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23)
804화 이놈은 작전에서 밀려난 건가? (3)
이동명은 외교부 차관이었다.
재판 없었다. 느닷없이 붙잡혀서는 비행기에 탔고, 그 뒤로 계속 지명조차 모르는 중국에 처박혀 있었다. 이 정도면 벌컥 뒤집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찾는 시늉은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외교부 차관이 느닷없이 사라졌는데 흔한 보도조차 없었다.
차라리 한번 들이받아?
그래도 외교관이니까 어느 정도 선은 있지 않을까?
하루 이틀 흐르면서 이동명이 독한 마음을 품던 순간이었다.
밤이 깊은 시간에 이동명은 투룸 같은 숙소에서 불려 나갔고, 곧바로 승용차로 이동했다.
사람이 말이다.
자주 마주치다 보면 낯이 익는 게 당연하고, 인사 정도는 건네는 게 또 살아가는 이치 아니겠나. 그런데도 중국 직원들은 부모 죽인 원수나 마네킹을 대하듯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지금도 그렇다.
목적지를 물었는데, 운전석과 조수석, 그리고 뒷좌석에 앉은 직원들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죽나?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가?
오만 가지 생각이 이동명의 머릿속을 떠돌았고, 이어서 이런 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간절하게 아내와 아이들이 그리웠다.
사람이 참 간사해서 그리운 것과 별개로 서운한 감정 역시 지울 수 없었다. 남편이자 가장이 연락조차 없으면 불법적인 감금 아니냐며 항의하고 그도 아니면 방송국에 가서 악이라도 써야 하는 건데, 중국이고, 한국이고, 이동명을 잊은 것처럼 당최 반응이 없는 거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거지?
주변을 살피던 이동명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느닷없이 공항 건물과 관제탑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드디어?
이동명을 태운 승용차는 바리케이드와 문을 통과해 활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전용기가 분명한 비행기 앞에 멈췄다.
“내리십시오.”
드디어! 마침내!
기쁜 속내를 억지로 누른 이동명은 마지막이 될지 모를 공항을 돌아본 뒤에 계단을 올랐다.
한국에 가기만 해 봐라.
방송이고,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강찬의 악행을 모조리 떠들어….
전용기 안으로 들어선 이동명은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지금껏 자신을 감시하고, 공항까지 태워 온 직원들은 애송이였구나 싶을 정도로 서늘한 표정의 남자 직원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눈 감고 들으면 한국 사람이지 싶을 정도로 능숙한 한국말이었다. 비행기 통로를 따라 걸어간 직원이 정면을 향해 앉은 남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모셔왔습니다.”
다부진 체형, 단단한 눈매를 지닌 중년 남자였다.
“앉으세요.”
맞은편 자리를 가리킨 남자가 의미 있는 시선을 직원에게 돌릴 때, 이동명은 맞은편에 조용하게 앉았다.
그 직후였다.
시선의 의미를 알려 주는 것처럼 또 다른 직원이 다가와 남자와 이동명 앞에 찻잔을 놓아주었다.
“드시죠.”
다시금 손으로 차를 가리켰던 남자가 홍차로 보이는 찻잔을 들고는 한 모금을 마시고 내려놓았다.
“양범이라고 합니다.”
“혹시 한국에서 오신 분이십니까? 아니면 동포?”
일말의 기대를 품고 질문을 던진 이동명 앞에서 양범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동명 씨? 당신을 왜 한국에서 안 찾는지 짐작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점이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해도 재판받지 않고는 처벌이 어려운데 이런 식의 불법 이송에 감금은….”
나름 외교부 차관이라는 타이틀을 믿고 억울한 심정을 토해 내던 이동명이 슬그머니 뒷말을 삼켰다. 같잖다는 투로 바라보며 차갑게 웃는 양범을 보고 나서였다.
“강찬 씨가 그러더군.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반성이라는 게 없을 거라고. 나 역시 그 점에 동의해. 한 번 배신한 인간은 기회만 되면 두 번, 세 번 계속하지.”
강찬이라는 이름, 이어진 섬뜩한 내용에 이동명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상하이 3인방이 쌓아 두었던 마약을 찾았다. 그곳에서 찾아낸 자료 중에 또 한 가지 놀라운 걸 밝혀냈지. 감염균을 숨겼었더군. 그런데 현장에는 없어. 그게 어디에 있을까?”
“그걸 내가 어떻게…?”
놀라는 이동명을 양범은 고개를 비틀며 들여다보았다.
“한국으로 간 거 같은데? 국가정보원 원장과 외교부 차장이라는 인간이 몰래 열어 준 루트를 통해서. 감염균이다. 마약하고 달라. 그게 퍼졌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될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정말 몰랐습니다. 진짜 그런 끔찍한 계획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 없습니다.”
