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94)
775화 그가 죽었나? (3)
반포대교 앞을 달릴 때였다.
“그냥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깟 통화가 뭐 문제 된다고, 강성태에게 손짓까지 해 가며 양해를 구한 이병렬은 대략 5분쯤 통화를 이어 갔다.
“청주 북부시장이라고 하셨으니까 제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번호면 됩니까? 그런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공손하게 통화를 마친 이병렬이 무거운 눈빛으로 볼을 씰룩였다.
강성태가 보기에 개인적인 통화였다.
말하고 싶으면 알아서 내놓을 테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무는 걸 또 꾸역꾸역 물어볼 마음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축구부 활동한 적이 있거든.”
도로가 막히지는 않았지만, 조태완의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이야기할 여유는 충분해서, 축구부에서 권투부로 옮기게 된 사연, 운동장 한가운데서 이병렬을 챙겨 주던 진광식과의 인연, 강성태는 덤덤한 표정으로 이병렬이 털어놓는 내용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통화 내용까지 들었다.
“그 정도면 프로로 전향해서 성공하셨겠는데?”
“그 형님이나 나나, 나서는 성격이 문제였던 거지. 광식이 형님은 국가대표 선발전 판정 부정을 감독이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덩달아 선수 자격 정지됐다가, 그 뒤에 사채 돌리는 애들 두들기는 바람에 영구 제명됐고.”
입을 뒤틀었던 이병렬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뭐 광식이 형님 나가시고 축구부 전체와 맞다이 치는 바람에 깔끔하게 아웃 됐지.”
“사고가 나도 축구부는 대학 진학을 위해 적당하게 마무리한다면서?”
“그것도 어느 정도지. 1학년 후배를 붙잡고 염병 떠는 걸 보니까 눈이 뒤집혔는데 정신 차려 보니까 운동장에 여럿 널브러져 있더라고. 그중에 주장 놈도 있었는데…. 하여간 그렇게 됐어.”
기가 막힌 표정으로 강성태가 픽 웃은 다음이었다.
“광식이 형님 없으니까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더라고. 거기에 나랑 문제 일으켰던 놈들이 같은 3학년이라 벼른 것도 있었을 테고. 아무튼, 그 일로 내 인생도 이렇게 꼬인 거지.”
사람 사는 게 비슷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참을 수밖에 없는 일에서 물러서지 않은 탓인지는 몰라도, 강성태 역시 최치곤과 밴드부 지하 연습실에 뛰어들어 가면서 여기까지 온 셈이었다.
“청주 북부시장이라고 했었지?”
“보스는 모른 척해 주라.”
“내가 전에 민재 사귀는 사람 동생 때문에 부탁할 때 나한테 뭐라고 했어?”
“알아서 하겠다고 했었나?”
어떡해서든 이번 일에서 강성태를 빼내려는 모양인데, 그런 만큼 이병렬의 표정과 음성이 더럽게 어색했다.
“그것도 있고, 인상 사나운 식구들 쭉 달려가면 괜히 시장에 이상한 소문 도는 것도 생각해야지.”
“소문은 씨발. 그럼 나처럼 생긴 사람은 시장에도 못 가?”
“그러니까 괜히 식구들 데려갈 거 없이 우리 둘이 가면 되지 않겠어?”
둘이서 가자고?
이병렬의 표정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어차피 지방 돌아야 한다면서? 청주부터 시작해.”
강성태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더는 못 말린다는 투로 이병렬이 입맛을 다셨다.
“원창인가 하는 놈은 알아?”
“그 정도 독특한 이름이면 성을 안 붙여도 떠올라야 하는데 처음 들어. 잠시만.”
한남대교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승용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든 이병렬이 번호를 눌렀다.
“나다. 그래. 너 혹시 청주에 원창이라고 아는 놈 있냐? 깡패라는 거 같은데 혹시 아는 놈인지 확인하려고.”
