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10)
791화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냐? (2)
호텔로 돌아온 강찬은 연달아 전화를 받았다.
김형정, 천중명에 이어서 문바키와 통화를 마친 다음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순서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스마트폰이 몸을 떨며 액정에 양범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폐쇄해서라도 중국의 감염을 잡겠다던 양범은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을까?
액정을 확인한 강찬은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통화되십니까?
오랜만에 듣는 양범의 음성은 무거웠다.
“말씀하세요.”
– 조금 전에 감염을 퍼트렸던 상하이 3인방 중 마지막으로 남았던 주승관을 제거했고, 그를 지키던 개인 병력과 일하던 사람들, 손자, 부인과 부인의 가족까지 모두 사살했습니다.
정보국 세상에 있으면 온갖 더러운 꼴을 보게 되고, 그만큼 잔인한 지시를 내려야 하는 순간과 마주한다. 바실리는 까칠한 성격과 독한 눈매로, 라노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표정으로 그 무거움을 감추었는데, 그런 면에서 양범은 이상하리만치 상처를 가슴에 담는 타입이었다.
– 스위스 은행에 들어 있는 막대한 현금, 하루 100위안(한화 약 1만 8천 원)을 겨우 버는 농민공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아들놈들에게는 한 달 용돈으로 천만 위안을 준 것으로 모자라, 그의 손자들과 손녀들은 마주친 농민공들에게 침을 뱉어 가며 멸시했습니다.
뒈질 짓을 했던 거네.
물론, 대놓고 상하이를 폐쇄하고 그 안에서 재판 없이 사살한 게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싹수가 글러 먹은 것들을 살려 둬 봐야 복수니 뭐니 하며 앙심을 품을 테니까 말끔하게 정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 그의 부인은 물론이고, 그쪽 가족들 또한 인민의 군인들을 개인적으로 부렸고, 심지어 한 달 이상 일한 농민공의 간절한 애원에도 빈손으로 내쫓았습니다. 우리 중국은 변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사살한 사람들이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겁니다.
강찬의 생각을 알 길 없는 양범이 가족들까지 사살한 이유를 무거운 음성으로 털어놓았다.
– 그사이 상하이에서만 7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조금만 서둘렀다면, 살렸을지 모를 인원이 말입니다.
“더 늦지 않았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 그런가요?
강찬이 건넨 위로를 양범이 힘겹게 받아들였다.
– 죄송하지만, 감염균을 손에 넣은 방법과 감염 경로, 그 외에 다른 자료는 얻지 못했습니다. 다만, 서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마약을 유통시켰다는 기록을 찾았습니다.
뭐가 또 왜 이렇게 연결돼?
강찬은 직전에 있었던 천중명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마약을 판매한다는 정보가 있었고, 그런 짓을 한 근거지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 역시, 강찬 씨의 정보망은 빈틈이 없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한국에서 처리하겠다면, 우리 당국에서 항의하거나 보도되는 일이 없도록 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통화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 강찬 씨? 우리 중국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부여잡고 싶은 양범의 질문이 강찬을 불렀다.
“정보국 수장이라면 희망을 찾을 게 아니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강찬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양범은 대꾸가 없었다.
“불가능한 임무가 내려왔다고 피할 생각은 아니잖습니까? 멀리 볼 것 없이 내가 CIA 건물에 다시 들어갈 생각인데, 함께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중국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면 그 불꽃을 보고 뜨끔할 놈들이 있을 테고, 반대로 환호하며 달려올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죽일 놈들과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맥빠진 음성을 하시면, 적들이 힘을 얻고, 그렇게 되면 함께 움직였던 화이트 울프 대원들이 위험해집니다.”
– 그렇군요.
마지막 대답에서 양범은 그나마 기운을 추스른 음성이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특유의 기운이었다.
– 라노크 대사님과 통화한 느낌이긴 한데, 말씀 덕분에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소식이 있으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런 뒤에 양범은 나직한 인사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강찬은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라노크 대사와 통화한 느낌이라고?
피식 웃은 강찬은 번호를 찾아 눌렀다.
***
경상도 이교창, 호남 유충일, 서울에서는 최치곤이 조용하게 약을 돌리는 놈들을 찾아 나선 참이었다.
한꺼번에 친다.
계획은 그런데 문제는 천안에 있는 중국 요리 식당이었다.
아무리 검찰이 눈감아 주고, 방송국에서 마약에 관해 보도한다고 해도 자칫하다가는 외교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워낙 컸다.
천중명에게 상황을 의논했던 강성태가 창밖을 보며 방법을 고민할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천중명의 이름을 올린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뭔가 대책이 생겼나?
액정을 확인한 강성태는 빠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강성태입니다.”
– 천안에 중국 요리 식당 말이지. 그냥 가서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전하라더군.
“예?”
– 강 회장이 놀랄 때도 있나?
얼이 빠진 듯한 강성태의 반문이 뜻밖이라는 것처럼 천중명의 반문에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 내가 괴물 같은 양반이 있다고 했었지? 그 양반에게서 연락이 왔어. 어떤 일이 있어도 중국 정부나 언론에서 관계하지 않을 테니까 원하는 대로 하라고.
