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0)
601화 확인해 봐야지 않겠어? (2)
동료가 아닌 다음에야 시아파 민병대원은 절대 믿는 게 아니다.
철컥.
양손으로 권총을 겨눈 이용우를 보며 나씨르는 양손을 얼굴 옆으로 잽싸게 들었다.
“노! 노, 미스터 리! 납니다. 나씨르.”
단박에 영어와 아랍어가 연달아 쏟아져 나왔는데 특수 경찰을 의식해서인지 속삭이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용우는 고갯짓으로 담을 가리켰다.
담을 왜? 어떻게 하라고?
“담을 넘어.”
“예?”
눈으로 묻는 나씨르를 향해 이용우는 분명하게 뜻을 전했다. 세상에 아무리 믿을 사람이 없다 해도 민병대인 네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겠냐? 그것도 다른 민병대 놈들이 우글우글할 골목에?
담을 넘으라고 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나씨르는.
망설이는 놈을 보며 픽 웃은 이용우는 대번에 권총의 총구를 들었다. 이미 현지 정보원 술라이만 이븐 니아지에게 권총 세 발을 쐈었던 이용우였다.
“미스터 리!”
놀란 나씨르가 얼굴을 가리며 몸을 움츠릴 때, 이용우는 앞으로 달려나가 담을 차고 뛰어올랐으며, 그 직후에 왼손으로 위쪽을 잡았다.
콰윽.
염병할. 담벼락 위에 유리병을 깨서 박아 놓은 건 못 봤다. 권총을 든 덕분에 오른손을 지킨 건 좋았으나, 대신 체중을 모두 버틴 왼손바닥에 깨진 유리가 잔뜩 파고들었다.
이 정도 통증?
증평의 그 독한 훈련을 모조리 겪고 나면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담벼락 안쪽은 2층 건물과 담 사이로 난 작은 통로였다. 안쪽으로 떨어져 내린 이용우는 좁은 통로를 따라 달렸다.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건물 입구로 방향을 트는 순간이었다.
“미스터 리! 미스터 리!”
다급하게 속삭이는 음성과 함께 담벼락 위에 올라선 나씨르가 통로로 내려섰다.
얍삽한 새끼.
도둑질을 많이 했던 놈답게 손바닥을 수건으로 감았다. 저놈이 목에 때 묻은 수건을 걸고 다녔던 이유와 그걸 두고도 코피를 굳이 손바닥으로 닦은 이유, 두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이미 왼손이 피투성인 이용우에게 특별히 득 될 건 없었다.
흘깃 시선만 주었던 이용우는 바로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바그다드의 2층 건물은 입구부터 엇갈려 올라가는 계단과 옥상까지, 신기할 정도로 구조가 비슷했다. 여럿이 사는 관계로 입구 문을 잠그지 않는 것까지 전부.
달리는 이용우를 따라 나씨르가 바삐 뛰었다.
계단을 올라간 이용우는 옥상을 나섰고, 바로 옆 건물을 향해 달렸다. 이럴 때 그냥 달리면 바보다. 빠르게 주변을 살피는 이용우의 눈에 서너 건물 건너편 옥상에서 급하게 아래로 숨는 사람 머리가 들어왔다.
“후우-. 후-.”
두 번이나 옥상을 뛰어넘은 이용우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높다랗게 뛰었다가 떨어지는 나씨르를 기다렸다.
“미스터 리!”
“저쪽 건물 옥상에 있는 사람, 민병대냐, 아니면 특수 경찰이냐?”
“어디 말입니까?”
나씨르는 최선을 다해 만든 당황한 표정으로 이용우가 말하는 건물 반대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표정, 태도, 음성, 모두 좋았으나 눈알이 흔들리는 건 감추지 못했다.
태어나는 순간에 신용을 잃어버린 놈!
손바닥을 축축하게 적신 피가 손가락을 타고 떨어지는 상태에서도 이용우는 나씨르에게 시선을 똑바로 박았다.
“술라이만이 어떻게 됐는지 알 테니까 긴말 안 한다. 지금부터 앞을 막는 놈은 민병대든, 특수 경찰이든, 모조리 죽일 거니까 알아서 처신해.”
독하게 만든 이용우의 시선을 민병대 따위가 감당하기는 어렵다. 물론 세상 모든 곳을 이슬람으로 정복해야 하고, 핍박받는 이슬람교도를 보면 싸워서 도와야 한다는 ‘지하드’로 무장했기에 물불 안 가리기는 면은 있다만, 그건 이상이고, 이용우와 일대일로 마주 서서 두려운 눈빛을 감당하는 건 당장 마주한 현실이었다. 더구나 여차하면 언제고 방아쇠를 당기는 성격에 권총마저 들었다.
“내가 얻은 것과 네가 아는 게 같은 건지 확인부터 하겠다. 커피 상자에 담긴 물건과 예멘에 가는 나를 따라나선 이유?”
“커피 상자라면 물건을 찾았습니까?”
“찾았으니까 묻지.”
“알면서 왜 묻습니까?”
개새끼야.
궁금한 건 이미 다 확인했다.