“밀입국을 도운 사람치고는 참 순진한 대답이군.”
“그렇습니다! 저는 정말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습니다.”
“우리 중국은 말이지.”
억울함을 더 떠들려는 이동명의 입을 양범이 막았다.
“알았든, 몰랐든, 1킬로그램 이상의 마약 유통에 관련된 사람은 무조건 사형이다.”
“나는….”
“당신 같은 쓰레기도 외교부 차관이라고, 중국에서 사형당하면 대한민국의 수치가 될 거라는 판단에서 명예롭게 죽을 길을 만들어 주는 인물이 바로 강찬 씨고. 그런 면에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날카로운 눈매로 노려보는 양범의 앞에서 이동명은 딱딱하게 굳었다.
“두 가지만 밝히면 돼. 현재 어디에 있는지? 감염균을 들고 있는데도 왜 마약을 풀면서까지 지금껏 퍼트리지 않았는지? 협조하겠지?”
이 남자도 국가정보원 소속이었나?
강찬의 부하?
마른침을 삼킬 뿐, 이동명은 입을 열지 못했다.
***
며칠째인지 모른다.
날이 밝으면 예멘의 하늘과 활주로가 보이고, 밤이 되면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는 날이 반복되면서 날짜 감각마저 무뎌졌다.
삶의 의욕이 없는 나날을 보내던 참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TV 보도를 보던 하동선이 느닷없이 눈빛을 빛냈다. 미국과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비행기에 오른다는 게릭 웨인이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보도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장면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이리 온다는 거잖아?”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럼 뭐 하나?
사우디아라비아 군인들이 문을 지키고 있어서 화장실 외에는 나가지도 못하는데?
답을 하는 차장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내가 국가정보원 원장이잖나? 우리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면 어떻게 되지?”
“예에?”
“국가정보원 내부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부원장이 우리를 감금했다고 하면 되잖아. 당장 내가 다리에 총상을 입은 상태고 말이지.”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하동선이 휠체어에 걸쳐 놓은 다리를 억지로 들었다.
“CIA 사건이 있는데도 한국에 공식 항의가 없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 미국 대통령도 치료제를 얻기 위해 부원장과 손을 잡은 겁니다. 더구나 이곳 공항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병력 역시 부원장 편입니다. 당장 원장님과 우리를 감금하고 있는 것만 봐도 짐작하시잖습니까?”
“그러니까 그들이 혹할 만한 조건을 제시해야지.”
“내놓을 게 없잖습니까?”
“우리 군사 자료와 해외 작전이라면 사우디아라비아가 혹하지 않을까?”
멍했던 차장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랬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예 대우조차 못 받습니다.”
“멍청하게 이러고 있으면? 시키는 대로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죽이겠다고 달려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야?”
이미 각오한 모양인지 하동선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늦은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신문성이 오늘만큼은 집무실에 앉아 보도 방송에 집중했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기 전, 기자들을 향해 몸을 돌린 게릭 웨인이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화면 가득 잡힌 다음이었다.
“저기에 나도 있어야 하지 않나?”
게릭 웨인과 같은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대통령 신문성의 눈에 가득했다.
과거 같으면 적당히 맞장구쳤겠다.
바로 미국에 협조를 구하겠다며 이곳저곳을 독촉했을 테고. 그러나 민정수석 홍진용은 협조해 줄 거라고 믿는다던 강찬의 눈빛과 죽은 채 벽에 기대 있던 일본 정보국 수장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정말 무서운 건,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일본이 지금껏 항의 한번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예멘에 하동선 정보원장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을 우리 정보원장이 상대하는데, 대통령님이 그곳에 참석하시면 격이 떨어집니다.”
홍진용이 필사적으로 핑계를 만들었으나 신문성의 눈에 담긴 욕심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부원장에게 연락 좀 해 봐.”
“전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하면 어떠냐고 의견을 물어봐야지.”
“알겠습니다.”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온 홍진용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밤이 깊어진 시간이니 차라리 잠을 자든가 하지, 괜히 보도를 보다가 혼자 뜨거워져서 일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
어쩐다?
고민하던 홍진용은 떠오르는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대사님? 민정수석 홍진용입니다.”
– 늦은 시간인데, 무슨 일인가요?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 이 늦은 시간에도 김미영은 사무적인 음성으로 내용을 묻고 있었다.
이 부부는 평소에 어떤 모습일까?
사무적인 부인과 사람 하나쯤 쉽게 죽이는 남편의 저녁 식사나 잠자리는?
– 여보세요?
엉뚱한 상상을 펼치던 홍진용의 정신을 김미영의 냉정한 음성이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의논드릴 문제가 있어서 잠시 전화드렸습니다.”