짧은 통화를 마친 이병렬이 스마트폰을 내렸다.
“진용이도 모른다는 거 보면 동네에서 몇 놈 모여 주접떠는 것들인가 본데?”
“내일이라고 했으니까 괜히 늦지 않도록 태완이 형님 뵙고 바로 출발하자.”
더는 다른 말을 못 하게 출발을 정한 강성태는 아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태완이 형님께는 지방 돈다고 말씀드리고, 진용이랑 봉진이까지 해서 넷이 가자.”
뭔가 계산이 있는데?
이병렬을 돌아보았던 강성태는 알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
이용우가 묵고 있는 호텔 앞에 지프가 멈췄다. 그와 동시에 호텔 정문에서 최종일과 정보총국 요원들이 나왔다.
최종일과 정보총국 요원들이 이 호텔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용우는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이래서 호텔에 함께 가자고 하셨구나.’
평화유지군이 모두 병원을 지키고 있어서 호텔에 달랑 이용우와 자밀라만 두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자밀라의 안전을 위해 병원에서 함께 있었던 이용우는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눈치였다.
하나 더, 아직 이용우는 같은 층의 객실을 빌려두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강찬은 일행들과 함께 이용우가 사용하는 객실 층으로 올라갔다.
복도로 나선 강찬은 이용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용우. 잠깐 볼일이 있으니까 방에서 쉬고 있어.”
“알겠습니다.”
궁금한 게 많을 텐데, 이용우는 얌전히 고개 숙이고 자밀라와 함께 몸을 돌렸다. 객실에 투숙하는 일조차 안전을 먼저 계산해야 하는 것처럼, 요원이라는 짐을 짊어지고부터는 평범하게 사는 일상이라는 건 정말 다른 세상에나 존재하는 삶이 된다.
‘어울리는 것도 같고.’
아직은 잘 견디는 자밀라를 지켜보던 강찬은 제라르, 최종일과 함께 복도 끝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 뒤에 최종일이 열어 주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넓지 않은 객실이었다.
정보총국 요원들이 한쪽으로 비켜섰고, 그 직후에 가장 안쪽에서 창을 배경으로 의자에 묶여 있던 마누엘 야닉이 드러났다.
강찬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서 놈에게 다가갔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걸 거다.
최종일이 눈치껏 나무로 된 의자를 가져다가 적당한 자리에 놓아주었다.
찰칵.
“후-.”
담배 연기를 뿜으며 강찬은 의자에 앉았다.
제라르가 얼마나 시원하게 두들겼는지 대충 닦아 주었던 마누엘 야닉의 얼굴에서 다시금 피가 올라와 있었다.
이제부터 협상을 하겠지?
기대감을 품은 마누엘 야닉의 눈빛을 향해 강찬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 움직일 거니까 앞으로 사흘이면 다 끝날 거다. 그때까지만 참아.”
뭘 어떻게 하려고?
마누엘 야닉이 도전적인 시선으로 강찬과 그 뒤에 선 제라르를 번갈아 본 다음이었다.
“너를 잡으면 넘겨주기로 약속한 양반이 애타게 기다리니까 가서 말을 잘 해 봐.”
담배 연기를 다시 뿜어낸 강찬은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어디로 보내는 거요?”
강찬은 고개만 돌렸다.
“바실리.”
“그 사람은 미치광이야! 절대 정상이 아니라고!”
염병. 아는 놈이 바실리의 목숨을 노렸어?
“얌전히 있으면 멀쩡하게 가는 거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면 양쪽 무릎과 오른팔 관절이 박살 난 꼴로 가게 된다.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자꾸 긁지 마라.”
강철규를 보고 온 직후라서 독이 잔뜩 오른 강찬의 눈매를 마누엘 야닉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책상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를 꺾은 다음이었다.
“무슈 강?”
몸을 돌리는 강찬을 마누엘 야닉이 불렀다.
