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12)
793화 뭐 이렇게 전화 예절이 없어? (1)
강태산은 대원들을 모았다. 그리고는 지도를 펼쳐 마리그와 엘 허르에 이어지는 도로를 검지로 가리켰다.
“이 도로를 따라 바스첸코와 스페츠나츠 팀이 수색할 거다. 히놀 사키코라는 연구원과 근처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용병들을 찾는 임무다.”
이어서 강태산은 상의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지도 위에 올려놓았다.
“이 남자가 세계적인 무기 판매상이자, 밀매업자인 고트 가가린 요르고스다. 헤지펀드 대표로 뉴욕에서 활동했을 만큼 변장에 능하고, 특수팀 출신 대원들을 친위부대로 거느렸다고 알려졌다.”
이어서 강태산은 마리그와 엘 허르 두 곳을 검지로 찍었다.
“마리그와 엘 허르, 이 두 곳이 잠수함 접근이 가능한 해안이다. 마리그 습격은 다들 알지? 당시에는 해적의 복수극 정도로 추정했는데, 지금은 잠수함이 접근 가능한 해안을 확보하기 위한 기습이었다고 확신한다는 정보도 있었다.”
위치를 확인시킨 강태산은 지도를 접어 사진과 함께 손에 들었다. 그런 뒤에 시선을 들어 대원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강태산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처럼 소말리아의 강렬한 햇빛이 단단해 보이는 대원들의 표정에 두꺼운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뉴욕에서 부원장님이 CIA를 상대하는 모습을 우리 모두 TV를 통해 봤다. 그리고 우리는 하릴 하지즈를 잡았다. 그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선배님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강철규 학장님과 곽철호 대령님이 부상을 당했다.”
덤덤했지만, 이상스레 강태산의 눈빛에는 이전과 다른 무게가 실렸고, 거역하기 어려운 위압감마저 스며 있었다.
“이 싸움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치료제의 보급이다. 그러나 지금은 치료제를 확보하고도 보급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치료제를 보급했다가 변종 감염균이 퍼지면 여러 가지 감염을 두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혼선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강철규와 함께 현장을 뛰면서 강태산은 확실히 성장했다. 거기에 강찬의 지시를 직접 받으면서 지휘자가 갖춰야 할 태도와 책임감을 제대로 배운 느낌이었다.
“변종 감염균을 만들려는 인간들, 그에 동조하는 세력을 제거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피 흘린 선배들과 강철규 학장님, 곽철호 대령님의 희생이 허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대가는 또다시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현장밖에 없다.”
예멘과 강철규, 곽철호를 떠올린 것처럼 볼을 씰룩인 강태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바스첸코와 다르게 우리는 도로 바깥을 수색한다. 고트 가가린이 데리고 있는 병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번 임무는 위험하다. 다만, 이번 수색에서 그를 제거하면 감염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더 많이, 더 빠르게 구할 수 있다.”
설명을 마친 강태산은 움직일 때라는 것처럼 들고 있던 지도와 사진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준호, 네가 진행하는 도로 왼편을 맡고, 임우람이 해안가, 그리고 내가 이끄는 팀이 지원과 좀 더 외곽을 수색한다. 질문?”
강태산이 시선을 돌려 확인하는 동안 입을 여는 대원은 없었다.
“이동해!”
피식 웃은 강태산이 지시하면서 대원들이 트럭과 지프에 올랐다.
그 직후였다.
강태산은 오후의 중간을 넘어가는 소말리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하늘 어딘가에 강철규와 곽철호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 * *
이 정도로 속이 없지는 않은데?
이용우가 의아해할 만큼 자밀라는 시장과 상점을 돌아다녔다. 말이 좋아 쇼핑이지, 이용우가 보기에는 완전히 관광 온 사람의 모습이었다.
뭐, 사흘 정도 마지막 여행을 즐기자고 했으니 자밀라의 이런 행동을 어느 정도야 이해한다. 하지만, 줄줄이 사는 물건들만큼은 이용우의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얌전하게 고르기나 하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끈질기게 흥정하는 자밀라를 지켜야 하는 탓에 이용우는 눈알을 팽팽 굴려야 했다.
‘시아파가 너를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정신을 차리라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용우는 사흘만 참는다는 심정으로 견뎠다.
“점심 먹으러 가요.”
“그래! 가자! 가!”
이용우의 표정과 태도를 정말 몰라서 저럴까?
자밀라는 문을 떼 놓은 카페를 선택했다.
이슬람 세상에서 여자가 홀로 돌아다니거나 보호자인 남자 없이 식당에 들어가는 건 금기였다. 물론, 이용우와 함께였다. 그러나 동양인 남자인 데다, 다른 지역보다 너그러운 소말리아라고 해도 자밀라는 확실히 지켜보는 사람들의 신경을 긁는 게 분명했다.
