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96)
777화 출발했냐? (2)
짧은 침묵의 끝에서였다.
– 알만 빈 지브릴 기억하지?
“두바이에서 제거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아니오? 이번에는 어떤 놈이 문제요?”
– 압둘라 하지즈.
“푸흐흐흐.”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오간 대화의 끝에서 석강호가 만족한 웃음을 흘려 냈다.
“언제 가면 되우?”
– 한국에서 사흘 정도 쉬고 있어. 이번은 장소가 이라크다. 이라크에서 이라크 왕족을 제거하는 일이라 절대 쉽지 않다.
“그런 게 또 내 전문이잖소.”
– 잡혀서 울던 건 잊었냐?
“에헤이! 담배 연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니까요!”
별것 아닌 듯 대꾸했지만, 석강호는 이번 임무가 얼마나 위험한 건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강찬이 이런 지시를 전할 만큼 상황이 쉽지 않다는 점도 분명하게 이해했다.
–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파견 나와 있는 요원들로 구성할 건데, 그동안 국가정보원이 엉망으로 돌아간 바람에 인원 맞추기가 쉽지 않다.
“대장.”
걱정을 늘어놓는 강찬을 석강호가 나직하게 불렀다.
“성격대로 얼른얼른 끝냅시다. 닭백숙 하나 먹자고 한 게 벌써 2년이 넘었소.”
석강호의 다부진 대꾸를 들은 강찬은 피식 웃었다. 그런 뒤에 전화가 끊겼다.
‘이런 계획이 있어서 한국에 가라고 했었구만.’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던 석강호는 시선을 창으로 돌렸다. 죽음의 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예멘의 도로와 낮은 건물들이 까마득하게 저 아래에서 보였다.
“씨발 새끼들.”
저 아래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가던 사람들,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떠올린 석강호가 무서운 눈빛으로 욕을 뱉었다.
***
사무실을 들어선 유인강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불편해서 살겠냐.”
“왜 그러시는 건데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그러지.”
깁스한 팔을 들어 보이며 툴툴대는 유인강을 향해 한상영이 입맛을 다셨다. 저렇게 덜렁대고 진중하지 못한 선배가 또 임무를 맡으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바뀌는 게 당최 적응하기 어려워서였다.
“그 눈빛은 뭐냐?”
“아닙니다.”
“야! 내가 말했지? 네가 중동에 발령 나서 이용우 선배 같은 분하고 일했으면 너는 사표 썼거나 벌써 화병으로 죽었어.”
한상영은 이용우를 만나 본 적 없다. 다만, 유인강을 통해서 이름만큼은 골백번 들었다. 도대체 유인강 같은 꼴통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이용우라는 선배는 어느 정도일까.
고개를 저은 한상영이 멕시코의 정보들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내렸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유인강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특별한 임무를 맡고 나갔던 유인강이 깁스를 하고 돌아온 다음부터였다. 벨이 울릴 때마다 한상영은 이상하게 긴장에 휩싸이곤 했다.
“여보세요? 선배님! 유인강입니다. 예!”
번호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던 유인강이 자세마저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상대방의 말에 집중한 것처럼 눈빛을 빛냈다.
“팔은 멀쩡합니다. 예. 지금도 운동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한상영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유인강이 날카롭게 시선을 던졌다.
“감사합니다.”
그런 뒤에 유인강은 통화를 마쳤다.
한상영이 궁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박중상 선배 알지?”
“이용우 선배님 동기라고 들었습니다.”
“잘 지내냐고 전화하신 거다.”
진짜 진짜 거짓말.
빤히 알지만, 한상영은 더 묻지 못했다. 유인강이 입을 다물 때는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
당장 오늘 들이닥치겠다는 게 아니라 다음 날 찾아온다는 연락이었다. 그러니 조태완과 저녁 정도 먹고 출발해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이왕 돌아볼 거라면, 제가 들어왔다는 거 알기 전에 가 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저녁도 안 먹고 가면 내가 너무 서운하잖아.”
“얼른 돌고 올라오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노익이 형님까지 모시고 밤새 한번 마시고 싶습니다.”
“보스가?”
“예. 아프리카에서 갑갑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형님 생각이 많이 났었습니다.”
