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17)
798화 처음은 다 이렇게 시작해! (3)
뭔데 이러지?
함께 듣고 있던 제라르가 눈가를 좁히는 순간이었다.
– 전해 드릴 소식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게릭 웨인 미국 대통령이 잠시 뒤에 예멘으로 향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결국, 물었구나.
강찬이 던져 놓은 미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미국 대통령이 죽을 길에 들어섰다는 소식을 들은 강찬은 차갑게 웃었다.
– 두 번째는 한국에 있는 마약 거래상을 정리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현재 중국 식당으로 위장한 장소를 수색 중이어서 추가로 나오는 내용이 있다면 보고드리겠습니다.
“다친 사람은요?”
– 확인된 사망자는 한 명이고, 부상자들이 방지병원에 도착해서 치료 중이라 들었습니다만, 정확한 내용은 응급수술과 치료가 끝나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강성태라고 했었지?
군인이든, 요원이든, 깡패든, 사회나 나라를 노리는 놈들을 상대하다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아프다. 입맛을 다신 강찬이 이름을 묻던 강성태의 질문을 떠올릴 때였다.
– 마지막으로 기수호 실장에게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멕시코에서 확보했던 기계를 통해 확인한 번호를 하나씩 추적했고, 현재 석 대의 전화기가 사용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답니다.
흥분한 게 아닌가 싶었던 느낌을 설명하는 듯한 김형정의 보고가 있었다.
– 지금부터는 기수호 실장의 보고입니다. 소진천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답니다. 완성된 프로그램을 상대방의 스마트폰에 심으면 위치는 물론이고, 다른 통화나 문자 내용도 파악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뭐야, 이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CIA와 미국 대통령을 움직일 정도로 영향력 있는 제이어 반 할트의 라인을 도청하는 것을 넘어서서 문자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강찬은 얼른 스마트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상대는 CIA입니다. 만약 우리가 통화를 추적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놈들이 완전히 머리를 감출 수 있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발신 지역을 위장하는 방식으로 볼 때 CIA가 운용하는 위성을 이용했다고 판단해서 신중하게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사건을 같은 방법으로 해결한 적이 있습니다. 부원장님께서 도움 주셨던 장진두 과장을 기억하십니까?
“707 출신 형사 말인가요? 차동균 장군과 함께 훈련했다던?”
– 그렇습니다. 그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했었습니다.
어쩌지?
방법은 죽이는데, 만에 하나 들통나면 쥐새끼들이 모두 대가리를 감추는 계기가 될 테고, 그러면 미끼를 놓는 것부터 시작해 다시 긴 싸움을 되풀이해야 한다.
염병할.
긴 싸움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생길지 모른다는 현실이 문제였다.
– 우선 완성되면 테스트할 방법이 있는지 확인하고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러시죠. 고생하셨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뱉었다.
제이어 반 할트를 천중명에게 맡긴 상황이어서 놈의 전화기를 읽을 수만 있다면 월등히 유리한 싸움으로 바꿀 계기는 되겠다.
아차차!
급한 문제부터.
“제라르. 스위스가 아니라 예멘으로 간다. 기장에게 그렇게 지시해.”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제라르 앞에서 강찬은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들을 그냥 깡그리 죽이고 끝내?
강찬은 못마땅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볼을 씰룩였다.
이미 드러난 놈들을 후련하게 두들겨 준 뒤에 머리통을 돌려 주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일을 마무리하면 뒤쪽에서 또다시 제2, 제3의 제이어 반 할트가 나타나서 주접을 떨게 된다.
다시는 이런 식의 지랄 같은 계획을 세우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이쪽으로 시선조차 주기 싫을 만큼 징그럽게 마무리한다. 그런 결과를 위해 제이어 반 할트를 천중명에게 맡겼던 만큼, 지금은 이를 악물어 가며 참아야 할 때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대가리는 내가 돌려 주마.’
올라오는 성격을 누른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제이어 반 할트는 포근하게 몸을 품어 주는 최고급 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매끈하게 구부러진 전용기의 날개 너머로 파란 하늘이 배경처럼 깔렸고, 그 사이에서 새하얀 구름이 안개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선을 창으로 향한 채 그는 강찬을 떠올렸다.
‘구역질 나는 놈.’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는 누구나 피가 돈다.
당연하게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온갖 물질이 담겨 있는데,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혈통이라는 것도 있다.
제이어 반 할트에게 강찬은 사람에게 대드는 사나운 개, 그중에서도 운이 좋아 우두머리를 차지한 고약한 들개의 느낌이었다.
출신이나 교육만 해도 그렇다.
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강찬은 라노크 덕분에 강유모스터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평민 수준의 여자 사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나온 게 전부였다. 물론, 정보국에서 운영하는 교육 기관을 나왔다고 하나 그거야 교육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목표했던 일이 이루어지는 데까지.
그때까지만 참는다. 그런 뒤에 피눈물을 쏟으며 후회하는 놈의 머리통이 터지는 모습을 똑똑히 보아 주겠다.
