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28)
809화 무식한 러시아 새끼 (3)
방에 들어간 이용우는 자밀라와 마주 앉았다.
강찬의 지적을 받고서 풀이 죽어 있던 그가 전화를 받고 나서 급하게 튀어 나갔고, 다시 돌아온 참이었다. 그것도 직전에 바깥에서 대원들과 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이어서 헬리콥터 소리마저 요란하게 들린 뒤였다.
무슨 말을 할까?
자밀라가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이용우는 지도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이곳이 압둘라 하지즈가 은신했다고 판단하는 주택이다.”
뭐가 이렇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놀란 얼굴로 이용우를 보았던 자밀라가 궁금함을 삼키는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이라크의 지도였다.
자밀라가 나고 자란 나라, 목숨을 위협받아 도주한 고국, 지도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커다란 눈에 복잡한 감정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X자 표시 보이지? 이곳이 정보총국의 여성 요원들이 살해된 지역이다.”
그저 위험하다는 말을 듣는 것과 이렇게 누군가 임무를 수행하다가 살해된 지역을 보는 건 전혀 다르다. 이용우가 알려 준 위치를 확인한 자밀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최종일 팀장님과 정보총국의 통제 안에서만 움직일 것, 어떤 경우에도 지시에 따를 것, 마지막으로 이번 임무에 관해 누구에게도 절대 말하지 않을 것.”
고개를 든 상태에서 이용우는 전에 없이 사무적인 태도로 원하는 내용을 내놓았다.
“정보총국의 요원들마저 희생되는 지역에 대책 없이 너를 데리고 가려던 나는 사실 요원으로 실격이다. 그래서 그 부분을 지적받았고, 내 잘못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도를 펼쳐서 위치를 알려 줬다.
함께 가자는 의미일 텐데 왜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릴까?
이용우를 바라보는 자밀라는 아직 긴장을 풀지 못했다.
“보았듯이 우리 중 누가 희생될지 모를 위험한 임무다. 이곳에서 잘못되면 너의 미래는 없어. 붙잡히면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고….”
“내 선택을 듣고 싶은 거라면 내 답은 함께 가는 거예요.”
답은 분명하게 했다. 그런데도 이용우는 자밀라의 커다란 눈을 들여다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숨 막히는 긴장이 흐른 다음이었다.
“이번 임무 끝나면…. 아직 그럴 마음이 있다면….”
이용우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남은 시간을 함께했으면 싶다.”
커다란 눈망울을 지켜 주던 자밀라의 기다란 속눈썹이 잘게 떨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용우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죠?”
“너를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 내가 저곳에서 희생되고 나면 다른 남자를 만나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못 견디겠더라.”
“후회하지 않겠어요?”
“내가? 왜?”
하여간, 변화무쌍한 건 정말이지 적수가 없지 싶었다.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이용우의 모습 탓에 방금 받았던 감동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어서 자밀라는 아쉬운 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라크 여자예요. 한국에서 아랍 여자를 아내로 두면 받아야 하는 시선은 생각한 거죠?”
“그게 왜 문제가 돼? 일부다처제라서 오히려 다들 부러워할 거야.”
뭐가 어쩌고 어째?
배신당한 표정이 된 자밀라를 보며 이용우는 히죽 웃었다.
“나머지는 살아난 뒤에 고민하자.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설명하는 동선과 지시 사항을 모두 머리에 담아.”
“설마 진짜 부인을 여러 명 거느릴 생각인 건 아니죠?”
지도에 고개를 기울이던 이용우가 정말이지 해맑은 표정으로 자밀라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그런 희망이라도 있어야 어떡해서든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막 생겨나지 않겠냐?”
“그럼 나는요?”
질문이라기보다는 항변이었다.
대답 대신 이용우는 오른손을 얼굴 앞으로 들었다. 그리고는 주먹 쥔 손에서 엄지를 뻗어 본인을 가리켰다. 그런 뒤에 다시금 해맑게 웃었다.
***
속보의 내용을 확인한 김형정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다른 건 다 집어치우자.
감염은 말할 것 없고, 숨 막히게 몰아치는 위기들을 요원과 대원들이 피를 뿌려 가며 지켜 내는 상황이었다. 망가졌던 국가정보원의 위상을 뉴욕의 CIA 건물에서의 처절한 작전을 통해 겨우 일으켰다. 그런데 비밀 회동을 이런 식으로 떠벌리면 앞으로 국가정보원과 협상할 상대방은 먼저 이런 상황을 고민하게 된다.
“부원장님께 보고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야지.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일단 확인하는 게 도리지.”
김형정은 무거운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집었다. 번호를 누르고 신호음이 두 번 울린 다음이었다.
– 여보세요?
“김형정입니다. 통화되십니까?”
– 착륙 직전이라 길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3분 정도 가능하겠네요.
“그럼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의 언론들이 속보를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혹시 확인하셨습니까?”
