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30)
811화 너는 내가 무슨 짓을 해서든 목을 딸 거야 (2)
미국 대통령이 도착했나 기대했던 차장 두 명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였다. 문이 열리며 양범의 뒤편에서 따라 들어온 이동명 역시 차장 두 명을 보며 놀라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양범을 맞았다.
“늦지 않았습니까?”
“게릭 웨인이 미군 기지에 들러서 쇼를 하는 덕분에 아직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답니다.”
“오랜만입니다, 제라르 사령관.”
“이렇게 보니 좋네요.”
차장 두 명은 양범을 알아본 눈치였다. 하기는, 국가정보원 차장 정도 되는 인물이 중국 정보국의 양범을 모른다면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겠다.
뭐가 이래?
그래도 중국의 정보국 1인자였다. 그런 양범이 강찬을 존중하며 인사하고, 함께 들어온 중국 요원들이 공손하게 손을 잡고서 문 앞에 늘어선 모습을 보며 차장 두 명은 황당한 모양이었다.
인사를 마친 다음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통역과 직원이 급하게 양범의 의자를 준비했고, 협탁을 가져온 뒤에 분주하게 믹스 커피를 준비했다.
강찬과 제라르, 양범이 앉고 난 다음이었다.
“앉아.”
강찬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이동명에게 고갯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이런 순간에 반항을 해?
눈치를 살핀 이동명이 시선마저 조심하는 얼굴로 차장 두 명의 곁에 놓아준 의자에 앉았다.
죄를 짓지 말지, 이 모지리들아.
누가 뭐라고 해도 국가정보원 차장 두 명과 외교부 차관이었다. 그런 세 사람이 종이컵에 담은 커피 한잔 얻어 마시지 못한 채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배가 고픈 나머지,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치료비가 없어서 죽게 생겼다면 그나마 인간적으로 동정이라도 하겠다. 그런 것도 아니고, 평균 수준보다 월등히 먹고살 만한 인간들이 뭔 욕심을 그렇게 부렸을까?
앞쪽에 앉은 이동명과 그 곁에 있는 차장 둘을 지켜보던 강찬은 시선을 돌렸다.
“이동명 차관만 보내시라니까 굳이 오셨어요?”
“이렇게 해야 강찬 씨의 분노를 피할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당신은 혹시 짐작하는 거 있어?
차장 두 명이 궁금한 눈으로 돌아보았으나 이동명은 시선을 피할 뿐,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하기는, 분위기로 봐서 뭐라 하기도 어렵겠다.
“강찬 씨.”
그사이, 양범이 강찬을 불렀다. 그런 뒤에 뒤편에 선 요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화이트 울프 시절부터 지켜보던 대원들로 구성했습니다. 오늘 임무에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주었고, 그런데도 물러서지 않은 요원들입니다.”
자부심 담긴 눈으로 요원들에 관해 설명한 양범이 시선을 가져왔다.
“요원들과 함께 강찬 씨의 곁을 지키고, 뜻에 따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인연과 제가 보이는 성의를 봐주십시오.”
이게 말이 돼?
중국의 정보국 1인자가 강찬에게 고개 숙여 부탁하는 게?
“오늘 일로 중국 정부가 곤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당분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겠지요.”
양범은 죽음을 각오한 게 분명했다.
이번 일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강찬에게 신뢰를 증명한 셈이고, 비록 실패하는 바람에 예멘 공항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더라도 중국의 상하이 3인방이 저지른 끔찍한 계획을 용서받고자 하는 소망이 그의 눈에 담겨 있었다.
신념에 따라 목숨을 버린 사람의 눈에는 욕심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무서운 각오와 집념이 담긴다. 지금 앞에 있는 양범처럼 말이다.
“보상치고는 꽤 부담스러운데요?”
강찬의 대답에 마음이 놓인 모양이었다.
중년을 훌쩍 넘긴 양범이 젊은 강찬의 답을 듣고는 안심한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담았다.
“작전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전에 먼저 정리할 게 있습니다.”
강찬은 긴장한 채 숨죽이고 있는 차장 두 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동명 차관은 알지?”
“그렇습니다.”
차장 한 명이 얼른 답을 한 다음이었다.
