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98)
779화 네가 모시는 분이냐? (1)
이원창이 머리를 처박으면서 어슴푸레하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약이라니? 그것도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여수 관광호텔에서 그 바닥의 큰손인 삼치가 개박살 난 게 얼마 전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마약에 손댔던 거야?’
그래서인지 대가리를 처박은 이원창의 모습에 누구보다 충격받고 당황한 건 방광철로 보였다. 거기에 강성태가 냉정한 눈으로 이원창을 바라보는 상황이니 속이 새카맣게 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형님! 이런 개 양아치 새끼가 약을 돌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형님. 동생들한테 마약, 인신매매, 고리대금은 절대 손대지 말라고 계속 단도리했었습니다, 형님.”
수원부터 광주 식구들을 불러들이라는 지시를 떠올린 모양인지 방광철이 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
“잠시만.”
“예, 형님.”
방광철을 막은 강성태는 대가리를 처박은 이원창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고등학생에게 약 돌렸냐?”
“살려 주십시오, 형님!”
조선 시대로 날아가 사또에게 잡혀 온 억울한 인간처럼 바닥에 대가리를 비벼 대는 이원창을 강성태는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이 씨발 새끼가? 큰형님께서 물어보시잖아, 이 새끼야!”
휙! 콰득! 콰악! 콰득!
그렇게 바닥에 처박은 이원창의 대가리를 또 김진용이 시원하게 밟아 댔다.
적당하게 끝낼 생각이었다.
고등학생을 가게로 보내 행패를 부리게 했다는 내용이 괘씸하기도 했고, 하필이면 그 상대가 이병렬이 오래도록 가슴에 담은 선배라는 사실에 직접 달려온 참이었다. 그러나 약을 돌린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고등학교까지 약이 돈다고?
여수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청주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직하게 숨을 내쉰 강성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광철.”
“예, 형님.”
“저녁 먹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이 인간이 손댔던 약의 종류, 약을 공급해 준 놈, 보관한 장소, 팔았던 경로, 가격, 그동안 벌었던 금액까지 전부 알아 놔. 할 수 있겠어?”
“무조건 하겠습니다.”
강성태를 향해 답하는 방광철의 눈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진통제!
필로폰, 헤로인, 하다못해 대마초라고 해도 사람들이 움찔하는데, 지금은 별별 이름의 약들이 들어오면서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되기 전에 유통된다. 여러 가지 약을 섞거나 한꺼번에 삼키는 ‘칵테일’이라는 용어는 심지어 친근하기까지 했다.
먹으면 졸리지 않는 약, 살이 단박에 빠지는 약, 처먹고 음악을 들으면 악기 하나하나의 선율을 세세하게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개 같은 유혹에 빠져 손을 대는 순간, 인생 정말 끝난다.
가장 큰 문제는 몇천 원 처먹자고,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한 아이들에게 약을 돌리는 이원창 같은 놈이었다. 이런 놈이 재판에 넘겨지면 고작 2년에서 3년 만에 나오는 것도 문제였다.
어쩌다가 한번 손대면 절대 되돌리지 못하는 마약이 고등학생 틈을 파고들었을까?
여기에서 조금만 더 무너지면 중학생, 초등학생까지 마약에 물들고, 소위 약을 한 촉법소년들이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 놈들이 나이 들면 돈을 손에 넣기 위해 납치, 살인, 방화를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지옥이 펼쳐지는 거다. 마치 지금의 멕시코처럼 말이다.
‘내가 있는 한, 그런 꼴 못 봐. 아예 끝장 보자.’
강성태는 독한 마음을 품고서 이원창을 내려다보았다.
“저 인간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으면 우리 식대로 해결해.”
“예, 형님.”
답을 하는 방광철 곁에 서 있던 김진용마저 놀란 빛을 보일 만큼 강성태는 독한 지시를 내렸다.
일단 지켜본다.
청주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누구보다 방광철이 가장 잘 파악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김진용. 봉진이 데리고 저녁 먹고 오자.”
“저기, 형님. 준비해 둔 장소가 있어서 모시겠습니다, 형님.”
몸을 돌리는 강성태 앞으로 방광철이 급하게 나선 다음이었다.
“가 볼 곳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냥 있어. 대신 돌아왔을 때는 궁금한 게 풀려 있든가, 아니면 저 인간이 정리됐든가, 둘 중 하나 결과를 내놔.”
“알겠습니다, 형님.”
다부지게 뜻을 밝힌 강성태는 김진용, 조봉진과 함께 방을 나섰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모양으로 입구까지 나온 방광철이 식당을 안내하겠다고 했지만, 강성태는 또 단호하게 거절하고 차에 올랐다.
“북부시장으로 간다. 서둘러.”
강성태의 독촉을 받은 조봉진이 곧장 승용차를 움직여 도로로 합류했다.
“약을 조직적으로 공급한 놈들이 있다면 반드시 우리가 내려와 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다. 우리 셋은 방광철 조직원들과 함께 있었으니까 함부로 못 건드리겠지만, 병렬이는 달라. 그러니까 최대한 달려.”
