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07)
788화 심하게 다뤘어? (2)
바르지오 만시니와는 영어로 통화한다.
스피커폰 버튼을 눌러 함께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탓에 강성태는 식탁에 있는 스마트폰을 집었다.
“여보세요?”
– 미스터 강. 늦었다.
넉살 좋은 이탈리아 남자인 바르지오 만시니의 깔깔한 음성이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왔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전화가 늦은 점에 자존심 상했다는 증명쯤 되겠다.
– 한국도 마약에 관해서 만큼은 레드 레벨에 근접한 모양이다.
그래 놓고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경고를 던져 주었다.
마약에서 레드 레벨이라면 일반인을 넘어서 학생들 틈으로 마약이 유행처럼 번지는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가장 무서운 점은 함께하지 않으면 따돌림당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대는 현상이었다.
멀리 볼 것 없다.
홍콩만 해도 중고등학생 70퍼센트가 마약을 경험했고, 그중 30퍼센트가 마약을 끊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에 면회할 정도면 이해가 쉽겠다.
“내가 불러 줬던 번호가 혹시 청주에 있는 신대성이라는 놈이 사용하던 거 맞아?”
– 어느 정도까지 알아낸 거지?
약속했던 시간보다 전화가 늦은 것도 자존심 상하는데 강성태가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마뜩잖은 모양이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건 이름이 전부다. 그리고 신대성이라는 놈이 국내에 있는 몇 놈과 조직을 결성했고, 흑룡강파와 손잡았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정도?”
– 한국에 그와 함께 활동하는 조직원 열 명의 이름과 번호를 문자로 보낼 테니 확인해 봐.
“아홉 명이 아니고?”
– 내가 알아낸 건 열 명이다. 그들이 무서운 건 지금까지의 판매 루트를 완전히 무시하고, 중고등학생들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차가운 눈빛으로 변한 강성태를 이병렬과 김진용이 궁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 헤이룽 지역 갱단이 자금과 약을 지원해 주었는데 목적은 중고등학생 사이로 마약 판매 점조직을 구성하고, 그중에서 뛰어난 수완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물질적 보상을 하라고 지시한 모양이다. 홍콩의 중고등학생들을 물들인 것과 같은 방식이지.
“그건 어떻게 알아냈어? 아니, 그보다는 우리나라에 흑룡강파 조직원들이 들어와 있나?”
– 천안에 중국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더군. 가격은 엄청난데 손님들이 주문하면 다른 식당에서 배달해서 내놓는 특이한 가게라면 이해가 가나?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확실히 화이트 테일이었다.
식당으로 위장한 흑룡강파의 근거지를 알아낸 바르지오 만시니의 음성에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목적도 같겠지?”
– 미래 세대를 약으로 물들이면 10년 안에 사회 안전망이 무너지고, 저항 정신이 사라지지. 마지막으로 경제와 문화가 망가지면 가까운 강대국의 속국으로 전락한다. 중국이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겠다고 계획했다면 미스터 강에게는 미안하지만 가장 잔인하고 완벽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봐야지.
바르지오 만시니의 설명을 듣는 동안, 붉은 깃발과 마약 봉지를 들고서 들판을 뒤덮은 채 달려오는 공산당 홍위병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강성태는 이를 악물었다.
– 미스터 강. 신대성이라는 인물과 교류한 명단도 문자로 보낼 텐데 검찰, 경찰, 방송국, 언론사까지, 거물들이 꽤 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놈은 아닌 거 같던데?”
– 앞에서 말한 천안에서 주선한 모양이다. 더 자세한 걸 알려면 찾아가서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어. 하나만 충고해도 될까?
양해를 구했던 바르지오 만시니가 강성태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 미스터 강. 헤이룽 갱은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미스터 강 개인이나 함께하는 조직으로 틀어막기에는 너무 많은 희생을 감당해야 할지 몰라.
멕시코나 홍콩의 현실을 잘 아는 화이트 테일의 충고가 강성태에게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쓰러질 수 있겠지. 그렇지만, 피 흘리며 쓰러지는 나를 보며 다른 누군가가 깨닫지 않을까? 불과 70년 전에 전쟁을 치렀을 정도로 위치가 지랄 맞지만, 이렇게 일어날 만큼의 저력도 있으니까.”
– 아무튼, 조심하는 게 좋아. 미스터 강은 몰라도 함께하는 조직원들의 희생이 엄청날 수 있어.
“충고 고맙다.”
– 미스터 강의 인사를 들을 정도라니, 심각한 건 분명하군. 일이 길어질 거 같으면 중간에 곤잘레스 회장에게 연락 한번 해 주고, 통화 마치는 대로 문자 확인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조용하게 스마트폰을 내렸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내려서 든 스마트폰에서 연신 문자가 들어왔다며 진동이 전해질 때였다. 강성태의 앞으로 조봉진이 믹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내려 주었다.