구석에 있던 통역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우즈만 왕자님께서 통화를 원하십니다.”
그런 뒤에 묵직해 보이는 스마트폰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중국 정보국의 1인자 양범으로 모자라 사우디아라비아의 후계자 계승 1위인 우즈만까지?
차장 두 명은 강찬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게 분명한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찬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강찬입니다.”
– 우즈만이오, 무슈 강. 사안이 워낙 막중해서 통화를 요청했습니다.
영어로 건너온 설명이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 면에서 철수하는 것도 고려하라고 전했습니다.”
강찬의 대꾸가 건너간 다음이었다.
부담을 잔뜩 안은 듯한 우즈만의 숨소리가 나직하게 건너왔다.
– 무슈 강. 예멘은 현재 무정부 상태입니다. 우리가 그곳을 떠나는 순간, 반군과 정부군의 전투가 벌어질 테고, 외부에서 병력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들에게 감염은 나중의 일일 테니까요.
권력이 뭔지, 죽음의 땅을 차지하겠다며 달려드는 인간들이 있고, 또 감염자는 내팽개친 인간들이 자리를 지키겠답시고 병력을 보낸다.
“우즈만 왕자님.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 무슈 강. 하나만 묻겠습니다. 이번 계획이 이뤄진 뒤에 우리에게 책임이 돌아오게 됩니까?
“정보국 세상을 아시잖습니까? 잘되면 모든 게 만족스럽고, 결과가 나쁘면 어떤 이유에서든 물려 들어갑니다.”
영어로 오가는 통화를 이동명은 알아먹는 모양인데, 도대체 어떤 일을 의논하는지는 감을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 무슈 강은 이제 바람을 넘어서서 태풍이 되었군요. 성공한다면 우리 후인들이 거둘 씨앗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멀리 날아갈 테고요.
비유 참 멋지네.
강찬이 가볍게 웃은 다음이었다.
– 나는 이미 늙었습니다, 무슈 강. 무슈 강과 한국의 천중명 회장에게 얻은 게 많으니 여기에서 발을 빼는 건 도리가 아니겠지요. 다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내 선에서 끝낼 수 있게 부탁합니다.
각오한 것처럼 우즈만이 마지막 청을 내놓았다.
– 국방 차관에게는 내가 지시하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자주 해서 귀찮아하실지 모르겠지만, 신께 무슈 강을 지켜봐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즈만 왕자님.”
고맙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대단한 결심을 전한 우즈만과의 통화가 끝났다. 스마트폰을 건네준 강찬은 곧바로 차장 두 명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별로 없어. 그러니 마지막으로 답할 기회를 주겠다.”
뭘 물어보려고?
당황하는 두 사람을 향해 강찬은 바로 입을 열었다.
“감염균을 퍼트리는 데 왜 중국이 마약을 먼저 돌려야 했을까? 다음으로 감염균이 퍼져서 사회가 혼란스럽다고 해도, 중국과 일본이 쉽사리 한국과 북한을 손에 넣기는 어려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차장 두 명의 시선이 달려갔으나 이동명은 시선을 떨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미국이 아무리 눈감는다고 해도 한국에 주둔한 군대의 문제도 있어서 쉽지 않지. 이제 털어놔. 아직 말하지 않은 거, 이동명 차관이 모를 정도로 숨겨 놓은 계획.”
강찬의 질문이 떨어진 직후였다.
얼굴빛이 하얗게 변한 차장 두 명이 식은땀이 올라온 이마를 닦았다.
***
천중명은 임시로 만든 화상 회의실로 들어섰다.
여러 명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회의를 다자 통화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고, 결정 난 사항을 전달하는 수고를 덜어 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용이 워낙 심각했다.
화면 중앙에 마법사 구완섭, 파생계의 미친 여자 강다희, 정보조직 황성규의 얼굴이 차례대로 떠올랐고, 이어서 오른쪽 구석에 천중명의 모습이 담겼다.
– 지금까지의 자료를 분석하면 IMF 당시 상황을 다시 만드는 계획이라고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 설명을 강다희 상무가 추가하겠습니다.
상황을 설명한 구완섭이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다.
