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05)
786화 지네에게 던져서 죽여 버릴 거라고! (2)
곽철호는 이슬람이나 힌두인이 머리에 두른 터번처럼 붕대를 감았다. 그러고도 그는 강철규의 침대 옆을 비우지 않았다.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는데, 소리를 듣지 못한 곽철호는 문이 열리고서야 식사가 들어온 걸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침대 옆으로 접어 두었던 식판을 펼쳤다.
그 뒤였다.
트레이를 밀고 들어온 대원이 등받이를 세운 채 기대앉은 강철규의 앞으로 식판을 올려 주었다.
“대령님 식사도 이쪽에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곽철호를 위해 트레이에 남은 식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고생했다!”
곽철호의 음성은 어눌했고, 컸다. 귀가 들리지 않는 탓이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경례한 대원이 병실을 나선 다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곽철호는 숟가락을 들어서 강철규의 왼손에 쥐여 주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간신히 고개를 끄덕여 준 강철규가 왼손에 든 숟가락을 움직였다.
당연하게 불편하겠다. 익숙하지도 않다. 거기에 팔을 움직일 때마다 오른팔과 두 다리를 절단한 부위에서 통증이 대단할 거다. 그런데도 강철규는 꿋꿋하게 숟가락을 움직여 멀건 죽을 떠먹었다.
입맛이 있을까?
잘린 오른팔과 두 다리에서 올라오는 고통은 또 오죽하겠나. 부상이 심한 탓에 고작 죽을 떠먹는 데도 입으로 가져가는 강철규의 숟가락이 애처롭게 떨렸다. 그 바람에 연신 조립식 식탁과 강철규를 덮은 모포에 죽이 떨어졌다.
‘포기하지 말자.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꿋꿋하게 버티자.’
봐라, 곽철호 대령.
나도 견딘다.
강철규는 악착같이 숟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곽철호에게 의지를 전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의지에 답하는 것처럼 테이블과 모포에 떨어진 죽을 곽철호가 닦아 냈다.
마시면 된다. 이까짓 죽. 그러나 강철규는 이 또한 훈련이라는 듯 끝내 숟가락을 이용했다. 삼분의 일쯤 흘린 식사를 마친 강철규는 식탁 구석에 놓아둔 물컵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덜덜덜, 손끝이 떨리는 바람에 바닥에 물이 떨어졌으나 강철규는 꿋꿋하게 마셨고, 곽철호는 또 묵묵하게 닦았다.
오른팔, 그리고 양쪽 다리의 무릎까지, 기둥처럼 붕대를 감은 강철규의 식사가 끝나자, 터번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은 곽철호가 식판을 옮겼다.
“곽 대령.”
자리로 돌아오는 곽철호를 손짓으로 부른 강철규가 왼손을 뻗어 아까 대원이 내려놓은 식판을 가리켰다.
“식사해.”
“잠시 식사하겠습니다!”
손짓의 의미를 알아들은 곽철호가 몸을 움직였고, 이어서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곽철호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문을 마주 보는 자리에 앉는다.
곽철호가 숟가락을 집어 들 때였다.
드르륵.
병실 문이 열렸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곽철호는 반 박자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병실에 들어서는 차동균을 보며 느닷없이 눈시울을 붉혔고, 이어서 터져 나오는 감정을 삼키려 볼을 씰룩였다.
반갑다고 와서 안아 줘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소리를 못 듣는다는 소식을 빤히 들었을 차동균이었다.
“야! 곽철호! 내가 예비역이라서 경례 안 하는 거야?”
그런데도 그는 엉뚱한 소리를 내뱉고는 곽철호를 노려보았다.
“경례하라고, 이 새끼야!”
눈빛과 표정, 입술을 보며 내용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곽철호가 환자복 차림으로 경례를 올렸고,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 차동균이 답례로 팔을 들었다.
누가 뭐래도 차동균이 상급자였다.
그가 먼저 손을 내리지 않아서 곽철호는 환자복에 터번처럼 붕대를 감은 모습으로 팔을 내리지 못했다.
“독하게 버텨, 이 새끼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나는 함께 간다. 알았지?”
이제는 지긋한 나이가 된 차동균이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으르렁거리고서야 팔을 내렸고, 이어서 곽철호가 자세를 풀었다.
욕을 먹었으면 화가 나야 맞지 않을까?
그러나 희한하게도 곽철호의 표정이 다부지게 바뀌어 있었다.
“나 커피! 커피! 마실 거야. 그러니까 너는! 얼른 식사! 끝내!”
곽철호가 알아듣도록 입술을 분명하게 움직였고, 거기에 손짓까지 해서 뜻을 전한 차동균이 곧바로 침대 옆으로 다가섰다.
“먼저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학장님.”
“듣지 못하는 곽 대령을 두고 나를 먼저 찾는 게 너무하는 거지. 그래도 장군이 오니까 곽 대령의 표정이 달라지는군.”
침대에 다가선 차동균이 강철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에 앉은 곽철호가 씩씩하게 밥을 넣고 있었다.
“차 장군.”
그리고 그런 차동균을 강철규가 나직하게 불렀다.
