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04)
785화 지네에게 던져서 죽여 버릴 거라고! (1)
이미 몸통의 윤곽은 어느 정도 나온 상황이었다.
남은 건 셀 수 없이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낸 놈들에 대한 응징, 그리고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올 놈들이 없는지를 살피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총국이 미국 대통령의 제거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가뜩이나 CIA 요원과 수장 칼튼 숀의 일로 자존심이 무너진 미국에 반격할 확실한 명분을 쥐여 주는 꼴이었다.
“정보총국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뒷수습이 쉽지 않아. 그 정도는 알 텐데?”
– 고트 가가린이 만든 위원회가 게릭 웨인의 후원뿐만 아니라, 분쟁 지역을 찾아 갈등을 조장하고, 휴전 협상을 방해한 정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흘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무기 판매, 혹은 밀매를 주도했던 놈이니 전쟁이 가장 반가운 소식이겠고, 휴전이나 평화협정은 불경기의 신호탄쯤으로 여겨지겠다.
“고트 가가린이 아무리 무기 밀매상이라고 해도 게릭 웨인이 그 인간의 거래를 묵과했다는 정황이 있어야 해. 반대로 감염에 관한 칼튼 숀의 진술이 있으니까 그걸 이용하는 게 안전해.”
안느의 제안을 적당하게 밀쳐 낸 강찬은 화제를 바꿀 겸 해서 밀어 두었던 놈을 떠올렸다.
“압둘라 하지즈는?”
– 특정 위치를 찾았고,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대략 70퍼센트 정도 됩니다. 다만, 그곳을 감시하던 현지 요원이 살해되었을 정도로 경비가 삼엄합니다.
“흐음.”
강찬은 창으로 시선을 돌린 채 안느가 알려 준 내용을 하나씩 되짚었다.
잠수함에 관한 궁금증이 하나씩 풀리고 있었다.
당연하게 세계적인 무기 밀매상 가가린이 동원했을 거다. 그리고 지금 놈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체첸 용병을 동원한 루트가 드러나는 점이겠고.
“안느. 마누엘 야닉을 바닷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가가린에게는 차고 넘쳐. 소말리아를 기준으로 반경을 잡아. 이 근처에 고트 가가린이 와 있을 확률이 높아. 그리고 그 인간이 잠수함을 동원할 수 있는지, 동원한다면 어떤 경로인지를 파악해 줘.”
– 알겠습니다.
짧은 지시를 끝으로 통화를 마친 강찬은 느긋하게 숨을 내쉬었다.
밤새 전투를 치른 것만큼이나 진한 피곤이 어깨에 매달려 몸을 축축 늘어지게 하고 있었다.
잘 수 있을 때 자고, 먹을 수 있을 때 먹는다.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킨 강찬은 침대로 움직여 털썩 소리가 나도록 누웠다.
“개새끼들.”
그리고는 한마디 욕을 뱉어 낸 뒤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CIA 건물에서 벌어졌던 사건 이후로 숨 가쁘게 펼쳐지던 상황들이 수면 아래로 깊숙하게 박힌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여전히 추적과 도피, 반격과 응징을 위해 각국 정보국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형국이었다.
“후-.”
아프리카의 더위, 끝없이 밀려드는 정보들, 그 모든 것들을 분석해 매 순간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김형정은 눈빛과 거죽만 남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루 네 시간 정도 자나?
커피를 각성제처럼 마셔 가며 김형정은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고트 가가린에 관해서 좀 더 찾아 봐. 그래. 정보총국이 찾아낸 자료들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무기 밀매를 위한 거래 과정에서 뭔가 흘린 게 있을지도 몰라. 이런 순간에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해.”
국가정보원 대외 파트 담당과 통화하던 김형정은 정보총국이 보내 준 자료를 집어 들었다.
“그의 부친이 과거 체첸 용병을 교육했다는 기록 말이야. 당시에 그의 부친과 함께 일했던 체첸 담당자에 관한 기록이 없어. 이것도 한번 살펴 줘. 그래. 수고해.”
통화를 마친 김형정은 곧장 다른 번호를 눌렀다.
“난데, 그쪽에서 찾는 타깃은 어떻게 됐어?”
질문을 던졌던 김형정은 상대방이 하는 말에 한동안 귀를 기울였다.
“아프리카 아니면 중동에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의외로 일본에 잠입했을 수도 있어. 절대 방심하지 마. 오케이.”
두 번째 통화를 종료한 김형정은 모니터 앞쪽에 수북하게 쌓아 둔 자료의 가장 위쪽 파일을 집었다.
자료의 첫 번째 페이지는 연구실에서 찍은 히놀 사키고 가와구치의 사진이었다. 소말리아에서 제거한 하지즈의 부인으로 현장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또 하나, 지하실에서는 어떤 연구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거나, 중간에 빠져나갔다는 건데?”
사진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김형정은 눈가를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순간에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해.’
본인이 직원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던 김형정은 곧바로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주었고, 이어서 마우스를 조작했다.
달각. 달각.
그가 마우스 버튼을 두 번 누른 다음이었다.
