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
583화 저 새끼, 오늘 운 좋았네! (2)
두크두크두크두크.
헬리콥터는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있는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부대에 내려앉았다.
가장 먼저 헬기에서 내린 강태산은 곧장 장팔모를 찾아 방으로 들어갔다.
“됐어. 안에 계시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부관을 향해 손짓을 던진 강태산은 그대로 안쪽의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소령님.”
강태산이 올린 경례를 장팔모는 파리 쫓듯 오른손을 휘저어 받았다. 이미 상황에 대해서는 보고를 먼저 한 참이었다. 거기에 두 명의 부상자를 무사히 구해 냈고, 범인이 내일 자진 출두할 테니 임무를 수행한 강태산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보고 확인하셨습니까?”
그런데도 장팔모는 뾰족한 눈빛이었다.
“너, 일부러 이러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야, 인마! 훈장이 무슨 휴가 쿠폰인 줄 알아? 가뜩이나 대원 부족해 미치는 걸 빤히 알면서 매번 왜 이래!”
장팔모는 강태산이 요청한 서류를 들고서 눈앞에 흔들었다.
“당장 콩고 오완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마당에, 대원 한 명을 제외하면 나는! 나는 뭐라고 보고하리!”
“어머님 환갑이랍니다. 남은 대원들과 더 뛰겠습니다.”
실제로 강태산은 훈장을 반납했다. 그것도 대원 중 신동철이 서울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에 떡하니 붙여서 올렸다.
“너 이제 훈장 더 없지?”
“아직 하나 남았습니다.”
“푸후!”
멧돼지처럼 생긴 장팔모가 뜨거운 숨을 푹 내쉰 뒤에 강태산을 향해 서류철을 홱 던졌다.
“감사합니다, 소령님.”
“꼴도 보기 싫어, 인마! 나가는 대로 신동철이 휴가 보내고 그 서류철에 명령서 넣어 뒀으니까 바로 오완도로 출발해!”
경례하는 강태산을 향해 장팔모는 말도 하기 싫은 사람처럼 손을 휘휘 저었다.
저런 모습이 귀엽게 보인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장팔모의 방을 나선 강태산은 복도에서 기다리던 신동철에게 휴가증을 건네주었다.
“다녀와. 어머니 잘 다독여 드리고.”
“감사합니다, 대위님!”
신동철의 인사에 강태산은 피식 웃었다.
아군에게는 더할 수 없는 믿음이었고, 적에게는 죽음을 의미하는 살벌한 미소였다.
***
대리석 복도를 걸어간 강성태는 세 번째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았다.
누군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아직 생기를 잃지 않은 국화 다발이 일정한 칸막이 속 고룡동과 서달수, 김정훈의 사진 앞에서 아련한 향을 뿌렸다.
“자주 못 와서 미안하다.”
마치 앞에서 듣고 있는 것처럼 말을 건네며 강성태는 들고 온 국화 다발을 세 사람의 사진 앞에 하나씩 놓았다.
“멕시코에 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몰라. 혹시 잠깐 들어온다고 해도 이곳에 들를 여유가 있을지 자신할 수 없고.”
꽃을 놓고 난 뒤에도 강성태는 사진 속의 세 사람을 향해 말을 이었다.
“마지막이 멕시코일지, 아프리카일지는 몰라도 끝까지 가 볼 셈이다. 그렇게 해서 비록 욕망의 찌꺼기를 삼키는 어둠 속에 살지만, 언제고 식구들 모두 빛으로 나갈 수 있게 해 보려고.”
약속하듯 손으로 사진을 하나씩 매만진 강성태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대리석이 깔린 복도를 걸어 건물의 현관으로 나섰을 때였다. 강렬하게 달려드는 햇살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남자가 강성태를 향해 다가왔다.
“어떻게 왔어?”
“이런 곳은 좀 함께 오자.”
툴툴댄 이병렬이 강성태를 따라 주차장으로 몸을 돌렸다.
