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24)
805화 뭡니까? (1)
손을 잘라 버리고 싶은 독기를 팍팍 뿜어내면서도 덩치는 악착같이 참았다. 하기는, 이병렬과 유충일, 거기에 대림동의 직계 보스인 이종환이 지켜보는 앞에서 못 하겠다고 했다가는 손만 자르는 거로 끝나지 않겠다.
덩치가 나직하게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하아.”
탄성을 쏟아 낸 마흔 중반의 남자가 그 끝에서 뭔가를 중얼댔다.
“냉동실에 닭이 들었고, 그 배 속에 넣어 뒀답니다, 형님.”
얼마나 반가웠으면 마흔 남자의 볼에 손을 붙인 상태에서도 덩치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치곤아! 네가 숙소 동생들 데리고 가서 확인해. 감염균이라니까 못 찾더라도 함부로 뒤져서 깨지거나 감염되는 일 없게 주의해.”
“예, 형님.”
이병렬의 지시를 받은 최치곤이 상체를 숙인 뒤에 몸을 돌렸고, 반 박자 느리게 인사한 숙소 동생들이 함께 공장을 나섰다.
“약을 들여온 방법을 물어봐. 도움 준 놈이랑.”
최치곤을 지켜보던 이병렬이 얼른 시선을 가져와서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덩치가 중국어로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마흔 중반의 남자가 다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어?”
그리고 덩치가 눈가를 바싹 좁혔다.
뭔데 그러지?
알아듣지 못하는 TV를 보는 것처럼 이병렬이 갑갑해하는 순간이었다.
“외교부 협조로 들어왔답니다. 식당을 만들기 위해 들어오는데, 절차에 어긋난다며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못한다고 거절한 직원이 있답니다, 형님.”
뭐야, 이건 또?
묻지도 않은 내용이 나오는 바람에 이병렬은 눈가를 좁혔다.
“그 직원에게 보복한 적이 있는데, 엉뚱한 남자가 끼어들어서 방해하는 바람에 시간이 늘어졌답니다.”
왜 알고 있는 사건하고 비슷하게 흘러가지?
이병렬이 고개를 기울이고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게 뭔데 시간이 늘어졌다는 거냐?”
“징계 먹은 외교부 직원을 제대로 협박하기 위해 방해했던 남자의 발목 인대를 끊었고, 그 사건이 무마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벌써 감염균을 퍼트렸을 거고, 한국에 있는 사람 절반 이상은 없어졌을 거랍니다, 형님.”
이거 봐?
진광식의 사연을 아는 아르윈과 유충일이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앞이었다. 이병렬의 신경을 바싹 긁는 듯한 내용을 덩치가 풀어냈다.
“청주에서 그런 건지 확인해. 트럭 훔쳐서 한 건지도 확인하고.”
덩치가 나직하게 중국말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이…, 개새….”
마흔 중반의 남자가 혀로 손을 핥는 바람에 덩치가 대뜸 욕을 뱉었다.
“야, 좀 참아.”
눈빛만 보면 당장 혀를 잘라도 이상하지 않은데 깡패 생활이 쉽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듯 덩치가 끝내지 못했던 질문을 마저 던졌다.
“맞답니다, 형님. 그리고 이 새끼가 우리를 부를 때, 가오리 빵즈라고 부릅니다, 형님. 우리가 짱개라고 부르는 거랑 비슷한 느낌입니다, 형님.”
“씨발 새끼.”
광기에 사로잡힌 웃음을 그려 내며 욕을 뱉는 이병렬의 눈매가 진짜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이병렬은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비틀었다. 실제로 진광식을 습격했던 이유가 아직 남은 상태여서 뭔가 뒤가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더 물어볼 건가, 일단 여기에서 끝낼 건가?
솔직히 마흔 중반의 남자는 이미 아는 사실을 다 털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 새끼, 해독약 먹여.”
“예, 형님.”
독한 눈매의 이병렬이 지시를 내리기 무섭게 아르윈이 고개를 숙였고, 이제 끝내도 되냐는 투로 덩치가 시선을 주었다.
“너도 그만 나와.”
“감사합니다, 형님.”
얼른 손을 빼낸 덩치가 급하게 몸을 돌리려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이병렬을 향해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이따가 이 새끼 작업할 건데, 네가 할래?”
“감사합니다! 형님!”
손을 빨리던 게 얼마나 징그러웠던지, 다시금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는 덩치의 음성이 유독 크게 들렸다.
***
항모를 지휘하는 함장 세바첸코는 잠수함과 항모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냈다. 그래서 그는 바실리가 어떤 성품을 지녔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내 사람은 못 건드려.