– 강다희입니다, 회장님. 먼저 외환 사태 당시와 현재 달러 보유액을 비교하면 한국 경제가 일시적으로 무너질 수준은 아닙니다. 문제는 채권에 있습니다. 일련의 사태로 채권 신용도가 무너진 바람에 한국의 채권 신용도가 형편없이 추락해 있습니다.
천중명은 사내 메일함을 통해 받은 자료를 펼쳤다.
– 채권의 신용도를 보증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미국, 일본과 1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13조 원 조금 넘는 금액인데, 문제는 그 부분에 너무 많은 신용을 걸어 두었다는 점입니다.
강다희가 손을 움직이자 화면 아래로 작은 표가 올라왔다.
– 외환 사태 당시에도 일본과 7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IMF 대출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일본이 그 70억 달러를 기습적으로 회수했기 때문입니다.
천중명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소리 나지 않게 픽 웃었다.
제이어 반 할트 말이다.
뭐 대단한 인간인 것처럼 설치고 다니더니 한다는 짓이 과거의 상황을 그대로 만들어 내는 수준이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 경제 위기가 몰아치고 달러가 빠져나가는 시점에서 일본이 채권 스와프를 취소하면 신용도가 급락하게 되고, 자금 조달이 막히게 됩니다.
“채권 스와프에서 미국의 투자 비율이 어느 정도죠?”
– 미국이 15퍼센트, 일본이 85퍼센트로 구성했는데, 이 역시 어느 때고 해지하거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기가 막힌다, 진짜.
막말로 흑자인 상태에서 고작 우리 돈 13조 원 때문에 부도를 얻어맞도록 함정을 팔 만큼 저들에게 한국이 만만했던 건가?
– 한국은 비약적으로 수명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노후를 보장하는 가장 큰 역할을 부동산이 하고 있습니다.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이 폭락하고, 그 과정에서 노령층의 빈곤율이 45퍼센트에서 80퍼센트로 급증하게 됩니다. 그 점이 가장 아픈 부분입니다.
천중명도 아는 사실이었다.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인 부동산, 채권의 신용도 하락, 그 두 가지 약점을 이용해 저들은 고작 13조 원을 흔들어 신용도를 부도 수표 수준으로 떨어트리려 하고 있었다.
아예 처음부터 제대로 붙어?
그렇게 제이어 반 할트의 턱에 주먹을 꽂아?
잠시 서류를 내려다보던 천중명은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한국 채권의 신용등급을 우수로 바꾸려면 어느 정도 규모로 매입해야 하죠?”
– 회장님?
구완섭이 놀란 음성으로 천중명을 불렀다. 그러나 천중명의 표정을 확인한 뒤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 채권의 신용도를 올리는 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건 아실 겁니다. 그렇게 올려놓은 신용등급에 취해 한국 정부가 또다시 채권을 발행하면 앞에 투자한 금액에서 얼마나 손실이 발생할지 가늠도 되지 않습니다.
안다, 구완섭이 염려하는 현실을. 그러나 먼저 주먹을 날리지 않으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없다.
“외환 사태 때 자료를 보면 무너진 가정의 자녀들은 대부분 다시 일어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혀 투기에 가까운 투자를 한 사람들은 몰라도, 사회 구조상 약자로 몰린 사람들만큼은 지키고 싶습니다.”
화면을 향해 의지를 전한 천중명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먼저 행동하면, 제이어 반 할트를 비롯한 헤지 펀드들도 물러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때리는 거로 하지요. 준비해야 하는 자금 규모가 얼마나 될까요?”
– 먼저 때리는 규모라면 최소 3천조 원은 필요합니다, 회장님. 그리고 짐작하시겠지만, 저들이 환율로 달려들 때를 대비하려면 또 1천조 원이 추가로 들어갑니다.
자금의 운용이라면 두려움 따위 없던 구완섭이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금액이 예상보다 너무 큰데?
천중명이 자료에 시선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 회장님. 채권의 신용도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막대한 규모의 채권을 매입한 이후에 분쟁이나 국지전, 혹은 비슷한 위험이 발생하는 시나리오도 고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내내 침묵하던 황성규가 무거운 음성으로 안고 있던 문제를 내놓았다.