한숨과 함께 입맛을 다신 제이어 반 할트가 와인 잔을 집는 순간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테이블에 올려 둔 스마트폰이 나직하게 몸을 떨었다.
지정해 둔 상대방이 아니면 전화 연결이 안 되는 번호였다. 액정에서 고트 가가린의 이름을 확인한 제이어 반 할트는 빠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게릭 웨인 미국 대통령이 예멘으로 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결국, 아둔하기 그지없는 선택을 하는군.
고트 가가린의 보고를 들은 제이어 반 할트는 같잖다는 투의 미소를 얼굴에 담았다.
“칼튼 숀이 제거된 상황에서 그는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습니다. 새로운 감염균이 나와 준다면 그가 예멘에서 치료제를 손에 넣는 게 플랜 B를 실행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겁니다.”
– 확인을 위해 연락드렸습니다. 그럼 조만간 기쁜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제이어 반 할트는 종료 버튼을 누르고서 다시금 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미쳐 날뛰는 개를 잡을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는 흥분에 그는 어깨를 들썩였다.
***
필리핀에서 조각난 시체를 치우는 건 조직원들이 일상처럼 겪는 일이었다. 덤덤한 태도로 필리핀 조직원들이 잘린 몸뚱이들과 핏물을 정리하는 사이, 아르윈은 동방만성의 1층을 살폈다.
둥근 테이블, 그에 맞춰 놓아둔 의자, 벽에 걸린 장식들까지, 룸은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았다.
이어서 주방으로 들어간 아르윈은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는 문들을 하나씩 열어 보며 꼼꼼하게 안을 살폈다. 깨끗하게 관리된 주방이었는데, 문제는 영업하는 식당치고는 너무 깔끔하다는 데 있었다.
아르윈이 관리하는 라이브 카페만 해도 주방에 온갖 요리 재료들이 쌓였고, 한쪽에는 설거짓거리들이 모여 있는데,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식당이 그것도 저녁 시간에 도마마저 깨끗한 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새끼들 진짜 수상한데?
약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주방 안쪽의 문을 연 아르윈은 멈칫해서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뒤에 그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숨을 내쉬었다.
중국집에 밀가루 반죽하는 기계가 있다면 모를까, 닭 사료를 만들 때나 사용하는 기계가 왜 있을까?
강성태가 이곳의 대가리를 처리하라고 지시했던 안산의 기계와 같은 종류가 말이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켠 아르윈은 기계의 중간을 발로 밟고서 손을 뻗어서 위로 올라갔다.
‘젠장!’
청소를 위해 뿌린 독한 약품과 그러고도 완벽하게 지워 내지 못한 역한 냄새에 아르윈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이것들이 진짜!
아래로 내려간 아르윈은 기계의 뒤편을 살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답을 얻었다. 하수구와 연결된 음식물 분쇄기가 또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쟁이라기에는 말이 안 되는 규모에 이해되지 않는 기계를 보며 아르윈이 입을 뒤틀 때였다.
“형님?”
필리핀 조직원이 창고로 들어섰다.
“약을 찾았습니다.”
“어디에 있었는데?”
“2층에 냅킨이랑 물수건 두는 창고가 따로 있는데 그 안쪽에서 나왔습니다. 양이 엄청납니다.”
“가 보자.”
필리핀 조직원이 엄청나다고 표현할 정도면 양이 얼마나 많은 걸까?
주방을 나선 아르윈은 바닥을 닦는 조직원들의 곁을 지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이 방입니다.”
복도의 왼편 안쪽에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간 아르윈은 어처구니없는 심정으로 픽 웃었다.
확인하기 위해 뜯어 놓은 종이 박스 안에 은박지 포장의 환각제들이 잔뜩 있었고, 반대편 벽에는 펜타닐을 담아 둔 상자들이 또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양의 환각제와 진통제, 거치적거리는 누군가를 해결한 기계까지.
“이 새끼들 미친 거 아냐? 이 많은 양을 어떻게 들여온 거지?”
혼잣말을 뱉어 낸 아르윈은 문 앞에 서 있는 조직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른 곳은?”
“2층하고 3층을 싹 뒤졌는데 이곳 말고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내가 직접 확인해 볼 테니까 너는 그만 내려가서 도와줘. 그리고 서울에 연락해서 승합차하고, 약 실어 나를 트럭 두 대 가져오라고 해. 정문 닫으면 밖에서 안 보이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아래층에 있는 것들 덮을 것도 좀 넉넉하게 가져오라고 하고.”
“예, 형님.”
지시를 마친 아르윈이 종이 박스를 보며 양을 가늠할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아르윈입니다, 형님.”
– 뭐 좀 나왔냐?
“2층 창고에서 엄청난 양의 환각제랑 펜타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형님. 주방 안쪽 기계실에서 닭 사료용 기계도 나왔습니다.”
