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75)
756화 원하는 게 이거라면 (1)
오후 6시여서 일찍 퇴근한 사람들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문바키는 깍지 낀 양팔을 책상에 얹은 자세로 정면의 TV에 집중했다.
헬리콥터에서 잡은 탓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화면에서 덩치 큰 SUV와 승합차에 포위된 것처럼 찌그러진 승합차 두 대가 외롭게 달리고 있었다.
[터널을 나선 차량이 뉴욕의 중심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승합차에 탄 인물들이 뉴포트 센터에서 총격을 벌인 범인이라는 제보와 긴급하고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온 한국의 정보원들이라는 제보가 있습니다만, 아직 확인된 내용은 없습니다.]옆구리가 움푹 들어간 승합차를 보며 문바키는 피식 웃던 강찬을 떠올렸다. 뉴욕을 저렇게 밀고 들어갈 거라고는 정말이지 생각하지 못했다.
평화유지군을 불렀다면 그나마 이해한다.
어차피 엎을 거라면 뉴욕을 통쾌하게 터트리기라도 할 테니까.
[프랑스계로 추정되는 인원 일곱, 그 외에 한국인 정보원으로 추정되는 인물 열여섯 명이고, 그중 여자가 두 명 포함됐다는 제보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승합차 두 대에 나눠 탄 인물들이 무장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흔들리는 화면에서 덩치가 커다란 SUV와 승합차가 도로를 점거하듯 밀고 나가는데, 경찰 오토바이들이 가장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미국을 상대로, 그것도 뉴욕 한복판에서 저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무리 강대국의 방패 뒤에 숨더라도 잘못한 놈, 찍힌 놈은 끝까지 가서 때려 주겠다는 사람이 말이다.
차갑게 바라보는 문바키의 시선 앞에서 코너를 돈 승합차의 뒤편으로 덩치 큰 차량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문바키와 우즈만을 통해 압력을 가했다고 해도 강찬은 목숨을 내놓은 게 분명했다. 저렇게 독한 각오를 세워 놓고 정보총국에 요구한 거라고는 12시간 안으로 CIA 요원들을 내쫓으라는 경고가 전부였다.
너는 살아, 문바키.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정보총국을 지키고,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안느에게 넘겨줘. 그런 뒤에는 네가 원하던 삶을 살아, 문바키.
강찬의 당부가 들린 것 같아서 문바키는 아프게 웃었다.
어쩌면 처음 보았을 때와 한 치도 달라지지 않는지, 버려도 되는 아이, 문바키를 끝까지 지켜 주던 모습을 강찬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도로에서 지켜본 기자에게서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승합차에 탄 인원 모두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교전을 각오한 게 아니냐는 분석입니다.]리모컨을 들어서 소리를 죽인 문바키는 스마트폰을 들고서 번호를 찾았다. 잠시 액정을 들여다본 다음이었다. 굳은 눈매로 포위된 승합차를 바라보았던 문바키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안느입니다, 총국장님.
“총국장의 권한으로 정보총국과 정보국, 외인부대에 총비상령을 내린다.”
워낙 놀라운 지시여서 그럴까?
늘 냉정하게 업무를 챙기던 안느가 멈칫하며 대꾸를 내놓지 못했다.
“안느?”
– 확인하겠습니다. 파리 시간 18시 49분, 정보총국과 정보국, 외인부대에 비상령을 지시하셨습니다.
“확인됐다면 비상령을 내려.”
– 총국장님? 외람되지만, 지시하신 비상령이 발휘되는 순간부터 총국장님의 권한을 모두 회수하게 됩니다.
“안느?”
– 예, 총국장님.
냉정한 현실을 확인하는 안느를 문바키가 나직하게 불렀다.
“대장이 짊어진 짐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다면, 그 하나로 충분합니다. 비상령과 함께 내가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권한으로 마드모아젤을 총국장에 추천합니다.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정보총국을 이끄시리라 믿습니다.”
이미 정보총국장의 직위를 던진 것처럼 안느를 대하는 문바키의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마드모아젤.”
– 감사합니다, 총국장님.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늘 냉정하던 안느의 음성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
새벽 2시여서 어지간한 사람은 깊은 잠을 즐길 시간이었다.
어둠을 짊어진 거실 창, 여러 종류의 서류와 책, 각종 자료를 가지런히 쌓아 놓은 테이블, 그 옆에 놓인 소파에 앉은 김미영은 꿋꿋한 자세로 벽에 걸린 TV에 집중했다.
구석에 둔 작은 스탠드에서 나온 불빛이 전부여서 TV 화면이 바뀔 때마다 거실 내부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곤 했다.
[이 속도라면 앞으로 3분 뒤에 CIA 건물에 도착합니다.]미국으로 간다는 말은 없었다.
저런 임무를 맡았다는 말은 더더욱 없었고.