황성규가 이렇게 건의할 정도라면 그의 정보망에 뭔가 걸렸다는 의미였다. 천중명은 원·달러 환율과 선물 시장의 움직임으로 시선을 주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구완섭 전무. 24시간 안으로 3천조 원을 준비할 테니, 국채를 매입합시다. 우리가 먼저 때리는 일입니다.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때까지는 다른 곳에서 모르는 게 좋겠습니다.”
– 준비하겠습니다, 회장님.
천중명의 제안에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들리는 답을 구완섭이 내놓았다.
“나머지 1천조 원을 준비할 때까지 얼마나 여유가 있습니까?”
– 빠르게 매입할수록 가격이 쌉니다. 저들이 짐작하지 못하도록 조용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강다희 상무와 나눠서 매입하면 사흘? 그 정도가 소문나지 않는 최대한의 여유입니다.
“사흘 뒤에 1천조? 준비하지요.”
마법사 구완섭이 대답조차 내놓지 못했고, 미친 여자로 평가받는 강다희의 눈 끝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우선 그룹에 있는 자금을 운용하고, 오늘 회의는 이만하지요.”
고개를 숙이는 세 사람을 보며 천중명은 화상회의 시스템의 스위치를 내렸다.
한국에 13조 원에 해당하는 달러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느닷없이 달러가 빠져나가고, 채권을 통해 한국의 신용도가 바닥을 치면서 순간적으로 외환이 말라 버리는 상황이었다.
기축 통화는 이래서 무섭다.
달러가 아니면 받지 않겠다는 한마디로 부도가 결정되니까.
마음을 굳힌 천중명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내 손에 피를 묻히는 대신, 억울하게 쓰러져 비명을 지를 사람들을 구한다. 그러라고 도깨비를 회장으로 만들었을 테니까.
번호를 찾아 누른 천중명은 느닷없이 떠오른 강찬의 얼굴을 생각하며 옅게 웃었다. 이상하지? 그의 얼굴과 독한 눈빛이 떠오르자 묘하게 용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 김형정입니다.
“본부장님. 천중명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생체 인식이 필요합니다.”
–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이지 짧은 통화였다.
요구를 전한 천중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향해 몸을 돌렸다.
황성규의 말대로 아무리 채권을 매입해서 준비한다고 해도 국지전 수준의 전쟁이 터지면 신용도는 걷잡지 못한다.
해결하겠지?
다시금 강찬을 떠올린 천중명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믿는 심정과는 별개로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차장 두 놈과 이동명이 서로 억울한 표정을 하고서 마주 보는 모습이 마치 잡놈들과 쓰레기의 만남 같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감염균을 들여온 놈이 그런 소리가 나와?
놀라는 이동명의 모습을 보며 강찬은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제라르는 몰라도, 양범과 중국 요원들이 지켜보는 앞이라는 생각이 강찬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찬의 표정을 알아챈 차장 두 명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후-.”
여기까지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었고, 모든 걸 털어놓기는 했지만, 조국과 태극기를 지키겠다는 사명 하나로 뜨거운 피를 뿌린 대원들과 요원들을 위해서라도 이놈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찔, 눈치를 살피던 차장 두 놈이 눈알을 굴리는 순간이었다. 곧바로 다가선 강찬은 휠체어에 앉은 왼쪽 놈에게 먼저 다가섰다.
콰악.
그리고는 상체를 뒤로 젖히는 놈의 머리통을 붙들었다.
“국가정보원 차장이라는 새끼가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려는 세력을 알고도 입을 처닫고, 거기에 동조해?”
“원장님이 시켜서! 정말 시켜서 따른 것뿐입니다!”
“그걸 변명이라고 해? 네 부모와 자식을 죽이라면 죽일 거냐고?”
발악처럼 변명을 내놓는 차장의 머리를 잡은 강찬은 힘껏 뒤로 돌렸다.
콰드드득!
놈의 머리가 뒤편을 본 다음이었다.
손을 놓기 무섭게 상체가 축 옆으로 기울었고, 그와 동시에 손잡이 옆으로 널브러졌으며, 마지막에 휠체어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부원장님!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원장님의 지시에 반항했다면 저희는 벌써 죽었을 겁니다!”
