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11)
792화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냐? (3)
강성태에게서 이름과 번호를 받은 최치곤은 곧바로 지문관을 찾았다.
“저기 나옵니다, 형님.”
“씨발 새끼, 꼬라지 좀 봐라.”
운전석에 앉은 덩치를 따라 시선을 던졌던 최치곤은 대뜸 욕을 뱉었다.
어디에서 복장을 지정해 주나?
저런 새끼들은 희한할 정도로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다.
당장 지문관만 해도 몸에 딱 붙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폼이나 나면 모를까, 볼록 나온 배가 강조되는 저 복장이 뭐 좋다고 쳐 입는 건지, 거기에 손목까지 내려온 문신은 또 어떻고?
최치곤의 시선 앞에서 세상 만족한 얼굴로 담배를 꺼내 문 지문관이 삼각별 달린 대형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그런 뒤에 몸을 집어넣었다.
“따라가.”
“예, 형님.”
주차장을 빠져나간 삼각별 승용차를 따라 운전석에 앉은 덩치가 조용하게 차를 몰았다. 큰 도로에 합류한 다음이었다. 지문관의 승용차를 확인한 최치곤은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논현동 근처 식당에서 지문관 찾았습니다, 형님.”
– 옆에 누구 있어?
“숙소 동생들하고 함께 따라붙었습니다, 형님.”
편하게 통화하지 못하는 게 아쉬운 듯한 강성태의 질문에 최치곤이 답한 다음이었다.
– 어떻게 찾았어?
뒤지고 다니다가 말이 나오지 않겠냐는 걱정이 담긴 질문이 넘어왔다.
“돈 좀 만진답시고 위아래 없이 설쳐서 우리 말고도 벼르는 식구들이 많았습니다. 논현동에 있는 업장에서 여자들 때린 일도 있어서 찾은 게 아니라 아예 제 발로 걸어온 수준입니다, 형님.”
최치곤의 표현이 재미있다는 것처럼 강성태의 웃음이 들렸다.
– 지문관까지 찾았으니까 이제 한 놈 남았다. 오늘 밤 움직일 거 같으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해.
“예, 형님. 들어가십시오, 형님.”
통화를 마친 최치곤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건지, 아니면 원래 그 자리에 어울렸던 건지는 모르지만, 강성태는 완벽하게 신강남파의 보스가 되었다.
사람이라는 게 뭉텅이 돈이 주머니로 들어오면, 사치에 빠지거나 거만해지지 않을까? 하다못해 업장에 출연하는 가수나 연예인들을 불러 거들먹거리고 싶은 욕심 정도는 있을 법한데 강성태는 지독할 만큼 변함이 없었다.
특히, 은퇴한다는 덩치가 나올 때면, 이병렬도 기가 막혀 할 만큼 강성태는 넉넉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아버지 도와서 농장 일 하겠다는 말 잊지 마라. 그리고 다시는 이쪽으로 돌아오지 말고. 깡패로 나를 만나게 되거나 다른 조직에 몸담았다는 말을 듣게 되면 지금과는 다를 거다.”
시원시원하게 덩치를 보낸 강성태는 경호를 맡는다는 명분으로 숙소를 꾸린 최치곤을 불렀다.
“치곤아. 이거 좀 전해 줘.”
“뭐냐, 이게?”
“우리가 퇴직금이 없잖냐? 빈손으로 돌아가면 아쉬울 때가 많을 거고, 그러면 유혹에 빠지기 쉬워. 그러니까 가서 전해 줘.”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건네받은 봉투를 확인한 최치곤이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언제까지 깡패로 살 생각 아니잖아. 그렇다고 당장 우리가 모습을 바꾸면 동남아시아부터 일본, 중국에서 온갖 더러운 놈들이 들어올 테니 신강남파는 이대로 끌고 갈 거다.”
강성태는 나직하지만, 힘이 담긴 음성으로 품고 있던 생각을 내놓았다.