저녁 먹을 시간도 없냐며 불만을 토해 내던 조태완이 강성태의 말에 헤벌쭉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을 본 이병렬은 웃음을 삼키려 고개를 떨궜다.
‘아프리카에서 이상한 걸 배워 왔어.’
이병렬이 내심 고개를 저을 때였다.
“그럼 다녀와야지. 동생들은?”
“여기저기 연락해서 불렀다가 제가 왔다는 소문 퍼지는 게 싫어서 진용이하고, 봉진이만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 생기면?”
“청주니까 대전이랑 전주, 광주 식구들 부르면 됩니다.”
“보스 능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해.”
“예, 형님.”
조태완을 다독인 강성태는 그길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이미 연락해 두었던 김진용이 기다리던 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그런데 조수석 앞에 서서 인사하는 김진용의 표정이 무거웠다.
뭔가 있는데?
강성태만 그런 게 아니라 이병렬 역시 눈가를 좁혔는데, 두 사람 모두 조용히 뒷자리에 몸을 실었다. 막말로 정말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면 김진용이 먼저 입을 열었을 테고,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조태완의 사무실 앞에서 시간 끌 필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가자.”
“예, 형님.”
사무실을 지키는 덩치들이 순서대로 인사하는 앞을 빠져나간 승용차가 큰 도로에 합류한 다음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형님.”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그랬다. 뭔 일인데 보스 모시는 새끼가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서 있어?”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청주 쪽에 이원창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말입니다, 형님.”
김진용이 그동안 있었던 통화에 관해 털어놓았다.
“광철이가 채서 데리고 있답니다, 형님.”
“광철이? 청주 방광철이 말이냐?”
“예, 형님.”
성씨까지 붙인 완벽한 이름을 들은 강성태는 느닷없이 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위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새끼 정체가 뭐야?”
“생활한 적은 없는 놈인데, 업장 관리하다가 빵에 두 번 갔다 왔고, 그러면서 이리저리 인사는 좀 한 놈이랍니다, 형님.”
“별 양아치 새끼가.”
이병렬이 입술을 뒤틀 때였다.
부산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차선을 바꾼 승용차가 속도를 바짝 높였다.
***
호텔의 객실에서 강찬은 제라르, 그리고 최종일과 둘러앉았다. 죽고 사는 임무에 투입되었다고 해도 직급이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이두희와 우희승이 정성껏 만든 봉지 커피를 가져와 함께 앉았다.
정보총국 요원들은 옆 객실에서 마누엘 야닉을 지키고 있어서 온전히 강찬과 제라르, 최종일 일행만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함께 봉지 커피를 즐기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강찬은 종이컵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달다, 봉지 커피는. 그리고 이 달달한 맛이 정말 큰 위로가 된다. 아쉬운 건 담배였다. 혼자라면 모르겠는데, 이 좁은 객실에서 다섯이 함께 담배를 피워 대면 침구류부터 집기까지 깡그리 바꿔야 할 정도로 냄새가 밴다.
“마누엘 야닉을 저대로 보낼 겁니까?”
맞은편에서 커피를 마신 제라르가 궁금한 얼굴로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저 새끼는 바실리와 협상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지.”
“여기에서 대장 손에 죽는 거보다 일단 바실리에게 가서 뭔가 기회를 잡아 보겠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습니까? 무슨 생각인 겁니까?”
“뭐가?”
“그렇잖습니까?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죽인다는데 누가 입을 엽니까? 여기에서 죽을래, 그냥 입 다물고 갈래, 그렇게 물으면 누구라도 일단 살겠다고 할 거 아닙니까?”
지금껏 묵묵하게 따르던 제라르가 더는 못 참겠다는 것처럼 집요하게 질문을 내놓았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최종일과 이두희, 우희승 역시 강찬에게 뭔가 계산이 있지 않겠나 하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강찬은 종이컵을 들어서 반쯤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 뒤에 시선을 들었다.
“태산이가 하릴 하지즈를 잡았는데 그곳에 있어야 할 인물이 한 명 빠져 있었거든.”
있어야 할 인물?
눈가를 좁혔던 제라르가 ‘아!’ 하는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는데,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는 아직 감을 잡지 못한 느낌이었다.
이왕 말을 시작했는데 굳이 시간 끌 필요 없겠다.
“히놀 사키코 가와구치.”
“아!”
