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22)
803화 이놈은 작전에서 밀려난 건가? (2)
이용우는 빠르게 객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복도 안쪽 끝부분에 서 있는 평화유지군을 확인했다.
복도는 됐고.
걸음을 옮긴 이용우는 복도 중간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엘리베이터 공간과 그 맞은편에 난 비상계단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제는 낯이 익어서 눈인사를 주고받는 프랑스 요원이 이용우를 향해 가볍게 웃었고, 그 곁에 선 평화유지군 대원 두 명이 눈짓으로 인사를 전했다.
“김형정 본부장님이 연락하셨는데, 마누엘 야닉을 제거하기 위해 호텔을 기습할 가능성이 있단다.”
궁금한 얼굴로 돌아보는 정보총국 요원 앞에서 평화유지군 대원 두 명이 “알겠습니다.” 하는 답을 내놓았다.
“최종일 팀장님께 말씀드릴 테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신경 써.”
경계를 강조한 이용우는 곧바로 마누엘 야닉이 있는 객실을 향해 움직였다. 복도 안쪽에 서 있는 대원에게 눈인사를 던진 이용우가 몸을 돌려 벨을 누른 다음이었다.
“이용우입니다.”
이용우를 모르지 않는다.
우리말을 했고, 심지어 문에 달린 유리를 통해 얼굴도 확인한다. 그런데도 무전을 통해 확인했는지, 복도 안쪽에 있는 대원이 “이용우 선배입니다.” 하는 답을 나직하게 주었다.
철컥.
문은 그 뒤에 열렸다.
“김형정 본부장님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방금 나도 받았다.”
최종일이 이렇게 대답할 정도면 더 떠들 거 없다. 그 정도로 최종일은 이런 작전과 임무에 있어서 고인물이었다.
“박중상과 유인강은 출발했다던데 너는 언제 출발이냐?”
“예?”
“몰랐어?”
“예.”
멍해진 이용우를 최종일이 의아한 눈매로 보았다.
이놈은 작전에서 밀려난 건가?
그의 눈에 담긴 의문이 고스란히 이용우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정말 중상이와 인강이가 출발했습니까?”
어쩌면 기밀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강찬이 직접 내렸던 지시를 마지막 순간에 이용우에게 전하지 않았다면, 작전에서 제외되었다는 의미라고 봐야 했다. 그래서인지 최종일은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았다.
“팀장님?”
“짐작 가는 거 없어?”
“예?”
“이상하잖아? 아랍어를 너만큼 하는 놈이 없는 상황에서 너를 제외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짐작 가는 거 없냐고?”
“그게….”
기밀일지 모를 내용을 묻는 최종일 앞에서 이용우는 입을 쉽게 열지 못했다.
“곤란한 내용이면 말하지 말고 가 있어.”
괜한 내용을 들어서 말이 새 나갈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느니, 아예 안 듣는 게 현명하다. 고인물은 이래서 무섭다. 친분과 임무가 칼로 금을 파 놓은 것처럼 선명하니까 말이다.
“자밀라를 작전에 데려가면 어떻겠냐고 부원장님께 문자를 드렸었습니다.”
“미친 새끼.”
더 머뭇거리다가는 문이 닫힐 거 같아서 이용우가 얼른 짐작 가는 내용을 털어놓았고, 곧바로 최종일의 욕이 날아들었다.
욕만 먹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최종일은 아예 수준 미달의 밥벌레 요원을 보는 듯한 눈매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문 안쪽에서 우희승과 이두희마저 냉정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야, 이 멍청한 새끼야?”
최종일의 냉정한 눈빛과 거친 음성을 듣는 순간, 아차 하는 후회가 거친 물살처럼 이용우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동네 사랑방에서 형님, 동생, 해 가며 숨바꼭질하는 거냐?”
“죄송합니다.”
“정보총국 요원이 죽은 채 발견되는 작전에 민간인을 데려가고 싶다고? 그것도 지시를 내리는 부원장님께 개인적으로 문자를 드려?”
최종일의 성격도 그렇지만, 분위기만 놓고 보면 당장 따귀가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랍어 좀 하고, 예멘에서 부원장님과 학장님 뵙고 나니까 작전이고 뭐고 그냥 너 꼴리는 대로 하고 싶어? 그럼 가서 그렇게 해, 이 개새끼야!”
“잘못했습니다.”
고개를 떨군 이용우의 시선에 꽉 움켜쥔 최종일의 주먹이 들어왔다. 참고 있는 거다. 당장에라도 볼을 깨 버리고 싶은 감정을 최종일은 악착같이 참고 있었다.
“소말리아에 있는 시아파 반군 기지를 공격하라고 지시하셨었다. 너와 아랍 여자가 단둘이 이라크 왕세자를 상대하다가 희생이 생길 걸 미리 막은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냐?”
