 보면 꽤 억울해할 겁니다.”
통쾌하다는 표정으로 제라르가 씨익 웃었다.
무식하던 놈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머리를 굴려 대더니, 반대로 똑똑하던 놈이 자꾸만 단순무식한 모습을 보인다.
그 직후였다.
“신호를 조작하는 모양입니다. 계속해서 우리 진행 방향으로 파란불이 들어옵니다.”
운전을 맡은 이두희가 고함처럼 소리쳐서 상황을 알려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줄에 매달아 아래로 늘어진 신호등들이 계속 파란불을 켜 놓고 있어서, 앞쪽에서 달리는 SUV와 승용차들이 아예 에스코트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조금 뒤에 터널이 나옵니다.”
이두희의 고함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터널 안에서 뭔가 대비하지 않았겠냐는 의미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리고 협상이라도 해 보자는 것처럼 강찬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여보세요?”
– CIA 안전부장 그릭 허먼입니다, 무슈 강.
“편하게 영어로 해.”
– 감사합니다, 무슈 강.
어색한 프랑스어로 이름을 밝혔던 그릭 허먼이 강찬을 배려한 것처럼 또박또박 내놓는 영어로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어떻게 할까요?’
터널의 입구가 눈에 들어온 상황에서 이두희가 시선을 주었다.
심장이 뛰지 않으니까.
‘그냥 달려.’
강찬은 터널을 향해 고갯짓을 던졌다.
“용건은?”
– 원하시는 게 정확하게 뭔지 알고자 전화했습니다, 무슈 강.
공손하기도 하다.
“칼튼 숀을 내놔. 그런 뒤에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해.”
– 무슈 강. 칼튼 숀을 내놓으라는 게 혹시 한국이나 제3국으로 데려가겠다는 뜻입니까?
“그릭 허먼.”
– 예, 무슈 강.
“테러범 취급하듯 시간 끌지 마라.”
강찬이 종료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승합차가 터널로 들어갔다.
어둠을 가르는 것처럼 터널 양쪽에 박힌 하얀 등이 승합차의 속도에 따라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안에서 언제, 어떤 놈들이 휴대용 미사일을 갈길지 모르는 상황이라 앞에 탄 요원은 요원대로, 또 중간은 중간대로 빠르게 눈을 돌리고 있었다.
우우우웅. 우우웅.
개새끼가?
“여보세요?”
– 시간을 끌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보다는 무슈 강의 이동을 뉴욕 상공에 헬리콥터까지 띄워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CIA는 돌이키지 못할 치욕을 당하는 겁니다.
시선을 빠르게 들었으나 터널이라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 신호를 통제해서 곧장 오게 한 것처럼 앞으로 모든 일에 협조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백악관과 CIA를 통제하고 조율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여지를 주십시오.
이런 제안을 받으면 라노크나 김미영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가끔은 그 두 사람의 냉정한 판단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그런데 태생부터 그게 안 되는 걸 또 어쩌겠나.
“그릭 허먼. 내가 원하는 건 두 가지다. 칼튼 숀을 내놓고 이번 일에 대해 보상해.”
지금도 봐라.
강철규의 피가 그래서인 건지는 몰라도 당최 양보라는 게 안 되는 거다.
– 시간을 주십시오. 테러범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백악관과 협의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그릭 허먼. 저 앞에 터널의 끝이 보인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협의를 마쳐.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방송을 통해 뉴욕에서 특별한 축제가 벌어질 거다.”
경고를 던진 강찬은 종료 버튼을 눌렀다.
“요원들 모두 복면해!”
강찬과 제라르, 요원들이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복면을 꺼내 얼굴에 뒤집어썼다. 그리고, 허드슨강의 아래 터널을 달린 승합차가 밝은 세상을 향해 튀어 나갔다.
눈이 아릴 정도로 강렬한 햇살이 달려들 때, 정장에 복면을 뒤집어쓰고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요원들의 모습이 마치 은행 강도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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