군부나 정치계, KGB가 바실리를 향해 충성하게 만드는 가장 큰 무기는 그의 일관된 모습 덕분이었다. 물론, 분야가 다르고, 그때그때 바실리의 마음에 좀 더 깊숙하게 박히는 인물이 달라진다는 점이 단점으로 남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준이었다.
“좌표 점검해.”
지시를 던진 세바첸코는 독하게 들렸던 바실리의 질문을 떠올렸다. 명실상부한 바실리의 후계자 안드레이가 비참하게 삶을 끝냈다는 사실을 군부와 정보국 모두 안다. 그 뒤에 바실리가 후계자로 찍은 인물이 스페츠나츠 출신 바스첸코라는 사실도 다들 짐작한다.
“바스첸코가 지휘한다.”
막말로 바실리의 지시 한마디면 세바첸코의 운명이 바스첸코에게 넘어간다. 그런 바스첸코가 항모와 잠수함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전투를 치렀다고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상과 좌표까지 받은 적의 잠수함을 놓치면?
“확인했습니다. 함장님. 그리고 방금 의심 가는 지역을 찍은 사진이 다시 전송됐습니다.”
부함장이 가져온 종이 파일을 연 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항모 전체에 전달하는 무전기를 잡았다.
“전원 전투 준비.”
그가 지시를 내리기 무섭게 상황실의 위편에 있는 붉은색 등이 번쩍였고, 갑판 위에서 대원들이 빠르게 달렸다.
“대잠 헬리콥터 출격.”
이어서 지시를 내린 세바첸코는 상황을 체크하는 부함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좌표 2마일 지점에 대잠 헬리콥터가 도착하면, 잠수함에 연락해서 어뢰를 발사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빠르게 몸을 돌려 무전기를 드는 부함장 곁에서 세바첸코는 아득하게 보이는 소말리아의 해안을 눈에 담았다.
미리 도착해서 숨어 있었다니?
엔진 소리를 죽인 상태로 대기했다면 아무리 경계해도 잠수함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게 세바첸코가 이끄는 항모와 잠수함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위를 지나다가 어뢰를 맞고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테고.
‘어떻게 할래?’
세바첸코는 소말리아의 해안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얌전히 있자니 대잠 헬리콥터와 이쪽 잠수함의 대응이 심상치 않고, 지금이라도 움직이자니 위치를 들킬 테고.
그나저나 바실리는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알아냈을까?
조그맣지만 세모꼴로 끝이 찢어진 바실리의 눈매를 떠올린 세바첸코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피이이이융!
도로 바깥의 둔덕에서 날아든 휴대용 미사일이 시작이었다.
콰으으응!
선두를 달리던 지프가 급하게 핸들을 틀어 휴대용 미사일을 피하고 난 직후였다.
투두두둑! 푸슈슝! 푸슝! 투두둑!
어두운 밤을 가르는 사격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특수부대다.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직후에 지프와 트럭에서 뛰어내린 대원들이 반사적으로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푸슝! 푸슝!
도로 한쪽에 세워 둔 트럭에 몸을 기대 방아쇠를 당기던 강태산은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바스첸코! 여기는 우리가 맡을 테니까 엘 허르로 달려!”
투두두둑! 피비비빗!
강태산의 지시를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적의 사격이 허공을 가른 직후였다.
“봤지? 저놈들은 달려들 마음이 없어! 시간을 벌겠다는 거니까 엄호하면 바로 엘 허르로 가!”
푸슝! 푸슝!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강태산이 빛나는 눈매를 하고는 앞으로 튀어 나갔다.
투두두둑! 투두둑!
그의 숨통을 끊어 보겠다는 것처럼 연달아 적의 총알이 날아들었지만, 몸을 날린 강태산은 앞쪽 둔덕에 정확하게 몸을 던져 넣었다.
치잇.
“스페츠나츠가 엘 허르로 출발한다! 그때 엄호해!”
둔덕에서 지시를 마친 강태산이 맹수처럼 빛나는 눈매를 돌렸다. 그 강렬한 눈빛을 향해 바스첸코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페츠나츠. 평화유지군이 엄호하는 동안 엘 허르로 이동한다. 대기해!”
바스첸코가 강태산의 뜻을 받았고,
치잇.
“스페츠나츠가 이동하는 동안, 적의 휴대용 미사일을 막아!”
강태산이 확인처럼 다시 지시를 던졌다.
투두두둑! 푸슝! 푸슈슝! 투두두둑!
“움직여! 서둘러!”
적과 대치한 평화유지군의 뒤편에서 바스첸코는 대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지금이다! 바스첸코!”
강태산이 지시를 던지기 무섭게,
“달려! 달리라고!”
바스첸코가 고함을 바락바락 질렀다.
부으으응!
앞쪽에 있는 지프가 요란하게 엔진음을 터트린 직후였다.
