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08)
789화 심하게 다뤘어? (3)
병실에 들어갔던 강찬은 마침 커피를 타고 있던 곽철호에게서 종이컵을 받았다. 그리고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좀 어때?”
“방금 점심 먹었다.”
힘겨운 눈치였다. 그런데도 강철규는 부상 따위에 지지 않을 거라는 강인한 눈빛과 표정을 보여 주려 애쓰고 있었다.
“싸움이 막바지에 온 거 같아.”
“언제 출발이냐?”
“사흘 정도? 그 전에 미국 대통령은 해결될 거 같고.”
확실히 강철규는 달랐다.
간단한 한마디에 작전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채고서 질문을 던졌고, 그 끝에서 미국 대통령을 쉽게 말하는 강찬이 기가 막힌다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강찬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였다.
강철규가 파고드는 것처럼 강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난번 전투에서 희생되었다고 해도 후회나 원망 한 점 지니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한다. 그건 곽철호 대령도 마찬가지일 테고.”
터번처럼 붕대를 감고 있는 곽철호를 돌아보았던 강철규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부상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후회는 없다. 대신 지난번 전투에서 나를 빼놓았다면 평생 그 순간을 아쉬워하며 남은 삶을 보냈을 거다.”
속을 읽었다는 건가?
전에 없이 강렬한 눈빛으로 뜻을 밝히는 강철규를 강찬은 조용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우리 부원장이 내 조국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을 위해 싸운다고 믿는다. 비무장지대를 지키던 내 동료들 역시 내가 우리의 젊은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믿고 함께했었고, 그래서 훗날 누구도 나나 조국을 원망하지 않았다.”
뭔 사람 눈빛이?
그것도 부상이 심해서 얼굴이 시커멓게 죽은 양반이?
“우리가 버려졌던 건 조국에 힘이 부족해서였다. 몽골에서, 리비아에서, 그 뒤로 수많은 전장에서 싸울 때 우리는 빛나는 조국과 하늘만큼이나 높은 곳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볼 수만 있다면 백 번, 천 번, 죽어도 괜찮다고 다짐했었다.”
노인네들이 모여서 속닥거리는 건 봤다. 뭔 소리를 할까 싶었는데 방금 들은 각오를 다짐했었던 모양이었다.
“부원장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뜨거운 피를 흘리는 요원과 대원들의 희생을 모두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순간이 두려운 사람은 절대 현장에 나서지 못한다. 믿어도 좋다.”
작전에서 희생된 요원들과 대원들, 그들이 담겨서 끙끙대고 있지만,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 강찬의 속을 읽은 게 분명했다.
차동균이 뜨거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앞이었다.
무언가 더 말하려던 강철규가 느닷없이 무안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 하는 후회의 빛을 눈가에 매달고서 말이다.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는데 발가락이 가려워. 착각하는 거겠지?”
유머 감각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양반이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던 모양인데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얼음을 바닥에 뿌린 것처럼 냉랭하게 변했다.
아무렴, 무릎 아래가 절단된 강철규 앞에서 “발가락이 가렵대!” 하며 킬킬대겠나?
강찬 역시 이런 분위기를 단숨에 바꿀 말주변은 없었다.
멋쩍은 강철규가 입맛을 다셨고, 강찬은 커피를 마셨으며, 차동균은 애꿎은 창밖을 확인하는 것처럼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강찬이 종이컵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까마귀와 둥둥 떠다니는 얼음 덩어리를 밀쳐 내는 것처럼 강찬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종이컵을 옆으로 내린 강찬은 스마트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그런 뒤에 눈가를 좁히며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이 양반이 왜?
의아심이 불쑥 들었는데 통화해 보면 알게 되겠다.
“여보세요?”
– 강찬 씨? 나 누군지 알지요?
뭔가 잔뜩 기대하고, 한편으로는 서운한 듯한 유헌우의 음성이 스마트폰을 타고 단숨에 날아들었다.
–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 아니, 내가 그동안 치료해 준 사람이 한두 명입니까? 예? 내가 의료인의 자존심까지 팔아 가며 강찬 씨의 사망 진단서도 끊었던 사람이에요. 그거 잊었어요?
“원장님? 무슨 일로 그러시는 건데요?”
– 강철규 씨가 다리와 손을 절단했다면서요? 곽철호 씨는 고막을 다쳐서 듣지 못하고?
세상에,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전투의 결과를 서울에 있는 유헌우 원장이 알고 있는 거지?
혹시 정보국이 개입된 피싱 전화인가?
스마트폰을 내려서 액정을 확인하는 강찬을 강철규와 차동균, 곽철호가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가요? 아니면 두 분을 한국으로 보내실래?
“예?”