커피 상자에 뭔가 중요한 물건이 있다는 사실과 예멘으로 가야 진실을 알게 될 거라는 점도.
“민병대가 왜 따라붙지?”
이용우가 아까 사람이 숨었던 옥상을 고갯짓으로 가리키자 나씨르의 눈알이 교활하게 번들거렸다.
픽 웃은 이용우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아래로 내리고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어두운 밤이었다. 옥상이었고.
타아-앙!
요란한 총성과 함께 총구에서 불꽃이 확 일어났고,
“아흑!”
발등이 터진 나씨르가 주저앉았다. 그와 상관없이 방아쇠를 당긴 이용우는 몸을 돌려 옥상을 달렸다. 지금부터 저놈이 떠들어 댈 거다. 이용우가 물건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과 예멘으로 향할 거라는 정보 모두.
“도망갑니다-아!”
어두운 밤, 바그다드의 하늘에 나씨르의 고함이 터졌고, 서너 건물 떨어진 옥상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이용우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 우습게 보네!
타아-앙! 피이-잉! 타앙! 퍼윽!
총구에서 불꽃이 튀며 저쪽 옥상 벽이 터져 나갔으며 이용우를 따라 달리던 놈들 둘이 급하게 몸을 감추었다. 이쪽을 확인하는 놈이 없는 그 순간에 이용우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염병-할!
맞은편 건물이 아니라 어둠에 싸인 골목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런 뒤에 아래쪽에 있는 맞은편 건물 2층 창 앞의 난간을 향해 몸을 뒤틀고 팔을 뻗었다.
‘어? 어?’
원래는 난간을 붙들고 매달리려 했으나, 어두운 탓에 거리를 잘못 계산했다.
철퍼덕.
철제 난간에 처박힌 것처럼 떨어진 이용우는 악착같이 안쪽 베란다를 향해 몸을 뒤틀었다. 그냥 떨어졌다가는 다리나 허리가 부러질 테고, 그 뒤에는 민병대에 잡힐 게 뻔해서였다.
터억! 털써-억.
‘커흑.’
가장 먼저 진흙으로 코를 막은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이어서 폐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아래층 베란다로 뛰어야 하는데…….
‘끄으-응.’
이를 악물며 난간을 붙들고 일어서는 동안에도 여전히 숨은 뚫리지 않았다. 여기에서 시간 끌면 진짜 죽는다. 어떡해서든 아래로 뛰어내려 다른 건물에 녹아들어야 한다.
‘아버지…….’
피범벅인 왼손으로 난간을 당기면서 이용우는 홀로 죽어 가고 있을 아버지 이춘섭을 떠올리려 애썼다.
“씨발 놈아! 그러니까 내가 함께 가자고 했었지?”
그러나 정작 생각난 건 욕을 시원시원하게 뱉는 박중상의 얄미운 표정이었다. 왜 그럴까? 박중상의 얼굴이 떠오르자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독기가 잔뜩 피어올랐다.
“개새끼야. 나 멀쩡해. 끄윽.”
권총을 든 오른손으로 가슴을 연달아 두들겼는데 그 직후에 숨이 뚫렸다.
살았……?
“이쪽 근처에서 사라졌어!”
“저 골목부터 전부 살펴봐.”
숨이 뚫린 이용우가 아래를 확인하려는 순간, 골목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위로 올라왔다. 빠르게 자세를 낮춘 이용우는 손에 든 권총과 점퍼 안쪽에 넣어 두었던 탄창을 확인했다.
한바탕하는 거지, 뭐 있어?
지금까지 확인한 내용을 전하면 나머지는 박중상이 알아서 처리할 거다. 마음을 정한 이용우는 폴더폰을 꺼냈다.
액정의 불빛을 가리기 위해 창틀에 몸을 낮춘 이용우가 피범벅인 왼손의 엄지로 폴더폰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끼익.
이용우가 몸을 숨긴 옆쪽의 창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나직한 주황색 불빛이 그쪽 창 베란다를 밝혔다.
철컥!
이용우는 빠르게 권총을 겨눴다.
봤겠지? 아니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거나?
옆의 창에서 남자가 고개를 내민 뒤였다.
“혹시 거기 코리안이 들어오지 않았어?”
아래쪽에서 고함이 들렸고,
“코리안?”
반문한 그가 고개를 돌렸다. 기름 바른 것처럼 단정하게 넘긴 갈색 곱슬머리, 콧수염을 두툼하게 기른 오십 초반의 남자였다.
‘쏘게 하지 마.’
총구를 바라보는 그를 향해 이용우는 고개를 저었다.
***
꽈으으응!
이번 폭발은 그 어떤 때보다 컸다.
부스스스스! 부스스!
그 직후에 높다랗게 솟았던 흙더미와 돌가루들이 비처럼 쏟아졌는데, 그 속에서 사람 몸뚱이의 역한 냄새가 강태산을 덮쳤다.
잔인한 광경이었다.
저렇게 터트리지 않으면 끝낼 방법이 없어서 내키지 않는 전투이기도 했다.
투두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두둑!