강찬의 지시로 소말리아 시아파의 근거지를 공략했던 날짜와 시간, 장소, 사살한 적의 숫자들이 빼곡하게 모니터에 떠올랐다.
“신 팀장. 소말리아에 있는 시아파 근거지를 공격했던 날, 그 시간 일주일 이전과 이후로 모가디슈 근처에서 이륙한 비행기 기록과 명단을 확인할 수 있을까?”
“비행기 말입니까?”
“그래. 여객기, 전용기를 비롯해서 카고까지 전부.”
“그 정도는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럼 하던 거 멈추고 그거부터 확인해 줘.”
“알겠습니다.”
신광선에게 지시를 내린 김형정은 마우스를 조작해서 이번에는 소말리아 해변을 모니터에 올려놓았다.
‘비행기를 이용한 게 아니면 고트 가가린을 통해 잠수함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
비행기야 이착륙 기록이 있으니 어떡해서든 기록을 찾아보겠다만, 물밑에서 나타나 싣고 갔다면 찾을 방법이 없었다.
‘뭔가 놓친 게 있지 않을까?’
모니터에서 시선을 내린 김형정은 다시금 자료에 든 히놀 사키코의 사진에 집중했다.
물론 수영 실력이 뛰어날지 모르지만, 국가대표급 수영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잠수함을 타기 위해 먼바다까지 헤엄치기에는 소말리아 해안의 구조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
그녀를 잠수함이 있는 곳까지 태워서 가야 했고, 눈에 띄지 않아야 하며, 잠수함이 드나들었다는 말이 나와서는 더더욱 안 되…?
“해적?”
자료를 보던 김형정이 고개를 불쑥 들며 쏟아 낸 한마디에 신광선이 이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해적이 또 나타났습니까?”
질문을 받고서야 김형정은 신광선에게 시선을 주었다.
“해적들이 마리그 기지를 공략했었던 적 있었지? 그때 체첸 용병까지 나타났었고?”
“예. 지경그룹 회장과 부회장이 전투에 나섰을 만큼 치열했던 전투잖습니까? 희생자도 꽤 있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마리그 기지 습격은 왜 말씀하신 겁니까?”
“잠수함 말이야. 잠수함. 체첸 용병들이 잠수함을 이용했을 거라 추정했었잖아. 다만, 어디에 정박했는지 정확한 위치와 증거를 찾지 못해서 가능성만 남겨 두었잖나.”
자리에서 회전의자를 돌린 신광선이 김형정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만약 잠수함이 드나드는데 마리그 기지 근처를 반드시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면? 그 정도면 해적들이 굳이 마리그 기지를 습격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뒤늦게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신광선이 벽에 걸어 둔 지도를 향해 움직였다.
“본부장님의 추측도 가능성이 있지만, 마리그와 해적 마을이 꽤 떨어져 있습니다. 그쪽 해안을 이용했다면 굳이 습격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생각해 보자. 해적 마을 앞의 해안을 이용하지 못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설명을 들은 신광선이 다부진 눈을 하고서 김형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찾아보겠습니다.”
“그럼 내가 정보총국에 협조를 요청할 테니까 신 팀장이 지경의 황성규 씨에게 연락해서 지금 우리가 나눈 내용을 전해 줘.”
“예, 본부장님.”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우리 요원들을 담은 관이 한국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그들이 흘렸을 눈물과 가슴에 품었던 아픔이 국가정보원 현관 안쪽 벽면의 별 하나로 남겠지만, 그 별이 영원히 빛나게 하는 건 온전히 정보를 다루는 동료들의 몫이었다.
김형정과 신광선, 두 사람은 비장한 표정으로 각자의 임무에 매달렸다.
***
치밀어오르는 분노 탓에 바실리의 이마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 바실리 의장님. 정보국 간에 주고받는 보상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만든 암묵적인 규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행한 사태로 국장과 많은 요원을 잃은 CIA의 입장도 배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끄응.”
CIA의 그릭 허먼의 설명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사실 그의 주장에서 흠잡을 부분은 없었다.
– 아프리카 해안에 러시아 잠수함과 항모가 들어오는 걸 묵인하겠습니다. 심지어 그곳에서 대잠 작전이 벌어지거나, 그로 인한 교전까지 인정합니다. 이 정도면 미국과 CIA는 러시아 정보국에 적절한 보상을 했다고 판단합니다.
뭔가 반발하고 싶은데 이번에도 할 말이 없는 탓에 바실리는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러시아에 대한 보상은 직접 의논하라는 무슈 강의 의견에 따라 전화드렸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좋아. 다 좋은데 언제부터 담당 책임자가 나와 협상하게 된 거지?”
– 다시 말씀드리지만, 불행한 사태로 국장을 비롯해 주요 간부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새로운 국장이 임명될 때까지 제가 정보국 간의 협상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흥!”
코웃음을 뱉어 낸 바실리는 종료 버튼을 거세게 눌렀다.
한국은 핵잠수함 여섯 대를 보상으로 받아 가는데, 러시아는 소말리아 해변에 잠수함과 항공모함을 보내는 거로 퉁 치다니?