“아니.”
손을 앞으로 모은 채 파리처럼 비벼 대는 차장을 향해 강찬은 단호한 대꾸를 던졌다.
“네가 정말 바로잡으려 했다면 방법은 많았어.”
CIA 건물 복도에서 날아오는 빛줄기를 피하지 않고 버티던 대원들의 모습이 살려 달라고 손을 비벼 대는 차장의 뒤편에서 보이는 듯한 착각에 강찬은 더욱 독하게 이를 악물었다.
“날아드는 총알을 본 적 있어? 그 앞에서 몸을 던지는 사람 심정을 알기나 하냐고?”
“조국을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치겠습니다!”
콰악. 강찬은 차장의 머리를 힘껏 잡았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조국을 위하며 살겠다고? 왜? 나중에 국가정보원 경력으로 잘난 정치인이 돼서 먼저 죽어간 대원들과 요원들을 비웃고 모욕하려고?”
“저는…!”
콰드드득!
머리가 완전히 돌아가 활주로를 바라보는 차장 놈의 대가리를 던지다시피 놓은 강찬은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이동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정식으로 재판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기껏 생각해 낸 핑계가 그거냐?”
제라르와 양범이 무거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앞이었다. 강찬은 허탈한 심정으로 웃고 말았다.
어떻게 정작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하는 자리에 있던 인간들을 모아 놓았는데, 그중에 반성하는 기미나 양심의 가책을 보이는 놈이 단 한 명도 없는 건지.
“네가 퍼트리는 데 협조했던 균에 감염되면 목을 잘라야 끝나. 목을 잘라 줄까?”
“재판을 받게 해 주십시오.”
지랄!
피식 웃은 강찬은 웃음을 거두는 순간, 놈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부원장님!”
이동명이 강찬의 손목을 붙잡는 순간이었다.
휘익. 콰드득!
세차게 뒤튼 강찬의 손안에서 이동명의 얼굴이 뒤편 창을 향해 완벽하게 돌아가 있었다.
개새끼들.
강찬이 던지듯 머리를 뿌린 직후에,
콰다당. 털써-억.
기울어진 이동명의 상체를 이기지 못한 의자가 옆으로 쓰러졌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뚱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뒈지면 다 이렇게 끝난다.
아무리 지랄을 떨고, 염병을 떨어도, 뒈지면 이렇게 끝나는데, 뭐 더 처먹고, 뭘 더 누리겠다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그토록 우습게 여기는 건지.
쓰러진 이동명의 시체를 내려다볼 때였다.
뒤에서 다가온 제라르가 담배를 내밀었다.
강찬이 담배를 받아 입에 물자, 제라르가 이어서 라이터를 켜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이것들 치우고, 커피 한잔하시죠. 달달한 거 한잔 마셔서 기운을 채워 줘야 게릭 웨인의 대가리를 시원하게 돌리지 않겠습니까?”
아, 이 멋진 새끼.
강찬이 피식 웃는 순간이었다.
“끊은 지는 좀 되는데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강찬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다가온 양범이 제라르에게서 담배를 하나 받았다. 제라르가 켜 준 라이터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던 양범이 불붙은 담배를 확인하듯 내려다본 뒤에 고개를 들었다.
“상하이 3인방을 제거하는 동안, 왜 우리 중국에는 이런 놈들만 있을까 싶어서 참담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저렇게 중국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놈들도 있더군요.”
시선으로 문 앞에 선 중국 요원들을 가리켰던 양범이 천천히 시선을 가져왔다.
“자리와 권력에 욕심내지 않고 제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예멘에도, 우리 중국에도,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묵묵하게 제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이들이 월등히 많습니다. 그 숫자가 적으면 예멘처럼 될 테고, 조금밖에 없으면 우리 중국이 되겠지만, 그래도 한국은 중심을 지키고 있잖습니까?”
실제로 듬직해 보이는 양범의 눈에 부러움의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라르 사령관의 제안대로 믹스 커피를 한잔 더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로를 건네는 양범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고맙지.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강찬은 보기 좋은 느낌으로 양범을 향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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