어떤 경우에도 아픔을 가슴 안쪽에 담고서 절대 표시 내지 않는 강찬의 특징을 누구보다 김미영은 잘 알고 있었다.
억울한 거 절대 못 참고, 자기 사람이 당하는 꼴 죽어도 못 보고, 누군가 가슴에 담기면 혼자 끙끙대는 사람, 그 사람이 뉴욕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
“바보.”
엄청난 숫자의 차량 속에 외롭게 달리는 승합차가 마치 찍어 누르려는 세상의 모든 적들에게 맞선 강찬의 처지처럼 보였다. 두려움 따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안다. 그런데 어쩐지 강찬이 외로우면 어떻게 하나 싶은 순간 김미영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 직후였다.
[예상대로 승합차가 CIA 건물 앞에 멈췄습니다!]흥분한 기자의 음성이 있고 난 다음이었다.
주변을 완벽하게 통제한 탓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카메라 대신 주변의 건물 위에서 찍은 영상이 TV 화면에 올라왔다.
흔들리지 않아서 훨씬 보기 편했으나 멀리서 당겨 찍은 탓인지 화면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이 좀 더 커다랗게 보였다.
[소총으로 무장한 CIA 요원들이 완벽하게 승합차를 감싸고 있고, 아직 CIA 건물에서는 누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저 속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숫자나 무기로 봐서 몇 배는 많은 CIA 요원들이 글자 그대로 새카맣게 승합차를 둘러싼 상태였다.
[베일에 싸인 인물들이 승합차에서 내리고 있습니다!]승합차의 문이 열리면서 가장 먼저 두 명이 내렸고, 이어서 내린 두 명을 보며 김미영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강찬과 제라르!
복면을 했지만, 김미영은 두 사람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꿋꿋하게 버티려고 했지만, 그 직후에 김미영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고, 그때부터 서러운 눈물을 쏟아 냈다.
[저들이 들고 있는 소총의 종류가 MP5SD 기종으로 특수부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그 외의 인물들이 들고 있는 권총 역시 특수부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종류인 거로 봐서 정보국 소속이 아닐까 예상됩니다.]기자의 말이 나올 때, 화면이 좀 더 바싹 다가가서 내리는 사람들을 잡았다.
[총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지금 내리는 인물들의 셔츠가 피에 완전히 젖었습니다. 저런 상태에서도 이렇게 요란하게 뉴욕을 가로지른 것으로 봐서 미국 정부 혹은 CIA에 강한 항의를 전하는 게 아닌가 추측되고 있습니다.]현장을 보도하던 기자가 상황을 보도할 때였다.
승합차에서 내린 인원들이 강찬과 제라르를 중심으로 둥글게 서서는 CIA 요원을 마주 본 상태에서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
호텔로 돌아온 이용우 일행은 커피숍에 앉아 현장 상황을 지켜보았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강철규가 얼마나 독기를 피워 내는지 근처에 앉아 있기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저곳이 뉴욕이냐?”
“그렇습니다, 학장님.”
“CIA 놈들이고?”
“예.”
강철규의 질문과 강태산의 답을 들은 사람들 모두 알았다. 강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강철규가 저곳으로 갈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솔직히 강철규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강태산 역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TV를 보고 있었고, 곽철호는 얼마나 이를 꽉 깨물었는지 일그러진 볼이 펴지지 않았다.
***
사무실 책상에 앉은 천중명을 지키는 것처럼 곁에 선 곽대출은 TV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저런 양반에게 대들었으니 내가 살아 있는 게 용하네.”
양손을 번갈아 움켜쥐면서 매만지는 곽대출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천중명은 잘 안다. 저곳에 함께 있지 못한 게 아쉽고, 지금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곽대출을 살핀 천중명은 옅게 웃었다.
‘도움이 필요해.’
강찬의 한마디면 얼마를 부르든 달라는 대로 주고서 소말리아에 있는 비행기를 살 거다. 그렇게 날아가서 힘겹게 싸우는 강찬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
후욱후욱. 후욱후욱.
주변을 돌아본 강찬은 CIA 건물 앞을 막아선 정장 차림의 요원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숨소리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한 놈, 한 놈,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혹은 지금 상황이 못마땅해서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 하는 표정이 천천히 흘러가는 영상처럼 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1분이다! 1분 안에 칼튼 숀이나 그릭 허먼이 안 나오면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미국 정부와 CIA의 몫이다!”
앞을 막아선 놈들을 향해 경고를 던진 강찬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1분 뒤에 시작이다!”
강찬이 먼저 말했고, 제라르가 프랑스어로 지시를 전달했다.
소총을 안은 요원들과 양팔을 아래로 쭉 뻗어 바닥에 총구를 내린 요원들이 독기 어린 눈으로 둘러싼 CIA 놈들을 노려보았다.
미치겠지, 개새끼들아?
그러게 왜 지랄을 떨어서 사람들을 그렇게 죽여?
