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25)
806화 뭡니까? (2)
사람 참 신기하지?
죽을 곳으로 간다는데 잠은 또 밀려들어서 이동명은 깜박 잠이 들었다.
그아아앙.
불안함 속에서 설핏 든 잠을 깨운 건 불쾌한 진동과 그에 맞서는 비행기의 엔진음이었다. 눈을 뜬 이동명 앞에서 양범은 경제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국어, 영어, 그리고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로 만들어진 경제, 정치 잡지들을 잔뜩 쌓아 둔 것으로 봐서 이동 시간을 이용해 미뤄 뒀던 것들을 여유롭게 읽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를 고치면서 최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의자가 소리를 냈으니 이동명이 깨어났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양범은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손에 든 잡지에 집중했다.
중국 정보국의 고위급 간부겠지?
요원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주고받는 나직한 중국어, 비행기 내부의 장식들을 보며 이동명이 짐작한 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게다가 전용기로 이동명을 데려갈 정도로 능력 있는 양범이 강찬을 존경한다는 걸 봐서 국가정보원 원장 하동선은 이미 날개 부러진 새 꼴이 되었다고 봐야 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창을 통해 바깥을 살폈던 이동명은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저기….”
이동명이 입을 열자 안쪽에서 지켜보던 남자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왔고, 비슷하게 양범이 잡지에서 시선을 들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비스듬하게 앉아 잡지를 보던 양범이 다가온 남자에게 손을 들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남자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간 다음이었다.
“저는 하동선 원장에게 이용당했습니다.”
이제 와서?
용기 내서 건넨 말에도 양범은 픽 웃었다.
“중국과 일본이 손을 잡았던 겁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면 그들이 조직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조직을 일본이 지원하기로 했었습니다.”
양범은 대꾸가 없었다.
다만, 빛나는 눈빛으로 듣고만 있었는데, 중간에 맥 빠지는 소리를 하면 언제고 시선을 돌릴 거라는 경고가 그의 눈빛에 분명하게 담겨 있었다.
“한국이 휘청이면 안전을 유지한다는 핑계로 일본이 들어오고, 그와 같은 명분으로 중국이 북한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봐요, 이동명 차관. 외교부 차관이니까 잘 알 거 아닙니까? 마약이 돌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한국이 휘청이지는 않아요. 그 정도는 아실 텐데?”
“마약이 끝이 아닙니다.”
관심을 접으려는 양범을 이동명이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그 조직을 통해서 감염균을….”
눈가를 좁히는 양범 앞에서 이동명은 뒷말을 내놓지 않았다.
침묵이 오뉴월 조수석에 던져 둔 엿가락처럼 늘어질 때였다.
“모두 털어놓는 겁니다. 대신 저와 가족들을 미국으로 보낸다고 약속 하나만 해 주십시오.”
“주승관이 감염균을 지니고 있었던 건 이미 내가 말했던 내용이잖습니까? 주승관을 따르던 놈들이 한국에 넣었겠지요. 그 정도는 이미 짐작합니다. 더구나 미국으로 보내려면 미국 정부의 협조도 받아야 하는데, 그건 내가 함부로 답할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눈가를 좁히는 양범 앞에서 이동명은 제법 다부진 눈매로 답을 기다렸다.
이 정도면 패는 다 던졌다.
막말로 죽이려고만 했다면 중국에서 이미 끝장냈지, 굳이 비행기에 태워 날아가겠나?
양범은 이동관의 속내를 읽은 게 분명했다.
“자녀분이 몇 명입니까?”
“두 명입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2학년인 딸입니다.”
“예쁘겠군요.”
“집사람까지 해서 넷이 모여 미국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습니다.”
이동명의 눈을 확인한 양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고개를 돌리고는 손을 가볍게 들었다. 아까 물러났던 남자가 조용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다음이었다.
“이분의 아내를 포함해 초등학교 5학년, 2학년인 아들과 딸을 제거해.”
“알겠습니다.”
우리말로 오간 대화였다.
뭐가 이렇게 느닷없이 흘러가?
멍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본 이동명이 시선을 내린 직후였다.
“상하이 3인방 중 군부의 실력자였던 주승관의 마지막 요구가 뭐였는지 알려 줄까? 다 털어놓을 테니까 손자와 손녀만 살려 달라는 거였다.”
사람 눈빛과 표정, 음성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을까?
“그의 손자와 손녀가 마침 당신의 아들, 딸과 비슷한 나이였다. 그 몸뚱이에 소총을 갈기라고 지시했었다. 왜 그랬는지 알겠어?”
