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00)
781화 네가 모시는 분이냐? (3)
문바키와의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염병할 전화!
절대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커피 한잔에 담배 하나 할 여유가 간절했던 강찬은 액정을 확인하고 재미있다는 투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항상 사람을 몰아세우는데 혹시 다른 이유가 있나?
“상황이 급하게 바뀐다는 말을 했던 거 같은데?”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잠수함을 보내 달라는 요구만 해도 온갖 난관을 뚫어야 하는데 공격당할 위험까지 대비하라는 건 너무하잖나.
“그렇다면 방어는 미국이나 중국에 협조를 구할까?”
– 끄응.
강찬의 대꾸에 바실리가 진한 신음을 토해 냈다.
“이봐, 바실리. 미국이나 중국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할 이유는 없어. 또 하나, 이번에 잠수함을 공격하는 놈들이 있다면 반드시 지상군을 동원할 거다.”
– 지상군? 숨겨진 용병이 또 있나?
“전에 페루의 특수부대가 돈을 받고 나타났던 것과 비슷할 수 있겠지. 괜찮다면 지상군을 상대하는 건 검은 땅의 지배자와 평화유지군 9명, 바스첸코와 스페츠나츠를 보낼 생각이다.”
– 호오?
“인원만 따지면 스페츠나츠의 작전에 평화유지군이 지원한 모양새지. 실제로 러시아의 잠수함을 지키는 임무이기도 하고.”
냉정한 가운데 모든 면을 면도날처럼 살피는 라노크와 성격대로 휘젓지 못하면 불만을 여과 없이 토해 내는 바실리, 확실히 상대하기에는 후자가 훨씬 편했다.
“어떻게 해?”
– 성장시켜 달라고 보내지 않았나? 당연히 바스첸코를 비롯해 우리 아이들을 동원해야지.
“미국이나 중국에 도움을 청하는 건?”
– 적의 잠수함을 잡는 엄청난 성과를 미국이나 중국이 차지하면 지상군의 성과 따위는 묻히겠지. 알았다. 대신 소말리아 해역으로 대잠 헬리콥터를 실은 항모를 파견할 테니까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조치를 부탁한다.
“그건 걱정하지 마.”
– 흐음.
뭔가 당한 거 같은데 못 하겠다고 하기에는 아쉬운 게 많고, 바실리의 한숨은 그런 느낌이었다.
평상시에는 돈 잡아먹는 부대로 보이는 특수부대가 정말 위급한 순간에 있고 없고의 차이는 완벽하게 승패를 가른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바실리였다. 거기에 특수부대의 훈련 수준은 그 어떤 무기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 모자란 놈을 하나 키우려니 속 터지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군.
“바스첸코는 절대 모자란 놈이 아냐. 배신할 놈은 더더욱 아니고. 녀석을 발굴하고 여기까지 성장하도록 배려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아마 다들 바실리를 다시 평가할 거다.”
– 흥!
강찬의 평가가 낯부끄럽다는 듯 코웃음을 뱉은 바실리가 전화를 뚝 끊었다.
그럼 그렇지.
액정을 내려다본 강찬은 입술을 뒤틀었다.
나이 들어서 전화 예절을 깨우쳤나 했더니 아마도 바실리는 오래 살 게 분명했다.
하나씩 준비돼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게릭 웨인의 응징을 마무리할 때였다. 아무 죄 없는 예멘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죽여 대는 일에 고개 끄덕여 놓고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 자리를 유지하기를 바라?
피식 웃은 강찬은 스마트폰의 번호를 찾았다.
***
CIA 건물에서 강찬 일행이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TV를 통해 모두 보았다. 복면을 썼지만, 건물 현관에서 피투성이인 다리를 끌어 가면서 소총을 들고 있던 여자 요원이 국가정보원 소속일 거라는 짐작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지치고 맥 빠지는 순간마다 디지털 분석실 직원들은 소총을 품고 동료를 지키던 요원을 떠올렸고, 그렇게 각자 맡은 임무에 매달렸다.
