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92)
773화 그가 죽었나? (1)
제이어 반 할트는 180가량의 신장에 군살 없는 몸을 지닌 중년의 인상이었다. ‘로맨스 그레이’라 불릴 정도로 매력적인 백발,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정장과 셔츠, 그를 마주한 사람 중 호감을 보이지 않는 이가 드물었다.
뉴욕의 월스트리트 ‘휴이 앤 맥스’ 빌딩의 29층 집무실에서 그는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련된 외모와 복장이 패션 잡지의 화보를 연상시킬 정도였으나 정작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것처럼 제이어 반 할트가 이마를 매만질 때였다.
– 위원회입니다.
책상에 있는 인터폰에서 젊은 남자의 음성이 그를 찾았다.
힐끔 시선을 먼저 던졌던 제이어 반 할트는 의자를 돌려 인터폰에 팔을 뻗었다.
“연결해.”
– 연결하겠습니다.
젊은 남자의 답이 떨어진 직후에 인터폰에서 피처럼 붉은 엘이디 등이 깜박였다.
“반 할트요.”
– 백악관은 이틀 뒤에 예멘으로 출발할 예정이랍니다.
인터폰을 통해 일정을 알려 준 건 백악관에서 게릭 웨인과 통화했던 나이 든 음성이었다.
“내용을 듣고도 고집을 피운 모양이군요?”
– CIA 본부 기능이 망가지고, 해외 요원이 대거 희생된 탓에 제대로 된 정보와 분석을 얻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다음으로 예멘에서 치료제를 구해 오겠다고 큰소리를 쳐 놓아서 발표를 뒤집기 곤란한 눈치였습니다.
“흐음.”
깍지를 낀 손을 책상에 올린 제이어 반 할트가 기가 막힌 느낌의 웃음을 그렸다.
– 국가정보원 원장과 간부 두 명이 무슈 강에게 납치돼 예멘에 감금된 상황이라는 설명을 듣고 망설이기는 했으나, 국빈 방문 초대라는 미끼에 사로잡힌 거 같았습니다.
“국빈 방문? 한국의 대통령을 초대했다는 걸 말하는 겁니까?”
– 그렇습니다. 만약 무슈 강이 예멘에서 자신을 노리는 거라면 굳이 국빈 방문을 요구했겠냐고 반문하는데 더는 설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하나, 예멘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이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할 텐데, 그냥 있겠냐는 막연한 계산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미련한 인간.”
인터폰을 향해 제이어 반 할트는 거친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다.
“치료제를 구할 창구인 하릴 하지즈를 단숨에 제거해서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다니, 적으로 맞섰지만, 무슈 강이 대단하기는 하군요.”
차마 맞장구를 치기 어려운 것처럼 상대방은 대꾸가 없었다.
“게릭 웨인이 예멘에서 제거되면 그 덕분에 우리와 연결됐던 고리가 전부 사라질 테니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요.”
–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습니다. 그보다는 만약 멕시코에서 빼앗긴 기계로 인해 신분이 드러나면 위원회를 포함한 모든 조직을 해산하기로 하지요.”
– 그렇게 하겠습니다.
노인의 음성이 답을 내놓고 난 뒤에 인터폰에 들어왔던 붉은색 엘이디 등이 느긋하게 사그라들었다.
“그것참.”
체스에서 한 판을 진 사람처럼 맥 빠진 웃음을 지은 제이어 반 할트가 다시금 의자를 돌려 창을 향해 앉았다.
“해외에 있는 요원의 제거가 이런 효과를 내다니. 출신이 더러운 것들은 확실히 악착스러운 구석이 있어. 이번 게임은 그 악착스러움에 졌다고 해야 하나?”
창에 비친 제이어의 얼굴에 재미있다는 표정이 올라와 있었다.
***
이슬비처럼 물을 뿌리는 통로를 거친 강성태는 김포 공항의 입국 게이트로 향했다. 천중명이 제공해 준 전용기로 도착한 참이었다.
정확한 도착 일정을 알리지 않았다.
중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서였고, 다음으로 공연히 번거롭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강성태를 시작으로 키란과 구르카 용병들이 김포 공항 국제선 입국장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강성태를 발견한 이병렬이 고개를 숙였고,
“오셨습니까, 형님?”
그 옆에 있던 아르윈이 상체를 좀 더 숙였다.
키란과 구르카 용병들도 이병렬과 아르윈을 알아보았다. 그 바람에 구르카 용병들이 줄줄이 고개 숙이며 인사했는데, 얼핏 보면 막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용한 사장을 만나는 자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야? 저 조합은?
거칠게 보이는 이병렬, 필리핀 혼혈 아르윈, 구르카 용병들, 거기에 시선을 당기는 인상의 강성태를 공항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한 눈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나왔어?”