“마약하고 고리대금이 돌지 못하게 만들고 나면 멕시코와 아프리카에 집중할 생각이다. 그때는 폭력 조직이 아니라 경호와 보안, 업소 운영만으로 충분히 살 수 있어. 천천히 적응하자. 우리부터.”
그때 보았던 강성태의 눈빛을 최치곤은 절대 잊지 못한다. 그 뒤부터 강성태는 최치곤에게 은퇴한 식구들의 민원을 해결하도록 지시했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깡패라는 게 말이다.
은퇴하면 홀로 서야 하고, 그 뒤로 자기 쪽 조직에 들어오라는 유혹과 함께 온갖 태클이 달려든다.
“동생. 미안하지만, 한 번만 들렀다 가 주라.”
“언제 가면 됩니까?”
생활 접어서 형님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최치곤은 싫은 내색 없이 달려갔다. 신강남파 강성태와 친구, 보스와 가장 편하게 의논할 수 있는 관계, 독종으로만 꾸린 숙소, 최치곤을 마주한 놈들은 알아서 꼬리를 말았다.
“힘들 때면 언제고 부르십시오. 대신 유혹에 넘어가면 불편하게 뵙게 됩니다.”
형님이라는 말 대신 강성태의 배려를 알려 주려는 것처럼 최치곤은 항상 깊게 상체를 숙인 인사를 하고서 몸을 돌렸다.
“형님?”
강성태를 떠올리던 최치곤의 시선을 운전하는 덩치가 깨웠다.
“뭐냐, 여기?”
“저 호텔 지하에 사우나가 있습니다, 형님. 오늘은 사우나하고서 카드 쪼이나 봅니다, 형님.”
덩치의 말을 들은 최치곤은 픽 웃었다.
“일단 들어가.”
“예, 형님.”
최치곤의 지시에 따라 덩치가 별 세 개 수준의 논현동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주차 구역으로 방향을 튼 최치곤의 시선 앞에서 지문관이 운전석에서 내리고 있었다.
“지랄한다, 저 개새끼.”
주차 구역 옆자리 경계선을 반쯤 넘겨 세워서 다른 차를 대지 못하게 해 놓은 꼴을 본 최치곤은 같잖다는 투로 욕을 뱉었다.
“저런 개새끼들이 깡패라고 주접을 떠니까 애들이 쓸데없는 것만 배우지.”
볼을 씰룩인 최치곤은 호텔 통로로 들어서는 지문관을 독하게 눈에 담았다.
* * *
예멘 공항에 터를 잡은 사우디아라비아 지원군은 그야말로 돈을 물처럼 뿌렸다. 구호 물품은 말할 것 없고, 용병 회사와 계약해서 각 지역의 경계를 세웠으며, 이어서 헬리콥터를 대량으로 임대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위에서 물을 뿌렸다.
그뿐이냐.
구호 물품을 나눠 줄 때면, 물탱크를 실은 트럭을 동반해서 이슬처럼 물을 뿌리는 공간을 지나치도록 했다.
완벽한 듯한 계획이지만, 변수는 늘 존재했다.
먼저 구호 물품을 원하는 숫자가 너무 많아서 통제가 불가능한 순간이 많았다.
투두두둑!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둑!
소총을 허공에 발사해 겨우 잠잠해질라치면 이번에는 감염된 사람이 몸부림치는 거다. 가뜩이나 구호 물품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곳에서 소총을 갈겨 대면 엉뚱한 희생자가 나온다. 그 바람에 용병들의 희생이 하나둘 늘어났고, 그런 만큼 잔인하게 대응하는 것도 문제였다.
“이 싸움에 끝이 있을까?”
공항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뱉은 지휘자의 혼잣말처럼 당장 예멘을 구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 * *
천중명은 책상의 인터폰을 눌렀다.
– 전용기가 조금 전 인천공항을 향해 이륙했다는 보고입니다, 회장님.
“고생했어요.”
인터폰에서 손을 뗀 천중명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문바키 말이다.