강성태는 먼저 문자를 펼쳐서 이름을 확인했다.
“확인했는데 신대성을 포함해서 모두 열한 명이다.”
이게 뭔 소리야?
종이컵을 잡은 이병렬이 눈가를 좁히는 앞에서 강성태는 문자에 올라온 이름을 한 명씩 분명하게 읽어 나갔다.
“이 씨발 새끼들! 숙소 생활도 제대로 못 해서 밀려난 놈들이 돈을 물 쓰듯 쓰면서 거들먹거리더니 그 지랄을 떨었던 거네!”
이병렬이 분통을 터트린 직후였다.
강성태는 방금 있던 통화 내용을 있는 대로 풀어 주었다.
“어떻게 할 거야?”
“흩어져 있으니까 한 놈씩 잡으려 들면 다른 놈들이 숨을 수 있잖아? 어쩌면 신대성이 연락해서 이미 숨었을 수도 있고. 시간 정해서 한꺼번에 잡자.”
“한꺼번에 움직이는 게 좋기는 한데, 어디에서 말이 새 나갈지 모르는 위험도 있어. 막말로 우리가 뒤처리한 걸 코 바르는 놈이 나오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당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믿을 만한 식구들만 동원해야지.”
강성태의 의견을 들은 이병렬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경상도는 교창이 형님에게 따로 부탁하고, 호남은 충일이가 있으니까 됐고. 중간은 치곤이한테 맡기면 말이 새 나가지는 않겠네. 천안 식당은 어떻게 할 거야?”
“청주하고 천안이 멀어?”
강성태의 질문에 갸웃했던 이병렬이 씨익 웃었다.
“저쪽 머릿수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데, 우리 넷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아르윈하고 키란이면 되지 않을까?”
강성태의 답이 날아간 뒤였다.
“하여간 이런 순간에 시원시원한 건 진짜 우리가 보스가 최고라니까.”
건배를 하자는 것처럼 이병렬이 종이컵을 내밀었다.
명단을 확인하고 내용을 전하느라 시간이 흘러서 단숨에 비우기에 적당한 온도였다.
종이컵을 든 강성태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감사합니다, 형님.”
눈치를 살피던 김진용과 조봉진이 노른자위에 있는 아파트 당첨권이라도 받은 것처럼 반가운 얼굴로 종이컵을 들었다.
***
아프리카 나무들은 대개 넝쿨처럼 가지를 아래로 길게 늘어트린다. 그런 모양의 나무숲을 배경으로 앉았던 천중명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문으로 들어서는 남자를 향해 걸었다.
“어서 오십시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로 오간 인사였다.
문바키와 악수를 나눈 천중명은 소파로 안내해서 자리를 권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음료를 대접할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은 천중명이 권하는 음료를 문바키가 점잖게 받아들였다.
눈처럼 하얀 머리칼이 인상적인 문바키는 부드러운 미소 안에 칼날처럼 냉혹한 눈매를 숨긴 느낌이었다. 날씨와 비행시간 따위의 빤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직원이 들어와 두 사람 앞에 음료 잔을 놓아주었다.
“드시죠.”
고맙다는 의미로 눈인사를 건넨 문바키가 음료를 마시고는 내용물을 확인하는 것처럼 잔을 돌려 확인했다. 예상외로 입에 맞는다는 표현이었다.
잔을 내려놓는 문바키를 보며 천중명은 보고서를 통해서 확인했던 문구를 떠올렸다.
‘손가락 움직임 하나에도 정치적인 의미를 담는다.’
세간에서 라노크라는 인물을 평가할 때 흔히 사용하던 수식어였다. 그의 뒤를 이어서 정보총국장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그를 보고 배운 건지는 몰라도, 문바키 역시 시선이나 표정에 의도를 담는 느낌이었다.
잔을 내려놓은 문바키가 천중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눈빛을 통해서는 감정을 읽기 어려웠다.
이런 상사를 모시면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렵다.
저런 표정과 눈빛으로 지시하면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능력이 부족한 직원이라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거나 오히려 반기를 들 확률이 높았다.
“미국은 수탈을 경제 성장의 기본으로 삼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다 알면서 뭘 그렇게 겸손을 떠시나?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문바키가 미소지었다.
“중국을 생산 기지로 사용해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했고, 그렇게 생산한 제품을 저렴하게 이용하며 성장하던 미국의 경제가 휘청이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 더 이상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지 않는 점이고.”
빤히 아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어 억양이 살며시 묻은 영어가 속삭임처럼 들려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음으로 미국을 버티게 해 주는 군수산업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위기를 넘기고 싶은 미국 입장에서는 과거 한국의 IMF 상황처럼 미국의 경제권에 속한 나라들을 수탈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내용을 풀어낸 문바키가 재킷 안에 손을 넣어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어렵게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내려놓은 다음 천중명이 보기 좋도록 앞으로 밀어 주었다. 모델인가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백인 중년 남성의 사진이었다.