강성태의 다급한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부아아아-앙!
몸이 의자에 파묻힐 정도로 조봉진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
이병렬이 보기에 진필성은 착한 성품을 지녔다.
“고기로 할래, 아니면 중국집에 갈까? 뭐든 좋으니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이병렬의 권유를 받은 진필성이 먼저 아버지인 진광식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빠. 우리 삼겹살 먹을까?”
강해 보이는 진광식의 눈매에 부드러운 심성을 곱게 발라 놓으면 아마 지금의 진필성 같은 눈이 되겠지 싶어서 이병렬은 보이지 않게 웃었다.
단골이라고 해서 찾아간 식당은 시장 뒤편으로 나간 골목에 있는 고깃집이었다. 삼겹살과 돼지갈비, 찌개 종류를 파는 식당이었는데 저녁 시간인 데도 테이블의 절반이 비어 있었다.
“어서 와요.”
진광식과 진필성을 맞이한 주인 여자가 궁금한 시선으로 이병렬을 살폈다. 굳이 소개하고 인사할 사이는 아닌 거다. 적당하게 웃어 준 이병렬은 진광식, 진필성과 함께 안쪽 테이블에 앉았다.
“삼겹살? 아니면 돼지갈비?”
“삼겹살이요.”
신기하지?
함께 가게 정리하고, 메뉴 정한 뒤에 식당에 온 게 전부인데 이병렬과 진광식 사이에 끼어 있던 어색함이 욕실 거울에서 사라지는 김처럼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약주 안 하십니까, 형님?”
“소주 하지.”
“그럼 필성이는 음료수 시켜 주면 되겠습니다, 형님?”
“이 녀석, 나보다 더 잘 마셔. 소주 같이 마시면 돼.”
고등학생이 아버지와 마시는 소주라니, 시선을 받은 진필성이 쑥스럽게 웃는 모습이 이병렬은 또 좋았다.
삼겹살과 소주를 주문한 다음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이병렬의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을 확인한 이병렬은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한 뒤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병렬입니다.”
– 병렬아. 어디야?
“형님 모시고 저녁 먹으러 왔습니다.”
– 이원창 말이야. 약 돌린 거 같다. 진필성인가 하는 학생 괴롭힌 것도 그것과 연관 있는 건지 몰라. 일단 조심하고, 지금 있는 식당 위치 좀 문자로 보내 줘.
약이 끼어 있었어?
이병렬은 슬며시 진필성을 돌아보았다.
반찬을 가져온 주인 여자가 바쁘게 내려놓는 그릇들을 옮기고 있었다.
“정확한 주소보다는 북부시장 뒤편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감동갈비라고 있습니다.”
– 들어가지는 않을 건데, 혹시 우리가 내려와서 뒤지고 있는 거 알면 어떤 놈들이 달려들지 몰라. 그러니까 너무 마음 풀지 말고 있어.
“알겠습니다.”
진중하게 답한 이병렬은 종료 버튼을 눌렀다.
“바쁜데 무리한 거 아냐?”
“오면서 일이 있었는데 타고 왔던 차를 어디로 보내면 되냐고 물어서 식당 알려 준 겁니다. 괜찮습니다, 형님.”
걱정스럽게 묻는 진광식에게 이병렬은 넉넉한 표정과 음성으로 답했다.
두툼하게 썬 덩어리 삼겹살과 술이 나오면서 손이 바빠졌다.
“형님. 받으십시오.”
“고맙다.”
진광식의 잔을 채워 준 이병렬은 진필성의 잔에도 술을 부어 주었다.
“삼촌. 제가 따라 드릴게요.”
눈가와 볼, 턱 아래에 은은하게 멍이 든 진필성을 향해 이병렬은 잔을 내밀었다. 잔을 두 번쯤 비웠을 때, 고기가 익었고, 불판이 빠르게 비어 갔다.
“형님. 고기 조금 더 시키겠습니다.”
“그럴까?”
“사장님! 여기 삼겹살 6인분 더 주세요.”
“많지 않아?”
“저 혼자 6인분은 먹습니다. 필성이 너는 어때? 너도 그 정도 먹지?”
“예.”
술이라면 몰라도 이병렬은 고기를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 이병렬이 젓가락을 멈추면 식사가 끝날 거라는 생각에 연신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다리는 어떻게 되신 겁니까?”
“이거? 그냥 교통사고가 있었어.”
중간에 슬쩍 건넨 질문이었는데 진광식은 자세한 설명을 삼키고 있었다. 나중에 따로 들어 봐야 할 내용이겠다.
“필성아. 낮에 못된 놈들 왔었다면서? 그건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건요.”
입을 열었던 진필성이 아버지인 진광식의 눈치를 살폈다.
“삼촌한테는 편하게 말해도 돼.”
그리고는 진광식의 허락을 받고서야 입을 열었다.