“이거 먹어 봐요.”
압권은 손으로 뜯은 밀가루 빵에 소스를 묻혀서 이용우의 입에 넣어 줄 때였다.
미쳤나?
아니면 지켜보던 사람들이 더는 못 참고 일제히 달려들게 하려는 건가? 그래서 이곳에서 함께 죽자고?
“얼른요.”
이용우의 시선에 담긴 의문을 확실하게 알아챘을 자밀라가 세상 천진한 얼굴로 미소 지을 때는 그야말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적우적, 쥐약을 씹는 심정으로 밀가루 빵을 먹는 이용우 앞에서 자밀라는 흡족한 듯 주스를 입으로 가져갔다.
“이제 어디로 갈 거냐?”
“호텔에 가려고요.”
길고, 위태위태했던 쇼핑과 식사를 마친 자밀라가 마침내 호텔에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게 이용우와 자밀라는 점심과 저녁의 중간쯤에 호텔로 돌아왔다.
객실에 들어선 다음이었다.
“뭐냐, 이게?”
오전 내내 상점과 재래시장에서 샀던 물건들을 테이블 옆에 내려놓은 이용우가 결국 불만을 터트렸다.
“뭐가요?”
“지겹도록 끌어 대는 흥정도 그렇지만, 카페에서 음식을 입에 넣어 주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너도 잘 알 거 아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냐고?”
거칠게 묻는 이용우를 자밀라가 커다란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압둘라 하지즈 왕자가 나 때문에 자존심 상한 건 알죠?”
“그 이야기가 왜 여기에서 나와?”
“나같이 천한 여자와 마주했던 것도 자존심 상했을 텐데, 미스터 리가 찻잔을 밀어 주었고, 사과까지 하라고 해서 얼굴에 침을 뱉은 것처럼 만들었잖아요.”
“그 이야기가 왜 여기에서 나오냐고 묻잖아!”
“그 뒤로 수행원들이 반발했다가 바깥에 있는 군인들이 뛰어 들어오는 바람에 자존심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고개 숙였잖아요.”
“야! 자밀라!”
“숨어 있는 왕자가 내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할 거 같아요?”
“뭐?”
이용우는 바보처럼 외마디 반문만 던졌다. 그리고는 자밀라를 향해 눈가를 좁혔다.
“왕자가 무시당했어요. 그것도 천한 여자한테요. 나를 죽여도 평생 치욕으로 남을 일인데, 내가 대놓고 이런 모습으로 그 앞을 다니면 어떨 거 같냐고요?”
그야 목을 잘라서 걸어 놓…?
“압둘라 왕자가 숨어 있는 거죠?”
“뭐?”
“나랑 함께 가요.”
이용우는 멍한 표정으로 반문조차 못 했다.
“의심 가는 곳이 있는 거잖아요? 그 앞을 내가 떠들고 다니면 왕자는 절대 참지 못해요. 왕자가 참으려 해도, 반발해서 먼저 움직이는 수행원이 반드시 나올 거예요.”
고개를 비튼 이용우는 창을 배경으로 선 자밀라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더운 날씨에 오래 걸었던 만큼 땀이 은은하게 배여 있는 이마 아래에서 커다랗게 반짝이는 눈이 이용우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 혹시 한국말 알아듣냐?”
“아니요.”
“그럼 압둘라 하지즈가 숨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통화할 때 미스터 리를 보며 짐작했어요.”
“내가 어땠는데?”
“부원장이라는 분이 뭔가 알려 주고 나서 통화할 때요. 엄지와 검지를 문지르다가 마지막에 튕겼잖아요.”
“내가?”
자밀라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곤란할 때면 엄지와 검지를 문질러요. 그러다가 뭔가 결정되면 검지를 튕기고요. 압둘라 하지즈 왕자가 몸을 숨긴 거 맞죠? 그래서 방법을 고민하다가 일단 가 보자고 한 거고요.”
젠장!
입맛을 다신 이용우는 시선을 내려 오른손을 확인하고 다시 자밀라를 찾았다.
“하고 싶은 일 하라면서요? 여자라고 무시하고, 평민이라서 천박하다고 여기는 왕자에게 사람의 가치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거라고 알려 주고 싶어요. 평민 여자로 태어난 내가 직접이요.”
졌다.
기가 막혀서 이용우는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웃었다.
“그런 시도를 하려면 너를 경호해야 할 요원이 더 필요해. 너 역시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 위험하고. 부원장님께 여쭤보겠는데, 어떤 결정이 내려오든 다른 소리 하지 마.”
“알았어요.”
자밀라의 커다란 눈을 향해 이용우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 *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간 강성태는 옅게 웃으며 맞은편에 앉은 이병렬을 바라보았다.
– 조금 전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형님.
