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20)
801화 혹시 제가 할 역할이 있습니까? (3)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이었다.
태블릿을 이용해 경제와 관련된 고급 자료들을 검토하던 제이어 반 할트는 또 다른 번호의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보고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괜찮아요.”
그가 여유롭게 응대한 다음이었다.
– 프랑스의 정보총국이 광물 탐사 위성을 이용해 소말리아의 해변을 수색했습니다.
제법인데?
정보를 들은 직후에 제이어 반 할트는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정보총국에서 그 정도를 확인하다니, 마드모아젤이 예상보다 대단한 인물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건가요?”
– 마드모아젤의 판단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있는 평화유지군 본부에서 요청한 자료입니다.
“평화유지군이 그 정도 수준이 됩니까?”
– 국가정보원에서 직위 해제되었다가 복직한 본부장을 그곳으로 데려다 놓았는데, 그가 요청한 자료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무슈 강이 데려다 놓았겠군요?”
– 그렇습니다.
확실히 들개의 우두머리가 될 만한 일 처리네.
나름 인정한다는 투로 제이어 반 할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 천중명 지경그룹 회장이 지경증권에 특별팀을 구성했습니다. 베이징 쇼크를 이끌었던 위저드 구완섭과 파생계의 매드 워먼이라는 강다희가 다시 뭉친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흐음.”
마법사와 광기에 사로잡힌 미친 여자라.
베이징 쇼크 당시에 꽤 짭짤한 수익을 얻었던 인물이 바로 제이어 반 할트였다. 훗날 전반적인 투자와 운영을 확인하고서 감탄했던 적이 있어서 두 사람의 이름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동원된 자금 규모는 얼마나 되지요?”
– 베이징 쇼크를 통해 확보했던 천중명 회장의 개인 자금이 먼저 사용될 거 같습니다. 규모는 한화로 3천조 원가량 됩니다.
“그가 요청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에서 지원하겠지요?”
– 우즈만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추가로 최소 3천조 원의 지원이 가능합니다.
“하아.”
이것 참.
너무 바싹 익어서 뻑뻑해진 스테이크에 천중명이 나이프와 포크를 들이미는 상황이었다.
멍청한 것들.
마누엘 야닉이 무슈 강의 손에 붙들리고, 고트 가가린이 쫓기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치료제만 지켰더라도 지금쯤 이곳저곳에 감염균을 뿌려 대며 계획의 절반 이상을 이뤘을 텐데, 들개떼들이 워낙 거칠게 날뛰는 바람에 버거운 상황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었다.
“잠수함이 발각될 확률은 얼마나 되지요?”
– 위성 사진을 판독하는 순간 드러납니다.
신이라는 게 정말 있나?
아니면 데리고 일하던 것들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말도 안 되는 과정을 통해 치료제가 강찬에게 건너갔다. 게다가 점조직으로 구성했던 조직마저 하나씩 드러나면서 싸움의 판도마저 개 떼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뿐이냐. 변형된 감염균을 만들어야 했던 하릴 하지즈는 시아파 세상이라는 엉뚱한 욕심을 내세워 강찬을 긁어 대다 어처구니없이 죽고 말았다.
“무슈 강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 예멘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대통령을 노리겠군요.”
– 처음부터 계획했던 행보로 보입니다.
미친 들개 대가리.
통화의 중간에서 제이어 반 할트는 기가 막힌 심정을 어처구니없다는 느낌의 미소로 대신했다.
“플랜 B를 접도록 하지요.”
– 그렇게 하면 고트 가가린과 마누엘 야닉, 히놀 사키코, 마지막으로 일본 정보국이 반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의 반기를 내가 걱정해야 하나요?”
–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냉정한 음성으로 상대를 압박했던 제이어 반 할트가 눈빛을 가라앉혔다.
“예멘 공항을 사우디아라비아 병력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 수준이면 무슈 강과 미국 대통령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말씀하신 임무에 보내야 하는 인원이 우리가 보유한 마지막 병력입니다.
“심각한 부상으로 몇 년만 물러나 있게 되어도 만족할 상황입니다. 우리가 지녔던 병력으로 그 두 사람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어요.”
– 준비하겠습니다.
만족한 것처럼 제이어 반 할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슈 강은 무력으로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폐인을 만드는 게 좋지요. 미국 대통령의 살해범 정도면 적당할 겁니다. 그동안 나는 세상의 시선 밖에서 원래 하던 일에 전념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한다고?
느닷없는 지시를 받아들이는 데 잠시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 확인하겠습니다. 게릭 웨인과 무슈 강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지시가 있을 때까지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대기합니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하는 대로 교통편을 준비하겠습니다.
“좋군요.”
답을 한 제이어 반 할트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런 뒤에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개떼 때문에 몸을 피하다니, 기가 막히는군.”
혼잣말을 뱉은 제이어 반 할트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매를 하고는 입술을 씰룩였다.
