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93)
774화 그가 죽었나? (2)
강찬은 완벽하게 무장하고 서 있는 바스첸코를 천천히 살폈다. 이제는 제법 독기가 담겨서 어지간한 곳에 던져 둬도 아슬아슬하게 제 몫을 해낼 정도로 보였다. 대신, 날 때부터 순박한 모습을 지닌 것처럼 보였는데, 도대체 이런 놈이 어떻게 스페츠나츠의 지독한 훈련을 통과했는지 궁금한 점은 여전히 남았다.
“고생해 준 덕분에 무사히 깨어나셨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스첸코가 반듯하게 자세를 잡는 순간, 강찬은 놈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그제야 보았다.
“정신 팔지 않는 게 좋아.”
“주의하겠습니다.”
이 정도 경고면 알아먹었겠다.
“어쩌면 좀 더 지독한 임무가 생길지 모르니까 단단히 마음먹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바실리와 통화하겠다.”
“어떤 임무든 보내 주시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말은? 진짜.
피식 웃어 준 강찬이 고갯짓을 던지자 지프가 움직였다.
“애가 어딘가 좀 모자란 거 같지 않습니까?”
스마트폰을 꺼내던 강찬은 고개를 뒤편으로 돌렸다. 스마트폰을 들던 바스첸코가 얼른 자세를 바로잡고 있었다.
“다예 처음 봤을 때 같기도 하고요.”
함께 고개를 돌린 제라르의 의견을 들으며 강찬은 찾아낸 번호를 눌렀다.
– 바실리다.
뭐 때문에 이렇게 또 독이 올랐지?
지프의 엔진음 속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바실리는 씹는 듯한 대꾸를 내놓고 있었다.
– 비무장 왕은 어떻게 됐지?
그러면서도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질문을 슬며시 내놓았다.
“조금 전에 깨어났다.”
– 흥!
뭐냐, 이 반응은?
의아한 감정을 누른 강찬은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이틀 뒤에 미국 대통령이 예멘으로 움직여.”
– 그야 잘난 우리 주연께서 만든 대본에 따른 게 아닌가? 미국에서 치료받는 한국과 프랑스의 요원들을 빼내기 위해 이틀이라는 여유를 잡은 걸 테고.
확실히 바실리는 앉아서 천 리를 보는 수준이었다. 이런 괴물이 적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계획했던 건지, 아니면 주연의 성격대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냥 얻어진 건지는 몰라도 해외에 파견했던 CIA 요원들이 대거 제거됐지. 그 바람에 미국의 정보망이 엉망이 된 거고. 그런 기회를 놓칠 주연이 아니니까 내게 뭔가 원하는 게 있겠지?
“말이 많아졌어.”
– 내게 할 요구가 없다는 것으로 알지. 또 하나, 미국의 대통령을 제거하라는 요구라면 깔끔하게 거절이다.
단호한 바실리의 의지를 들은 강찬은 피식 웃었다.
“와셀그룹이 목숨을 노린 일에 관해 응징하지 않겠다니, 확실히 바실리가 늙기는 했나 보군.”
– 마누엘 야닉? 그놈이 아직 살아 있나?
역시.
미국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던 바실리가 정보총국의 움직임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자백 같은 질문이었다.
부으응. 콰등. 콰드등
깨진 도로를 지나던 지프가 거칠게 튀는 바람에 강찬은 바로 대꾸를 내놓지 못했다.
– 놈이 아직 살아 있냐고 물었다.
“마누엘 야닉만이 아니라 와셀그룹에 속한 용병 놈들도 제법 많이 남았다.”
– 끄응.
그래.
이래야 바실리지.
한 대 맞으면 반드시 한 대를 돌려주는 남자.
– 내가 뭘 하면 되는지 말해.
“잠수함.”
– 미국에서 받기로 했잖나!
“달라는 게 아니라 타고 이동할 잠수함이 필요해. 예멘까지.”
– 흥! 다른 정보국의 눈을 피하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라.
과속 감시 카메라의 위치를 모조리 외우고 있는 기사처럼 자부심 넘치는 바실리의 대꾸였다.
“내일까지 준비해.”
– 장소와 시간을 정해.
비슷한 느낌의 대화가 오간 다음이었다. 할 말을 서로 다 했으니 당연하게 전화가 뚝 끊길 거라 생각했다.
– 이만 전화를 끊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뱉어 낸 바실리가 전화를 끊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다예가 영리해지더니, 이제는 바실리가 전화 예절을 지키고 있었다. 스마트폰 액정을 내려다보는 강찬을 제라르가 궁금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
뭐 이렇게 숨 막힐 만큼 급한 사건이 많은지, 새로운 정보총국장 안느는 문바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고, 그가 홀로 짊어지고 있던 무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해낼 거야.’
