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06)
787화 심하게 다뤘어? (1)
병원에 도착한 강찬은 입구를 지키는 바스첸코 앞에서 지프를 세웠다.
이 새끼가 원래는 수다를 좋아했나?
얼른 내린 놈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확인한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헬멧 아래로 드러난 바스첸코의 눈이 특수부대 지휘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특수팀 대원의 장비 역시 눈부시게 발전했다.
권총만 해도 허리띠에 걸지 않고, 오른쪽 허벅지에 주머니를 감아서 흘러내리지 않게 허리띠에 고리를 걸어 둔다.
대검도 마찬가지였다.
특수팀 무장을 오래도록 연구해서 나온 결과에 따라 비무장지대 대원들을 흉내 낸 것처럼 왼편 어깨 앞쪽에 걸기도 한다. 수십 년 전부터 왼편 어깨 뒤에 대검을 걸었던 비무장지대 팀은 연구를 통해 익힌 게 아니라 부족한 장비를 메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부분이 확연히 다르지만 말이다.
다르게 본다면, 전투에 뛰어든 강철규의 판단 능력이 여타 특수팀과 비교해 수십 년은 앞섰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런 인물을 유치장에 넣었다가 세상에 버렸다.
그것도 개인적인 비리가 아니라 비무장지대에 들어간 대원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돌아온 현장 지휘관을 부상당한 그대로 내던졌다.
강철규와 비무장지대 대원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 강찬의 모습을 오해한 모양이었다.
“의장님과 통화 중이었습니다.”
“의장?”
“바실리 의장님입니다.”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대견할 수도 있겠고.
이런 점만 봐도 확실히 바실리는 나이 들었다.
꼬장꼬장한 과거 성격이 불쑥 나오기는 하지만, 바스첸코의 성장이 궁금해서 어쩌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어깨가 늘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염병할 안드레이가 배신했다는 사실과 놈을 사살한 충격 이후로 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바스첸코.”
“예, 무슈 강.”
“며칠 뒤에 작전이 있을 거다. 너와 대원들에게 앞을 맡길 생각인데,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강찬이 질문을 던진 다음이었다.
표정이 좀 더 단단해진 바스첸코가 다부진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이곳에 와서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피를 대가로 지불하지 않는 훈련은 늘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기회를 주시면 목숨 걸고 달리겠습니다.”
러시아의 공항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독기 어린 눈매로 내놓은 바스첸코의 답이었다. 작전에 나서는 순간을 달린다고 표현하는 스페츠나츠의 전형적인 말투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멍청아.”
“예?”
“그런 건 대원들이 내놓는 각오인 거고, 지휘관이라면 임무를 멋지게 마치고 대원들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해야지.”
강찬의 눈빛을 받은 바스첸코의 눈 끝에 아프리카의 냄새처럼 진한 각오가 스쳐 지나갔다.
이 새끼?
강찬은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어쩐지 강찬을 흉내 내는 강태산과 비슷한 표정과 눈빛을 하고 있는 느낌이어서 그랬다.
이쯤에서 하나쯤 베풀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바실리 의장의 번호를 눌러서 줘 봐.”
“지금 말입니까?”
“왜? 내 욕이라도 했어?”
“아닙니다.”
이거 봐? 점점?
뭔가 찜찜한 표정으로 번호를 누르는 바스첸코 앞으로 강찬은 아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뺏다시피 받아서 귀로 가져갔다.
그 직후였다.
– 이 멍청한 새끼! 또 무슈 강을 핑계 대면 입을 찢어 버릴 거다! 그깟 무슈 강이 뭐가 무섭다고 전화를 그따위로 끊어!
“바실리.”
강찬이 나직하게 부르면서 귀청을 찢을 것처럼 달려들던 바실리의 고함이 뚝 잘렸다. 힐끔 시선을 든 강찬의 앞에서 바스첸코는 슬리퍼를 넝마로 만든 시베리안 허스키라도 된 것처럼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 무슈 강?
“나에 대한 평가는 잘 들었다.”
– 오해가 있었다.
에라 이….
변명하는 바실리의 음성에 강찬은 나오는 웃음을 묵직하게 삼켰다.
“다음 작전은 바스첸코를 앞에 세우겠다.”
– 그게, 주연이 판단해서 아직 섣부르다고 생각하면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세월 참 더럽게 무섭다.
이제는 본인보다 더 강해진 아들을 걱정하는 나이 든 아버지처럼 들리는 바실리의 음성이 강찬은 이상하게 아팠다.
“바실리. 바스첸코는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특수팀 지휘자다. 만약 내가 인원을 마음대로 선발할 수 있다면 아마 태산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리스트의 앞에 넣을 거다.”
– 그런가?
반가움을 표시할 때의 바실리 표정을 떠올린 강찬은 씁쓸하게 웃었다.