푸슝! 푸슈슝! 푸슝! 푸슝!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정말이지 미친 것처럼 방아쇠를 당겨 댔다.
부아아아앙-.
힘껏 밟은 가속 페달에 따라 엔진음이 거칠게 터졌고, 바스첸코가 탄 지프가 빠르게 전투 지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비릿한 바다 냄새를 잔뜩 품은 바람을 맞으며 바스첸코가 뒤를 돌아보았다.
전투를 바스첸코에게 맡긴다 해도 불만을 지닐 사람은 없었다. 설혹 불만이 있다 해도 당장은 강태산에게 반기를 들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강태산은 바스첸코와 스페츠나츠를 엘 허르로 보냈다.
‘러시아의 항모와 잠수함이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엘 허르를 장악해.’
강태산이 말하지 않았던 진정한 의도가 어떤 건지를 바스첸코는 확신했다.
언젠가 말이다.
경험이 좀 더 쌓이고 나면 반드시 저런 지휘관이 될 거다.
벌써 멀어진 저 뒤편에서 죽음을 부르는 불빛이 번쩍이는 모습을 보며 바스첸코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부아아아앙-.
그리고 이제는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집중하라는 것처럼 지프의 엔진음이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
거리가 먼 이동 중에 가장 현명한 대처는 모자란 잠을 채우는 거다. 다음은 충분히 먹고, 또 잔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커피입니다, 대장.”
요원들을 말린 제라르가 직접 종이컵을 들고 다가왔다.
이놈 눈빛이 이상한데?
종이컵을 든 강찬은 제라르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대장? 게릭 웨인을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그럼 그렇지.
여태 궁금했던 모양인데, 무던히도 참았던 거다. 아닌 게 아니라, 긴 비행에 여유가 생긴 탓인지 그동안 누르고 있던 궁금증이 폭발한 모양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무리 치료제를 얻는다고 해도 게릭 웨인의 머리를 돌리는 일까지 협조하지는 않을 거잖습니까?”
기회를 잡은 제라르가 연달아 질문을 내놓았다.
“지금쯤 양범 씨도 움직이고 있을 거다.”
“예멘에서 만나는 겁니까?”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게릭 웨인을 제거하는 데 양범 씨까지 불렀다가 일이 꼬이면 중국과 한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모여서 미국 대통령을 제거한 게 됩니다. 뭡니까?”
의도를 묻는 제라르 앞에서 강찬은 먼저 반쯤 식은 커피를 남김없이 마셨다.
“변수가 워낙 많아. 우선 히놀 사키코를 제거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감염균에 대한 대비가 달라진다. 막말로 히놀 사키코가 또 빠져나가서 변종을 퍼트리면 지금 찾아낸 치료제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거잖냐?”
“그렇지요.”
종이컵을 들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제라르의 모습이 어쩐지 과거 석강호처럼 보여서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두 가지다.”
예멘 건물 옥상에서 요란하게 처박히더니 머리를 심하게 다쳤던 건가?
이전에는 이 정도만 말해 줘도 “아!” 하고서 앞과 뒤를 짐작하던 제라르가 지금은 궁금한 눈으로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어 반 할트야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을 테고, 그쪽 부류들 특징인 열등 민족 말살이라는 계획이 있다고 치자.”
“멍청한 새끼.”
누구보다 강찬을 따르는 제라르가 설명을 듣기 무섭게 제이어 반 할트를 거칠게 표현했다.
“미국 대통령인 게릭 웨인은 왜 제이어 반 할트와 손잡았을까? 그것도 CIA 칼튼 숀 국장까지 동원해서.”
“왜 그런 겁니까?”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앞에서 말했었다.”
“아! 그럼 남은 한 가지 의문은 뭡니까?”
머리를 심하게 다쳤던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품으며 강찬은 다시 입을 열었다.
“중국이 끼어들었다. 그것도 상하이 3인방이 움직였을 정도로 위쪽에서. 중국 내부 권력 싸움에 집중하던 놈들이 왜 마약을 우리나라에 퍼트리려고 그렇게 버둥댔을까? 그것도 감염균을 중국에 흘려 가면서?”
“그렇군요.”
이제야 강찬이 사건의 바깥에서 버티는 이유를 알게 된 게 후련한 모양이었다. 씨익 웃은 놈이 강찬의 속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담배를 내밀었다.
이 새끼는 이래서 미워할 수가 없는 거다.
피식 웃은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연기를 뿜어내자 가슴 속에서 뒤엉켜 있던 사건들이 바깥으로 튀어 나가는 느낌이었다.
강찬이 다시 담배를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이용우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남았던 커피를 털어 넣은 제라르가 부록처럼 질문을 꺼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