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91)
772화 그냥 있는 대로 말해 (3)
안전과 격식을 위해서라도 승용차를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도 강찬은 제라르, 최종일과 함께 지프를 이용했다.
덜컹. 덜커덩.
봐, 이 새끼들아.
저격이든, 기습이든, 상관없으니까 힘겨운 노인네 노리지 말고, 직접 나타나. 그게 아니면 여기는 아예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마.
개 같은 판단으로 이곳을 습격하는 일이 생기면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악귀를 보게 될 거다. 습격에 가담한 새끼, 지시한 새끼, 동전 하나라도 도움 준 새끼들의 씨를 아예 말려 버릴 거니까 꼭 해 보고 싶은 놈이 있다면 지금 나타나.
부으으응.
병원 입구를 지나던 강찬은 경례로 인사하는 바스첸코에게 시선을 주었다.
애새끼가 그사이 눈빛이 확실히 바뀌어 있었다.
피식 웃어 준 강찬이 시선을 돌린 앞에서 평화유지군 대원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었다.
병원 내부에 있는 도로를 따라 달린 다음이었다.
평화유지군이 촘촘하게 지키는 건물 앞에서 지프가 멈췄다.
경계 중인 대원들은 경례하지 않는다.
고맙다. 고생한다.
대신 강찬은 의미가 분명한 태도로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부원장님.”
건물 안으로 들어선 강찬 일행에게 사복 차림의 이용우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강찬과 제라르, 최종일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재킷 가슴과 허리가 불룩한 걸 봐서 두 자루의 권총을 지닌 모양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한 대기실 안쪽에서 일어선 자밀라도 보았다. 따로 경호 인원을 배치하기 어려워서 이곳에 있게 한 게 분명했다.
“모시겠습니다.”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제라르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움직여서 이용우가 버튼을 누르는 대로 기다렸다.
5층이었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철컥 소리와 함께 소총의 총구가 돌아왔다. 강찬이 올라온다는 걸 아는데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원들이 경계한 모양이었다.
강찬 일행과 이용우를 확인한 대원들이 총구를 재빠르게 내리고 한 걸음 물러섰다. 번들거리는 대원들의 눈빛이 이상하리만큼 강찬에게 위로가 되었다.
“이쪽입니다.”
대략 3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 평화유지군 대원들을 지나간 강찬 일행에게 이번에는 강태산이 다가왔다. 이마와 볼, 목덜미에 자잘한 상처를 단 강태산은 상처받은 맹수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투 중에 일어난 일이다. 네가 죄송할 건 없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준 강찬이 몸을 돌리자 대원이 문을 열었다.
염병.
병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예 붕대로 감아 놓은 듯한 강철규가 눈에 들어왔고, 그 옆에서 몸을 일으키는 곽철호가 보였다. 귀를 다쳤다더니, 터번을 두른 것처럼 이마를 중심으로 대각선으로 붕대를 감은 곽철호가 비통한 표정으로 볼을 씰룩였다.
“고생했어.”
강찬의 입 모양을 보며 짐작한 모양인지, 곽철호가 힘겨운 동작으로 고개를 숙였다.
위로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곽철호에게 다가간 제라르가 오른손을 세워 그와 맞잡은 뒤에 등을 다독여 주었다.
강찬은 강철규에게 시선을 돌렸다.
코에 노즐을 연결했고, 세 개의 링거팩과 검게 보이는 혈액 팩이 팔뚝에 박힌 카테타에 걸렸는데, 왼편 머리 쪽에 세워 둔 기계가 일정한 선을 그리며 뛰고 있었다.
“오늘 밤이 고비라고 들었습니다.”
뒤따라 들어온 강태산의 설명에도 강찬은 강철규를 묵묵하게 내려다보았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 줘.”
강찬의 요구를 받은 제라르가 곽철호에게 눈짓을 던지면서 병실에 있던 일행이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진짜 많이 늙었네.
강철규를 내려다보던 강찬은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퉁퉁 부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몽골 기지 지켜 준 거, 리비아 응징, 아프리카 반둔두 확보 작전 도와준 거로 아버지는 나와 조국을 위해 할 만큼 했어. 그렇더라도 내가 외인부대로 가야만 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어머니를 죽게 한 걸 완전히 잊지는 못했어.”
강찬은 유일하게 남은 강철규의 왼손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아버지. 나 아직 아버지가 필요해. 다리를 잃어서 의족을 하고, 오른손에 의수를 달아서 더는 전투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지금은 아버지가 있어야 해.”
