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01)
782화 왜 병렬이를 노린 거지? (1)
차마 못 할 짓을 한다는 것처럼 김진용이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도시락을 건넸다.
“뭐 해? 얼른 먹자.”
“형님? 제가 절대 방심하지 않고 지켜볼 테니까 제대로 된 식사 하십시오, 형님.”
승용차 안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조봉진과 그 바로 뒤에 탄 김진용은 아직 본인들 몫으로 사 온 김밥 도시락을 열지도 않았다.
이런 게 문제가 된다고?
강성태는 가지런히 놓인 젓가락을 외면한 채 줄줄이 잘라 놓은 김밥을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약이 튀어나온 걸 보면 우리 눈을 속여 가며 은밀하게 돌리는 놈들이 있었던 거지. 솔직히 처음에는 보따리 장사인가 했는데, 혼자 있는 병렬이를 노렸다.”
우물거리며 말을 한 강성태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또다시 김밥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내가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아까보다 더 많은 놈들이 튀어나와서 누군가 다쳤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이렇게 김밥 먹는 게 백번 마음 편해.”
말하는 사이에도 강성태는 잘라 놓은 김밥을 입으로 가져갔다.
“김진용.”
“예, 형님.”
“부탁이다. 식구들 데리고 허세 부릴 생각이라면 병렬이 근처에 있지 마. 내가 아프게 보낸 건 달수와 정훈이로 충분해.”
우적우적, 강성태는 정말 맛있게 김밥을 먹었다.
보여 주려는 게 아니라 배가 고팠고, 커피전문점에서 늘 점심으로 먹던 메뉴여서 거부감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이 싸움 길다. 어쩌면 밤새 걸릴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먹어 둬.”
“맛있게 드십시오, 형님.”
아프게 보낸 사람은 둘로 충분하다는 말에서 서달수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고개를 짧게 숙였던 김진용이 도시락을 열고서 손가락으로 김밥을 집어 입에 넣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형님.”
운전석에 앉아 있던 조봉진 역시 뒤를 향해 돌리고 있던 상체를 숙인 뒤에 도시락을 열었다. 그리고는 역시나 손가락으로 김밥을 집어 입에 넣었다.
강성태의 말에 감동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눈치였다. 무슨 일이든 따르겠다는 각오를 드러낼 욕심도 품은 것처럼 보였다.
“캐핵! 캑!”
김밥 네 개를 욱여넣었던 조봉진이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해 대면서 앞 유리와 대시보드에 김밥 부스러기가 요란하게 튀었다.
“죄송…. 캐핵! 캑!”
“야, 이…! 얼른 물이나 마셔.”
욕을 삼킨 김진용이 내밀어 준 물병을 잡은 조봉진이 또, “감사합… 니다, 형…님.”이라는 말을 하다가 연신 기침을 뱉어 냈다.
‘에이, 모자란 새끼!’
김진용이 삼킨 욕만큼이나 거친 표정과 눈빛으로 못마땅한 심정을 표현한 다음이었다. 고개를 돌리고 물을 마신 조봉진이 조금은 진정된 얼굴로 다시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조아렸다.
인사나 절차가 까다로워서 생긴 일이었다. 몇 번을 말하지만, 다른 조직 앞이거나 꼭 그래야 할 때가 아니면 편하게 대하는 게 효율은 확실히 더 좋다. 물론, 그렇게 풀어 주면 대가리를 쳐드는 놈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거야 한 방 제대로 꽂아 주면 고쳐진다.
더 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 같아서 강성태는 조용하게 김밥을 먹었다. 세상 참. 커피전문점 매니저와 조직의 보스, 김밥은 변함이 없는데 먹는 강성태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언제 이렇게 됐을까?
커피 향을 즐기는 소박한 꿈을 향해 살고자 했는데, 어느 틈에 피 냄새 밴 손으로 김밥을 집어 먹고 있었다. 상관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후회하지 않는다.
좌절을 받아들인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 두려움과 포기가 일상이 돼 버린 생활, 마약이 설치는 멕시코의 모습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이깟 피 냄새 얼마든지 감당한다.
김밥 두 줄을 모두 먹은 강성태가 물병을 잡는 순간이었다. 가게 문이 열리며 이병렬과 진광식, 그리고 진필성이 분명한 남자아이가 나왔다.
호프집에 간다고 했으니까.
강성태는 이병렬 일행이 걸어가는 동선을 빠르게 살폈다.
청주 방광철의 덩치들이 앞쪽 승합차에 있어서 누군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최소한 이병렬과 그의 선배, 또 함께 움직이는 아이가 다치는 일은 일단 막겠지 싶었다.
뭐 하냐, 방광철?
이원창과 데려간 놈들에게서 뭔가 알아내야 하는 거 아니냐?