“우리 때와는 다르겠지?”
“어떤 점을 말씀하십니까?”
“저렇게 다쳤다고 해서 버리거나 외면하는 거 아니지?”
강철규의 나직한 질문을 받은 차동균이 다부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국과 평화유지군이 있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제가 지키겠습니다.”
차동균의 대답이 끝날 때였다.
식사를 욱여넣다시피 한 곽철호가 손바닥으로 입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소리를 듣지 못해서 고함처럼 던진 질문이었다.
“당연한 거 아냐?”
곽철호가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고개로 가리켰고, 그 모습을 본 강철규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
봄날처럼 화창해서 오히려 서글프게 느껴지는 오전이었다.
CIA가 제공한 전용기 문을 나선 허은실은 절룩이는 다리를 목발에 의지한 채 트랩에서 내렸고, 이어서 힘겨운 걸음으로 화물칸을 향해 움직였다.
머리 위에서 떨어진 햇살이 허은실의 뒤통수를 쓰다듬고 어깨에 내려앉을 때였다.
하얀 모자와 흰색 바지, 초록색 상의를 착용한 의장대 대원들이 절도 있게 움직여서 전용기 앞에 두 줄로 늘어섰다.
그으으응.
화물칸이 열린 다음이었다.
가장 앞쪽에 서 있던 대원 네 명이 다가가 안쪽에서 밀어 주는 관을 붙잡았다.
“차렷! 경례!”
구령이 떨어지면서 천천히 팔을 올린 대원들이 경례를 붙였고, 이어서 관을 붙든 대원들이 마치 한 사람처럼 뻗고 디디는 걸음으로 움직여 준비된 단상에 올려놓았다.
“바로!”
대원들이 천천히 팔을 내려 경례를 마친 다음이었다.
구호를 외쳤던 지휘자가 느릿하지만, 절도 있는 태도로 관의 머리 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는 90도를 각지게 돌아 관을 향해 섰다.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관을 향해 경례했던 지휘관이 하얀 장갑 낀 손으로 태극기가 선명하게 새겨진 배지를 내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허은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가슴에 담는다.
다시는 내 앞에서 희생되는 요원이 나오지 않도록 훈련할 거고, 더 독하게 움직일 거다.
허은실이 칼을 맞은 것만큼이나 아픈 눈빛으로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지휘관이 태극기 배지를 관의 위쪽에 내려놓았고,
콰앙.
오른손 손날로 깊게 박았다.
‘강미야!’
차마 부르지 못한 이름을 허은실은 울음과 함께 삼켰다.
햇살은 왜 이렇게 선명한지, 유독 하얗게 빛나는 태극기가 대원들의 손에 의해 세상을 덮을 것처럼 펼쳐졌다가 유강미의 관 위로 내려앉았다.
허은실은 이를 악물며 울음을 참았다. 그러나 흘러내리는 눈물만큼은 어쩌지 못했다.
***
공항에서 나온 석강호는 그길로 요청했던 승용차에 올랐다.
“내가 부탁한 건?”
“뒷좌석에 실어 두었습니다. 긴 비행에 피곤하실 테니 운전만큼은 요원에게 맡겨 주십시오.”
“비행기 안에서 지겹게 잤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일이니까 그럴 필요 없어.”
국가정보원 과장의 제안을 거절한 석강호는 그렇게 승용차를 몰아 김포공항을 빠져나왔다.
네 시간을 조금 넘게 달렸다.
한적한 곳에 차를 멈춘 석강호는 뒷좌석에 실려 있던 상자를 꺼내서는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는지, 장성의 고산마을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변함이 없었다.
개울과 갈라진 시멘트 담벼락 옆을 지나친 석강호는 서 있기도 힘들다는 듯 담벼락에 기대 있는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평상은 텅 비어 있었다.
닭장에는 달랑 두 마리 닭이 전부였고, 염소를 키우던 공간은 아예 문이 열려 있었다.
부지런한 양반이 또 어디 남의 밭에 갔나?
뒤를 돌아보았던 석강호가 다시금 앞으로 고개를 돌린 직후였다.
“언제 오셨소?”
오른쪽 담벼락 안쪽에서 나온 엄지환의 외삼촌이 놀란 얼굴에 반가움을 급하게 얹으며 다가왔다.
“지금 막 왔는데, 어머니가 안 보이시네?”
“우리 성님 오실라고 그랬능가, 곱게 단장하시더니….”
말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정면에 있던 문이 삐걱 열리고 엄지환의 노모가 고개를 내밀었다.
“성님? 성님이오?”
노모를 본 석강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바글바글하던 파마머리는 숱이 반도 안 되게 줄어들어서 속이 훤히 보였고, 문을 여는 동작 그 하나가 힘들어서 팔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성님….”
힘 빠진 목소리, 생기 잃은 눈과 볼을 본 석강호는 놀란 심정을 감추기 위해서 짓궂은 표정을 만들고는 히죽 웃었다.
“생각해서 망고 사 왔는데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우리 성님 못 보고 가면 어찌까 했는데, 시방이라도 와 줬으니까 되었소, 고맙소, 성님.”