그것으로 모자라 전쟁을 마친 지 80년이 채 안 되는 그 조그만 땅덩어리를 다시 지옥으로 만들어서 배를 불리겠다는 개 같은 욕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거냐?
강찬은 마주 선 놈의 입가가 비틀리는 걸 분명하게 눈에 담았다.
같잖다는 의미였다.
지금 이 요란을 떨지만, 너희 정도는 언제든 갈아 버릴 수 있다는 오만한 감정이 웃는 놈의 입가에 분명하게 매달려 있었다.
저 새끼는 알고 있을까?
저 웃음 뒤에 숨겨진 탐욕을 채우고 나면 다시금 강철규와 비무장지대 팀처럼 처절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세월이 그 조그만 땅덩어리를 한동안 짓누른다는 사실을?
강찬은 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소총을 안은 제라르가 반응하듯 오른쪽을 지키며 움직였고, 왼편을 뚫는 것처럼 최종일이 함께 걸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찬을 둘러싼 요원들이 팔을 뻗어 총구를 아래로 향한 자세로 둥그렇게 움직였다.
철컥! 철컥!
더는 안 되겠다고 여겼는지, 권총을 꺼내 총구를 아래로 내린 CIA 놈들이 왼팔을 들어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랄?
누구 마음대로 가라, 서라야?
이거 우리가 시작한 거야, 이 모자란 새끼들아!
멈추라는 신호에도 강찬은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오만하게 웃었던 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시 웃어 봐.”
뭐라는 거지?
당황한 놈이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돌렸다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철컥!
강찬이 소총의 총구를 놈의 턱 아래에 붙이는 순간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CIA 놈들과 우리 요원들이 동시에 총구를 들어 앞쪽에 있는 상대를 겨눴고, 멀리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우-.” 하는 탄성이 연달아 들렸다.
이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모양이었다.
수백 자루의 소총이 겨눈 상태에서 대뜸 총구를 들이밀 거라고는 아예 계산에 없었던 눈치고.
“재미있어? 그래서 웃은 거냐?”
“아닙니다!”
목이 뒤로 밀린 놈이 “No, Sir!” 하고 지른 고함이 커다랗게 현관 앞을 울렸다.
개새끼!
죽게 생기니까 표정 공손해지는 거 봐라.
“너도 하나, 나도 하나,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밖에 지니지 못한 목숨이다! 평화롭게 가정을 꾸리던 가장! 가족을 지키던 주부! 미래를 꿈꾸던 아이들! 그리고 조국을 지키겠다며 나선 요원들이 CIA 국장의 개 같은 짓거리 때문에 희생됐다!”
철컥!
강찬은 총구를 좀 더 깊숙하게 찔렀다.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그랬다.
눈빛을 통해 감정은 전달된다.
특히, 이런 순간에는 더더욱 더!
게다가 언제고 함께 죽겠다며 독기를 피워 내는 동료들이 뒤에서 눈을 번들거리는 모습이 CIA 놈들의 기를 꺾는 느낌이었다.
***
[교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CIA 소속으로 추정되는 요원들과 경찰이 몰려든 사람들을 멀리 밀어내고 있습니다.]화면을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넋이 나가는 느낌이었다.
저렇게 새카맣게 둘러싸인 속에서 대놓고 소총의 총구를 목에 들이밀 수 있을까? 그냥 둘러싼 것도 아니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소총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극도로 긴장된 상태입니다! 누구든 방아쇠를 당기면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결과 외에 다른 결말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맞은편 건물에서 화면을 빠르게 당기는 바람에 화면에 강찬의 뒷모습이 가득 올라왔다.
***
TV로 상황을 지켜보던 그릭 허먼은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 저러다가 일이 터지면 어떻게 하려고? 얼른 가서 설득해 보시오!
“정보총국과 정보국, 외인부대까지 총비상령이 내려졌습니다. 국장을 넘겨주지 않으면 정보국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이고, 저렇게까지 나오는 건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당황해서 재촉하는 대통령을 향해 그릭 허먼이 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
“어떤 경우든 미스터 프레지던트의 재가가 없다면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더 시간을 끌다가 유혈 사태가 일어나면 그때는 돌이키지 못합니다.”
– 차라리 칼튼 숀을 한국으로 데려가라는 건 어떻소?
대통령의 질문이 떨어진 직후였다.
화면이 흔들리면서 이번에는 강찬의 옆에 있는 남자가 앞에 있는 CIA 요원의 이마에 소총의 총구를 들이밀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지금 소총을 내민 사람이 전 외인부대 사령관입니다! 저 남자가 쓰러지게 되면 우리는 이성을 잃은 외인부대원들까지 상대해야 합니다!”
– 젠장! 그의 뜻대로 하시오! 대신 방송에 잡히거나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오!
거친 허락과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그 직후에 그릭 허먼은 사무실을 튀어 나갔고, 태어나서 가장 악착같이 복도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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