호프집을 향해 시선을 준 상태에서 강성태가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김진용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고개를 숙인 김진용이 스마트폰 액정을 확인하고는 “방광철입니다, 형님.” 한 뒤에 아예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진용이? 나 광철이네.
“성태 큰 형님께서 함께 듣고 계시니까 중요한 이야기면 하고, 아니면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 그게 아니라, 아까 병렬이 형님 담그려던 놈들 말이야. 이 새끼들 짱개랑 조선족이네.
김진용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릴 때, 이병렬 일행이 막 호프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어디에서 보낸 놈이래?”
– 내가 주머니를 뒤져 보라고 했는데….
방광철은 확실히 두뇌 회전이 빨랐고, 그런 면에서 이원창과 놈들의 출신을 알아낸 과정에 관해 요점만 정확하게 전해 주었다.
– 말투로 짱개인 건 알겠는데, 이 새끼들 신분증이나 여권 같은 게 하나도 없어.
내용은 대충 알았다.
‘일단 끊어.’
강성태가 입 모양으로 말을 전한 다음이었다.
“큰 형님과 의논해서 말할 테니까 나중에 통화해.”
– 그러세. 큰 형님 식사는 어떻게 했나?
“간단하게 드셨으니까 그렇게 알고, 내가 전화할게.”
통화를 마친 김진용이 어떻게 할까 하는 표정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징그러운 새끼들.
맛보기도 아니고, 돈을 집어 줘 가면서 약을 풀려고 했다는 거지?
이 정도면 강성태와 신강남파의 눈을 피해 작정하고 밀고 들어온 게 확실했다. 거기에 이병렬을 대놓고 노렸을 정도면 이미 강성태의 동선까지 파악했다는 의미도 된다.
찾으면 대가리를 감추고 숨을 테고, 그 뒤에는 청주가 아니라 또 다른 도시에서 돈에 눈이 뒤집힌 이원창 같은 놈을 찾을 게 분명했다.
어쩐다?
상황을 정리하던 강성태는 호프집 간판을 보며 눈가를 좁혔다.
“왜 병렬이를 노렸을까?”
“예? 형님?”
“우리가 내려온 걸 알았다고 치자. 왜 병렬이를 노린 거지?”
“그거야 혼자 계신 걸 확인하고 만만하게 생각한 게 아니겠습니까, 형님?”
차 안이고, 밤이어서 그런지 덩치가 큰 김진용의 음성이 유독 굵직하게 들렸다.
강성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김진용. 봉진이와 룸살롱으로 가. 가서 그 새끼들이 병렬이를 노린 건지, 아니면 병렬이 선배 혹은 아들을 노린 건지 확인해.”
“그런 거면 광철이에게 전화해서 확인하겠습니다, 형님.”
“내가 말한 걸 알아내려면 어지간히 독해야 할 텐데, 방광철이 그 정도 되겠어?”
“형님까지 내려오신 거라 무조건 알아낼 겁니다, 형님.”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형님.”
괴물을 상대하다가 더한 괴물이 된다더니, 시간 여유만 있었다면 잔인함의 끝판왕인 필리핀의 고문 기술자들을 다시 불렀을 게 분명했다. 하기는, 약쟁이들이 고등학생인 진필성을 노리는 상황에서 방법을 고민하는 건 사치일 수 있겠다.
이러다가 정말 멕시코처럼 되는 거 아닐까?
일반인들 사이에 마약이 완전히 퍼지면 바로잡는 데, 최소 50년에서 길게는 백 년 넘게 걸린다. 그나마 법원, 경찰, 정치가들이 검은돈에 물들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 그들이 넘어가면 그때는 정말 끝이다.
혹시 한국을 이런 식으로 주저앉히려는 건가?
무력 침공이 어려우니까 아예 약을 줘서 스스로 무너지게?
음료수에 섞어 마약을 퍼트린다는 기사를 떠올린 강성태는 호프집을 바라보며 볼을 씰룩였다.
‘죽인다.’
독기가 차갑게 몸을 뒤덮으면서 강성태의 눈에서 감정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
딜샤드는 히잡으로 가린 고개를 깊게 숙이고서 담벼락 옆을 걸었다.
‘하나, 둘.’
그러면서 그녀는 담장 위로 올라온 카메라를 헤아렸다.
카르발라에서 이 정도 규모의 주택은 흔히 본다. 그러나 CCTV의 개수도 그렇지만, 경호를 위한 게 분명한 남자들이 이토록 많은 집은 드물다. 거기에 이렇게까지 경호를 세워 놓고도 드나드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점도 확실히 수상했다.
모하마드 암만 압둘라 하지즈, 왕세자의 자리마저 아들에게 물려줄 만큼 시아파 세상의 완성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이라크 왕족, 그가 있기에는 턱없이 초라한 규모지만, 반대로 경비 수준은 차고 넘쳤다.