정신을 되찾은 홍진용은 상황을 빠르게 김미영에게 설명했다.
– 그 부분에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혹시 유엔 방문 연설이라든가, 유럽 순방에 관한 내용이 있으면 언질을 좀 주십시오. 대통령님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설명을 마친 다음이었다.
한심하다는 느낌의 숨소리와 침묵이 스마트폰을 통해 넘어왔다.
그러네! 현직도 아니고, 직위 해제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거네!
뒤늦게 현실을 돌아본 홍진용이 아차 했으나 이미 통화한 다음이고, 이렇게라도 뭔가 대책을 만들어야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 프랑스 전 정보총국장이 한국에 입국합니다.
“예?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 사적으로 입국하는 거니까요. 그분에게 부탁해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겠습니다. 대신, 비공개로 하시고, 감염균의 치료제를 확보한 뒤에 미국 대통령이 예멘으로 향하는 사이, 우리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했었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건 어떠세요?
이건 먹힌다! 무조건!
“그럼 그분이 언제 들어오십니까?”
–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시간에 관계없이 대기할 테니 아무리 늦어도 꼭 연락 주시고 이왕이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마친 홍진용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에 몸을 돌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 결과를 얻어 낸 대통령이라니?
보이기 좋아하는 신문성이 당장은 아쉬워하겠지만, 일단 전 정보총국장을 면담하는 순간까지는 기다릴 게 분명했다. 그 정도면 미국 대통령이 이미 예멘에 도착했을 테고 말이다.
신문성의 집무실을 향하는 홍진용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
이종환과 대림동 식구들을 데려온 이병렬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어디 있냐?”
인사를 받은 직후였다.
필리핀 조직원들이 마흔 중반의 남자를 끌고 왔다.
히죽히죽.
칵테일 캔디를 잔뜩 먹인 탓에 끌려온 남자는 이병렬과 대림동 덩치들을 보고도 실없는 웃음을 연신 날렸다.
“환각 상태입니다. 이 새끼가 평소 좋아하던 상황에 빠져 있을 거라서 형님이 여자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상상 속에서 관계를 갖는 느낌도 얻는다고 들었습니다.”
이 더러운 새끼가?
인상을 찌푸렸던 이병렬이 볼을 씰룩이고서 화를 가라앉혔다. 그런 뒤에 입을 열었다.
“약이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물어봐.”
“예, 형님.”
대림동 덩치가 앞으로 나서서 묶여 있는 놈 앞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가 능숙한 중국말로 질문을 건넨 다음이었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마흔 중반의 놈이 히죽대며 뭔가를 웅얼웅얼 지껄였다.
뭐라는 거야?
다들 질문을 던진 대림동 덩치와 마흔 중반의 남자를 번갈아 보는 앞이었다. 상체를 기울이고 있던 대림동 덩치가 눈가를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뒤에 나직한 중국어로 다시 질문을 건넸다.
뭐라는 건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묶여 있는 놈이 입을 쉬지 않았고, 대림동 덩치가 계속 듣고 있어서 이병렬도 지켜만 보았다.
웅얼웅얼, 히죽대며 비슷한 톤으로 지껄이는 중국말을 2분쯤 듣고 난 뒤였다. 아직 놈이 중얼거리는 상황에서 대림동 덩치가 기울였던 상체를 세웠다.
“형님? 아까 그 중국집에 마약 말고 감염균이라는 게 있답니다. 그게 풀리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끝난답니다, 형님.”
“뭐? 감염균? 그게 어디 있다는데?”
“그렇지 않아도 어디 있냐고 물어봤는데 희한하게 같은 말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형님.”
답을 들은 이병렬은 바로 아르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형님. 구석구석 전부 뒤졌는데 수상해 보이는 물건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형님.”
“이 새끼가 약에 취해서 헛소리를 했을 수는 있는데, 그렇더라도 그냥 거짓말로 치기는 어렵잖아?”
“저 정도 환각 상태면 절대 거짓말 못 합니다, 형님.”
이병렬의 질문에 답한 아르윈이 대림동 덩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지 말고, 볼을 쓰다듬으면서 달래 봐. 저 새끼는 지금 네가 여자로 보일지 모르니까 그게 먹힐 수도 있어.”
“예? 형님?”
“다정하게 해 보라고.”
지시받은 대림동 덩치가 역겨운 표정으로 도움을 청했으나 이병렬, 이종환, 유충일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몰아세웠다.
어디 있는지 알고 나면 저 새끼가 죽이겠는데?
살인마보다 독한 눈매를 한 대림동 덩치가 마지 못해 팔을 뻗은 직후였다.
‘욱.’
마흔 중반의 남자가 덩치의 손에 볼을 비비며 신음을 토해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