다다다닥. 다다다다닥.
소진천은 아예 옆에서 빵을 뜯어 입에 물려 줘야 할 정도였다.
맥퍼슨이 위원회에 연결했다던 통화 장치를 살펴본 소진천은 네 시간에 걸쳐 조심스럽게 분해했다.
메모리 따로, 변환장치 따로, 세세하게 살핀 소진천은 먼저 작은 분석 기계들을 만들어 연결했고, 그 뒤에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프로그램이 여러 개 필요한데 시간이 너무 걸려요.”
“어떻게 하면 돼? 뭐든 말만 해.”
“팀을 짜서 나눌까 해요.”
“일단 해 보다가 안 되면 물어볼 테니까, 어떤 기능을 해야 되는지 설명해 주라.”
소진천이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임무를 디지털 분석실 요원들은 처음 보았다. 그렇게 소진천이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두 명, 혹은 세 명씩 팀을 짜서 매달렸고, 마침내 결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끝났다. 보낼까?”
“링크만 잡아 주세요. 연결할게요.”
“오케이.”
하나씩 결과가 나올 때마다 디지털 분석실 요원들은 신의 계시를 바라는 수도사처럼 메인 모니터에 시선을 주었다.
다다다닥. 다다다다닥. 다다다닥.
소진천이 프로그램을 하나씩 연결할 때마다 메인 모니터를 가득 메웠던 명령어들이 확인조차 어려울 만큼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제발 좀 돼라.’
프로그램 작성에 매달렸던 기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매만지며 간절하게 바랄 때였다.
빠르게 올라가던 명령어들이 뭔가에 걸린 것처럼 멈춰 섰다.
실패했나?
“씨발 거. 다시 만들면 되지. 진천아! 뭐가 문제야?”
지치거나 실망하기는커녕, 디지털 분석실 요원들이 독기 충만해서 나서는 순간이었다.
화면 중앙에 커다랗게 [CONNECT]라는 명령어가 떠올라서 일정하게 깜박였다.
“진천아? 이거 뭐야?”
실망한 심정을 감추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던 기수호가 놀란 소리를 지른 뒤였다.
‘USA’라는 글자가 먼저 피어났고, 이어서 ‘NEWYORK’이라는 지역 이름과 코드 번호, 전화번호, 통화 시작과 끝난 시간, 총 통화 시간이 세세하게 올라왔다.
“와아!”
양손을 움켜쥔 기수호가 고함을 질렀고, 그와 비슷하게 요원들 모두 불끈 쥔 주먹을 가슴 앞으로 들고는 기쁨을 토해 냈다.
“절대 못 빠져나가.”
피투성이가 된 다리를 끌며 동료를 지키던 요원의 모습이 계속 가슴에 걸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소진천의 눈시울 역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고맙다. 고생했다.”
기수호를 시작으로 요원들 전체가 소진천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
방광철은 174의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을 지녔다.
칼잡이 아니지, 그렇다고 타고난 싸움꾼도 아니지, 솔직히 조직 사회에서 왜소한 축에 드는 방광철이 청주의 3대 조직 중 하나인 삼거리파 대가리가 된 건 영특한 머리와 동생들을 챙기는 우직한 성격 덕분이었다.
룸살롱에 도착한 방광철은 그대로 안쪽 룸으로 향했다.
콰앙!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서자 동생들이 상체를 수그렸고, 꿇어앉아 있던 이원창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후-.”
숨을 길게 내쉰 방광철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먼저 하나를 입에 물었고, 또 하나를 뽑아서 이원창에게 내밀었다.
“아닙니다.”
“피워, 이 새끼야.”
워낙 살벌하게 권유하는 터라 죽은 할아버지가 나타나 건네는 향을 받는 놈처럼 이원창이 공손하게 담배를 받았다.