아무리 정보총국장의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유헌우를 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강철규와 곽철호를 위해 의수와 의족, 인공 고막까지 준비했다.
문바키가 강철규와 곽철호에게 각별한 정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대신 그는 강찬의 부담을 줄여 주겠다는 소망을 품은 게 분명했다.
또 하나, 그가 유헌우를 굳이 택한 건 두 사람을 한국으로 보내는 이유가 짐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좋은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보낸다는 명분을 위해서였다. 덕분에 강찬과 평화유지군은 두 사람을 지켜야 하는 임무에서 벗어났다.
무섭다, 정보총국.
그보다 대단한 건 강찬을 향한 문바키의 그 순수한 마음이었다. 대가를 바란 게 아니었다. 당장 강찬의 짐을 덜어 주고, 나중에 치료된 두 사람을 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문바키를 보았는데 망설일 게 뭐 있겠나.
신경을 연결하는 수술이라서 단 한 시간이라도 서둘러 출발하는 게 유리하다는 말에 천중명은 전용기를 내놓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강철규와 곽철호, 두 사람이 한국을 향해 이륙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도깨비 회장을 부리는 괴물이라니.
강찬을 떠올렸던 천중명은 입맛을 다신 뒤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유진교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 유진교입니다, 회장님.
“통화 괜찮으신가요?”
– 물론입니다, 회장님.
답을 하는 유진교의 음성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많이 힘드신 모양이네요?”
– 회장님의 빈자리와 제 나이를 새삼 실감하고 있던 참입니다.
천중명이 아프리카에 매달려 있는 동안, 지경그룹을 지휘하는 게 쉽지 않겠다. 거기에 감염에 대비해 식량과 원유 매입, 비상 경영 계획까지, 유진교의 솔직한 심정을 천중명은 이해하고 남았다.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으니까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그리고 지난번에 요청드렸던 부분 때문인데요. 식량과 원유 선물 매입을 늘렸으면 합니다.”
– 지금보다 더 많은 양을 매입하라는 말씀입니까?
“예.”
– 회장님. 이미 쌀과 옥수수, 밀, 원유를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매입했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바람에 그룹 전체 유보금이 평소의 25퍼센트 수준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유진교는 분명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안다. 그가 염려하는 최악의 상황을. 그러나 지금 매입하는 데 사용하는 유보금 1퍼센트가 위급한 순간에는 수백 배, 수천 배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내려가는 게 신호탄일 겁니다. 그 뒤로 유가가 80달러면 경계 신호, 100달러에 닿으면 위험 신호, 120달러가 되면 경제적으로 파산하는 나라가 나오게 됩니다.”
– 회장님? 외람되지만, 유가가 그 선까지 오르게 되면 미국도 견디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역시 유진교는 기본기가 탄탄한 인물이었다.
“2년 전부터 미국은 셰일가스를 무제한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급격하게 올라가는 유가의 충격을 피하려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봐야죠. 그 상태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1,000조가 넘는 국채를 발행하면 허덕이는 동아시아와 불황에 빠진 유럽의 달러가 미국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 미국이 그렇게까지 채권을 발행할 수 있습니까?
“그보다 월등히 많은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습니다.”
– 후-.
놀란 마음과 믿기지 않는 심정을 표현했던 유진교가 “죄송합니다, 회장님.” 하고 길게 내쉬었던 한숨을 사과했다.
하기는, 미국이 느닷없이 우리 돈 천조 원에 해당하는 국채를 발행한다고 하면 누군들 믿을 수 있겠나.
“식량도 마찬가지입니다. 값싸게 생산한 쌀과 밀, 옥수수에 의존하던 나라들은 통제를 시작하는 순간, 크게 휘청이게 됩니다. 거기에 유가 상승, 엄청난 채권 발행, 그로 인한 금리 상승 효과까지 겹쳐지면 버틸 수 있는 나라가 몇 되지 않을 겁니다.”
– 저는 중국을 노리는 선에서 끝낼 줄 알았습니다.