이게 말이 돼?
중국 정부와 언론을 원하는 대로 통제한다는 게?
“정말입니까?”
– 인터넷에 영상이 올라오지 않게 조심하라는 당부가 있기는 했지. 그 외에 언제 할지 알려 주면 우리나라 검찰과 경찰, 언론의 협조도 받아 주겠다는 말도 있었어.
“회장님? 어떤 결과가 나오든 협조받을 수 있다는 겁니까?”
– 그런 건 아니고.
말을 바꾸는 건 천중명의 평소 모습이 아닌데?
강성태가 눈가를 좁히는 순간이었다.
– 이왕 할 거면, 강성태라는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저절로 저어질 만큼 강력하게, 복수니 뭐니 다시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처리하라는 요구인 거지.
천중명의 답을 들은 강성태는 픽 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천중명은 헛소리를 뱉을 인물이 아니라는 믿음과 함께 이번 기회를 통해 글자 그대로 한국이라면 고개가 절로 저어질 만큼 지독하게 정리할 각오가 섰기 때문이었다.
– 믿어도 되겠지, 강 회장?
“잔인한 모습이 많을 테니까 이쪽 정보는 확인하지 마십시오.”
강성태의 다부진 각오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기분 좋은 느낌의 웃음이 건너온 뒤에 통화가 끝났다.
진짜 괴물 같은 양반의 정체가 뭐야?
바르지오 만시니를 통해 알아볼까 했던 강성태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도깨비 회장에게 어떤 어려움도 풀어 줄 요술 방망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됐지, 굳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서였다.
***
바스첸코는 대원들을 모았다. 그런 뒤에 대원들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과거 군인은 소총을 어깨 뒤편에 걸었다.
보기에 좋고, 들기 편했지만, 그러고 걷다가 적의 기습을 받으면, 어깨 뒤에 걸린 소총을 앞으로 돌리는 사이에 총알을 얻어맞아 뒈지기 딱 좋았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품에 안는 것처럼 앞으로 드는 방식이었다. 언제고 총구만 돌리면 적을 상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이건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할 때도 소총을 들어야 해서 양팔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최근 특수부대는 개조된 줄을 길게 늘어트려서 마치 커다란 펜던트를 목에 건 것처럼 소총을 가슴 앞에 대롱대롱 걸어 둔다. 양손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위급할 때는 앞에 걸린 소총의 총구를 바로 돌려서 방아쇠 당기지, 당장은 이보다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싶었다.
헬멧, 복면, 방탄조끼, 앞으로 걸어 놓은 소총, 허벅지에 감은 권총, 대원들의 무장을 확인한 바스첸코는 확인처럼 비무장 왕이 입원한 병동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그런 방법을 찾아냈을까?
수십 년 전에 그는 이미 어깨 뒤편에 대검을 걸었고, 소총의 끈을 길게 늘어트려 등 뒤로 돌렸었단다. 맞붙는 순간, 허리에서 대검을 뽑아야 하는 스페츠나츠보다 확실히 빨랐고, 등 뒤로 매달아 놓았던 소총 또한 비교할 수 없이 빠르게 앞으로 당겼다고 들었다.
스페츠나츠 대원들 사이에서도 줄을 길게 늘어트려서 등 뒤에 매달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움직일 때마다 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 탓에 사용하지 못했단다.
도대체 얼마나 훈련해야 스페츠나츠 대원들도 소리 탓에 사용하지 못한 방법을, 그것도 열악했던 한국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었을까?
배운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이 부족하다면 악착같이 강철규나 강찬을 흉내라도 내 본다.
볼을 씰룩인 바스첸코는 시선을 대원들에게 돌렸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펼쳤다.
“여기가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도로를 중심으로 이곳, 엘 허르까지 수색한다.”
바스첸코는 장갑 낀 손의 검지로 지도를 짚은 뒤에 해안가 도로를 따라 길게 움직였다.
“우리가 찾는 타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히놀 사키코로 감염균을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여자다.”
목표를 알려 준 바스첸코는 상의 왼편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지도 위에 올렸다. 단발머리를 한 젊은 여성의 사진이었다.
“대학에서 연구할 때의 사진이라 현재와는 다르겠지만, 참고로 봐둬. 감염균을 연구했던 만큼 연구 시설이나 자료를 소지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기 때문에 운반과 경호를 위한 병력이 있으리라 추정된다.”
어쩐지 강찬이나 강태산을 흉내 내는 듯한 태도로 임무를 전한 바스첸코가 사진을 지도 아래로 내린 뒤에 다시 검지로 두 지역을 찍었다.
“이곳이 지경그룹의 소말리아 베이스캠프인 마리그다. 그리고 이곳이 아까 말했던 엘 허르고. 이틀 뒤에 우리 러시아에서 출발한 잠수함이 두 곳 중 한 곳으로 들어온다. 우리의 두 번째 목표는 잠수함을 노리기 위해 숨어 있을지 모를 적을 찾아내는 일이다.”
지도를 접은 바스첸코는 복면 위로 드러난 대원들의 눈을 확인하듯 차례로 돌아보았다.