“잘들 있어?”
“누가 꽃다발을 뒀더라고.”
“그래? 가족들이 왔었나?”
“세 사람 모두 있던데?”
힐끔 강성태를 돌아보았던 이병렬이 시치미를 떼는 표정으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냥 먼저 왔었다고 해도 뭐랄 거 없는데, 꽃다발 놓은 걸 굳이 감출 필요가 있을까?
아무튼, 이럴 때는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좋겠다.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힘들어 보여?”
이병렬의 옆모습을 보며 강성태가 질문을 던진 다음이었다.
“일? 아이고, 보스님. 멕시코 가기 전에 보스가 부른 구르카 용병인가 하는 괴물들에게 먼저 죽게 생겼어. 이거 보여?”
말끝에서 이병렬이 셔츠의 왼쪽 카라를 내려 흉측하게 긁힌 자리를 보여 주었다.
“웃기는? 이거 칼에 당한 거야. 칼에! 어떻게 돼먹은 놈들이 훈련에서 그렇게 살벌하게 칼을 휘둘러? 그거뿐이야? 나는 살면서 하루에 백 발이 넘는 총을 쏠 줄은 몰랐다고! 이거 봐, 이거!”
이병렬은 억울함을 증명하듯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화약 냄새가 아주. 이거 어떻게 지울 방법 없어?”
모르겠다는 투로 어깨를 들썩이는 강성태를 보며 이병렬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정도로 해도 힘들겠지?”
그런 뒤에 내내 가슴 속 어딘가에 감추고 있던 질문을 내놓았다.
“자료들은 봤어?”
“징그럽게 봤지. 아예 짓이겨진 여자 시장의 시체. 몸뚱이 주변에 던져둔 잘린 머리와 팔다리, 나무에 매달아 놓고 태워 버린 시체까지.”
한적한 도로를 따라 걷던 길의 마지막에서 널따란 주차장이 드러났다.
호젓하게 아르윈과 함께 왔고, 그의 권유에 따라 함께 움직인 필리핀 조직원들의 승용차 한 대가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병렬과 함께 왔던 삼십여 명의 덩치들이 강성태를 향해 순서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덩치들에게 다가가면 이렇게 조용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진다. 그래서 강성태는 이병렬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프리카에 가게 되면 멕시코는 장난처럼 여겨질 수도 있어.”
“확정된 게 아니라 요청만 있었다면서? 정확한 내막도 모르는 거고.”
그 뒤로 급하게 진행된 내용을 이병렬이 알 길은 없었다. 이왕 말이 나온 참이었다.
“펜타닐과 오피오이드라는 마약성 진통제가 있어. 헤로인보다 몇십 배 강력한 약물인데, 환자가 원하지 않아도 의사가 처방해. 그럼 그냥 중독되고. 그렇게 되면 상처가 완치되었는데도 그 중독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걸 의사가 왜 처방해?”
“제약사에서 주는 수수료가 엄청나니까.”
고개를 비튼 이병렬은 믿기 어렵다는 눈빛이었다.
“도대체 어떤 개 같은 나라에 그런 의사가 있어?”
“미국.”
답을 들은 이병렬은 뺨을 얻어맞은 사람처럼 보였다.
“중독을 치료하는 해독제도 같은 제약사에서 만들어. 어떡해서든 제약사는 돈을 버는 거지.”
“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아프리카에 가는 문제에 미국 의사가 튀어나와?”
“펜타닐과 오피오이드가 아프리카로 들어간단다. 우리 돈 천 원이면 살 정도로 헐값에.”
“염병할.”
“먹으면 주체하지 못할 환각을 느끼고, 다음은 통증을 잊게 된다는데 동영상 사이트에도 내용이 올라왔더라고.”
이제야 대강 알아챈 모양이었다.
“혹시 그거? 약을 푼다는 놈들이 아프리카 조직원이냐?”