“대신 실전에서는 피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그건 우리가 짊어진 숙명이고. 이해하지?”
– 주연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게 맞겠지.
피식.
바실리가 들을 정도로 웃은 강찬은 스마트폰 종료 버튼을 뚝 눌렀다. 그리고는 툭 던지듯이 바스첸코에게 넘겨주었다.
“명심해라, 바스첸코. 돈을 많이 벌었거나 많이 가진 놈, 전투 능력이 뛰어난 놈, 혹은 대가리가 좋아서 높은 자리에 앉은 놈, 그 모두가 최소한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죄 없는 누군가를 짓밟거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는 데 능력을 사용하면 적으로 나를 만나게 돼.”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여 준 강찬은 이만 움직이자는 의미로 시선을 앞으로 주었다.
부으으응.
입구를 들어선 지프가 평화유지군이 지키는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찬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을 확인한 강찬은 지프에서 내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나요, 대장.
왜 음성이 이렇지?
먹고 싶다던 음식은 실컷 먹었냐고 물어보려던 강찬은 잠자코 석강호의 말을 기다렸다.
– 지환이 어머니가 소천하셨소.
“어디야?”
– 장성이오. 내가 업고 마을을 돌았는데, 내 등에서 돌아가셨소. 그래서 말인데.
“다예. 작전 걱정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자리 지켜.”
– 그래도 되겠소?
“나라를 위해서 별이 됐다. 그런 아들을 키워 냈고, 남은 생을 외로움과 싸우다가 가신 분을 소홀히 하면서 다른 요원들에게 임무를 줄 수 있겠냐?”
울음을 삼키는 모양이었다.
뜨거운 석강호의 숨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왔다.
엄지환을 그렇게 마음에 담더니, 알제리에서 억울하게 보낸 모친과 누이를 떠올린 것처럼 석강호는 그의 모친을 챙겼었다.
“못 가서 미안하다.”
– 푸흐흐-흐.
웃음을 흘리고 있지만, 석강호는 울고 있었다.
“끝나고 후련해지면 전화해.”
– 고맙소, 대장.
통화를 마친 강찬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피와 심장을 던져 준 대가로 그 좁은 비무장지대를 지켜 내고도 버려졌던 대원들,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뜨거운 피를 뿌리고 별이 된 요원들과 대원들, 그들 덕분에 그나마 여기까지 온 거다.
신문성이나 하동선처럼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권력을 누리지도 못했다. 이제 노모까지 떠났으니 엄지환의 흔적은 정말 별 하나로 남겠다.
‘개새끼들.’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던 강찬은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
청주의 관광호텔에서 하루를 묵은 강성태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미역국 백반을 객실로 주문했다.
어지간하면 내려가서 먹는 게 편하다. 그러나 괜히 방광철이 덩치들 끌고 와서 인사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게 싫었고, 다음으로 언제 올지 모를 결과를 좀 더 편한 상태에서 받고 싶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형님.”
“얼른 먹자.”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강성태와 함께 움직일 때는 식사 역시 함께한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던 김진용과 조봉진이 조금은 나아진, 그러나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식탁에 앉았다.
“필리핀 작업자들이 알아낸 게 없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진광식 씨 경호 상황 확인해 보고 믿을 만하다고 판단되면 지방 돌자. 일 생긴다고 해도 경호 인원 있는 데다 여차하면 두세 시간 안에 올 수 있잖아?”
육개장을 좋아하는 이병렬은 미역국이 심심한 눈치였다. 건더기를 듬뿍 집어먹는 육개장과 달리 국물만 조금 떠먹고는 반찬 위주로 밥을 먹었다.
“혹시 광식이 형님 깬 놈들 찾을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밥을 욱여넣던 이병렬이 마치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바보, 이병렬.
다른 사람들 문제에는 시원시원하더니 정작 진광식의 문제에서만큼은 속이 빤히 보이는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눈치였고, 또 강성태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주는 게 미안해서 그런 것도 같았다.
“전에 내가 민재 일로 부탁했던 거 기억나? 맹씨 집안 셋째 딸?”
“그게 뭐?”
“나한테 그랬지? 보스인 내가 고개 숙이면 진용이나 섭우는 바닥에 엎드려야 한다고. 신강남파의 실질적인 보스, 명분상 2인자가 이병렬 아냐?”
“뭐?”
멍한 표정의 이병렬과 재미있는 표정으로 웃는 강성태를 김진용과 조봉진이 조심스럽게 살피는 앞이었다.
“도난당한 트럭, 다리를 못 쓰게 하는 칼질, 누가 들어도 일반적인 게 아니잖아?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당했다고 해도 나서야 할 건데, 신강남파 이병렬이 마음으로 고개 숙이는 분을 작업한 거 아냐?”