과거를 고스란히 알고, 어릴 적의 서운함에 관해 원망도 했었다. 심지어 전투에 나설 때면 강철규와 판박이처럼 똑같이 느끼고 행동했었다.
얼굴이 전혀 다른 강찬을 아들로 받아들일 때 강철규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내가 선물해 준 정장과 구두를 라커룸에 보관하다가 유일하게 내 결혼식에서 입고, 다시 넣어 두었다는 거 알아. 기억해? 나도 그때 같은 정장과 구두, 벨트 샀다는 거?”
말을 하던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 뒤로는 계속 넣어 뒀거든. 우리 그거 꺼내서 똑같이 입고 불고기 먹으러 가자.”
강찬은 팔을 들어서 검게 변한 강철규의 왼손을 감쌌다.
***
새벽녘 비무장지대인가 싶을 만큼 안개 짙은 숲이었다. 강철규는 그 안을 빠르게 달리며 대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허억. 헉. 허억.”
숨소리가 이렇게 크면 적들이 듣는다.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도 적들이 알아차린다. 그런데도 강철규는 훅훅, 달려드는 적을 감당하기 벅차서 연달아 거친 호흡을 뱉어 냈고, 움직임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요란하게 달렸다.
“어디를 가?”
반둔두에서 목을 가른 인디언 전사 매킨지가 허공을 날아 강철규에게 달려들었고,
“알라후 아크바르!”
핏기가 전혀 없는 이슬람 전사들이 강철규를 향해 미사일처럼 쏟아져 내렸다.
휘익! 휙! 휘이이-익!
강철규는 악착같이 대검을 휘둘렀다.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덧없이 쓰러지면 저 개 같은 놈들이 조국을 망치고, 빛나는 후배들을 해칠 거라는 생각에 강철규는 악착같이 대검을 휘둘렀다.
“우리와 같이 지옥에 가야지!”
강철규가 꼬챙이로 귀를 뚫어 주었던 스페츠나츠가 분한 눈빛으로 달려들었고, 강철규의 대검을 피해 목을 움켜쥐었다.
“끄으.”
휙! 휘이익!
놈의 손목을 자르려 대검을 휘두르는 강철규를 화이트 울프와 북한 8군단 소속 놈들이 둥실 떠오른 채 잔인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냐!
억울해서 나타난 거라면 내게 와라!
내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도 좋으니까 다 내게 오라고!
휘익! 휙! 휘이익!
미친 듯이 휘두르는 대검이 분명 놈들의 몸뚱이를 갈랐는데도, 매킨지와 스페츠나츠, 이슬람 전사, 화이트 울프, 8군단 놈들은 멀쩡했다.
반대로 스페츠나츠의 손아귀는 점점 더 강하게 강철규의 목을 조여들었다.
‘끄으-윽.’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강철규는 팔을 계속 휘둘렀다. 조국을 위해 살았다. 후회는 없다. 다만, 이대로 쓰러져 후배들에게 달려가게 두는 게 억울하고 분할 뿐이었다.
이것들과 함께 지옥에 갈 방법이 없나?
수류탄이라도 있다면 터트릴 텐데!
휘익. 휙.
힘이 전혀 담기지 않은 상태에서도 강철규가 악착같이 대검을 휘두른 직후였다.
콰악! 콱! 콰아악!
지금까지 지켜만 보던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강철규의 목을 졸랐다.
‘끄윽.’
마지막을 직감한 상태에서도 강철규는 놈들의 잔인한 눈매를 노려보았다.
지옥에서 보자.
다시 기어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 놈들의 목을 갈라 주마.
이를 갈아 대는 것과 별개로 의식이 흐릿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개새끼들아!”
거친 욕설이 터졌고, 동시에 뒤편에서 밝은 빛줄기가 연달아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휘익! 휙! 휘이익! 휘익!
대검?
눈앞에서 적들을 가르는 건 분명 비무장지대에서 강철규의 대원들이 휘두르던 대검이었다.
“동식아?”
강철규의 앞에 선 남자는 분명 양동식이었다. 그 옆에서 남일규가 고개를 돌리고 지금도 기억하는 계면쩍은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일규야?”
그들만이 아니었다.
강철규의 품에서 빛나는 후배들을 지켜 달라던 대원들과 아프리카에서 억울하게 떠나보낸 작은 양동식도 있었다.
“선배님? 이제 가십시오.”
“어디를?”
“선배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바보처럼 건넨 강철규의 질문에 남일규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벌레 같은 새끼들이 우리 선배님을 노려?”
“뭐 하냐? 얼른 치워야 선배님이 가신다.”
으르렁대는 양동식을 타박한 남일규가 자세를 앞으로 숙였다.