강찬에게 전화해서 따지자니 협상을 멍청하게 했다는 소리를 들을 게 빤하고, 얌전히 받아들이자니 분통이 터져서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고, 이를 뿌드득 갈아 댄 바실리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번호를 찾아 눌렀다.
신호음이 울린 다음이었다.
– 바스첸코입니다, 의장님.
“이 멍청한 놈! 너를 가르치느라 내가 어떤 수모를 감당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냐! 마음 같으면 네놈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지네의 밥으로 던져 주고도 모자라 머리를 트럭으로 갈아 버렸을 거다!”
– 죄송합니다, 의장님.
“언제까지 그곳에서 빌빌댈 셈이냐! 도대체 얼마나 더 시간을 줘야 내가 원하는 스페츠나츠 대원들을 보게 되는 거냔 말이다!”
악에 받친 바실리가 고함을 꽥꽥 지른 다음이었다.
– 시간이 길어지는 건 죄송합니다, 의장님. 다만, 이곳에서 제가 돌아가면 세상 그 어떤 조직도 의장님을 건드릴 수 없을 만큼 강한 스페츠나츠 대원을 보실 겁니다.
말은…?
사람이 참 간사하지 뭔가?
그토록 끓어오르던 바실리의 분통이 고작 바스첸코의 각오 한마디에 달궈진 냄비에 던진 얼음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지금 말한 모습이 아니면 내가 직접 머리통에 구멍을 내 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 저와 우리 대원의 이마에 구멍을 낼 수 있는 분 역시 의장님 한 분이실 겁니다. 반드시 그런 대원들과 함께 돌아가겠습니다.
바스첸코의 답을 듣는 순간, 하마터면 바실리는 흐뭇한 웃음을 흘려 낼 뻔했다.
“고약한 프랑스인들처럼 말만 늘었구나.”
누가 뭐라 해도 정보국 세상의 강자 강찬이 믿어 볼 만하다고 평가했던 바스첸코였다.
아들을 키우면 이런 감정이 들까?
“다른 생…?”
다른 생각하지 말고 더욱 매달리라는 말을 하려던 바실리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 액정을 확인했다.
“또 먼저 끊었어! 또! 내 전화를 이렇게! 이 새끼를 내가 죽일 거야! 지네에게 던져서 죽여 버릴 거라고!”
잠시 밀쳐 냈던 분통이 한꺼번에 터진 바실리가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 댔다.
***
이병렬은 새벽 1시쯤 밖으로 나왔다.
이미 문자로 식구들을 붙였다는 내용을 전해 준 뒤여서 그런지 넉넉하게 인사하고 헤어진 그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깜빡깜빡.
조봉진이 하이빔을 반짝인 다음이었다.
승용차를 향해 걸어오는 이병렬을 맞이하는 것처럼 강성태는 차에서 내렸다.
‘그만 좀 하자!’
가끔 내려서 몸을 풀기는 했지만,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승용차 안에 오래 앉아 있어서인지 몸뚱이가 곳곳에서 통증으로 휴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험한 용병 생활도 견뎠었다.
멕시코에서는 카르텔을 상대로 신경이 곤두선 삶도 보냈었다. 그 과정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삶의 교훈도 얻었다.
“식사 어떻게 했어?”
“차에서 김밥으로 대충 해결했어.”
강성태의 답을 들은 이병렬이 ‘죽고 싶었냐?’ 하는 표정으로 김진용을 돌아보았다.
“내가 차에서 해결하겠다고 우긴 거니까 그거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 줄 이야기도 있고, 조사해 달라는 내용 결과도 들어야 하니까 어디 야식이나 먹으러 가자.”
“광철이네 애들은 어떻게 해? 먼저 보낼까?”
“고생했는데 데려가서 밥이나 먹이고 보내야지.”
청주 삼거리파 식구들이 탄 승합차를 향해 고개를 돌렸던 이병렬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보스랑 밥 먹는 자리가 저놈들에게는 부담스러울 텐데, 반대로 행사에 가서 자랑할 거리가 될 테니까, 데려갑시다.”
편하게 이야기하던 이병렬의 말끝이 바뀌어 있었다.
청주 식구들이 함께 있을 테니까 지금부터라도 강성태를 예우하려는 모양이었다.
“진용아. 가서 편하게 야식 먹을 만한 식당 있는지 확인하고, 괜히 예약하거나 광철이까지 달려와서 요란 떨지 않게 단도리하고 와.”
“예, 형님.”
지시를 마친 이병렬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급하게 청주로 내려왔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는 상황이 갑갑한 눈치였다.
“어쩌면 선배라는 분 덕분에 아이들을 이용하는 조직을 찾아낼지 모르잖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을 건데 대신 뿌리를 뽑을 때까지 미뤄 둘 생각 없으니까 독하게 마음먹어.”
강성태의 의견과 각오를 들은 이병렬이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눈 끝으로 미소를 그려 냈다. 귀찮아하기는커녕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성태가 고맙다는 느낌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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