말을 마친 강성태가 밥을 뜨려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혹시 몰라 식탁 한쪽에 올려 두었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아르윈인데? 잠깐만.”
어차피 넷이 식탁에 앉은 참이어서 강성태는 아예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아르윈입니다, 형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님?
“지금 막 끝냈으니까 편하게 말해. 뭐 좀 나왔어?”
– 이쪽에 실어 온 놈들 말입니다, 형님. 흑룡강 출신 칼잡이입니다. 출생 신고도 안 된 놈들이어서 신원이 안 나오는데, 위조한 여권으로 들어왔답니다, 형님. 이렇게 잡혔기 때문에 돌아가도 어차피 죽는답니다.
어쩐지 버티더라니.
“그래서? 그놈들이 노린 게 이병렬이야, 진광식 씨야?”
차갑게 스마트폰을 내려다본 상태에서 강성태는 궁금한 점을 건넸다.
김진용이 이병렬을 돌아보면서, 느닷없이 펼쳐지는 도마뱀의 목덜미처럼 날카로운 긴장이 테이블 주변으로 튀어 나갈 때였다.
– 진광식 씨를 노렸답니다, 형님.”
답이 나오면서 이병렬이 상체를 세웠고, 볼을 씰룩였다.
“이유는?”
– 이 새끼들은 돈 받으면 이유 같은 거 묻지 않는답니다, 형님.
“흑룡강 출신이라면 조직 이름은 뭐야?”
– 흑룡강파라고 청부살인하고 도박, 매춘 같은 쪽으로 유명한 조직입니다, 형님.
청부살인으로 모자라 도박에 매춘까지?
어차피 좋게 끝낼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에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혹시 우리나라에 흑룡강파가 들어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나?”
– 이 새끼들은 정말 돈만 받고 건너와서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 거 같았습니다, 형님.
결국, 흑룡강파 대가리를 붙잡아서 주먹을 꽂아 줘야 알아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고생했다. 뒤처리는?”
– 이미 정리했습니다, 형님.
하기는, 필리핀의 작업자들이 달려들어서 지금 들은 정보를 알아낼 정도면 살아 있는 게 더 고통일 수 있겠다.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였다.
– 형님. 이원창 일로 말씀드릴 게 더 있습니다, 형님.
아르윈의 음성이 강성태의 시선을 당겼다.
‘야! 커피.’
그와 동시에 한참 집중하고 있던 조봉진을 향해 이병렬이 눈짓과 함께 입술을 움직였다.
어쩌겠나.
형님이 전부인 세상에 사는 게 죄지.
아쉬운 감정을 삼킨 조봉진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직후였다.
– 이 새끼 뒤에 있는 조직이 있습니다, 형님.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을 아르윈이 내놓았다.
이병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당황한 얼굴로 강성태를 보았던 그가 얼른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 몇 군데 조직에서 한두 놈씩 모여서 연합한 세력이랍니다, 형님.
“그놈들에 관해서도 알아냈어?”
– 전부 열 놈 정도 되는데 이원창에게 약을 주던 놈은 오송역전파 신대성이랍니다, 형님.
아는 이름인 모양이었다.
내용을 듣고 있던 김진용과 커피를 만들던 조봉진이 확 바뀐 표정으로 이병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알아냈어?”
– 흑룡강파 놈들을 작업한 기술자들이 이원창의 반응을 보고서 무조건 감춘 게 있다고 말하는 터라 맡겼었습니다, 형님.
“심하게 다뤘어?”
– 구석에 있는 놈의 멱살을 잡는 순간에 바지가 축축할 정도로 소변을 지렸고, 그 뒤에 있는 대로 다 불어서 손댈 것도 없었습니다, 형님.
끝까지 개새끼 진짜.
“고생했다. 이원창은 당분간 데리고 있어.”
– 알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의견을 묻는 것처럼 이병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신대성 이 개새끼!”
“아는 놈이야?”
“돼먹지 않게 거들먹거리는 게 눈이 시려서 벼르던 놈인데,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생각보다는 쉽게 풀리는데?
나직하게 숨을 내쉰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약을 준 놈의 이름까지 알았다. 그렇다면 통화했다는 놈 역시 신대성일 게 분명했다. 이렇게 간단한 내용인데 이상스러울 만큼 바르지오 만시니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건네준 전화번호에 복잡한 사연이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바르지오 만시니도 알아내지 못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됐다는 뜻이었다.
화이트 테일이 시간을 이렇게까지 끄는 이유가 뭘까?
강성태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사이, 조봉진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얼른 마시고, 신대성이 달러 가야지?”
이병렬이 권유하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아르윈보다 늦은 게 억울하다는 듯 바르지오 만시니의 번호를 액정에 띄운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