“제이어 반 할트. 영국과 네덜란드인의 피가 섞인 인물로, 그가 미국의 수탈을 계획하고 지휘하게 될 겁니다.”
“이런 인물이라면 무슈 강과 의논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가요?”
천중명의 반문을 문바키가 능숙하게 넘어갔다.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미국이 수탈을 시작하겠다고 결정하면 가장 먼저 어떤 조치를 할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글쎄요.”
그런 뒤에 정말이지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 훅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서 문바키의 다음 행동이 결정된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면 이 정도에서 일어날 테고, 천중명이 마음에 드는 답을 내놓으면 손을 잡을 거다.
천중명의 계산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어떤 선택을 내놓을지 선택하라는 것처럼 문바키가 시선을 주고 있었다.
“내가 지휘한다면, 가장 먼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겁니다.”
정답인 모양이었다.
천중명을 바라보는 문바키의 눈 끝에 미소가 걸렸다.
이왕 말한 거니까.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원하지 않아도 금리를 올리는 효과를 얻게 되고, 그에 따라 달러가 몰리게 되겠지요. 그 여파로 미국보다 금리가 낮은 나라나 인플레이션이 심한 나라는 대번에 외화 부족으로 흔들리게 될 겁니다.”
빙고!
대답이 흡족한 듯한 느낌으로 문바키가 미소지었다.
“뒤편에서 제이어 반 할트가 지휘하고, 그의 앞에서 무기 판매상과 헤지펀드 대표들이 현금을 쥐고 움직입니다.”
확인처럼 사진을 내려다보았던 문바키가 강조하는 것처럼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강찬의 날카로움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만만치 않은 눈빛이었다.
“무기 판매상은 무슈 강이 제거할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제이어 반 할트와 그의 행동대 격인 위원회만큼은 천 회장이 상대하는 게 좋습니다.”
“무슈 강이 제이어 반 할트를 제거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원래는 제거 1순위였지요.”
항상 직선으로만 달리는 강찬을 동시에 떠올린 두 사람이 비슷하게 웃은 다음이었다.
“반 할트를 제거해도 다른 누군가가 같은 욕심을 지니고 행동할 겁니다. 그래서 천 회장이 그를 상대하는 게 더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원하시는 결과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다시는 수탈이니 뭐니 하는 욕심을 품지 못하도록 베이징 쇼크 정도 되는 충격을 돌려줘야 이곳까지 날아온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마치 천중명의 질문을 예상한 듯한 문바키의 답이었다.
“경제사에 오래도록 남을 사건, 아이비리그를 비롯해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경제와 관련된 대학과 연구소에서 수백 편의 논문을 배출하게 만든 베이징 쇼크를 계획하고 지시했으며, 완벽하게 마무리한 분이니 해 볼 만한 싸움일 겁니다.”
그리고 그는 부연설명 같은 말을 덧붙였다.
“참.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두었던 말을 다 했다는 듯 후련한 표정의 문바키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얇고 기다란 벨벳 케이스를 꺼냈다.
“천 회장님 부인께서 아프리카에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탈리아에서 바로 아프리카로 이동했고, 공항에서 이곳으로 오는 바람에 선물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진을 밀어 주었던 것처럼 테이블에 벨벳 케이스를 내려놓았던 문바키가 천중명 앞으로 밀어 주었다.
“열어 봐도 되겠습니까?”
문바키가 손을 뒤집어 권하는 투로 내밀었다.
벨벳 케이스를 들어 옆으로 당겨 연 천중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새끼손톱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였다.
줄도 예사롭지 않아서 1센티미터 간격으로 쌀알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일정하게 박혀 있었다.
“두 분께 선물하고 싶어서 같은 물건으로 두 개를 주문했고, 그중 하나를 천 회장님을 대신해 사모님께 드리는 겁니다.”
사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새끼손톱 크기가 아니라 엄지손톱만 한 다이아몬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선물로 받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두 개를 주문하셨다고 하는데 남은 하나는 어떤 분이 받으시는지 답해 주실 수 있습니까?”
“김미영 전 프랑스 대사입니다.”
천중명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바키가 바로 답을 내놓았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사임하고 제이어 반 할트라는 인물을 알게 될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이 선물은 그 뒤에 준비하신 겁니까?”
너도 알고 있었구나.
문바키가 그런 의미가 분명한 눈매로 지그시 웃었다.
“사임하고 한국을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 가면 만나야 할 사람들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때 준비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라면 무슈 강과 함께하는 분들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의사분을 먼저 만나 볼까 합니다.”
“특별한 의사분이요?”
“현금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의 능력이 필요한 순간이어서 가는 대로 먼저 만나 볼 생각입니다.”
전 프랑스 정보총국장이 알고 있다니, 별거로 다 이름을 떨치시네.
유헌우를 떠올린 천중명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궁금한 얼굴로 질문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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