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26)
807화 무식한 러시아 새끼 (1)
요란한 사이렌과 동시에 급하게 달리는 경찰 특공대와 보안 요원들로 김포공항 입국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웅성대는 사람들 속에서 김미영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입국장에서 발각되는 감염자들이 하나둘 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물을 뿌리는 게 유일한 검색 방법이라는 현실이 갑갑한 탓이었다.
혼란 속에서 입국장 게이트를 바라보던 김미영이 오랜만에 얼굴에 미소를 담았다.
하얀 머리칼에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은 문바키였다.
입국장 게이트를 나선 그가 김미영을 발견하고는 곧장 다가왔다. 세련된 움직임, 근사하게 어울리는 선글라스, 깔끔한 슈트 덕분에 하얀 머리칼이 아니더라도 문바키는 사람들의 시선을 당기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감사합니다.”
능숙한 프랑스어로 인사를 주고받는 두 사람에게 시선들이 달려왔다가 입국장의 소란을 향해 돌아서고 있었다.
“요원들이 경호하지 않나요?”
“어딘가에 있을 텐데 신경 쓰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능청맞은 문바키의 대꾸에 김미영은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일단 나가죠. 식사는요?”
“그렇지 않아도 부탁드리고 싶은 식사가 있습니다.”
“전임 정보총국장이 부탁까지 할 정도라니, 어떤 종류일까요?”
“한국인이 평소에 먹는 가정식을 먹을 만한 식당이 있겠습니까? 거창한 요리들이 수북하게 나오는 식당 말고, 일반인들이 흔히 먹는 식사였으면 좋겠습니다.”
뜻밖의 요청을 받은 김미영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나가죠.”
출구를 나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괜찮다면 우리 집으로 가요. 그이와 내가 먹는 식사가 궁금했던 거 아니에요?”
“그래도 됩니까?”
그 어떤 식당보다도 반가워하는 문바키를 보며 김미영은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대신 요리 솜씨는 평균 이하니까 그 점은 각오하세요. 기회가 되면 그이의 부모님 댁도 한번 방문하기로 하죠. 어머님의 솜씨가 대단하시거든요.”
“제라르 사령관에게서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함께 묵은 적이 있는데 당시에 먹었던 음식이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난다고 하시더군요.”
주차장에 도착한 김미영은 운전석 문을 열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요원들이 있기는 해요?”
“예.”
문바키는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주변에 정보총국의 요원들이 있을 텐데, 진짜 김미영은 단 한 명도 짐작 가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가방은 뒤에 싣죠.”
“그러겠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김미영이 벨트를 매는 사이, 뒷자리에 가방을 실은 문바키가 조수석을 통해 들어왔다.
주차장을 빠져나가 도로에 합류한 뒤에도 김미영은 자주 룸미러로 시선을 주었다.
“요원들을 찾으십니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나요?”
“왼편 차선에서 달리는 택시, 오른쪽 바깥 차선에서 따라오는 오토바이, 그리고 뒤편에 승합차와 트럭, 제가 알아본 건 그 정도입니다.”
문바키의 설명에 따라 시선을 돌렸던 김미영이 무거워진 표정으로 운전에 집중했다.
“그 사람도 그렇고, 제라르, 문바키는 이렇게 살고 있었던 거네요.”
“대장과 비교하면, 제 모습은 장난 수준밖에 안 됩니다.”
덤덤하게 나온 문바키의 비유가 김미영에게는 이상스레 아프게 다가왔다. 당장 문바키만 해도 김미영이 알아차리지 못한 요원들이 이렇게나 따라붙는데, 강찬은 오죽할까.
가끔은 문바키처럼 집에서 먹는 밥이 그립기도 할 텐데, 김미영을 포함해 주변 사람이 다칠 것을 염려해 나타나지 못하는 그 심정은 또 어떨까?
“대통령과의 면담 시간은 결정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비서실과 경호실에서 사람을 보낸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문바키가 거절할 거라고 했어요.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인물이니 이해해 달라고도 했고요. 식사하고 조금 쉬었다가 내 설득을 받아들여 만나는 거로 하려고요.”
평소의 표정을 되찾은 김미영이 약속에 관해 설명한 다음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문바키의 재킷 주머니에서 진동이 일었다.
“잠시만 확인하겠습니다.”
“40분 정도 가야 하니까 편하게 받아요.”
“감사합니다.”
스마트폰을 꺼낸 문바키는 액정을 확인한 뒤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알로?”
실제로 문바키는 편안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런 뒤에 30초가량 상대방의 보고를 받고 나서, “위.” 하는 짧은 대꾸를 끝으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한국의 언론에 신문성 대통령이 프랑스 정보총국장을 비밀리에 면담한다고 보도되었답니다.”
벌써 보도했다고?