– 감염이 퍼졌나요?
확실히 강찬은 아직 속보의 내용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VIP와 프랑스 정보총국 총국장이 비밀리에 회동한다는 보도 내용입니다.”
– 안느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겁니까?
“앞쪽 속보는 문바키 전임 총국장과의 회동인 듯한데 일부러 전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형정이 짐작하는 바를 전한 다음이었다.
– 홍진용, 이 멍청한 새끼!
착륙을 준비하는 것처럼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 속을 시원하게 뚫어 주는 듯한 강찬의 욕이 대뜸 터져 나왔다.
– 전임 총국장과의 회담이라는 건 하루면 모두 알게 될 텐데, 그런 식의 뻥튀기로 개망신을 떨어서 얻는 게 뭐가 있다고 그런 짓을 한 거지? 혹시 짐작 가는 게 있습니까?
“아마도 국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홍보 같습니다.”
– 하여간 모자란 새끼. 비밀리에 하는 회동을 본인들이 떠들면 앞으로 누가 우리와 협상을 하려고 들겠냐고. 하동선, 이 개새끼부터 하여간 매를 버는 건 정말 잘해요.
강찬 역시 김형정과 비슷한 염려와 분노를 품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터트리는 분통이 예멘에 있는 하동선에게 튄 것도 분명해 보였다.
이대로 두면 강찬은 홍진용에게 전화한다. 그리고는 개새끼, 소 새끼 찾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하동선을 필요 이상으로 두들기거나. 시간 여유도 별로 없다. 그러니 얼른 그나마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게 좋겠다.
“디지털 분석실에서 제이어 반 할트의 전화를 완벽하게 도청했습니다. 짧은 통화를 끝으로 전원을 아예 꺼 버려서 다시 사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와 통화한 상대방이 데이비드 주라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 뭐 하는 인간인지도 알아냈나요?
“상하이 3인방 주승관의 아들입니다.”
김형정의 보고가 끝난 다음이었다.
– 이제 예멘에 도착합니다. 감염균을 찾았다니까 그쪽 처리를 부탁드리고, 예멘에 도착한 뒤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조금 더 고생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김형정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인상을 찌푸린 김형정이 분노를 누르고서 모니터에 시선을 줄 때였다.
“본부장님!”
신동선이 또다시 김형정을 급하게 불렀다.
사고를 또 쳤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김형정이 시선을 준 다음이었다.
“러시아가 위성 발사체에 관한 공동 연구와 개발을 우리 정부에 공식 요청했답니다. 연장 선상에서 바실리 의장이 실무자와 우리나라를 방문하겠다는 내용도 전했다는 보도입니다.”
“어디에서 나온 보고야?”
“정보 2과 보고서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마우스를 조작한 김형정은 방금 들었던 내용을 살폈다.
이런 문제를 혹시라도 과장했다면 이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
김형정이 스마트폰을 집어 든 순간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마음을 알았다는 것처럼 손에 든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본부장님. 속보에 관한 보고 보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뭐야, 이거?”
– 기사에 올라온 그대로 러시아 정부에서 제안이 있었고, 실제로 바실리 의장이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공동 연구라고 하지만, 러시아가 위성 발사에 관한 기술을 이전해 준다면 달 착륙까지 우리의 목표를 50년은 앞당길 수 있습니다.
말해 뭐 하겠나.
연달아 실패하면서도 인공위성 발사체를 개발하고, 시험 발사를 멈추지 않는 이유를 주변 정보국들은 모두 안다.
막대한 비용을 들인 발사체가 동해상에 떨어지는 거?
절반은 의도한 발사라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또 거의 모른다. 떨어진 거리, 탄도, 그게 바로 탄도 미사일을 어디까지 날릴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라는 사실을 말이다.
동해상에 떨어진 위성의 궤도, 거리, 속도가 베이징과 상하이를 우리 미사일 사정거리에 담았다는 경고가 되고, 우리를 건드리면 도쿄를 포함한 일본 전역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협박이 된다.
“후-.”
앞에서 강찬이 달리고, 그 뒤에 요원들과 대원들의 피눈물 섞인 노력이 뒷받침되어 이룬 성과였다. 위상이 올랐다는 사실이 기쁘지만, 암담한 현실을 어쩌지 못해서 김형정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
미국 대통령이 온다는 보도를 본 하동선은 이성을 저 멀리 던져 버린 사람처럼 날뛰었다.
“협상을 통해 얻을 게 있다고 하라니까.”
부족한 영어 실력을 대신해 앞세운 차장을 윽박지르던 그가 갑갑한 표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지휘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웟쓰 유어 네임?”
인디언 추장이 현실에 튀어나와서 던지는 것처럼 딱딱하고 무례하게 들리는 질문이었다. 그런데도 지휘관은 불쾌함을 표시하지 않은 채, ‘압둘라 하림’이라며 부르기 편한 수준에서 이름을 알려 주었다.