솔직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함께 있다 보니 자밀라가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녀가 희생되면 요원들과는 다른 파장이 온다는 것 역시 외면하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지시를 받고 달려들었다가 피 흘리며 쓰러졌던 대원들과 요원들이 너 정도 판단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러냐고, 이 새끼야?”
“팀장님.”
복도에 울리지 않도록 이를 악물며 으르렁대는 최종일을 우희승이 나직하게 불렀다. 평소에 사용하는 ‘형님’이라는 호칭 대신 ‘팀장님’이라는 직책을 이용해서 말이다.
“후-. 꼴도 보기 싫으니까 방에 가서 소꿉놀이나 실컷 해, 이 쓰레기보다 못한 새끼야.”
콰앙.
거친 비난과 함께 그보다 더 거칠게 문이 닫혔다.
복도 안쪽에 선 대원이 무겁게 바라는 앞에서 고개를 떨군 이용우는 움직이지 못했다.
***
스마트폰을 든 김형정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거네. 이용우도 잘해 보고 싶어서 건의한 걸 텐데, 지금은 워낙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니까 기회 보기로 하자.”
평소와 다른 톤이었고, 거기에 이용우의 이름마저 나왔다.
“커피 한잔할까?”
궁금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신광선을 향해 제안을 건넨 김형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종이컵에 봉지 커피를 쏟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며 김형정은 방금 최종일에게서 들었던 내용을 조용하게 전해 주었다.
“모자란 새끼.”
그 직후에 신광선이 볼을 씹으며 대뜸 욕을 뱉어 냈다.
김형정이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였다.
“본부장님? 그렇더라도 기회를 한번 만들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 놓고는 또 은근슬쩍 김형정에게 매달렸다.
“지금 그 이야기를 부원장님께 할 수 있겠어?”
“예?”
“CIA 건물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 이곳 모가디슈에서 학장님과 곽 대령이 어떤 부상을 당했는지 몰라서 그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신광선이 고개를 떨군 직후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해 날아가셨던 분이다. 자밀라라는 여성을 동행시키고 학장님, 곽철호 대령, 강태산 대위를 평화유지군과 함께 보내셨을 정도로 민간인의 희생에 민감한 분이고.”
“예.”
“그런 분께 민간인을 작전에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더 실망스러운 게 뭔지 알아?”
답을 알지 못하는 눈빛으로 신광선이 고개를 든 다음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작전 내용을 민간인인 자밀라가 알고 있었다. 신 팀장이라면 이용우를 신뢰할 수 있겠어?”
“아닙니다.”
“물론 나 역시 이용우를 의심하지는 않아. 하지만, 사소한 정보 하나로 잠수함이 발각되고, 하라데레에서 어떤 희생이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죄송합니다.”
종이컵을 내려다보는 신광선 앞에서 김형정은 아직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는 답답한 속을 길게 뱉어 냈다.
***
아르윈을 비롯해 둘러싸고 지켜보던 유충일과 조성호, 최치곤까지 입술을 뒤틀며 인상을 찌푸렸다.
중국 식당에서 잡아 온 마흔 중반 놈에게 약을 처먹인 다음이었다. 아르윈이 질문을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이제 약을 들여온 과정만 밝혀내면 일단락되는 상황에서 마흔 중반 놈이 계속 중국어를 지껄여 댔다.
기대가 없었다면 실망도 없었을 텐데, 실실대는 웃음을 담고서 중국어를 쏟아 내는 놈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올라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야? 누구 중국어 아는 사람 없어?”
상체를 돌린 아르윈이 질문을 던졌으나 필리핀 조직원은 당연하고 신강남파 덩치들 역시 먹먹한 표정으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형님. 식당에서 데려온 놈들에게 약을 먹이고, 그놈들에게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형님?”
나름 머리를 굴린 최치곤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으나 아르윈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렬이 형님께 여쭤보고 여차하면 대림동 종환이 형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낫겠다.”
인상을 찌푸린 상태에서 아르윈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이병렬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 여보세요?
“아르윈입니다, 형님.”
– 그래. 어떻게 됐어?
“약 먹이고 질문을 던졌는데, 중국어로 떠들어 대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있습니다, 형님.”
– 아, 씨발 새끼.
아르윈에게 하는 욕이 아니라 잡혀 온 놈을 향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아르윈은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 어떻게 해 줘?
“함께 잡아 온 놈들에게 통역을 맡길까 생각도 했는데, 이놈들이 다 한통속이라 엉뚱한 대답을 할지 모릅니다, 형님. 그래서 대림동 종환이 형님께 도움을 청하려고 합니다, 형님.”
– 잠깐 있어 봐.
스마트폰을 내린 모양이었다.