그것도 비밀리에 한다는 면담을 언론사에 뿌렸어?
나직한 문바키의 말을 들은 순간, 김미영의 표정에서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당황하거나, 수치스럽거나, 혹은 부끄러운 감정을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으려 무던히도 훈련한 결과 자연스럽게 나온 반응이었다.
“전직 정보총국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나 본데, 이 일로 정보총국이나 문바키, 그이가 불편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정보총국의 마드모아젤에게는 이미 말해 두었습니다. 방금 받은 전화 역시 정보총국 소속 요원에게서 온 거라 이미 내용을 알고 있을 테니 크게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정보국 세상은 관두고 외교라는 면에서 봐도 비밀리에 하는 면담을 사전에 떠들어 대면 다음에 누가 대한민국과 긴밀한 의논을 하겠나.
앞을 본 김미영은 김포공항의 혼란을 보았을 때처럼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적외선 카메라로 잡은 영상인 데다, 꿀렁대는 배 위에서 촬영한 바람에 화질은 좋지 않았다.
투둑. 투둑. 투둑. 투둑.
그런데도 달려오면서 사격하는 바스첸코의 모습이 강렬하게 화면에 담겼다.
한 번에 두 발씩, 방아쇠를 당기면서 터지는 반발을 완벽하게 눌러 가며 총구를 돌리는 바스첸코는 스페츠나츠와 바실리가 그토록 바라던 완벽한 전투 기계이자, 지휘관이었다.
–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모습이었습니다.
“흥!”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투로 바실리가 코웃음을 뱉었으나 눈가와 입 끝에 매달린 건 분명 흐뭇한 미소였다.
“마누엘 야닉은?”
– 그를 태운 평화유지군의 헬리콥터가 조금 전에 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헬리콥터가 도착하면 함장은 인도양 작전을 계속하고, 마누엘 야닉은 잠수함을 통해 이송하도록.”
–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바실리는 방금 끝난 영상을 다시 되돌렸다.
번쩍이는 불빛이 사그라들 때, 바스첸코는 이미 다음 타깃을 겨누고 있었다. 더욱 바실리를 흥분시키는 건 바스첸코를 따르는 대원들의 모습이었다.
행여나 눈먼 총알에 지휘관이 다칠까를 염려해 미친 망아지들처럼 적을 향해 날뛰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바스첸코를 완벽하게 지휘관으로 받아들인 게 분명했다.
바스첸코가 이렇게 성장하다니?
바실리의 부탁을 강찬은 끝까지 외면하지 않았다. 그뿐이냐. 대강 굴려도 뭐라 할 말이 없는 상황에서 비무장 왕과 검은 땅의 지배자, 곽철호 대령과 한 팀을 만들어 작전에 투입했다.
하릴 하지즈 제거 작전, 소말리아 시아파 근거지 파괴, 마리그 기지에서 엘 허르까지의 수색과 고트 가가린의 사살까지, 그사이 바스첸코와 스페츠나츠가 경험한 전투만 해도 대원들이 평생 우려먹을 수준이었다.
러시아 속담에 말이다.
어려울 때 진정한 친구가 누군지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안드레이에게 죽을 뻔했던 바실리를 구해 준 강찬은 미래를 위해 바스첸코를 진정한 특수부대의 지휘관으로 키워 주었다.
“흥! 미국으로부터 얻었다는 핵잠수함에 뒤지지 않는 거로 갚아 주지.”
혼잣말을 뱉은 바실리는 책상 위에 놓인 인터폰을 눌렀다.
– 예, 의장님.
“한국에 방문 의사를 전해.”
– 남한입니까?
“한국이라고 하지 않았나?”
– 죄송합니다, 의장님.
지시에 대해 질문하는 걸 지독하게 싫어하는 바실리의 성격을 깨달은 보좌관이 얼른 잘못을 인정하고 나섰다.
“명분은 위성 발사체에 관한 공동 연구 정도가 좋겠다.”
– 위성 발사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이 목메던 기술이어서 욕을 한 번 더 먹더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한국에 다녀오고 나면 이놈부터 바꿔야지.’
대답 대신 바실리는 인터폰의 연결을 끊었다. 그런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홍차가 놓인 테이블로 움직였다.
“마누엘 야닉. 생체 인식을 위해 필요하다니 양쪽 눈알을 뽑아 주마. 지네들이 드나들기에도 아주 좋은 통로가 되겠어.”
사기로 된 주전자를 들어 홍차를 따른 바실리가 어깨를 으쓱하게 들어 보였다.
“덕분에 앞으로 지네에게 던져 줄 놈들에게 가장 먼저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한국에게 신세 진 꼴이군.”
혼잣말을 마친 바실리는 모처럼 행복한 얼굴로 홍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
집중하는 소진천에게는 말조차 함부로 걸지 못한다.