굳게 닫힌 두꺼운 철문을 지난 딜샤드가 담을 타고 도는 길을 따라 몸을 돌린 직후였다.
원피스 차림의 건장한 남자가 앞을 막았다.
‘들켰나?’
움찔, 멈췄던 딜샤드가 평범한 이라크 여자처럼 비켜나려는 순간이었다.
콰윽.
뒤에서 거센 팔뚝이 목을 감았고, 이어서 거대한 손이 그녀의 얼굴을 옆으로 휘감았다.
휙. 콰드득.
누군지 확인조차 못 한 상황에서 정보총국 이라크 요원인 딜샤드는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
브르노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루이 드 브르노’는 정보총국에서 가장 인맥과 경력이 대단한 인물로 손꼽혔다.
가장 먼저 맡은 임무가 정보총국 설립 이래 비교할 사람이 없다는 라노크 벨몽드 빠르디유의 경호 요원이었고, 그 과정에서 ‘갓 오브 블랙필드’와 유명한 작전을 함께 수행했으며, 문바키 총국장 아래에서는 현장 총괄 지휘자로 활동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데 그의 연인인 안느가 총국장이 되면서 인맥과 경력만으로도 이미 정보총국의 전설이 될 정도였다. 그런 루이가 보고를 받으며 볼을 씰룩였다.
– 현장에서 이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딜샤드를 확인했고, 현재 가족으로 위장한 요원들이 수습하고 있습니다.
정보총국의 정보망을 몰아넣다시피 해서 찾아낸 압둘라 하지즈의 비밀 주택을 감시하던 현지 요원 한 명이 살해됐다는 보고였다.
“그곳에 타깃이 있을 확률은?”
– 여전히 7:3입니다.
밀고 들어가고 싶다.
야간 기습을 통해 압둘라 하지즈를 찾아내 제거하고 싶은 욕망을 누르기 위해 루이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우선 대기하고 우리가 모르는 통로를 이용하는 건 아닌지 철저하게 살펴.”
– 위.
답을 들은 루이는 통화를 마쳤다.
짧게 감정을 정리한 루이는 메모 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국 CIA와 프랑스 정보총국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GPS 개방 시점을 확인하면 짐작할 수 있다. 오차 범위가 10센티미터 단위의 기술을 30년 전에 활용하던 정보기관이라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 안느입니다.
엉뚱한 생각을 하던 루이의 신경을 안느의 음성이 확 붙들었다. 냉정한 음성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문바키 총국장의 “보고해.” 하는 대꾸가 주는 묵직함은 좀 아쉽다.
“루이입니다. 타깃의 위치를 확인하던 현지 요원 한 명이 살해됐습니다.”
– 흐음.
나직한 숨소리로 봐서 안느 역시 직전의 루이와 비슷한 감정을 품은 게 분명했다.
– 루이. 어느 정도 확신하는 거죠?
“현장 책임자는 70퍼센트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 우리가 개별적으로 작전했을 때 성공 가능성은요?
“공식적으로 그가 감염균을 퍼트렸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입니다. 작전에 성공해도 자칫하면 프랑스가 감정적으로 이라크 왕족을 살해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경력은 이래서 대단한 능력이 된다.
가능성을 묻는 안느의 질문에 루이는 작전이 불가능한 이유를 적절하게 풀어냈다.
“부총국장님께는 제가 보고할까요?”
– 내가 하죠.
업무와 관련된 보고가 끝나서 통화를 마쳐야 할 때였다.
– 루이. 내가 잘하고 있나요?
엉뚱한 질문이 넘어와서 루이는 표정만으로 웃었다.
“CIA 요원 제거 작전을 통해 피의 마드모아젤이라는 닉네임이 생겼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CIA가 만들어 준 닉네임입니다.”
– 나쁘지 않네요. 아니, 마음에 들어요.
정보국 세상이 그녀에게 점점 피 냄새를 강요한다는 의미인데도, 오히려 안느는 새로운 닉네임에서 힘을 얻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인 의견과 현장 책임자의 위치에서 의견을 전달하자면, 누구보다 잘하고 있습니다, 마드모아젤.”
– 고마워요, 루이.
“이번 임무가 끝나면 휴가를 신청할까 합니다.”
– 내게 직접 할 거죠?
“당연합니다, 마드모아젤.”
– 그렇다면 빠르게 압둘라 하지즈의 위치를 찾아야겠군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든든하게 답을 한 루이 드 브르노가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액정을 바라보며 눈가를 좁혔다. 끝나는 줄 알았던 싸움의 끝에서 새로운 몸통이 나오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 자꾸만 그의 신경을 긁어 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