살벌한 질문을 양범은 마치 조금 뒤에 먹게 될 저녁 메뉴를 묻듯 덤덤하게 내놓았다. 그리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이동명을 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감염균이 퍼지면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십만의 억울한 죽음이 발생한다. 그런 짓을 계획하는 인간을 용서할 마음 없고, 다음으로 그런 인간의 자식이나 손자, 손녀를 살려 두면 복수하겠다고 달려들게 된다. 지금의 히놀 사키코처럼.”
“대한민국은 중국과 다릅니다.”
“학교에서 학원에 태워다 주는 당신 아내와 자녀들이 덤프 밑에 깔리면 돼. 그래도 안 되면 강도를 만나게 될 테고. 나는 규정과 규범에 얽매이는 한국의 요원이 아니니까 쓸데없는 기대 하지 마.”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양범이 웃었다.
“감염균을 퍼트리려 했다면서? 그 전에 당신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가려 했을 테고?”
이동명은 대답하지 못했다.
앞에서 일본이 관련됐다고 했고, 미국 정부는 염려하지 말라고 지껄인 것만으로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 감염균을 퍼트리면 한국이 휘청일 수 있지. 그래서? 감염균에 죽을지 모를 그 많은 숫자의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지?”
말문이 막힌 이동명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던 양범이 다시 잡지를 잡았다.
“그러지 마시고, 우리 가족만 살려 주십시오.”
잡지를 펼친 양범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감염균을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발표할 계획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을 만들기 위해 마약 조직을 꾸려 가며 시간을 끌었던 겁니다. 그래야 일본이 한국으로 들어올 명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동명의 간절한 애원이 나온 직후였다.
“지금부터 3분이다. 아는 걸 모두 털어놓으면 가족은 살려 주마.”
마지막 기회를 던져 준 양범이 시계를 들어서 시간을 확인했다.
***
고트 가가린은 탱크와 장갑차 정도는 장난감 수준으로 거래하던 무기상이었다.
사람이 말이다. 살다 보면 수렁에 빠질 때가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미사일에서 헬리콥터까지, 원하는 무기와 장비라면 무엇이든 사고팔던 고트 가가린이 지금 지닌 건 소말리아 어부들이 사용하던 어선이 전부였다.
울화통 치민 고트 가가린이 바다를 보고 있던 고개를 가져왔다.
“다시 연락해!”
무전을 몇 차례나 보냈다. 그러나 진즉에 와서 대기한다던 잠수함은 여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안에 밀어 둔 어선이 밀려온 파도에 일렁이고, 티타늄으로 만든 철제 가방 다섯 개를 한쪽에 쌓아 둔 히놀 사키코가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앞이었다.
“범상어! 이동 대기 중이다! 응답 바란다, 범상어!”
두 번의 무전에도 잠수함은 답신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용병이 고트 가가린을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불빛입니다!”
도로 쪽을 지키던 용병이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시간을 번다고 했는데 벌써?
심지어 방어선이 뚫렸다는 연락도 없었다.
“전투 준비해!”
고트 가가린이 외치기 무섭게 군복 바지에 면티, 방탄조끼를 걸친 용병들이 도로를 향해 달렸다.
그 직후였다.
부아아아-앙!
백색으로 보이는 지프와 트럭이 도로를 타고 달려들었다.
투두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둑!
멍청이들!
차라리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단숨에 죽이든가!
달빛을 품어 뿌옇게 빛나는 하늘을 배경으로 멈춰 선 지프와 트럭에서 대원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이 고트 가가린의 눈에 분명하게 들어왔다.
철컥.
고트 가가린이 소총의 노리쇠를 당긴 순간이었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눈부신 조명이 어둠을 뒤집어쓴 바다를 비췄다.
투두두둑! 투둑! 투둑! 투두둑!
앞쪽에서는 비슷한 총성이 연달아 울리고, 뒤편에서는 헬리콥터가 맴돌았는데,
콰으으으으-응!
그 직후에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모래밭이 흔들렸고, 이어서 바닷속에서 일어난 폭발에 따라 새하얀 물기둥이 치솟으며 둥그런 원을 그려 낸 바닷물이 해일처럼 달려왔다.
부스스스스-.
솟구쳤던 바닷물이 비처럼 쏟아져 내릴 때였다.
투둑! 투둑! 투둑! 투둑!
먹이를 찾아 달리는 맹수의 우두머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뚫고 달려오는 적의 모습이 강렬하게 고트 가가린의 눈에 들어왔다.
새로 개발한 소총인가?
투둑! 투둑! 투둑!
AK 소총의 반동을 계산하면 저 정도 속도로 갈기면서 정확한 사격을 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달려오면서 갈긴다. 그런데도 그의 총구에서 불꽃이 튈 때마다 약속한 듯 용병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둑!