감염을 퍼트리는 데 앞장선 새끼, 신동철을 비롯해 평화유지군 대원을 살해하고, 그 숫자 이상으로 다치게 한 새끼, 바실리와의 약속만 아니면 벌써 목을 돌려 버렸을 새끼, 강찬은 당장에라도 목을 돌려 주고 싶은 욕망을 누르며 놈에게 시선을 주었다.
“2천만 불을 드리겠소. 바실리에게만은 보내지 말아 주시오.”
개새끼가.
강찬은 귀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종일. 이 새끼 왼쪽 무릎 깨 버려.”
“예.”
우리말을 모르는 마누엘 야닉이 시선을 돌렸다가 최종일이 꺼낸 권총을 보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철컥. 푸슝! 퍼억!
“끄아아-.”
묶여 있는 놈의 구부러진 무릎 부근 바지가 터지면서 시뻘건 핏물과 벌어진 살, 그 안쪽에 핏물을 머금은 뼈가 드러났다.
“목을 돌려 주고 싶은데 바실리와의 약속 때문에 참는다. 어차피 지네에게 산 채로 들어가려면 상처가 필요할 테니까 거기에서 당할 거 먼저 치렀다고 생각해.”
“원하는 건 뭐든 드리겠소. 지금까지 지시받은 내용과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까지 모두 털어놓을 테니까 바실리에게만은 보내지 말아 주시오!”
“최종일. 오른쪽 무릎.”
철컥!
“안 돼!”
푸슝! 퍼억!
“끄으으-.”
고통을 이기지 못한 마누엘 야닉이 고개를 있는 대로 처박고 몸을 비틀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빛으로 강찬을 올려다보았다.
“바실리의 성격을 아시잖소? 지네에게 던져 줬다가 죽기 직전에 꺼내 치료하면 이미 중독된 독 때문에 상처가 치료된 상태에서도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어?
확실히 사람은 평생 배운다.
“그렇게 한 번씩 넣을 때마다 고통이 심해지는데 마지막에는 환각 탓에 스스로 목숨도 못 끊게 됩니다.”
“그거야 네가 알아서 헤쳐 나올 일이고.”
“마지막으로 시베리아 교도소에 넣소! 소금에 절인 빵만 줘서 먹고 나면 갈증이 일어나고,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유리에 얼어붙은 성애를 갉아먹다가 혀나 입술이 붙으면 살점이 뜯어져야 뗄 수 있단 말이오.”
“나한테 물을 가져다 달라는 건 아닐 거 아냐?”
“원하는 걸 말씀하시면….”
“최종일. 오른손 팔꿈치.”
철컥!
“무슈 강! 무슈 가-앙!”
팔을 뒤로 묶은 탓에 다가간 최종일이 놈의 어깨를 잡아당긴 뒤에 팔꿈치에 방아쇠를 가져갔다.
“제발! 무슈…!”
푸슝! 퍼억!
그의 팔꿈치에서 튄 피가 창 아래 벽에 튀었고, 동시에 처절한 비명이 울려 나왔다. 용병 수장이라는 놈이 이제 소총도 제대로 들기 어렵게 됐으니 비명이 나올 만은 하겠다.
“끄윽. 끅. 끄으윽.”
마누엘 야닉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울음 같은 신음을 흘려 냈다.
방아쇠를 당겼던 최종일이 수건을 집어서 손에 튄 피를 닦았는데, 그를 포함해 제라르와 정보총국 요원 누구도 동정의 빛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냉정한 요원들의 반응이 놈을 더 두렵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용병 회사 수장이고, 더럽게 잔인하다고 소문난 놈치고는 참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샤흐란의 반도 안 되는 새끼.’
잠시 고민하던 강찬은 다시금 의자에 앉아 마누엘 야닉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제발.”
또 최종일을 부를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강찬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직한 음성으로 마누엘 야닉이 애원했다.
“이렇게 하자. 물어보는 걸 시원하게 대답하면 바로 죽여 주마.”