강성태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중국에서 원료를 만들어 멕시코의 카르텔에 넘기고, 그게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퍼지나 본데, 아무리 정부 차원에서 단속한다 해도 어둠의 경로를 막는 건 어렵지. 그래서 아프리카가 급해진 거 같다.”
“개새끼들.”
이를 질끈 깨문 이병렬이 누구를 향한 건지 모를 욕을 뱉어냈다. 뜬금없기는 하지만, 이따위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화창한 오후였다.
“이미 미국 갱단에서는 상대 조직을 상대할 때 약을 먹는 경우도 나왔다니까, 우리도 약 먹은 놈들을 상대해야 할 거 같다. 공포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놈들이 계속 생겨날 테니까.”
“지랄 났네.”
앞으로 마주해야 할 미래를 이병렬의 한마디가 선명하게 표현해 주었다.
“아프리카는 멀겠지?”
그사이 각오한 얼굴이었다. 이병렬은.
“졸라 덥다던데?”
그래 놓고는 또 엉뚱한 걱정을 내놓았다.
***
로일 위긴스 제네거는 웨일스 출신이었다.
갈색 머리칼에 브리지처럼 군데군데 금발이 섞인 그녀는 초록색 눈동자 위로 기다란 속눈썹을 껌벅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콩고 오완도 공항의 달랑 하나 있는 활주로를 달려온 바람이 습도와 후덥지근한 기운을 홱 뿌리고는 짓궂은 몸짓으로 달려갔다.
웨일스 출신은 대체로 자존심이 세며, 영국에 대한 반감이 강하고,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27세에 생물학계에서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려면 타고난 재능에 얼마만큼의 노력이 더해져야 하는지 짐작하겠나. 그걸 이루었으니 자부심과 프라이드가 치솟는 건 당연한데 그게 또 웨일스 출신이라면 말 다 한 수준이었다.
그런 그녀가 커다란 트렁크에 걸터앉아 콩고의 습하고 더운 바람을 벗 삼아 시간을 보내고, 두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그녀의 동료인 라이언 밀러와 제이미 융언이 비슷한 자세로 앉아 턱을 괴고 있었는데, 당장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였다.
“도대체 왜 못 들어가게 하는데, 왜!”
짜증이 솟구친 로일이 청바지 위의 회색 셔츠를 펄럭이며 프랑스 외인부대 대원들에게 다가갔다.
“뭐예요? 차라리 저 허름한 건물에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고요! 우리가 영국에서 왔다고 일부러 이러는 거죠?”
“오해입니다, 마담. 도착하기 직전에 반군들의 총격전이 있어서 건물 자체가 폐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호텔에라도 데려다주면 되잖아요!”
기울어진 햇볕을 가리기 위해 눈 위로 손을 든 로일의 요구에도 외인부대 지휘관은 별반 반응이 없었다.
“이봐요! 해가 지고 있다고요! 샤워라도 할 수 있게 호텔에 데려다줘요! 안 되면 우리끼리라도 가게 해 주던가요!”
거칠게 항의하는 로일이 염려스러운 동료 라이언과 제이미가 슬쩍 뒤로 다가왔다.
“도착하기 직전에 총격이 있었습니다. 반군들을 상대하는 것은 몰라도 세 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두두두두두두!
그때 프랑스 지휘관의 말을 자르며 1층 공항 건물 위로 헬리콥터가 나타났고, 곧바로 일행이 있는 활주로를 향해 날아왔다.
“흥! 빨리도 오셨네!”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이용해도 소말리아에서 콩고는 꽤 먼 거리입니다, 마담.”
로일이 홱 외인부대 지휘관을 노려보았는데, 헬리콥터 소리 때문에 더는 대화를 이어 가기 어려웠다.
두크두크두크두크.
엉덩이를 깔고 앉는 거인처럼 헬리콥터가 일행의 근처로 내려앉았다. 그 직후에 거센 바람을 피해 고개를 튼 일행 앞에서 대원들이 내리고 있었다.