“헤이, 미스터 압둘라 하림.”
어쩌면 저렇게 가벼울 수가 있을까?
속이 새카맣게 타 버린 차장이 심장에서 올라오는 그을음을 억지로 참으며 지켜보는 앞이었다.
“유어 보스 컴 히어!”
하동선은 막무가내로 요구를 연달아 던졌다.
워낙 적극적인 모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대로는 답이 안 나온다고 여겨서일까. 하동선을 지켜보던 지휘관이 떠나고, 잠시 뒤에 중동 전통 복장을 한 남자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60대 초반 남자를 따라온 마흔 정도의 아랍 남자가 능숙한 우리말을 쏟아 냈다.
“한국어를 아시나?”
“이분은 칼리드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방 차관이시고, 저는 통역을 담당한 오사르 빈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차관께 독대를 원한다고 말씀을 전해 주시오.”
통역이 오자마자 우리를 버리고 독대를 하겠다고?
국가정보원 차장 두 명이 기가 막힌 심정으로 지켜보는 앞이었다. 칼리드 살만 차관을 향해 요구를 전했던 통역이 곧바로 시선을 가져왔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물으십니다.”
“미국 대통령이 온다는 보도를 보았소. 내게 미국 대통령에게 전할 중요한 정보가 있는데 함부로 말하기 어려워서 그렇소.”
통역에게서 하동선의 말을 전해 들은 칼리드 살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대원들을 불러 차장 두 명을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앉아서 이야기하면 안 되겠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는지 몰라도 일단은 들어준다. 휠체어를 탄 하동선의 요구대로 칼리드 살만은 방에 있는 탁자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미국 대통령이 도착하면 먼저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고 전해 주시오. 모종의 계획을 준비한 탓에 이렇게 감금되었다고 설명하면 곧바로 망명을 승인해 줄 거요.”
뭔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고개를 갸웃했던 칼리드 살만이 속을 알기 어려운 표정으로 하동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미국 대통령과 만나고 나면, 미국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크게 양보하는 일이 생길 거요. 또한, 나 역시 사우디아라비아가 원하는 사항을 들어드리겠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으십니다.”
“군사, 정치, 혹은 국가정보원의 중동 작전까지, 원하는 건 모두 들어드리겠소.”
“말씀은 알겠으나,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이 미국에 망명하는 일을 독자적으로 처리하면 칼리드 살만 차관께서 본국의 징계를 받게 되신답니다.”
“아까 말하지 않았소? 미국 대통령과 함께 모종의 계획을 준비 중이었다고. 그 부분이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어서 차관께 득이 되도록 미국 정부가 나설 거요.”
하동선이 통역에게 강한 의지를 담은 표정과 음성으로 답을 했으나 칼리드 살만 차관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본국에 문의해서 답을 받겠으니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망명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수 있는 거 아니오?”
“그럴 리 없다고 하십니다.”
“이봐요! 사우디아라비아의 병력과 차관이 이곳에 오게 된 계기가 우리 부원장의 요청 때문 아니었소? 본국에 연락하게 되면 당연히 통하는 사람에게 문의할 테고, 그러면 부원장이 내용을 알게 될 텐데, 뒷감당을 하실 수 있겠소?”
흥분한 하동선의 이야기를 전하느라 잠시 시간이 걸렸다.
“미국 정부가 망명을 승인할 거라 확신하는 이유를 말씀하시든가, 아니면 본국의 승인을 기다리시든가, 선택하시랍니다.”
뜨거운 숨을 토해 냈지만, 하동선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이렇게 합시다. 미국 대통령이 도착하면 수행원이 있겠지요. 백악관 수행단이든, CIA든, 누구라도 괜찮으니 차관과 함께 만납시다. 그 자리에서 직접 보시면 되잖소?”
통역이 요구 조건을 전달할 때였다.
“만약 내 요청을 거절해서 문제가 생긴다면 미국 정부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에 앙심을 품게 될 거요.”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하동선이 경고를 던졌고, 통역을 향해 고개를 돌렸던 차관이 힐끔 시선을 주었다.
“기다리십시오.”
“어떻게 하실 건지 답을 주는 게 도리 아니오?”
“말씀하신 대로 관계자와 함께 오시겠답니다.”
“아후!”
안도의 숨을 내쉬는 하동선 앞에서 몸을 일으킨 차관과 통역이 밖으로 나섰다.
아직 차장 두 명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설렘과 기대를 누르며 휠체어를 돌린 하동선은 활주로를 향해 고개를 쭉 내밀었다.
활주로에서 병력이 빠르게 이동하고, 노란 경광등을 등에 짊어진 지프와 트럭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잠들었던 공항을 깨우고 있었다.
왔구나!
조금 전에 독대했던 국방 차관의 모습을 확인한 하동선이 상체를 기울여 활주로 끝을 보는 순간이었다.
진짜 왔다!
활주로 저 위쪽에서 비행기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