– 강철규 씨는 신경을 직접 연결하는 의수와 의족을 사용할 수 있는데,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 전에 수술하는 게 유리하고, 곽철호 씨는 인공 고막을 사용할 수 있는지 하루라도 빨리 검사해야 합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보험 회사 영업사원처럼 말을 쏟아 낸 유헌우가 불리한 조건을 가장 뒤편 작은 글씨로 써 놓는 것처럼 “물론 그렇게 치료해도 일상생활이나 가능하지 그 이상은 어렵지만요.” 하는 말을 은근슬쩍 덧붙였다.
– 환자들을 보내실 거야, 아니면 내가 가요? 저기, 내가 가려면 여기 안호상 박사님과 안다미 선생, 간호사들이 함께 가야 해서 출장비가 좀 세게 나와요.
강찬을 질리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 유헌우가 마지막에 속내를 드러냈다.
“한국으로 가면 말씀하신 수술이 가능합니까?”
– 준비는 걱정하지 말고, 수술비와 치료비 말인데, 내가 좋아하는 방식, 잊지 않았죠?
“현금 말입니까?”
– 됐네요. 언제 출발할 겁니까?
“갑자기 전화하신 거라 의논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 강찬 씨는 어디 다친 데 없어요?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의논하는 대로 전화드릴게요.”
뭔가 부수입을 노리는 듯한 질문을 적당하게 받아넘긴 강찬은 더 말이 길어지기 전에 얼른 종료 버튼을 눌렀다.
누군데 부원장이 절절 매?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강철규를 향해 강찬은 고개를 들었다.
“곽철호 대령하고 한국으로 가.”
“치료 때문이냐?”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기 싫은 눈치였다. 아프리카에 남아서 강찬을 지켜보고 싶은 욕심이 강철규의 눈에 듬뿍 올라왔다.
“이곳에서 싸우는 우리 대원들과 특수팀의 전설을 아는 요원들, 비무장 왕이라는 닉네임을 아는 정보국들에게 보여 줘.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비무장 왕은 꿋꿋하게 일어선다고. 아무리 어려운 고비가 오더라도 비무장 왕이 지키는 조국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고.”
“다녀오마.”
강철규가 답을 한 직후였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차동균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알아듣지 못하는 곽철호를 돌아보았다.
***
유충일은 새벽에 일어나서 반드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수십 번 칼질을 당했던 몸이 언제 퍼질지 모를 만큼 수시로 통증이 달려들어서였다.
은퇴하면 된다.
조성호가 나름 잘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전에 고룡동이 해 주었던 말이 그를 새벽마다 체육관으로 밀어 대고 있었다.
“받어.”
“감사합니다, 형님.”
삶이 힘든 순간이면 말이다.
인사하려고 들른 것처럼 찾는 유충일을 고룡동은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날도 고룡동은 삼겹살집으로 유충일을 데려가 소주를 따라 주었다.
잔을 내려놓은 유충일이 소주병을 들고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뭣 허냐? 앉아야. 앉아서 따러. 나랑 인사 따지고, 절차 따질 거믄, 인자 오지 마러.”
“아닙니다, 형님.”
털털하게 유충일을 앉힌 고룡동이 보기 좋은 얼굴로 잔을 받았다. 그런 뒤에 지갑을 꺼내서 안에 든 현금을 탈탈 꺼냈다.
“받아.”
“형님?”
“받아야, 씨벌놈아.”
“형니-임?”
“내가 말이다. 우리 아버지한테 진짜 졸라리 맞음서 컸다. 그래서 진짜 아버지처럼 따를 형님 모시고 자픈 마음에 깡패가 됐다. 솔직허게! 그래! 네가 가서 떠들믄, 날 맞으면 되는 거니까! 아직 그런 형님 못 만났다.”
돈을 쥔 손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고룡동이 유충일을 보며 애잔하게 웃었다.
“너나, 나나 모시는 형님 복은 없잖냐. 대신 나는 너 같은 동생을 봤으니까 그거로 됐다. 이 돈? 내가 너 생각하는 마음이다. 왜, 작아서 싫어?”
염병할, 눈물은 또 왜 왈칵 나오는 건지, 낮에 따귀를 맞을 때도 다부지게 버텼던 유충일이 고룡동의 따뜻한 말에 그만 이를 깨물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어여 받아! 그리고 가서 성호랑 애들 고기라도 끊어 줘. 알았냐?”
“감사합니다, 형님.”
“씨벌 놈이 꼭 서서 지랄을 해요!”
몸을 세워 상체를 깊게 수그린 유충일에게 돈을 건네준 고룡동이 웃는 낯으로 잔을 내밀었다.
“충일아?”
“예, 형님.”
“사람이 살다 보면 꼭 한 번은 기회가 온다더라. 진짜 믿고 따를 형님 만나게 되면 모가지 콱 내놓는 심정으로 모시자. 그라믄 되지 않겠냐?”
“예, 형님.”
“뭣 허냐! 팔 아프다.”