“학교에 일진 애들이 있거든요. 그 애들이 저는 안 건드렸는데, 지난주에 애들 불러서 일요일에 나오라고 하는 거 막으면서 다툼이 좀 있었어요.”
“다툼?”
이병렬의 질문에 담긴 의미를 아는 것처럼 진필성이 멋쩍게 웃었다.
“아빠가 피할 수 있는 싸움을 하는 건 깡패나 하는 짓이라고….”
살짝 들떴던 진필성이 이병렬을 보며 아차 하는 얼굴로 말끝을 삼켰다. 녀석이 보기에도 이병렬이 깡패로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낮에도 참았던 거냐?”
“아빠가 참으시니까요.”
이렇게까지 속이 깊은 녀석이 있나?
“먹어. 먹으면서 말해.”
흐뭇한 생각에 이병렬이 고기를 권할 때였다.
당겨서 여는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점퍼 차림의 남자 다섯 명이 불쑥 들어섰다. 홱, 이병렬이 시선을 던지는 순간, 안을 둘러보던 놈들 역시 이쪽을 분명하게 노려보았다.
– 우리가 내려와서 뒤지는 거 알면 어떤 놈들이 달려들지 몰라.
하필이면 진광식과 진필성이 있는 곳에서 이러냐?
“어서 오세요.”
다가서는 주인 여자에게 잠시 시선을 준 놈들이 다시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냥 밥 먹으러 온 사람이어라, 제발.
이병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진광식과 진필성이 눈가를 좁히는 순간이었다. 가장 앞에 있던 두 놈이 품에 손을 넣었다.
‘젠장!’
이병렬이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강성태와 김진용이 불쑥 들어섰다.
강성태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뒤를 돌아보았던 놈들이 대뜸 품에서 시커먼 칼을 꺼내 들었다.
휘익! 쩌어어억! 쩌억!
강성태는 확실히 달랐다.
아니, 아프리카에 다녀오더니 좀 더 날카로워졌고, 빨라졌으며, 독해졌다.
콰등! 콰드등!
테이블에 걸린 두 놈이 바닥에 쓰러질 때였다.
휙! 휘익! 쩌어억! 쩌억!
두 놈이 휘두른 칼을 멋지게 피한 강성태가 놈들의 눈 안쪽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우습지만, 그 순간에 이병렬은 분명하게 보았다. 강성태의 주먹이 꽂힐 때마다 진광식의 몸이 움찔하는 모습을 말이다.
마지막 남은 놈은 김진용의 몫이었다.
콰악! 콰등! 콰등! 콰자작!
연예인 뺨치게 생긴 강성태 곁에 있어서 더욱 인상이 지랄 맞아 보이는 김진용이 가장 뒤에 있는 놈의 머리를 붙들어서 테이블에 연달아 찍었고, 그 끝에서 체중을 완전하게 실어서 내리꽂는 바람에 부서지는 테이블과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끼익!
그 직후에 배트를 든 조봉진이 뛰어들어 와서는 안을 빠르게 훑었다.
‘저 새끼는 진짜!’
이병렬에게 인사하지 말라고 지시받은 모양이었다.
이병렬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였던 조봉진이 엉뚱하게 바닥에 널브러진 놈들을 확인하는 것처럼 아예 자세를 낮췄다.
“끌어내.”
“예, 형님.”
이병렬을 건드리려 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 모양이었다. 김진용이 쓰러진 놈들의 다리를 하나씩 잡고서 바닥에 질질 끌면서 나갔고, 그 뒤에 조봉진이 다른 놈의 양쪽 다리를 팔에 하나씩 쥐고서 밖으로 나갔다.
“사장님.”
“예! 예!”
“소란 끼쳐서 죄송합니다. 테이블하고 깨진 그릇들 전부 변상하고, 여기 손님들 식사비 전부 제가 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예?”
이병렬이 보기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두둑한 현금을 강성태가 건넬 때였다. 다시 들어온 김진용과 조봉진이 쌀자루를 옮기는 것처럼 남은 두 놈을 마저 끌고 나갔다.
테이블을 싹 교체하고도 남을 돈 건넨 덕분에 주인 흐뭇하고, 식당에 있는 손님들 식사비까지 내놓는 바람에 누구도 불만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이거 몰래카메라야?”
“저 남자 뭐야?”
심지어 강성태의 외모와 믿기지 않는 실력을 보며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는 손님과 관심을 보이는 손님들도 있었다.
주인 여자를 다독인 강성태가 나간 직후였다.
“필성아. 가서 환타 하나 가져올래?”
“예.”
놀라고 당황한 진필성을 냉장고로 보낸 진광식이 상체를 슬쩍 기울였다.
“네가 모시는 분이냐?”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 속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습니다, 형님.”
“혹시 신강남파 강성태라는 분 맞냐?”
“아십니까, 형님?”
이병렬의 질문을 받은 진광식이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결심한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느닷없이 고등학교 시절 권투부 주장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