안느에게 이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강찬과 문바키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각오, 부친인 라노크의 이름에 오점이 되는 딸이 되지 않으리라는 독기가 그녀의 얼굴에 파랗게 피어오를 때였다.
삐익. 삑. 삐익.
– 문바키 전 총국장을 찾았습니다.
내내 기다리던 소식에 안느는 재빨리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보고해.”
– 이탈리아의 밀라노 바짜나 근처 커피숍입니다.
“상황은?”
– 발견 후부터 지금까지 커피 외에 주문하거나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보고를 들은 안느는 인터폰의 상대가 들을 수 없도록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해외에 있는 CIA 요원들을 대놓고 사살한 직후였다. 아무리 냉정한 요원 세상이라고 해도 은퇴한 문바키를 발견하면 조용하게 처리하겠다고 벼르는 CIA 관련자들이 하나둘이 아닌 거다.
“정보총국 1급 경호를 발령한다. 대상은 문바키 전 정보총국장이다.”
– 지원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장비와 인원이 있다면 원하는 대로 요청해.”
– 감사합니다.
인터폰의 종료 버튼을 누른 안느는 털썩 소리가 나도록 의자에 몸을 기댔다.
혼자 여행을 즐기는 척하지만, 문바키는 절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인물이 아니었다. 막말로 한국에 가서 강찬 곁에 있다면 또 혹시 그런가 하겠다. 그러나 정보총국마저 흔적을 놓칠 만큼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래 놓고는 불쑥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발견됐다면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다고 봐야 했다.
비밀리에 움직인 건 정보총국에 누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고, 그가 그 정도로 나섰다면 백 퍼센트 강찬에게 도움 되는 일 때문이겠다.
뭘까?
이럴 때 안느는 도움과 조언을 청할 인물이 있다.
다시금 책상을 향해 상체를 가져간 안느는 스마트폰을 들고 버튼을 눌렀다.
– 정보총국 수장의 자리가 쉽지 않은 모양이구나.
“문바키 전 총국장을 찾았습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바짜나 근처 커피숍이고, 발견 후에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 흐음.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는 것처럼 반응한 라노크가 시가를 무는 모양이었다. 라이터 켜는 소리와 함께 시가를 빨아들이는 그만의 독특한 숨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왔다.
– 후.
짐작 가는 게 없다면 부친인 라노크는 절대 시간을 끌지 않는다. 시가에 불을 붙인 뒤에 연기를 길게 내뱉는 걸 보면 안느에게 뭔가를 알려 줄 건지, 그렇다면 어느 선까지인지를 계산하는 게 분명했다.
– 시토 수도원이 밀라노 근처에 있지.
스마트폰을 어깨에 걸친 안느는 재빠르게 앞에 놓인 노트북에 시토 수도원을 입력했다.
– 그가 그곳으로 갔다면 아마 수도원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일 거다.
“정보총국에서 알지 못하는 별도의 조직이 있나요?”
– 그보다는 이번 감염 사태에 개입된 위원회라는 놈들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안느의 질문에 라노크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에도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부친을 생각하면 이 또한 철저하게 계산된 움직임일 게 분명했다.
– 바티칸 시티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정보조직에 관해서는 알겠지?
“성 테베스로 알고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안느는 고개를 끄덕이는 부친의 모습이 바로 앞에서 본 것만큼이나 선명하게 떠올랐다.
– 우리와 비교하기에는 형편없는 수준이지. 대신 그들은 세계적인 가문, 혹은 거부들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바티칸의 투자처를 결정하는 데 도움 되는 인물과 조직에 관한 정보에 정통하지.
그런 정보라면 정보총국도 충분히 지니고 있는데?
– 또 하나,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자산가에 관한 정보가 그 어떤 조직보다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문바키가 그곳에 갔다면 아마도 무슈 강에게 대적하는 숨겨진 인물을 찾으려는 걸 거다. 물론, 생명이 위태롭겠지.
“정보총국 1급 경호를 발령했습니다.”
– 안느 정보총국장.
“예.”
직전에 내렸던 지시에 관해 보고한 안느를 라노크가 묵직한 음성으로 불렀다.
– 무슈 강을 위해서 목숨을 던질 수 있겠나?
그런 뒤에 날아든 질문에 안느는 답을 하지 못했다.
– 그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문바키를 비롯해 제라르 전 사령관, 한국의 무서우리만치 지독한 인물들이 왜 무슈 강의 지시와 뜻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고 배우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 문바키 전 총국장이 적의 허를 찌르다니. 앞으로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군.
라노크의 감상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겼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안느는 노트북에 입력해 둔 시토 수도원의 이름에 시선을 주었다.
– 무슈 강을 위해서 목숨을 던질 수 있겠나?