그렇다고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저들이 원하는 대로 강태산 일행이 죽어 자빠지는 것으로 끝난다.
푸슈-웅! 퍼억! 푸슝! 퍼억!
강태산은 몰려 올라오는 놈들의 이마와 심장을 한 방에 한 놈씩 뚫었다.
그 직후였다.
“와아-아!”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고함까지 지르는 놈들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예 막무가내로 달려들고 있었다.
아포코 기지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푸슝! 타앙! 타앙! 부슈-웅! 타앙!
느닷없이 아포코 기지 쪽에서 급한 총성이 연달아 울렸고,
치잇.
– 외인부대입니다. 적들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연사로 바꾸겠습니다!
외인부대 지휘관의 급한 무전이 들어왔다.
치잇.
– 대위님. 저 새끼들 아예 함께 죽기로 작정한 거 같습니다!
그 뒤에 설명처럼 들리는 서인호의 무전도 귀를 파고들었다.
푸슝! 퍼억! 푸슈-웅! 퍼억!
안다! 이미 보고 있다고!
치잇.
“외인부대. 삼점사로!”
길게 설명할 틈이 없어서 짧게 무전을 전한 강태산은 바로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당! 투두두두둑! 타다당! 콰으으응!
진짜 허접스러운 적이 아예 숨을 생각도 없이 달려드는 바람에 상황이 더욱 처절하게 변했다.
뭐냐? 뭐냐고?
푸슝! 퍼억! 푸슈-웅! 퍼억! 처컥. 처컥.
탄알이 떨어진 걸 확인한 강태산이 오른손 엄지로 버튼을 누르며 왼손으로 새로운 탄창을 빼서 소총에 꽂았다.
철컥! 철커덕! 푸슈-웅! 푸슝! 푸슝!
탄창을 교체한 강태산이 적의 이마를 연달아 뚫은 직후였다.
타다당! 타다다다당! 타다당!
세 발만 연속으로 쏘라는 강태산의 지시를 어긴 외인부대원의 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달려들었다.
‘멍청아!’
적들이 노리는 게 탄알이 떨어지는 거라고!
저렇게 연사를 택한 놈은 이미 공포에 질린 상태여서 무전으로 소리쳐 봐야 먹히지도 않는다.
얼굴이 터지고, 목이 갈라지는데도 무작정 달려드는 적들, 총에 맞아 쓰러진 뒤에도 버적버적 기어오는 모습, 어떤 전투든 터지는 몸뚱이와 피를 보면 아군이고 적군이고 간에 순간 잔인해지기 마련이지만, 이 전투는 그 드세다는 외인부대원들의 기가 꺾일 만큼 특이했다.
푸슝! 투두두둑! 푸슈-웅! 투두둑!
다행히 강태산의 팀은 아직 한 발씩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탄창 교환!”
뒤편에서 이준호의 고함이 들려서 강태산은 총구를 바로 돌렸다.
많다, 진짜.
도대체 얼마나 온 거지?
푸슝! 푸슈-웅! 푸슝!
세 발을 연달아 갈긴 다음이었다.
총구를 든 이준호가 방아쇠를 당기고 있어서 강태산은 다시 맡던 쪽으로 소총을 돌렸다.
푸슝! 푸슈-웅! 푸슝!
미안한데 아무리 막무가내로 달려들어도 물러설 수가 없어.
푸슈-웅! 푸슝! 푸슈-웅!
“요원들을 지키는 것도 책임자인 내 임무거든. 그러니까…, 이런 일에 꺾이면 안 돼. 절대 꺾이거나 포기하지 마.”
배가 온통 피로 물든 상태에서도 차민정은 강태산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었다.
푸슝! 푸슈-웅! 푸슝! 푸슈-웅!
이유슬 중사라고 있거든.
“우리 아버지. 동료들에게 해가 될까 봐 부러진 손가락을 꺾는데도 신음도 안 내셨다더라. 내가 이곳에 입소했을 때, 차동균 대령님이 직접 해 주신 말씀이야.”
푸슝! 푸슈-웅! 푸슝!
“평화유지군으로 가면 동료를 지키는 군인이 돼. 내가 너와 땀 흘린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하지 마.”
그 눈, 이유슬 중사님의 눈을 너희가 못 봐서 이러는 거라고!
독이 오른 모양이었다.
느닷없이 세상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와 동시에 이마나 심장이 터진 놈, 동료의 폭발로 팔이나 상체의 반쪽이 사라진 놈들이 비척대며 기어오고 그 틈으로 달려 올라오는 적들의 모습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푸슝! 푸슈-웅! 푸슝! 푸슈-웅!
방아쇠를 당기던 강태산은 또다시 왼손 엄지로 탄창을 뽑아냈다.
철컥! 철커덕!
탄창을 교체한 강태산이 노리쇠를 당기는 순간이었다.
치잇.
– 양동식이다. 5분 뒤에 도착 예정이다. 기총 사격을 할 테니 대비해.
느닷없이 눈앞이 환해지는 것처럼 반가운 양동식의 음성이 무전기를 타고 귀를 파고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