우두머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다시피 따르는 대원들의 모습이 고트 가가린에게는 완벽한 공포로 다가왔다.
바다로 나가자니 헬리콥터가 무섭고, 버티자니 맹수처럼 날뛰는 적이 달려오는 상황이었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잠수함을 해결한 헬리콥터가 해변으로 라이트를 돌렸다.
투둑! 투둑! 투둑! 투둑!
분명 기관총이 있을 텐데도 헬리콥터는 소름 끼치는 사격의 주인공 주변을 선명하게 비추며 주변을 날기만 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바람에 일어난 모래가 휘날릴 때, 고트 가가린은 소총을 겨눴다.
투두두두둑! 퍼버버벅!
그의 사격 솜씨가 뛰어난 건 아니어서 우두머리의 주변 모래밭이 거칠게 튄 직후였다.
어딜!
라이트 불빛에 드러난 고트 가가린을 본 모양이었다.
철컥! 투둑!
방향을 바꾼 맹수가 방아쇠를 당겼고,
“끄윽.”
허벅지를 뚫린 고트 가가린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날고 기던 용병들이 뭐 이렇게 쉽게 당해?
허벅지를 움켜쥔 고트 가가린이 시선을 들었으나 이미 해변에 남은 용병은 없었다.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둑!
대원의 절반은 쓰러진 용병들을 살피다가 방아쇠를 당겼고, 나머지는 단박에 고트 가가린을 둘러쌌다.
“스페츠나츠?”
가까이 다가온 대원들을 본 고트 가가린은 사격의 주인공을 보며 혼잣말처럼 질문을 던졌다.
멍청한 안드레이를 꼬드겨 무기를 밀매하면서 개판으로 만들었던 스페츠나츠 안에 이런 대원이 있었다고?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푸수수수우우-.
가까운 해안에서 잠수함이 요란하게 바다 위로 올라왔고, 그 뒤편으로 앞부분을 들썩이며 쾌속선이 다가왔다.
정신만 차리면 돼.
허벅지를 움켜쥔 고트 가가린은 매서운 사격을 보여 주었던 대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바실리와 연락을 부탁하네.”
고트 가가린이 청을 전한 순간이었다.
“물러나요!”
찢어지는 듯한 경고음과 함께 히놀 사키코가 유리병을 위로 들었다.
“새로운 감염균…!”
투둑! 퍼벅!
무서운 사격 실력을 지닌 대원은 거침이 없었다. 새로운 병원균이라는 협박에도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겨 히놀 사키코의 이마를 터트렸다.
털썩.
“얼른 회수해!”
주변에 있던 대원이 쓰러진 히놀 사키코의 손 주변에 떨어진 유리병을 집었다.
단호한 대처, 그러고도 변하지 않는 태도, 지휘관이 분명한 스페츠나츠 대원은 진짜배기였다.
“바실리 의장의 지시를 전달한다. 보이는 즉시 사살하라.”
“이봐? 내게는 얻어 낼 게 많아! 일단 만나게…?”
투둑! 퍼벅!
고트 가가린의 이마가 요란하게 터졌고, 그의 상체가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두 대의 헬리콥터가 허공을 맴도는 사이, 빠르게 달려온 쾌속선이 잠수함의 곁에서 멈췄다.
“정리 끝났습니다.”
그리고 확인 사살을 마친 대원들이 다가와 그의 주변에 섰다.
그 직후였다.
치잇.
– 바스첸코 대위. 세바첸코 함장이다.
잠수함 곁에 자리한 쾌속선에 선 세바첸코가 무전으로 바스첸코의 시선을 당겼다. 잠수함에서도 함장과 승조원들이 모두 올라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다가오지 못해 멀리서 대기하는 항모와 곁에 있는 잠수함의 안전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 준 대위와 대원들에게 감사한다.
함장은 당연하게 바스첸코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상급자였다.
– 쾌속선으로 다가오며 대위와 대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부심을 지닐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모습을 보여 준 대위와 스페츠나츠 대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런 그가 감사함을 표한다는 것처럼 새하얀 모자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이 신호라도 된다는 양 배와 잠수함에 올라와 있던 승조원들이 바스첸코와 대원들을 향해 경례를 보였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헬리콥터가 내리쬐는 조명 속에서 모래가 이슬처럼 휘날리는데, 소총을 품은 바스첸코가 함장과 승조원들을 향해 손을 올렸고, 주변에 있던 스페츠나츠 대원들은 경계를 풀지 못하는 탓에 둥그렇게 선 채 그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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