“중국이 지닌 미국 국채의 절반이 이미 시장에 풀렸습니다. 그만큼 중국도 달러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 거겠죠. 중국 경제가 휘청이면 차관을 받는 대가로 친중 정책을 펼쳤던 나라들은 아예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 미국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받기에는 너무 가혹한 처벌이군요.
천중명의 설명을 듣고 나서 유진교의 말투가 조금씩 냉정해지고 있었다.
“처절한 싸움이 될 겁니다. 과거에 있었던 외환 위기는 뭉쳐서 헤쳐 나갔을지 몰라도, 이번은 확연히 다릅니다. 자칫하면 군사적 분쟁도 계산해 두어야 합니다.”
– 회장님?
설명을 듣던 유진교가 나직하게 천중명을 불렀다.
– 이런 순간을 예상하고 대비하시면서 정말 개인적인 욕심이 나지 않으십니까?
그런 뒤에 유진교도 사람이었구나 싶을 만큼 인간적인 질문을 내놓았다.
개인적인 욕심이라?
하기는,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 전체 부의 20퍼센트는 어렵지 않게 먹겠다.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렸던 천중명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웃었다.
“개인적인 욕심은 이런 일을 계획했던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채워 볼까 합니다.”
– 미국을 상대로 주머니를 채우신다는 말씀입니까?
“미국은 판을 깔아 주는 거고, 실제로 약탈하는 건 헤지펀드나 사모펀드가 나서지 않을까요?”
– 솔직하게 어떻게 하실지 짐작도 못 하겠습니다. 대신 저는 말씀하신 지시들을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중명의 성격을 아는 유진교의 답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끝났다. 스마트폰을 내린 천중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향해 돌아섰다.
제이어 반 할트?
그리고는 사진으로 보았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돈이라는 게 말이지.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면 독이나 칼로 변한다. 그 칼로 상대방을 쓰러트리려고 한다면, 본인 역시 찔리거나 목이 잘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고.
“도깨비가 휘두르는 방망이에 맞으면 견디기 쉽지 않을 겁니다, 제이어 반 할트.”
마치 그가 거실 유리 앞에 서 있다는 것처럼 천중명은 나직하게 경고를 던졌다.
* * *
문바키, 이 기특한 새끼.
강철규와 곽철호를 태운 전용기가 소말리아의 하늘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강찬은 피식 웃었다.
“대장. 이런 배려를 준비할 정도면 문바키도 이제 중닭이 된 거 아닙니까?”
활주로 안쪽의 안전 바에 팔을 걸치고 몸을 기댄 제라르가 한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그런데 놈의 눈빛만큼은 확실히 뭔가 기대하는 심정을 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해.”
“꼭 그런 게 있다기보다는 문바키가 이렇게 판을 깔아 줬는데 그냥 있을 건 아니잖습니까?”
강찬은 힐끔 제라르를 보았다.
“그래서? 이제부터 뭘 해야 할 거 같냐?”
“바스첸코에게 히놀 사키고와 용병을 찾아내라고 했으니까, 고트 가가린 요르고스가 남은 거 아닙니까? 거기에 압둘라 하지즈와 미국 대통령의 제거도 있고, 일은 많은데 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간혹 제라르가 뻔뻔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꼭 그랬다. 강찬은 피식 웃은 뒤에 전용기가 사라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고트 가가린 요르고스는 강태산에게 맡길 생각이고.”
이거 봐, 이거!
원하는 답을 들은 제라르가 안전 바에 기대고 있던 몸을 천천히 세웠다.
“압둘라 하지즈의 제거는 이용우와 유인강이 움직여야 할 거고.”
“대장과 내가 게릭 웨인을 맡는 겁니까?”
강찬은 제라르를 향해 느긋하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 겁줄 새끼가 하나 있으니까 그거 먼저 하자.”
답이 만족스러웠나?
몸을 세운 제라르가 볼의 흉터를 우그러트리며 특유의 표정으로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