“태완이 형님이 얼마나 조바심내시는지, 소말리아에서 우리나라로 향하는 승객 명단과 전용기를 일일이 확인하셨거든. 그러다가 명단 확인은 못 했는데, 아무래도 보스 일행인 거 같다고 하시길래 신월동에서 죽치느니 가 보자 했는데 정말 보스가 들어온 거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한 이병렬이 확인처럼 바깥을 돌아본 뒤에 시선을 가져왔다.
“다른 일 없으면 움직이지?”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가 걸음을 옮기면서 일행이 함께 바깥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형님?”
건물 밖 도로의 승용차 앞에 서 있던 조봉진이 상체를 깊게 숙였고, 그 뒤에 서 있는 승용차와 승합차의 앞에서 필리핀 조직원들이 순서에 따라 차례로 인사했다.
살아 있는 동안, 깡패들의 이런 인사법을 없앨 수 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는 틈이었다.
“키란. 너는 아르윈하고 움직여. 피곤할 테니까 오늘은 쉬고 내일 밥 먹자.”
“예, 형님.”
이병렬의 지시를 받은 키란이 먼저 답을 내놓았고,
“동생들 데려다주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형님.”
옆에 있던 아르윈이 강성태의 생각을 저 멀리 던지는 것처럼 상체를 숙였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강성태가 먼저 출발하는 게 좋았다. 그러나 아르윈과 키란에게 눈짓을 던진 강성태는 승합차에 오르는 구르카 용병들의 어깨를 일일이 다독여 주었다.
“고생했다.”
가장 뒤에 서 있던 구르카 용병이 순박한 미소와 함께 승합차에 오르면서 소말리아의 마리그 기지 임무가 완전하게 끝난 느낌이었다.
승합차가 출발한 다음이었다.
조봉진이 열어 주는 뒷자리에 강성태가 앉는 사이 이병렬이 빙 돌아서 옆자리에 올랐다. 그런 뒤에 운전석으로 향한 조봉진이 안쪽을 향해 깊게 고개 숙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인사는 졌다, 그냥.
“어떻게? 가서 좀 쉴 거야?”
“공항에 가 보라고 하셨다면서? 태완이 형님부터 뵙고 움직여야지.”
예상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이병렬이 앞을 향해 “태완이 형님께 가자.” 하는 지시를 건넸다.
“애들 상했다며?”
무겁게 건너온 질문에 강성태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선배라는 분은?”
대충 아는 상황이었고, 굳이 감출 것도 없어서 강성태는 소말리아에서 있었던 일들을 있는 대로 알려 주었다.
“뭐, 씨발. 그런 새끼들은 도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거야?”
“일단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게 최고의 대책이지. 다행히 치료제를 얻은 모양이니까 그 전까지 조심하는 게 최선인 거 같다.”
“하여간, 씨발 새끼들이 희한한 거 참 잘 만들어. 에이, 개새끼들.”
공항을 빠져나온 승용차가 방화동을 지날 때였다.
“지방이 많이 심각해?”
“그런 건 아니고. 모지리 새끼들이 보스가 없는 틈에 모사칠까 하고 간 보는 모양인데, 한 바퀴 돌면 정리될 거야.”
강성태가 건넨 질문에 이병렬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을 내놓았다.
“지방 문제보다 여수 삼치 형님 두들기면서 양은 확실히 줄었는데, 그래도 꾸준하게 들어오는 약이 문제야. 알지? 틀어막을수록 가격이 높아져서 덤비는 놈들이 많아지는 거?”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말대로 버는 돈이 커지면 처벌을 각오하고라도 유통에 손대는 인간들이 많아진다. 막말로 한탕만 성공하면 최소 십억 단위고, 크게는 백억 단위로 돈이 들어오는데 누군들 시선이 가지 않겠나.
처벌이 혹독하리만치 강하면 그나마 좀 나은데, 집행유예니 뭐니 하며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건 아예 유통에 나서라는 권유와 같았다.
“칵테일이라고 부르는 건 만 원이면 살 수 있어서 애들까지 손을 대더라고. 이게 대량으로 들어오는 거면 찾아서 때려잡겠는데, 보따리로 들어오거나 소포로 오니까….”
지친다는 것처럼 이병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싼값에 유통되는 마약의 가장 무서운 점은 부담 없이 살 수 있고, 그만큼 쉽게 구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식이면 조만간 지하철역 입구에서 삐딱하게 서 있는 고등학생에게 만 원짜리 하나 건네면 약을 사는 세상이 온다.
빠르게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강성태는 멀리 보이는 신월동과 목동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분명 소규모로 나눠서 약을 돌리는 조직이 있을 거다. 그것도 조직이 아니라 용돈 벌이로 생각하는 아이들을 꼬드기는 조직이 말이다.
‘신강남파가 있는 한 마약은 안 돼.’
다시금 피를 볼 거라는 생각에 강성태는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
병실을 나선 강찬에게 제라르와 강태산이 다가왔다.