살려 주는 건 선택지에 없는 거요?
놈의 눈을 본 강찬은 재미있다는 투로 피식 웃었다.
“살고 싶어?”
“뭐든 하겠소.”
“그럼 바실리에게 가. 가서 지네와 함께 시베리아의 교도소에서 아주아주 길게 살아.”
“무슈 강?”
“내가 장난치는 거로 보여?”
강찬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마누엘 야닉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그런 뒤에 마른침을 삼키는 놈을 향해 피식 웃었다.
“오래 살고 싶어? 아니면 시원하게 대답하고 일찍 죽을래?”
마누엘 야닉은 공포에 물든 얼굴로 답을 내놓지 못했다.
***
커피잔을 앞에 둔 문바키는 글자 그대로 은퇴한 사람처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유럽 특유의 기다란 창을 매단 건물들과 그 속을 거니는 관광객을 멍하니 바라볼 때였다.
“정보총국 요원들과 CIA 요원들이 몰려와 있습니다.”
문바키의 뒤편에 앉은 남자가 중얼대듯 상황을 전했다.
중년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뒤편에 모로 앉아 있어서 얼굴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노화를 되돌리는 연구가 어느 정도 결실을 얻었습니다. 가장 먼저 발견한 방법은 23세 미만의 젊은 사람과 혈액 전체를 교환하는 작업입니다.”
정보국마다 특성이 있는데, 바티칸 시티의 정보국 요원들은 구구절절 말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궁금한 건 이게 아닌데, 전혀 중요하지 않은 서론이 길게 나오고 있었다.
“한 번으로는 어렵지만, 열 번 이상을 하게 되면 몸에 있는 세포들이 뼈와 장기, 근육을 젊게 만드는데, 이 연구를 진행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는 정보총국의 간결한 보고에 익숙한 문바키에게는 고문 같은 설명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나. 밀라노에 온 이상 밀라노의 법을 따를 수밖에.
“연구진은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는 노화를 막아 놓은 상태에서 화성으로 이주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혈액을 얻는 젊은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다가와 메뉴판을 살피는 바람에 한동안 설명이 없었다. 혹시 먼저 일어나 떠났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문바키는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바로 가는 건 어려우니 달에 중간 기지를 설치하는 사업이 시작됐고, 다음으로 지구의 멸망을 늦추자는 의미에서 인구를 줄이는 연구가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그 연구를 최초로 지원한 인물이 두 명인데….”
간신히 이어지던 음성이 다시금 잘렸다.
결론만 좀 말해 주지. 강찬이 여기 있었다면 뒤편에서 지루하게 떠드는 남자는 분명 멱살을 잡힌 채 구석으로 끌려갔을 거다.
문바키가 지루하게 기다린 다음이었다.
“이라크의 압둘라 하지즈. 영국계 스웨덴인 제이어 반 할트입니다.”
됐다!
이탈리아에 온 목적은 이거로 충분히 얻었다.
두 사람의 이름을 듣고 난 백발의 문바키는 은은한 미소를 그려 냈다. 그리고는 선글라스를 꺼내 얼굴을 가렸고, 이어서 몸을 세웠다.
문바키가 카페를 나선 직후였다.
아까 메뉴를 살피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옆 건물에서 나온 정장 차림의 남자 두 명이 다가왔다.
“CIA가 근처에 있고, 저격 가능성이 있습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안느 총국장이 1급 경호를 지시하셨습니다.”
프랑스어로 넘어온 설명을 들은 문바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리카에 가려고 하는데 도움을 청할 수 있나?”
“정보총국의 전용기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부탁하지.”
프랑스어로 오간 대화의 끝에서였다.
정장 차림의 남자 한 명이 왼손을 들었고, 곧바로 검은색 대형 승용차가 다가왔다. 정장 차림의 요원이 열어 주는 승용차에 탄 문바키는 그제야 아까 앉았던 뒤편 자리에 시선을 주었다.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뒤편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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