찰칵. 찰칵.
“에이, 씨발!”
동생들이 건네는 라이터를 거부한 방광철은 들고 있던 라이터를 두세 번 흔든 뒤에 불을 켰고, 먼저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꺼지기 전에 얼른 불붙여.”
그런 뒤에 조심스럽게 자세를 낮춰 이원창 앞으로 라이터를 내밀었다.
이런 걸 이원창이 어떻게 거부하겠나?
놈이 주둥이를 길게 내민 모습으로 뻐금대서 불을 붙였다.
“후-. 피워.”
“예, 형님.”
고개를 옆으로 돌린 이원창이 담배를 빨아들일 때 방광철은 몸을 세웠다. 그가 담배를 두 모금쯤 빨아들였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덩치들이 축 늘어진 놈들을 줄줄이 끌어와서 화장실 쪽 벽에 늘어놓았다.
콧대와 붙은 눈 안쪽이 찢어진 건 기본이고, 아예 뼈가 주저앉은 것처럼 흉측하게 들어간 데다, 온통 피범벅이어서 흡사 죽은 놈들을 던져 놓은 것처럼 보였다.
손바닥으로 담배를 가린 채 들고 있던 이원창이 눈치를 살필 때였다.
“신강남파 넘버 투인 이병렬 형님을 습격했다가 강성태 큰형님께 잡힌 놈들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어리바리하게 굴면 강남부터 광주, 부산의 모든 조직에서 청주로 달려온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예, 형님.”
겁먹은 음성으로 이원창이 대답을 토해 내는 순간, 방광철은 피우던 담배를 놈의 무릎 바로 앞에 떨어트리고는 구둣발로 짓이겼다.
“몇 가지 물어볼 건데, 모른다고 하거나,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확인해 봐서 구라친 거로 밝혀지면….”
말을 삼킨 방광철은 왼쪽 무릎만 쪼그린 것처럼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는 이원창이 감추듯 들고 있던 담배를 뽑아서 불이 위로 가게 세웠다.
“이렇게 향을 피우게 돼. 알았냐? 너를 묻은 자리에 내가 이렇게 담배를 꽂아 줄 거라고.”
“예! 예, 형님.”
답을 들은 방광철은 가져다 던져 놓은 놈을 힐끔 돌아보았다.
“저 새끼들 본 적 있어?”
“피가 너무 묻어서 모르겠습니다, 형님.”
겁에 질려서 내뱉는 답을 들은 방광철이 동생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새끼들 얼굴 닦아서 이 앞에 데려와.”
“예, 형님.”
룸살롱이었다.
혹시 강성태가 술을 찾을까 싶어서 준비도 마친 상태였다. 테이블 위에 깔아 뒀던 물수건을 가져간 덩치들이 쓰러진 놈들의 얼굴을 박박 닦고서는 이원창이 보기 좋게 머리와 상체를 들어서 세웠다.
“처음 봅니다, 형님.”
“좋아. 그럼 약은 어떻게 구했어?”
이원창이 머뭇대는 순간이었다.
“야! 날 하나 주라.”
“예, 형님.”
회칼을 꺼낸 덩치 하나가 위로 든 방광철의 왼손에 자루를 얹어 주었다.
“가게로 찾아왔었습니다! 와서 약을 줄 테니까 손님들한테 돌리고, 특히 고등학생에게 돌리면 따로 챙겨 준다고 했습니다!”
날렵하게 뻗은 회칼을 본 이원창이 작정한 것처럼 말을 토해 냈다.
“얼마에 받았고, 물량은 얼마나 받았어?”
“그냥 받았습니다, 형님!”
“이 씨발 새끼가?”
“정말입니다, 형님! 돈은 필요 없으니까 풀기만 하라고, 그렇게 풀려서 맛 들인 사람들이 다시 찾게 되면 그때 왕창 벌면 된다고 했습니다, 형님!”