마지막까지 찾지 못해 마음을 졸이던 창원의 김병철을 찾았다는 보고였다. 놈을 못 찾은 게 얼마나 마음이 쓰였던지 그쪽으로 달려간 이교창이 직접 걸어 온 전화여서, 의심할 부분은 없었다.
“오늘 밤에 시작할 테니까 준비해.”
– 알겠습니다, 형님.
지시를 마친 강성태는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긴 숨을 내쉬었다.
“창원 김병철 찾았단다.”
“아니, 그 개새끼는 새벽까지 술 처마셨다는 새끼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다는 거야?”
“술 마시면 찾아가는 여자가 있는데, 마침 대구에 놀러 가는 바람에 그 빌라 옥상에서 잔 거 같단다.”
“난장을 깠다고?”
이병렬의 표현을 모르는 강성태는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됐네, 씨발. 그럼 오늘 밤에 작업하는 거지?”
“잠시만.”
이병렬의 독촉을 슬며시 밀쳐 낸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번호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른 다음이었다.
– 준비가 끝났어?
신호음이 두 번쯤 울린 뒤에 천중명의 질문이 곧바로 날아왔다.
“예. 대략 다섯 시간 뒤에 시작할까 합니다. 그런데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상대로 약을 넘기던 놈들도 함께 손볼 생각입니다.”
– 그거야 강 회장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지.
“그쪽에서 문제가 생겨도 검찰과 경찰, 언론의 협조를 받을 수 있습니까?”
– 확실한 게 좋으니까 확인하고 전화해 줄게.
설마 지경그룹 천중명 회장이 이런 일도 챙겨 주나?
궁금해하는 이병렬의 시선 앞에서 강성태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지경그룹 천중명 회장이라고 답하면 믿기나 할까?
픽 웃은 강성태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마지막까지 속 썩이던 김병철을 찾았고, 필리핀 조직원 스무 명, 키란과 구르카 용병 열 명을 데리고 서울에서 출발했던 아르윈은 이미 천안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남은 건 천중명의 답이었다.
최악의 사태에 신강남파 식구들에게 생길지 모를 문제를 막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어렵다는 답이 오면 최소한의 준비 정도는 하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봉진아. 바쁘냐?”
“아닙니다, 형님.”
“그럼 커피 좀 타.”
“예, 형님.”
하여간, 커피 타라는 빤한 요구도 이병렬은 쉽게 가는 법이 없었다.
강성태가 커피 타는 조봉진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처음 보는 번호를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누구지?
액정을 다시 한번 확인한 강성태는 무겁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강성태 회장?
“그렇습니다. 누구십니까?”
– 천중명 회장이 나를 괴물이라고 했다던데?
천중명 회장과 곽대출 부회장이 고개를 저었던 바로 그 사람?
– 서로 바쁘니까 잘 들어.
강성태의 반응 따위 상관없다는 것처럼 상대방은 앞뒤를 뚝 자르고 하고 싶은 말을 시작했다.
– 중국에서 감염균을 퍼트린 놈들이 있다. 북경과 상하이를 통제한 끝에 모두 백이십칠 명을 사살했는데, 그중에서 주승관이라는 놈이 한국에 약을 보냈다는 정보가 나왔다.
“주승관? 뭐 하는 사람입니까?”
– 상하이 3인방 중 한 명으로 그쪽 군부를 지휘하던 실력자다.
천중명 회장이 워낙 강조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건가?
살다가 통화하는 목소리에 눌려서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사용하게 만드는 인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주승관은 스위스 은행에 엄청난 현금을 보유했을 정도로 돈이 넘쳐나는 인물이다. 그런 인간이 굳이 한국에 마약을 보낸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다. 그러니까 놈들을 때려잡을 때, 가능하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아봐.
“잔인한 광경이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 하고 싶은 대로 해.
“중학생, 고등학생에게 약을 푼 놈들도 있습니다. 전국에 퍼져 있는 놈들이 열한 명이어서 아무래도 말이 나올 소지가 있습니다.”
– 강 회장.
강성태가 아쉬운 점을 내세우기 무섭게 상대방이 나직하게 불렀다.
– 천 회장이 믿을 만한 인물이고, 능력 또한 대단하다고 평가하더군. 한국에서 마약이 퍼지는 것만은 막겠다며 조직을 만들었다는 말도 들었고.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이 번호로 전화해.
“이름을 뭐라고 입력할까요?”
아직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강성태가 질문으로 알려 준 다음이었다. 대답 대신 사람 신경을 긁는 듯 피식하는 웃음이 스마트폰을 타고 건너왔다.
뭐라고 답할까?
강성태가 신경을 곤두세울 때였다.
뚝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통화가 끊겼다.
뭐 이렇게 전화 예절이 없어?
액정을 내려다본 강성태는 기가 막힌 심정으로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