강철규가 가르친 동작이었다.
“지옥에서 서울을 구경시켜 줄 건데 무료니까 사양하지 마라.”
독기 어린 남일규의 음성이 떨어지는 순간, 강철규의 대원들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씨발 새끼들아! 우리가 있는 한 선배님은 절대 못 건드려!”
특히, 양동식은 아예 미쳐 버린 것처럼 날뛰고 있었다.
너희들은 내가 원망스럽지도 않냐?
강철규가 멍하니 비무장팀 대원들을 바라볼 때였다.
“선배님! 선배님이 이렇게 포기하면 후배들이 무너집니다! 가십시오! 가서 빛나는 후배들에게 그 녀석들이 얼마나 다부지게 선배님을 지켰는지 알려 주십시오!”
콰악!
매킨지의 목을 움켜쥔 남일규가 놈의 목에 대검을 깊게 찔러 넣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견디는 게 어떤 건지 너희 같은 새끼들이 알기나 해! 더 갖겠다는 게 아니라 남은 거라도 지키겠다며 발버둥 치는 게 얼마나 피눈물 나는 일인지 아냐고!”
끝내 매킨지의 머리를 잘라 낸 남일규가 높다랗게 들었다.
그 직후였다.
남일규가 든 매킨지의 머리 너머 하늘에서 강찬의 얼굴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이제 너희들 다 뒈졌다.
강찬의 얼굴이 나타난 순간, 강철규는 지금까지 달려들던 적들이 세상 가소롭게 느껴졌고, 그 직후에 전율이 일었다.
“비겁하게 도망가려는 거 아니지?”
“부원장님! 우리 선배님은 절대 비겁한 분 아닙니다!”
강찬의 질문을 받은 건 양동식이었다.
“지금은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여기 벌레 같은 것들 좀 치워 주세요.”
“감사합니다!”
고함을 지른 양동식이 미친놈처럼 날뛰고, 그 주변에서 남일규가 악착같이 목을 잘라 댔으며, 작은 양동식과 비무장 대원들 또한 강철규를 중심으로 악착같이 싸우고 있었다.
“아버지.”
강철규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나 아직 아버지가 필요해. 다리를 잃어서 의족을 하고, 오른손에 의수를 달아서 더는 전투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지금은 아버지가 있어야 해.”
어차피 이번 전투가 마지막이라고 각오할 만큼 늙었는데?
이미 몸뚱이가 망가져서 아무짝에도 도움 안 될 텐데, 왜?
“우리 똑같이 입고 불고기 먹으러 가자.”
맞은편 하늘에 커다랗게 떠오른 강찬이 요구를 전한 직후였다.
후두둑.
강철규를 노리던 놈들이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바닥에 처박혔고, 그 뒤로 양동식과 남일규가 차례로 내려앉았다.
“선배님. 우리 몫까지 드시고 천천히 오십시오. 빛나는 후배들을 못난 선배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남일규가 간곡하게 뜻을 전한 다음이었다.
“이 녀석이 와서 꽤 재미있습니다.”
양동식이 작은 양동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웃었다. 그와 동시에 강철규의 왼손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차렷! 경례!”
남일규가 구호를 외치면서 대원들이 일제히 강철규를 향해 경례를 보였다.
“가족아! 조국을 위해 살아왔던 늙은 군인이 이제 품으로 돌아간다!”
그런 뒤에 처음 듣는 구호를 외치고는 활짝 웃는 얼굴로 강철규를 보았다.
“끄으응.”
갑자기 들이닥친 통증에 신음을 토해 낸 강철규는 힘겹게 눈을 떴다.
피식.
그리고 제일 먼저 본 건 맞은편 하늘에서 보았던 강찬의 미소였다.
맞다! 미사일을 얻어맞았는데?
“꼬박 하루가 지났어. 이대로 죽었으면 절대 용서 안 했을 건데, 깨어났으니까 없던 거로 해 줄게.”
힘겨운 강철규를 강찬은 단단한 눈빛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버지. 앞으로 힘들 거야. 그래도 곁에 있어 주라. 조금은 더.”
강철규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철규의 왼손을 강찬이 천천히 다독였다.
“이제 가서 남은 놈들 모조리 해결하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걸을 수 있도록 연습해. 그러고 나서 우리 불고기 먹으러 가자.”
다시금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강철규를 본 강찬이 몸을 일으켰다.
피식.
이번의 웃음은 정말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강철규와 강찬만이 이 웃음에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강철규의 시선 앞에서 강찬이 몸을 돌렸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의 어깨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강철규는 흔적만 보이는 것처럼 옅게 웃었다.
아들이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웃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