이게 진짜야, 구라야?
방광철이 고개를 비트는 순간이었다.
“진짜 돈을 벌 때가 되면 약을 바꿀 거니까, 당분간은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그냥 풀라고 했습니다. 고등학생부터 중학생, 초등학생에게 깔면 한 알당 10만 원씩 준다고도 했습니다!”
구라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는 지랄 맞은 예감에 방광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야, 이 씨발아! 고삐리한테 약 먹인 걸 어떻게 알고 돈을 줘? 막말로 네가 구라치면 백이든, 천이든, 그냥 받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 정말 그냥 줬습니다, 형님.”
“그래서 지금까지 얼마 받았어?”
“이천만 원 정도 됩니다, 형님.”
“얼마나 넘겼는데?”
“그게….”
휘익! 콰작!
회칼을 든 왼손 대신 방광철은 오른손을 날려 이원창의 눈을 세차게 갈겼다.
“야! 이 개새끼. 발목 끊어.”
“약 돌린 거 구라 좀 쳐서 말씀 못 드렸습니다. 약은 대강 백 알 정도 넘겼습니다, 형님!”
눈을 감싼 이원창이 다급하게 삼켰던 내용을 쏟아 냈다.
“좋아. 그럼 필성인가 하는 애는 왜 갈궈 댄 거냐? 뭘 잘못했는데?”
“인터넷으로 광고해서 주문받은 약을 팔라고 해서 고삐리 애들 불러 넘겼는데, 그걸 진필성이라는 놈이 막으면서 일이 생긴 겁니다, 형님!”
“야, 이 개새끼야!”
이걸 강성태가 들으면 뭐라고 할까?
미치겠네, 진짜!
작정한 것처럼 토해 내는 이원창의 말을 듣고 난 방광철이 원망하듯 욕을 뱉었다.
“좋아. 약은 어떻게 받아?”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그동안의 실적에 따라 현금하고 약을 주고 갑니다, 형님.”
“너는 연락할 방법 없고?”
“예, 형님.”
답을 듣던 방광철이 픽 웃었다.
“이 씨발 놈이, 잣 까는 소리 하고 있네. 연락할 방법도 없는데 저 새끼들이 어떻게 알고 병렬이 형님을 노렸겠냐?”
“정말 모릅니다, 형님.”
하는 거 보면 진짜 모르는 것도 같고?
답답하고, 속도 터지고, 막막하기까지 해서 방광철은 기다랗게 숨을 토해 냈다.
“야! 그냥 약도 주고, 돈도 준다고 하면 왜 그런지 궁금하기는 했을 거 아냐? 물어본 적도 없어?”
“약만 풀면 된다고 했습니다, 형님. 대신 인터넷하고 문자로 광고해서 주문 들어온 것만 팔아 주면 된다고 했고, 그 돈도 저한테 가지라고 했습니다, 형님.”
“뭐 이런 씨발, 잣 같은 소리가 있어?”
“정말입니다, 형님!”
이건 진짜인데?
겁먹은 얼굴과 울 거 같은 표정, 어떡해서든 살아 보겠다고 털어놓는 모습을 봐서 내용이 지랄 같기는 하지만, 이원창은 진실을 말한 게 분명했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방광철이 몸을 세울 때였다. 앞으로 끌어다 놓은 놈 하나가 꿈틀댔다.
이왕 알아보던 참이니까 직접 듣는 게 좋겠다.
방광철은 곧장 놈에게 다가가 머리칼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들여다보도록 대가리를 돌렸다.
‘가만?’
방광철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야! 이 새끼들 주머니 뒤져 봐. 칼이든, 지갑이든, 든 건 모조리 꺼내.”
“예, 형님.”
동생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주머니 속을 뽑아내다시피 뒤질 때였다.
“놓으라!”
출신을 짐작할 수 있는 억양과 말투가 놈들 중 하나에게서 불쑥 튀어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