먹고 마시는 것부터 잠시 눈을 붙이는 것까지 지겹도록 곁에 붙어 있는 기수호가 조절하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함부로 권하지 못했다.
천재는 수명이 짧단다.
아마 저렇게 먹고 자는 것마저 잃어버린 채 몰입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타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닥.
볼이 홀쭉하도록 말라 버렸지만, 소진천의 눈만큼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번들거렸다.
사람이 저렇게 오래 집중할 수 있을까?
소진천이 풍겨 내는 기운에 눌린 것처럼 다들 조심할 때였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움직이던 소진천의 손이 멈췄다.
느닷없이 잘려 나간 키보드 소리에 다들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1번 번호로 전화가 연결됐어요.”
모니터를 들여다본 상태에서 소진천이 상황을 설명했다.
1번은 제이어 반 할트의 번호라는 은어였다.
“전원이 들어왔어? 어떻게 번호를 추적할까?”
“지금 하면 들킬 수 있어요. 잠시만요.”
질문을 던졌던 기수호가 통신 담당 과장에게 검지를 세워 다시 한번 숫자 ‘1’을 표시했다.
“지금이요. 지금 추적하면 돼요.”
“오케이.”
기수호가 들고 있던 검지를 빙빙 돌리자 통신 담당 과장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메인에 있던 대형 화면이 바뀌면서 세계 지도가 올라왔고, 이어서 기지국을 따라 붉은색 선이 연달아 떠올랐다. 회선을 돌리는 숫자가 많아질수록 붉은 선의 개수가 늘어난다.
“우와.”
그런데 지금은 아예 지도 전체가 붉게 물들 정도여서 지켜보던 직원들이 나직하게 탄성을 터트렸다.
통신 담당 과장이 이가 드러날 정도로 독한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린 직후였다.
“됐어! 잡았어!”
메인 화면 구석에 번호가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번호를 확인한 소진천이 광기에 사로잡힌 눈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붉은색 범벅인 지도가 사라졌고, 이번에는 알아보기 어려운 명령어들이 빠르게 화면 위로 올라갔다.
CIA 보안 시스템과 소진천의 싸움이었다.
티타늄 방패를 든 거인을 향해 달랑 창 하나를 들고 달려드는 소진천,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는 마치 그런 싸움처럼 보였다.
FBI, 미국 국방성을 뚫었던 세계적인 해커들도 CIA의 보안 시스템만은 뚫지 못했다. 하기는, 그곳을 털었다면 극비 작전 내용이 벌써 외부로 흘러나왔겠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소진천이라면 또 어떻게 해내지 않을까?
빠르게 명령어가 올라가는 화면이 어둑한 내부와 직원들의 얼굴을 물들인 다음이었다.
타악.
소진천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엔터키를 세차게 때렸다.
그 직후였다.
– Don’t worry about it.(그 점에 관해서는 염려하지 마시오.)
메인 화면에 연결된 스피커에서 통화 내용이 흘러나왔다.
“우…!”
혹시 함성이 그쪽에 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탄성을 쏟아 내던 직원이 입을 틀어막는 순간이었다.
털썩.
소진천이 의자에 상체를 기울였다.
“된 거지? 프로그램 심은 거 맞지?”
바싹 붙어 있던 기수호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소진천이 “예.” 하는 나직한 답을 내놓았다.
“이야!”
양손을 움켜쥔 기수호가 경기에서 승리한 감독처럼 고함을 지른 다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직원들이 소진천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박수를 보냈다.
***
지이이잉. 지이이잉.
방에 돌아와 침묵하던 이용우의 폴더폰이 무거운 분위기에 눌린 것처럼 조신하게 몸을 떨었다.
눈치를 살피는 자밀라 앞에서 액정을 확인한 이용우는 빠르게 폴더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용우입니다.”
– 마누엘 야닉을 인계했다.
복도에서 울리는 대원들과 요원들의 이동 소리, 잠시 뒤에 들려온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를 듣고서 짐작했던 일이었다.
“예, 팀장님.”
최종일의 전화에 이용우는 나직하게 답을 내놓았다.
– 반성 충분히 했어?
“예, 팀장님.”
어쩐지 웃음을 담은 듯한 최종일의 질문에도 이용우는 답지 않게 풀죽은 음성으로 아까와 같은 답을 내놓았다. 더구나 신광선이 전화로 알려 준 사실, 기밀에 가까운 작전을 자밀라와 의논했다는 점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었다.
– 아직 자밀라를 데려가고 싶어?
“아닙니다.”
– 그래? 부원장님께서는 우리 팀이 함께 움직이는 거라면 괜찮을 거 같다고 하시던데? 아니라니까 그렇게 보고하마.
“팀장님?”
행여나 전화가 끊길세라 이용우는 다급하게 최종일을 불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