***
날카로운 눈빛, 긴장을 풀지 않는 태도, 대원들을 압도하는 지휘까지, 바스첸코는 온몸에서 사명감이라는 불길이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라데레의 마을을 내려다보는 둔덕에 도착한 그는 검지와 중지를 들어 저격수와 경계병의 위치를 정해 주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흙바닥을 달린 대원들이 지시받은 위치에 도착해서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쏴아아아-. 쏴아아-.
잔잔하게 밀려온 파도가 탄산이 다 빠진 사이다처럼 옅은 거품을 만들었다가 부끄럽다는 것처럼 다시 돌아갔고, 아쉬움이 남았는지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 특유의 비린내를 듬뿍 뿌렸다.
완전히 버려진 마을인가?
사람의 흔적은커녕, 찌그러진 냄비조차 보이지 않는 마을이었다. 둔덕에 기대 몸을 낮춘 바스첸코는 나무로 기둥을 세운 움막을 살핀 뒤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앞쪽부터 수색한다. 지금까지와 동일하게 왼쪽이 1조, 오른쪽이 2조다.”
“다!”
강철규와 강태산, 곽철호를 통해 배웠다.
유능한 지휘관, 대원들의 믿음을 받는 부대장이 되려면 이런 임무에서 가장 앞에서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죽을 수 있겠다.
당연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고비를 넘길 때마다 바스첸코는 강해질 테고, 유능한 지휘관으로 성장할 거다.
이곳에서 죽는 거?
상관없어.
함께 뛰는 이놈들 중 누군가가 이 경험을 내려 줄 테니까.
보고 배우라고 명령받았다.
바실리 의장이 만족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이런 임무를 통해 성장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시작한다. 채널 열어.”
지시를 마친 바스첸코는 목덜미에 걸어 둔 골전도 마이크의 버튼을 눌렀다. 요즘은 마이크를 입에 붙이거나 헬멧에 설치하지 않는다. 대신 초경량 헤드셋처럼 목에 걸어서 성대의 울림을 받아서 전달한다.
속삭이는 소리마저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달해 줘서 수색이나 교전 중에 의사를 전하는 데 훨씬 유리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대원들의 눈을 들여다본 바스첸코가 상체를 세웠고, 그와 비슷하게 좌우에서 대원들이 몸을 일으켜 둔덕을 넘었다.
부스스. 부스스슷.
멀리서 달려오는 파도 소리 아래로 군화에 부서지는 흙바닥 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강철규와 강태산을 흉내 내듯, 자세를 낮춘 바스첸코는 두 번째 둔덕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부슷! 부스슷! 부스슷! 부슷!
소리가 크게 울릴수록 바스첸코는 자존심이 팍팍 상했다.
움막에 적이 있다고 해도 이 소리가 들리지야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강철규나 강태산처럼 소리 나지 않게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두 번째 둔덕에 도착한 바스첸코는 자세를 낮추고 앞을 살폈다.
이 둔덕을 넘어서면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처럼 길게 이어진 내리막이었다. 만약 적이 저 움막에 있다면 아예 표적 판이 되는 꼴이고, 흙이 부서지는 탓에 단숨에 올라오기도 어려웠다.
그냥 갈겨?
바스첸코는 이를 지그시 깨물며 노을을 뒤집어쓴 채 바닷가를 지키는 움막들을 노려보았다.
만에 하나, 바스첸코 팀을 보고 겁에 질려 움막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민간인들이 확인을 위해 갈긴 총에 죽는다면?
바실리는 몰라도 강찬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바스첸코나 스페츠나츠는 수색 도중에 겁에 질려 민간인이 있는 것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방아쇠를 당긴 멍청이로 낙인찍힌다.
젠장!
도대체 얼마나 경험이 쌓여야 강철규나 강태산처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시간이 길어지면서 바로 곁에 있는 대원이 바스첸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끌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지휘관은 절대 대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저격수 목표 확인해.”
– 1번 움막 확보.
– 2번 움막 확보.
가장 앞에 있는 두 개의 움막이 시선을 가려 줘서 뒤편 움막에 적이 있더라도 이쪽을 사격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의 안전은 확보한 셈이다.
상황을 점검한 바스첸코는 둔덕을 안고 넘어가는 것처럼 몸을 넘겼고, 누워서 소총을 겨눈 듯한 자세로 아래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다.
부스스스스스-.
적이 있다면 그대로 표적이 되는 상황이라 목숨을 담보로 한 미끄럼틀쯤 된다. 그래서인지 몸에 박힌 솜털 하나까지 바싹 설 정도로 팽팽한 긴장이 바스첸코를 휘감았다.
바스첸코가 아래에 도착한 직후였다.
부스스슷! 부스스스스슷! 부스스슷!
왼쪽을 맡은 1조와 오른쪽의 2조 대원들이 줄줄이 비슷한 자세로 내려왔다가 곧바로 몸을 세웠고, 이어서 소총을 겨눴다.
“움직여.”
바스첸코의 속삭임과 동시에 1조와 2조가 좌우로 넓게 벌리는 형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면을 맡는다.
1번 움막과 2번 움막을 확보하면 수색의 절반이 끝난 것과 같은 유리한 상황이 된다.