잔을 내밀었던 유충일은 상체를 돌려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나중에 벌어질 일을 감각적으로 알아서였을까?
병을 들어 유충일의 잔을 채워 주면서 고룡동은 또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 믿고 따를 형님 생기면 진짜 모가지 내놔. 그게 깡패야. 알았지?”
“예, 형님.”
그때는 고룡동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부리부리한 눈으로 해 주었던 고룡동의 말이 뼈에 새겨진 것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보고 싶다, 고룡동이.
“모가지 콱 내놔 부렀습니다!”
다부진 얼굴로 내놓던 그의 음성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후-.”
유충일이 숨을 길게 내쉴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스마트폰이 현실로 돌아오라는 것처럼 몸을 떨었다.
액정을 확인한 유충일은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유충일입니다, 형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님?”
– 충일아. 자리 불편하면 듣기만 해. 아니면 나중에 전화하거나.
“혼자 있습니다, 형님.”
답을 한 유충일은 확인처럼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 영업을 시작하기 이른 시간이라 룸살롱 사무실에 나와 있는 직원은 없었고, 동생 두 놈은 입구 앞에 있었다.
– 너, 광주 신도시 쪽 장대 알지?
“한장대 말씀이십니까, 형님?”
유충일이 답한 다음이었다.
상상도 못 했던 내용을 이병렬이 나직하게 풀어냈다.
‘이런 씨발 새끼가? 신강남파 구역 안에서, 그것도 내가 관리하는 지역 애들한테 약을 돌렸어?’
눈에 불똥이 탁탁 튀는 데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모가지를 따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유충일은 이를 빠득빠득 씹었다.
“가서 달아 오면 됩니까, 형님?”
– 연합한 놈들이 있거든. 어설프게 한 놈만 때려잡았다가 말 퍼지면 다른 놈들 싹 잠수 탈 거고, 흑룡강파 놈들과 손잡은 모양이라 쉽게 생각하고 갔다가는 당하는 수가 있다.
“예, 형님.”
구역을 어떻게 관리했기에 그런 놈이 나오냐는 질책 따위 이병렬은 내놓지 않았다. 그래 놓고는 또 무턱대고 갔다가 동생들이 다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이럴 때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룡동이 불쑥 떠오른 유충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일단 수배해서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꼬리 하나 붙여. 다른 쪽에서 준비 끝나면 신호 줄 테니까 그때 달아. 할 수 있겠냐?
“수배되는 대로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 형님.”
– 충일아.
“예, 형님.”
– 안산에서 처리할 거다. 뒤탈 있을 수 있다.
이병렬의 걱정이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온 직후였다.
“형님. 저는 큰형님과 형님 모시면서 모가지 콱 내놔 버렸습니다, 형님.”
유충일이 다부지게 답했고, 그 직후에 바람 빠지는 듯한 이병렬의 웃음이 들렸다.
***
최치곤은 어쩐지 밀려난 듯한 생각에 풀이 푹 죽었다.
안다. 최치곤이 함께 있으면 강성태는 물론이고, 이병렬, 김진용, 그밖에 지역 대가리들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고, 이렇게 혼자 돌아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강성태와 멀어진 것 같은 아쉬움은 또 달랐다.
커피숍을 나선 최치곤은 숙소를 향해 걸었다.
강성태를 지키겠답시고, 훈련받은 동생들로 숙소를 꾸렸는데 그러면 뭐 하나? 강성태가 혼자 다니는데 말이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숙소를 향해 걷던 최치곤은 입맛을 다시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다가 액정을 확인하고는 다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어디야?
“숙소에 가는 건데, 너는 어디야?”
– 여기 청주인데, 너 충청도 쪽 쌥쌥이라는 박철구 알아?
“그 새끼를 네가 어떻게 알아? 아니, 무슨 일이야?”
걸음을 멈춘 최치곤은 강성태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쭉 들었다.
“씨발 새끼들이 뒈지고 싶어서 댄스를 했네? 어떻게 해? 내가 달아?”
– 이번 일은 뒤탈이 있을 수 있어.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인원만 움직여야 해.
“여기 숙소 내가 꾸렸어. 문제 되면 내가 안고 갈 테니까 뭘 어떻게 하면 되는지만 말해.”
이어서 최치곤은 강성태가 들려주는 계획을 쭉 들었다.
“언제 움직여?”
– 네가 알아서 해야지. 그것까지 알려 줘야 해?
조직의 형님이 아니라 커피전문점 매니저일 때 강성태의 음성과 말투였다.
“알았다. 일단 조용하게 알아보고 찾아내면 연락할게.”
– 고맙다.
“씨발!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시간 좀 내. 일대일 못 마셔서 목이 쩍쩍 갈라졌어!”
– 이번 일 끝나고 둘이서 실컷 마시자.
마음을 전한 통화를 마친 뒤였다.
세상을 얻은 것 같은 얼굴로 최치곤이 히죽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