강찬이 이름을 말해 주자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가 동시에 탄성을 터트렸다.
“감염이 일어났다. 양동식 소령이 희생된 아포코 기지에서는 강태산이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느꼈다고 했고, 그 뒤로 염병할 아메바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었지.”
‘그랬지요.’ 하는 투로 제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노화를 막네, 어쩌네 하는 이상한 연구가 있었다는 말이 나왔고, 문바키를 세뇌해서 나를 제거하려고 들었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지?
제라르와 최종일 일행이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한 가지는 분명해. 마리그 기지를 습격했던 용병 놈들, 예멘 공항에 몰려들었던 감염자들, 세뇌됐던 안드레이와 다예가 구출해 낸 아이까지, 감염된 건 확실한데 원인과 증상이 달랐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제라르. 하릴 하지즈의 목표가 뭐였냐?”
“그야 시아파 세상을 만드는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칼튼 숀이 그런 목표에 함께한 이유는?”
“예?”
시원하게 대답했던 제라르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받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칼튼 숀은 절대 그런 목표에 동조할 리가 없지. 그랬다면 게릭 웨인이 눈감아 줄 리도 없었을 테고.”
“아후! 대장, 그러지 말고 그냥 시원하게 말해주십시오.”
강찬은 물끄러미 제라르를 들여다보았다.
방금 했던 요구는 분명 다예가 내놓을 법한 투였다. 그리고 평소 제라르라면 이 정도 설명으로도 앞과 뒤를 짐작했어야 했다.
“감염의 원인과 증상이 다르다는 말을 떠올려 봐. 어떤 놈들이 끼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처음에는 감염균을 만들자며 힘을 모았겠지. 그러다가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각자 목적과 능력에 맞게 독자적으로 연구하려 들지 않았을까?”
“치료제 때문에 그런 겁니까?”
“노리는 게 다르다니까. 시아파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하릴 하지즈, 가와구치의 복수와 아시아를 통치하며 세계를 구한 위대한 나라로 떠오르고 싶었던 일본, 인구를 완벽하게 제거해서 환경 오염 없는 지구를 천국으로 만들어 누리고 싶은 미친 인간들. 이유야 많잖아.”
“후-.”
숨을 길게 뱉어 낸 제라르가 지친다는 느낌으로 나무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렇게 따지면 마누엘 야닉은 개발에 참여한 놈이 아니잖습니까?”
“대신 우리가 아는 모든 감염 증상에 관해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돼 있지.”
강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제라르가 상체를 바로 세웠다.
“마누엘 야닉! 그 새끼! 아포코 기지 습격, 마그리 기지 습격, 검은 미망인과 체첸 용병, 예멘의 커피 농장과 공항 습격. 전부 그 새끼가 관련된 겁니다.”
뭔, 다 알려 준 정답을 이렇게 요란하게 떠들어?
그나마 제라르가 머리를 쓸 줄 안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그러면 마누엘 야닉을 더 잡고 내용을 족쳐야지, 왜 그냥 보내 줍니까?”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질문을 제라르가 쏟아 냈다.
“이동을 뭐로 하기로 했냐?”
“예?”
“바실리에게 지원해 달라고 한 게 뭐였냐고?”
“그야 잠수함이잖습니까?”
정말 돌대가리로 바뀌는 건가?
어쩐지 이 정도 이야기하면 석강호는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강찬에게 훅 달려들었다.
“대장?”
“전에 김형정 본부장이 말했던 거 기억 안 나? 예멘과 소말리아에 나타났던 체첸 용병과 검은 미망인이 잠수함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던 말?”
“아!”
“마누엘 야닉이 가진 잠수함은 아닐 테니까 뒤가 급한 놈이 있다면 분명 구하든가, 제거하든가 달려들지 않을까?”
지금은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까지 강찬의 생각을 이해한 표정이었고, 그래서인지 감탄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직후였다.
“아, 씨!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출출하네. 라면 있어?”
이두희를 돌아본 제라르가 상상하지 못했던 요구를 내놓았다.
저놈이 언제 머리를 세게 다친 적이 있었나?
강찬은 착잡한 심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게르만의 집사를 잡던 날, 벽을 부수고 들어갔다가 잡혔다더니 혹시 그때 헤딩으로 시멘트벽을 깼나 싶은 의혹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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