부슷. 부스슷.
1조가 좀 더 왼편으로 돌아 뒤쪽 움막을 향해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부슈-우우우웅!
피처럼 붉은 노을 아래에서 섬뜩한 총성이 울렸고,
퍼으윽!
1조 선두를 맡았던 대원의 머리가 처참하게 터졌다.
– 뒤편 움막에 적이다!
부슈-웅! 투두두둑! 부슈-웅! 투두두두둑!
둔덕 위에서 지른 아군의 고함이 무전기를 통해 터져 나왔고, 이어서 움막을 맡았던 저격수까지 모두 적을 향해 소총을 갈겨 댔다.
“1조를 엄호해!”
고함처럼 지시를 던진 바스첸코는 쓰러진 대원을 향해 달렸다.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둑!
아군이나 적이 갈겨 대는 소총 소리가 더럽게 비슷한 상황에서 대원 두 명이 머리가 터진 대원의 허리를 잡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투두두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두둑!
언덕 위에서 아군이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기며 동료들을 엄호했으나,
부슈-웅! 퍼으윽!
또다시 적의 저격 소총 소리가 울리면서 허리를 잡고 달려오던 대원이 등을 얻어맞은 것처럼 앞으로 엎어졌다.
와락!
달려간 바스첸코는 엎어진 대원의 뒷덜미와 머리가 터진 대원의 허리를 동시에 붙들었다. 대원들과 함께 쓰러진 대원 둘을 끌고 오는 동안,
투두두둑! 퍼버버벅! 투두둑! 퍼버벅!
쓰러진 대원의 바로 뒤편 모래가 요란하게 터졌고,
투두둑! 피이이잉! 투두두둑! 투두둑!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귀 바로 옆을 스치는 총알 소리, 바닥에서 튀어 오른 흙가루, 그리고 바스첸코의 주변을 둘러서다시피 달려와 갈겨 대는 대원들의 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고, 동시에 소총에서 뿜어진 새하얀 불길이 움막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끄으-응.”
바스첸코는 악착같이 대원을 뒤로 끌었다.
가장 앞에 있는 움막의 앞으로 대원 둘을 끌어낸 바스첸코는 곧바로 소총을 앞으로 돌렸다.
투두두둑! 투두두둑! 투둑! 투두두두둑!
앞쪽 움막이 방어막이 된 것처럼 지금 사격은 둔덕 위와 뒤편 움막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사망했습니다!”
“표트르만 데리고 올라가!”
등을 얻어맞은 부상자를 붙들고 둔덕으로 올라가는 두 명의 대원을 지키기 위해 바스첸코는 소총을 겨눈 자세로 물러났다.
부슷! 부스스슷!
부서지는 흙을 이겨 내고 올라가는 것도 힘겨운데 부상자를 붙든 상황이라 속도가 느렸다.
투두두두두둑! 부슈-웅! 투두둑! 부슝!
그치지 않는 총성과 불빛들이 바스첸코를 더욱 다급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서둘러!”
움막을 향해 소총을 겨눈 바스첸코가 고함을 버럭 지르는 순간이었다.
부스럭.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린 듯한 착각과 함께 내내 침묵하던 첫 번째 움막의 틈에서 총구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 개새끼들이!
부상자를 끌어 올리기 위해 대원들이 언덕에 매달린 상황을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저격수를 부르지 못했다.
시간이 멈췄나?
아니면 착시인가?
대신 뇌졸중에 걸렸나 싶을 만큼 바스첸코의 눈에 담긴 움막이 천천히 옆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아군의 소총에서 튀어나온 새하얀 불빛이 랙에 걸린 영상처럼 천천히 움막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불쑥 튀어나온 총구 하나는 언덕을 올라가는 대원들을 노리고, 그 옆에서 보인 총구가 바스첸코를 노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바스첸코에게 기회를 준 건지 모른다.
우선 살 건지, 대원들을 지킬 건지.
이런 특별한 순간을 주고는 흥미로운 얼굴로 바스첸코를 내려다볼지 모를 일이다.
“저겨-억수-우!”
저격수를 부르는 고함마저 늘어진 테이프처럼 천천히 들리는 가운데 바스첸코는 대원들을 노린 총구를 향해 겨누고 있던 소총을 틀었다.
투두둑! 퍼버벅!
겨누고 있던 상황이라 바스첸코가 빨랐다.
대원들을 노리던 소총의 총구가 요란하게 흔들렸고,
투두두둑! 피이이잉!
놈이 발악처럼 당긴 방아쇠에 따라 새하얀 불꽃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경험을 내려 줘.’
붉은 노을에 휩싸여 천천히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마지막을 각오한 바스첸코가 이마를 노리는 적의 총구를 눈에 담는 순간이었다.
푸슝!
천국에서 갈긴 듯한 소총 소리와 함께,
퍼으윽!
움막 안에 있던 총구가 흔들렸고,
휘이익! 털써-억!
앞으로 기울어 튀어나왔던 적의 몸뚱이가 움막 아래의 모래 바닥에 처박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