– 중국집에서 그런 기계가 필요해?
“냄새를 맡아 봤는데, 형님. 작업할 때 사용한 기계 맞습니다, 형님.”
– 씨발 새끼들이 염병을 떨었네. 언제 올라오냐?
“여기 치울 게 많아서 방금 승합차와 트럭을 불렀습니다. 재수 없으면 남들 눈에 띌 수 있어서 자정 근방에 움직일까 합니다.”
– 알았다.
이제 전화가 끊긴다. 마음이 급한 아르윈은 이병렬의 짧은 대꾸를 무는 것처럼 얼른 입을 열었다.
“형님은 어떠십니까, 형님?”
– 안호상 원장에 안다미 선생까지 잔뜩 모여 있다. 방금 위기는 넘긴 거 같다는 말을 들어서 전화한 거니까 보스는 괜찮을 거 같다.
강성태가 고비를 넘겼다는 내용을 전하는 이병렬의 음성이 무거웠다. 키란과 동료들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부담 때문인 것처럼 들렸다.
– 출발할 때 연락해.
“연락드리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아르윈은 스마트폰을 내리고서 창고 가득 쌓인 상자에 시선을 주었다.
엮이는 게 싫어서 외면하고, 무섭다고 피하고, 혹시나 휘말리는 게 두려워서 눈 감으면, 이런 놈들이 하나둘 자리 잡는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돈이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그 돈을 만드느라 수천, 수만 명의 중독자가 만들어지고, 그 결말은 필리핀의 빈민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온 가족이 딸 하나 바라보며 사는 나라, 그 여자아이가 외국인에게 인기 있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빈민촌, 아르윈이 바로 그런 관계에서 태어난 장본인이었다.
“후-.”
답답한 속을 뱉어 낸 아르윈은 복도를 향해 몸을 돌렸다.
***
마리그 기지에 들어선 강태산은 먼저 주변을 살폈다.
지경그룹이 사업을 위해 만든 베이스라고 들었다. 그러나 경계를 위해 군데군데 서 있는 직원들, 컨테이너 건물 위에 올려 둔 중기관총과 검은 그물까지, 직접 확인한 마리그는 완벽한 군기지였다.
주변을 빠르게 살핀 강태산은 묵직하게 다가오는 남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눈매는 쭉 찢어졌고, 사파리 위로 군용 허리띠를 둘렀는데 그곳에 권총과 탄창을 걸고 있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소. 지경그룹 곽대출이오.”
“말씀 들었습니다. 평화유지군 강태산 대위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곳의 부회장이고?
소총을 앞으로 품은 강태산은 의아한 심정으로 곽대출과 주변에 서 있는 지경그룹 직원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만약 이 상황에서 교전이 벌어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를 만큼, 곽대출과 지경그룹 직원들의 태도는 단단했다.
“군 출신이십니까?”
“우리나라 남자들은 모두 군대에 가야 하지 않소?”
듣고 보니 그러네.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다는 생각에 강태산이 웃은 직후였다. 그런 강태산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느낌으로 곽대출이 입을 열었다.
“도깨비 부대라고 들어 봤소?”
“특작 부대 말씀하십니까?”
강태산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 것처럼 곽대출이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경비를 서는 직원들 모두 그곳 출신이오. 그래서 말인데.”
해안을 돌아본 곽대출이 시선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상의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잠수함이 와서 미사일을 날린다고 해도 이 기지를 손에 넣기 어려울 거요.”
강태산의 임무를 알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설명한 곽대출이 지도의 한 곳을 검지로 찍었다.
“또 하나, 이곳이 어촌인 엘 허르요. 그곳의 어부들이 우리가 가진 생필품을 구하겠다며 생선을 들고 왔었는데, 최근 일주일가량 전혀 방문하지 않았소.”
엘 허르를 이미 차지했다는 건가?
강태산의 눈을 들여다본 곽대출이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수함이 들어온다면 엘 허르와 이곳밖에 없는데 그곳의 어부들이 방문하지 않는 걸 보면 이미 누군가에게 점령당했다고 의심할 수 있지 않겠소?”
소말리아의 해안을 완벽하게 파악한 듯한 곽대출의 설명이 있고 난 뒤였다.
아무리 소말리아의 어촌이라 해도 마을 전체를 점령하려면 반드시 병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강태산은 뒤편 도로를 확인한 뒤에 시선을 가져왔다.
“부회장님? 선발대가 엘 허르로 향하고 있습니다. 혹시 중간에 선발대를 기습할 만한 장소가 있습니까?”
강태산의 질문을 받은 곽대출이 지도의 중간을 검지로 찍었다.
“이곳이 전에 해적들이 있던 마을인데 텅 비어 있을 거요. 그 앞쪽으로 둔덕까지 있어서 기습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장소요. 그 뒤로는 도로가 쭉 연결돼 있어서 몸을 숨길 곳이 없지요.”
그리고 기다렸다는 것처럼 곽대출이 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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