그러면서 부친인 라노크가 던졌던 질문을 혼자 곱씹었다.
***
진필성은 시장의 중간에 있는 가게로 들어섰다.
“나 왔어.”
“집으로 가라니까 왜 이리…?”
과일을 쭉 늘어놓은 가게 안쪽에서 일어섰던 부친 진광식이 고개를 기울여서 아들 진필성의 얼굴을 살폈다. 눈가와 턱, 볼이 울긋불긋한 게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낸 눈치였다.
절뚝절뚝.
진광식은 왼 다리를 끄는 불편한 걸음으로 아들에게 다가왔다.
“또 시비 걸디?”
“그런 거 아냐.”
비참함을 이기기 위한 것처럼 입술에 힘을 꾹 준 진광식이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아빠. 나 배고파. 우리 짜장면 시켜 먹자.”
고개를 반쯤 떨군 부친 진광식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진필성이 상체를 옆으로 기울였다.
날카로운 눈매와 날렵한 몸매, 진광식의 코가 묘하게 뒤틀린 것만 제외하면 마치 판박이로 찍어 낸 것처럼 두 사람은 닮았다.
“안 사 줄 거야?”
“시켜.”
“아빠도 짜장이지?”
고맙다, 아들 진필성이.
아버지 때문에 일주일이면 한두 번씩 시비가 걸리는 데도 삐뚤어지지 않아서 고맙고, 단 한 번 원망하는 기색 없이 이렇게 시장판에 나와 함께 시간 보내 주는 것도 눈물 나게 고맙다.
진필성이 짜장면 두 그릇을 주문한 직후였다.
“아저씨. 참외 이거 어떻게 해요?”
까만 비닐봉지를 두 개 손에 든 아주머니가 소쿠리에 담아 둔 참외를 가리켰다.
“만이천 원이요.”
“비싸네.”
비싸다는데 뭐라 하겠나.
진광식은 불편한 다리를 하고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기다렸다.
“다음에 올게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여자 손님이 걸음을 옮기면서 진광식도 안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직후였다.
“아저씨! 이거 참외 어떻게 해?”
껄렁대는 음성이 불러서 진광식은 고개를 먼저 뒤로 돌렸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바로 원투 꽂아 버리고 싶은 욕망을 누르기 위해 진광식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침 아들인 진필성이 바로 앞까지 나오고 있었다.
“씨발! 참외 얼마냐고?”
뒤편에서 빈정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진광식은 아들 진필성을 안다시피 붙들었다.
“들어가자. 아버지랑 짜장면 먹어야지.”
“후-.”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인지 숨을 길게 내쉰 아들이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뒤편에 있는 놈들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필성아.”
아들을 나직하게 부르는 진광식은 안다. 아들 진필성이 나서면 저런 놈들 서넛은 우습게 때려눕힐 거라는 사실을. 그런데 바로 그런 실력이 지금 같은 문제를 일으켰다.
“졸라 무섭네, 씨발! 아까 뵀던 원창 형님이 오늘은 그냥 교육만 하셨는데, 내일 청주에서 형님들 오시면 그때는 정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거라고 전하라신다. 알았냐?”
콰앙.
과일을 받쳐 놓은 나무 진열대를 걷어찬 놈들이 그제야 몸을 돌렸다.
“뭐라는 거냐?”
“그동안은 아버지 말대로 맞아 주는 거로 끝냈는데, 내일은 진짜 깡패가 오나 봐.”
궁금해서 묻는 진광식의 질문에 아들 진필성은 별거 아니란 투로 답을 내놓았다.
“걱정하지 마, 아빠. 내가 알아서 할게.”
“깡패가 온다잖아.”
“경찰에 신고할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안으로 들어가는 진필성을 보며 진광식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런 뒤에 주소록을 뒤져 ‘이병렬’의 이름을 찾았다.
기억이나 할까?
모처럼 전화해서 괜히 곤란하게 하는 거 아닐까?
“뭐 해, 아빠?”
“전화 좀 하려고.”
답을 하는 진광식의 눈에 이쪽을 바라보는 고1 아들의 부어오른 눈가가 들어왔고, 그 직후에 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진광식은 밖을 향해 몸을 돌려서 긴장되는 표정을 감췄다. 평일이고, 아직 저녁 시간 전이라 시장은 한가했다.
신호음이 세 번쯤 울린 다음이었다.
– 여보세요?
연륜과 위치가 느껴지는 굵직한 음성이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왔다.
– 여보세요?
“저기, 나 진광식이라고 하는데.”
진광식이 이름을 밝힌 뒤였다. 잠시 멈칫하는 침묵이 흘렀고.
–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이병렬입니다, 형님.
더할 수 없이 공손한 인사가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