헬멧, 선글라스, 회색 군복, 그 위에 덧입은 방탄조끼, 허리와 발목에 걸어 놓은 권총과 대검, 소총을 든 평화유지군 대원들이었다.
가장 앞에 있는 동양인 남자와 뒤따르는 동양인 대원 다섯, 그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대원을 로일이 훑어볼 때였다.
“평화유지군 대위 강태산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맡겠습니다.”
강태산이라는 동양인 지휘관이 능숙한 프랑스어를 쏟아 냈다.
뭐야? 이 남자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이야?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프랑스 외인부대 지휘관이 존경심 가득 담은 표정으로 손바닥이 환히 보이는 경례를 보였다. 지금까지 로일에게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공손한 태도는 덤이었다.
프랑스 인간들은 하여간 자기네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더럽게 친절하지!
동양인 지휘관은 곧바로 로일과 동료를 향해 다가왔다.
“평화유지군 대위 강태산입니다. 우선 아포코 기지로 이동해서 쉬고, 내일 오전 07시에 목적지로 출발하겠습니다. 차에 탑승하시죠.”
뭐야, 이 인간은? 어떻게 영어도 이렇게 자연스러워?
“로일 위긴스예요. 여기는 동료인 라이언 밀러 박사, 그리고 제이미 융언 박사.”
동료들과 악수를 나눈 지휘관이 고개로 트럭을 가리켰다.
키가 큰 제이미와 비슷한 신장이었는데 어깨선과 허리, 그리고 전체적인 느낌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로일은 동료들과 함께 트렁크를 끌며 트럭을 향해 움직였다.
평화유지군 대원들은 이미 지프와 트럭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서 있었다. 이런 광경에 익숙하지 않은 로일이 보기에도 확실히 뭔가 좀 있어 보이긴 했다.
“두 분은 트럭에 타고, 한 분은 지프로 이동하겠습니다.”
외인부대 지휘관의 말이 있었고,
“로일! 지프로 와! 우리가 트럭으로 갈게. 가방은 이리 주고!”
동료 두 명이 외인부대 대원들의 손을 잡고는 훌쩍 트럭의 뒤에 올랐다.
해는 이미 아래쪽을 지평선에 걸친 상태였다.
트럭에 트렁크를 올린 로일이 지프로 걸어가 뒷자리에 올라탔을 때였다.
쩔걱.
지휘관인 강태산이 몸을 돌렸다.
그의 어깨에 걸린 저녁노을이 피처럼 붉어서 그랬나?
아니면 역광에 걸린 그의 인상이 강렬해서 그랬을까?
좌우를 확인하는 강태산의 모습이 낙인처럼 로일의 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였다.
두근두근.
그녀의 심장이 커다랗게 울었다.
핏빛 노을을 어깨에 멘 강태산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여 지프와 트럭에 올라탔다.
로일은 어쩐 일인지 노을을 등지고 선 강태산이 외로운 늑대처럼 보였다.
동양인 남자잖아!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그냥 프랑스 말과 영어를 잘하는 아시아계 군인이라고!
철커덕!
무기 소리에 고개를 돌린 로일의 눈에 기다란 소총을 트럭의 운전석 위에 얹는 대원이 보였다. 그 대원이 지휘관이 강태산을 향해 시선을 준 다음이었다.
지프를 향해 걸어온 강태산이 조수석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지휘관인 이 남자만 왼쪽 어깨 뒤편에 대검을 하나 더 걸었다.
“출발해.”
“Oui, Capitaine!”
출신을 확인시키는 것처럼 운전석에 앉은 외인부대 대원이 프랑스어로 답을 한 직후에,
부으으응.
지프가 움직였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강태산을 거쳐 무기들이 풍기는 독특한 기름과 화약 냄새를 로일에게 던질 때, 몸통 아래를 지평선에 걸친 태양이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