시간을 묻는 이병렬의 질문과 “10시 20분입니다, 형님.” 하는 조봉진의 음성이 곧바로 들렸다.
– 지금 출발하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해. 대림동에 내가 연락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감사합니다, 형님.”
아르윈이 통화를 마치려는 순간이었다.
– 거기 식구들 밥은 먹었냐?
진짜 형이 있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까 싶은 음성으로 이병렬이 질문을 건넸다.
“끝내고 먹을 생각입니다, 형님.”
– 충일이도 아직 있어?
“예, 형님. 성호랑 광주 식구들도 그대로 있습니다, 형님.”
– 알았다.
짧은 답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끝났다.
“병렬이 형님이 직접 연락하시고, 내려오신다니까 이 새끼들 밀어 두고 여기 치워.”
“예, 형님.”
숨을 길게 내쉰 아르윈은 옷을 갈아입은 유충일과 그 곁을 지키는 최치곤에게 움직였다. 그리고는 시선이 마주친 직후에 보기 좋은 미소를 그렸다.
돈을 탐내서가 아니라 마약을 막기 위해 날뛰는 조직이라니?
1천 달러에 방아쇠를 당기는 필리핀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상황이었다. 더구나 억만금을 가져다줘도 강성태를 배신하지 않을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나온 미소였다.
“충일아.”
“예, 형님.”
필리핀 혼혈이라고 멸시받던 아르윈을 유충일과 최치곤이 조직의 형님으로 대우해 주는 것도 고마웠다. 일만 없다면 이대로 둘을 데려가서 새벽까지 소주잔이라도 기울이고 싶은 욕심이 아르윈의 가슴에 가득했다.
“커피 한잔하자.”
“그러시겠습니까, 형님?”
“아니. 같이 마시자고.”
바닥에 핏물의 흔적이 남은 공장 안이었다.
의아하게 돌아보았던 유충일은 아르윈의 속을 읽은 모양이었다. 공손하게 고개 숙인 그가 “커피 좀 준비해라.” 하고는 조성호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제가 하겠습니다, 형님.”
“너는 아르윈 형님 모셔야지, 인마.”
그런 뒤에 급하게 몸을 움직이는 최치곤을 붙들었다. 아르윈의 속내를 완벽하게 알아차려서 그런 눈치였다.
***
영업이 끝난 지점 안에서 박승양은 완전히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처럼 보였다.
“이런 짓 하지 말라고! 누구야? 어떤 인간이 이런 짓을 한 거야?”
신용 대출 서류를 움켜쥔 그가 고함을 버럭 지르자 상무가 급하게 달려왔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봤으니까 이러지! 신용 3등급? 야, 이 인간아! 이 양반한테 걸린 대출이 17억이야! 그런데 무슨 신용이 있어?”
“아파트 담보 대출입니다, 회장님. 시세 40억의 담보가 있잖습니까?”
“푸후-.”
저 인간의 목을 물어 버려?
갑갑한 속을 토해 내는 박승양의 눈빛이 마치 그렇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번 외환 사태 때 말이지. 이 아파트가 얼마였을까?”
“예? 그때랑 지금은 전혀 상황이 다르잖습니까?”
상무의 답을 들은 박승양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모든 대출 서류를 다시 검토하라는 지시 탓에 남아 있는 직원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돈놀이를 하는 내가 돈을 움켜쥐고 있어. 저 금고에서!”
검지로 뒤편 금고를 가리킨 박승양이 살벌한 눈매로 직원들을 돌아보았다.
“돈이 썩는 냄새가 펄펄 나는데도 이렇게 버틴다고! 왜? 이 빌어먹을 신용이 싹 사라지게 생겼으니까!”
박승양은 쥐고 있던 서류를 머리 위로 흔들었다.
“신용이 눈에 보여? 한번 손에 넣으면 영원히 가지고 가는 거냐고?”
“아닙니다.”
홱 돌아온 충혈된 박승양의 눈빛에 질린 상무가 얼결에 답을 내놓은 다음이었다.
“외환 사태 때 지금 대출을 신청한 양반이 지닌 아파트가 7억이었어. 알아? 달랑 7억이었다고! 다시 그런 시절이 오지 않을 거라고? 그래! 그럴 수 있지. 대신 17억 아래로는 얼마든지 내려가!”
고함이 아니라 지금 박승양은 먹잇감을 앞에 두고 으르렁대는 승냥이, 꼭 그런 모습이었다.
“그것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이 양반 담보 대출 뒤에 전세가 다시 15억 걸렸어. 알았냐고? 이 아파트가 17억 선까지 내려가면, 이 양반 죽고, 전세 들어간 양반 거지 되고, 우리는 이 중에 몇 명을 잘라야 할지 모른다고, 이…!”
욕을 뱉으려던 박승양이 직원들 앞이라 참는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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