“어라? 끝까지 안 나오고 그러시네.”
뻔뻔하게 답한 석강호가 망고 상자를 외삼촌에게 건네주는 순간이었다.
“기력이 약해짐서 한 달 전부터 포도시 방에만 계셨소.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서 씻고, 단장하시길래 이상하다, 생각 안 혔소? 그랬더니 성님이 오실라고 그랬능갑소.”
엄지환의 외삼촌이 나직하게 노모의 상태를 알려 주었다.
고개를 주억거린 석강호는 계단 두 개 높이를 올라가 노모의 방문 앞에 있는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왜 그래요? 어디 편찮으신 거야?”
“성님 오셨는데 기운이 없어서 달구도 못 잡고, 이라고 있소. 아픈 곳은 없소?”
“누가 누굴 걱정해요?”
방으로 손을 넘긴 석강호는 힘없이 늘어져 있던 노모의 말라 버린 손을 잡았다. 고마웠을까? 그렇게 잡아 주는 석강호의 손을 또 노모가 남은 손으로 덮었다.
“얼른 일어나셔야지.”
“상추도 걱정되고, 개울 앞 밭도 살펴봄사 해서 볕도 쬐고 자픈데, 시방 이래서 나가지도 못했소.”
“나랑 나가 보실래?”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은 것처럼 노모가 석강호를 들여다보았다. 일렁이는 바람 속에 켜 놓은 촛불처럼 노모의 눈에 담긴 생기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바깥을 보고 싶지만 차마 그러겠다고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었다.
“가 봅시다.”
대뜸 몸을 일으킨 석강호는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성님?”
“자, 됐으니까 팔만 이리 줘 봐요. 그렇지. 일어날 테니까 넘어가지 않게 잡고 있어요. 이제 일어납니다. 어차!”
바닥에 철퍼덕 앉듯이 자세를 낮췄던 석강호는 노모를 등에 올린 상태로 무릎을 꿇었고, 그 자세에서 몸을 일으켰다.
뭐가 이렇게 가벼워?
차라리 어깨나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무거웠다면 마음이 편했을 거다. 방을 나선 석강호가 신발을 신을 때였다. 안쪽에서 봉지 커피를 타서 나오던 외삼촌과 눈이 마주쳤다.
‘놔두세요.’
고개를 짧게 저은 석강호는 노모를 업은 채 문을 나섰다.
“어때요? 바뀐 거 있어요?”
“없소. 그대로요, 성님.”
“푸흐흐흐.”
등에 업힌 노모의 가벼움이 너무 아파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울음이 나올 것 같아서 석강호는 특유의 웃음을 흘렸다.
“우리 성님, 힘들어서 어찌까.”
“이렇게 업고 있으니까 좋구만, 그래요.”
이왕 나온 거니까.
상추, 고추밭을 지난 석강호는 포도 넝쿨이 우거진 길을 걸어 앞산의 중턱을 향해 걸었다. 이전 같으면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을 노모는 석강호의 등에 머리를 기댄 채 움직임이 없었다.
10분쯤 길을 올라간 다음이었다.
둔덕 아래 그늘에서 멈춘 석강호는 노모가 아래쪽을 내려다볼 수 있게 옆으로 몸을 돌렸다.
“저기 집 보여요?”
“보이오, 성님.”
석강호의 등에 머리를 기댄 노모가 힘없이 답을 한 다음이었다.
“성님?”
“왜요?”
노모가 나직하게 석강호를 불렀다.
“지환이요, 성님.”
그리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을 불쑥 꺼냈다.
“보이시오, 성님? 썩을 놈이 인자사 내 생각이 났는갑소.”
조금만 더 있어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느닷없이 터진 울음을 삼키느라고 석강호는 대꾸도 못 했다.
“뭐시 좋다고 웃냐, 이 썩을 놈아. 보고 자퍼서 오장육부가 다 썩어 문드러졌구만, 왜 인자사 와?”
터지려는 울음을 참느라 고개를 떨군 석강호가 볼을 씰룩이는 순간이었다. 마르디마른 노모의 팔이 넘어와 석강호의 목을 안았다.
“성님. 나는 지환이랑 가블믄 되는디, 그라믄 우리 성님 달구는 인자 누가 잡아 줄랑가, 그거시 걸리오.”
“흐으으. 흐으으.”
“고맙소, 성님. 정말 고맙소.”
하고픈 말을 다 한 모양이었다.
잠꼬대처럼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던 노모의 음성이 사그라들었고, 그와 동시에 목을 감고 있던 팔이 축 늘어졌다.
“흐으으으. 흐으으으.”
석강호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지환아. 어머니 모시러 왔다니까 나 보고 있지?”
엄지환이 하늘 위에서 듣고 있다는 것처럼 입을 연 석강호의 양 볼을 타고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껏 너를 기다리며 모질게 견디셨다. 그러니까 두 손 꼭 잡아 드려. 다시는 너 기다리지 않게 잘 모셔.”
뿌옇게 젖은 석강호의 시선 앞에서 엄지환이 주는 답처럼 햇살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