“깨어나셨으니까 우선 안심해도 되겠다.”
강찬의 말과 동시에 제라르와 강태산이 병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혈한 게 있으니까 더 큰 불행은 없겠습니다.’
강찬을 향한 제라르의 시선에 안도의 감정이 담긴 반면,
‘정말 괜찮을까?’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강태산은 아직 걱정을 담은 표정이었다.
“강태산.”
“예, 부원장님.”
강찬은 나직한 음성으로 강태산의 시선을 불렀다.
“제거해야 하는 적의 수장이 한 명 더 있다. 요원을 동원할지, 아니면 대원을 보낼지 상황에 따라 정할 텐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너를 포함해 열 명을 선발해 놔.”
“임무에 관해서 알려 줘도 됩니까?”
“너만 알고 있고, 내가 지시하면 그 순간 아홉 명을 바로 정할 수 있게 준비만 해 둬.”
“알겠습니다.”
다부지게 답하는 강태산을 보며 강찬은 짧게 웃고 몸을 돌렸다.
“곽철호는?”
“두통이 심하다고 해서 옆 병실에 있습니다. 잠을 못 잔 모양인데 대장이 왔으니까 안심하고 주사 맞으라고 했더니 맞자마자 바로 잠들었습니다.”
질문을 받았던 제라르가 강철규의 옆 병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내려가자.”
강찬과 제라르가 움직이자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이용우가 버튼을 눌렀다.
셋이서 아래로 내려가는 참이었다.
로비를 가리키는 ‘L’자 버튼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찬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열린 엘리베이터 문을 나선 강찬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나요.
대꾸 참 투박하기도 하지.
저 짧은 한마디에 석강호는 걱정되는 감정을 한껏 담았고, 강찬은 또 그걸 바로 알아차렸다.
“학장님 깨어나셨다. 수혈한 게 있으니까 더는 문제 없을 거다.”
– 아후, 다행이오.
“됐으니까 너는 이제 서울로 이동해.”
– 얼래? 미국 대통령이 이리 온다면서요?
“그러니까 그 전에 빠져나와야지.”
– 그럼 하동선이랑 두 새끼는 누가 관리하는 거요?
“생각해 둔 게 있어.”
강찬이 대꾸한 뒤였다.
– 대장에게 여유가 보이는 거 같아서 그나마 마음이 놓이우.
걱정을 덜어 놓는 석강호의 답이 건너왔다.
“서울에서 보자.”
– 조심해서 오쇼.
통화를 마친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바스첸코는 또다시 울리는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바스첸코입니다.”
– 지네 밥이 되고 싶은 거냐?
“예? 아닙니다, 의장님.”
느닷없이 달려든 바실리의 독한 질문에 바스첸코는 당황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 그런 놈이 감히 내 전화를 먼저 끊어? 무슈 강이나 검은 땅의 지배자가 전화를 끊으라고 시킨 건 아닐 테고, 내가 다시 걸 때까지 연락이 없는 건 더 이상 러시아에 몸담고 싶지 않다는 뜻이냐?
“죄송합니다, 의장님. 비무장 왕의 생사가 위중한 상태여서 결과를 확인하고 연락드리려다가 늦었습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바스첸코가 병원 안에 있는 건물을 돌아보며 답을 내놓았다.
– 그래서? 그가 죽었나?
어딘가 기대하는 심정이 절반, 그럴 리가 없다는 의심이 절반씩 섞인 바실리의 질문이 건너온 순간이었다.
부으으응.
안쪽에서 엔진음이 들리며 지프 두 대가 달려왔다.
앞쪽 지프에는 강찬과 제라르가 타고 있었고, 뒤쪽 지프에는 이용우와 자밀라가 앉아 있었다.
“무슈 강입니다, 의장님!”
– 이 멍청한 놈! 또 먼저 끊으면 산 채로 지네 밥으로 던져 주마! 며칠이 걸리든 말려 죽일 거라고!
얼른 내린 바스첸코의 왼손에서 바실리의 고함이 아련하게 들렸다.
경계를 책임진 대원이 통화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된다. 더구나 바스첸코는 대원이 아니라 스페츠나츠 지휘관이었다.
부으으응. 끼익.
짧은 순간에 거침없이 달린 지프가 바스첸코의 앞으로 달려왔고, 스마트폰을 감싼 왼손을 아래로 내린 그의 앞에서 멈췄다.
뭔가 할 말이 있을까?
지프에 앉은 강찬이 바스첸코의 왼손을 보았다가 다시금 시선을 들었다. 바실리의 위협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강찬의 눈빛은 공포, 그 자체였다.
비무장 왕의 경계를 맡은 놈이 한가하게 통화를 해?
왼손에서 올라오는 강찬의 시선이 마치 그렇게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진 순간,
‘신이여!’
바스첸코는 엄지를 이용해 종료 버튼을 눌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