“우리가 수색에 실패하면 러시아에서 출발해 이곳에 도착한 잠수함이 당한다. 바실리 의장을 다들 알 테니, 그 뒤에 우리가 받아야 할 처벌이 어떤 걸지 다들 알 거라 믿는다. 그걸 알면서도 평화유지군과 합동으로 나가라는 걸 내가 단독 작전으로 하겠다고 요청했다.”
오후의 햇살이 병원 앞을 지키느라 제대로 씻지 못하고, 소말리아의 흙먼지가 올라앉은 데다, 강한 볕에 그을려 시커멓게 변한 대원들의 눈매를 선명하게 비추는 시간이었다.
“이 작전에서 실패해 잠수함이 공격받으면 책임은 내가 지겠다. 대신 남은 너희는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앞으로 인솔할 대원에게 내려 줘. 그렇게 다시 스페츠나츠가 강해질 수만 있다면 나는 더 바라는 거 없다.”
각오를 전한 바스첸코가 확인처럼 입을 열었다.
“질문?”
입을 여는 대신 각오를 다지는 대원들을 보며 바스첸코가 피식 웃었다. 강찬보다는 어쩐지 강태산과 더 비슷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
승합차의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유충일은 운전석 앞 유리 너머를 보기 위해 상체를 기울였다.
“씨벌 새끼.”
광주 스포디옴이라는 골프 연습장 주차장이었다.
광주를 이 잡듯 뒤져 찾아낸 한장대는 덩치가 일반 차량의 두 배쯤 되는 최고급 승용차의 운전석 앞에서 담배를 꺼내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목과 팔뚝에 낀 금목걸이와 팔찌, 엄지와 검지로만 들어서 귀에 대고 있는 스마트폰, 그 와중에 연신 침을 뱉어 가며 피우는 담배, 몸에 꽉 끼는 반소매 티셔츠, 그 아래로 드러난 팔에 그려진 요란한 문신까지, 한장대는 ‘나 거친 놈이오.’ 하는 표시를 가시 세운 고슴도치처럼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유충일은 정말이지 같잖아 보였다. 그런데 말이다. 조수석에 앉은 조성호는 아예 눈에서 쥐가 나는 모양이었다.
“형님? 씨발 새끼를 그냥 달아 버리시지요, 형님?”
“큰 형님이 기다리고 하셨으니까 얌전히 따라가기만 해. 내가 말한 준비는 어떻게 했어?”
“저 새끼 숙소 앞에 동생들 깔았고, 형님. 혹시 몰라서 주차장 바깥에 오토바이 두 대 따로 준비했습니다, 형님.”
“동생들 단도리 했지?”
“서울에서 클럽 관리하는 숙소 동생들로만 데려와서 제가 직접 오다 내렸습니다, 형님. 문제 생기면 제가 안고 갈랍니다, 형님.”
유충일의 질문을 받은 조성호가 음성에 독기를 한껏 담아서 답을 내놓은 다음이었다.
“이 새끼가 대가리 커지는 바람에 갑자기 눈이 작아진 것도 아니고, 뵈는 게 없어? 네가 뭔데 안고 가고 말고 해, 이 건방진 새끼야?”
“죄송합니다, 형님.”
어지간한 선배들도 조성호는 함부로 못 한다.
당장 클럽을 운영하면서 거느린 숙소와 동생들 숫자가 만만치 않았고, 그 과정에서 조태완, 이병렬, 김진용과 자주 의논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룡동에서 유충일에 이어 차세대 광주 일빳다라고 불리는 조성호가 욕을 먹고는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부산에서 민병련을 잡을 때 말이다.
“성태 형님께 우리 동생들 좀 살펴 달라고! 저놈들 좀 챙겨 주십사 하고 꼭 좀…! 끄으윽!”
회칼에 찔린 고통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외친 유충일의 소망을 모르는 숙소 동생들은 없다.
“형니-임!”
“가야, 이 씨벌럼아! 그냥 가라고!”
그래 놓고 홀로 복도를 막은 채 동생들을 챙겼던 유충일이었다. 그런 독종이 또 고룡동의 죽음을 알고는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며 흐느끼는 모습을 조성호는 똑똑히 보았다.
클럽 운영만 해도 그렇다.
당연하게 유충일이 맡을 줄 알았는데, 본인보다 훨씬 잘할 거라는 핑계로 그 노다지 업장의 운영을 조성호에게 넘기고는 광주의 룸살롱을 운영하며 지내고 있었다.
돈?
조지나, 그런 거로 유충일을 소홀히 모셨다가는 뒈진 뒤에도 고룡동에게 맞아서 또 한 번 뒈질 거다. 게다가 조성호가 가장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뒤에 앉은 유충일이라면 설명이 되겠나.
‘저 씨벌 놈.’
저 개새끼 때문에 광주의 중고등학생 사이에 약이 돌았고, 그 탓에 유충일이 승합차에 쪼그려 앉은 채 반나절을 넘겼다는 사실에 조성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강성태의 지시만 떨어지면….
반쯤 하얗게 눈이 뒤집힌 조성호는 운전석 문을 여는 한장대를 씹어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