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32)
813화 위험한 일 아니오? (1)
이동명과 차장 두 명의 몸뚱이를 치운 다음이었다.
제라르와 양범을 시작으로 중국 요원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차관이 준비해 준 회색 군복을 입었다.
계급장 없다. 명찰도 달지 않았다.
위아래로 온통 회색인 군복에 방탄조끼와 헬멧을 착용했고, 특수부대를 상징하는 권총과 대검을 허리와 다리에 걸었으며, MP5SD를 가슴 앞으로 늘어트렸는데, 특히 제라르는 지금까지와 달리 외인부대 사령관의 강렬한 자세와 태도가 한껏 드러났다.
권총을 허리와 발목에 건 제라르가 상체를 세우고 고개를 돌린 직후였다. 아프리카의 어둠 속에서 동물의 울음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만큼 강렬한 카리스마가 풍겨 나왔다.
제라르는 다 길다.
특히 다리가 길었는데, 확실히 놈의 분위기를 살려 주는 건 군복이었다.
철커덕.
야생에서 태어나 자란 맹수처럼 볼을 가로지른 상처를 훈장처럼 단 제라르가 노리쇠를 당기면서 느닷없이 팽팽한 긴장이 방 안을 휩쓸었다.
‘준비됐습니다.’
저놈과 함께 달린다.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 말이다.
옅게 웃은 강찬은 문을 막다시피 선 중국 요원들 앞으로 움직였다. 그 직후에 제라르가 그 곁을 지키는 것처럼 몸을 돌렸다.
“다들 우리말을 안다고 했으니까 편하게 하자.”
요원들을 향해 말을 건넨 강찬의 오른쪽으로 양범이 다가와 섰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다. 중국 정보국 최고 책임자를 거느리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양범은 제라르와 함께 강찬을 지키겠다며 직접 군복을 입었고, 소총을 품었다.
맹수로 보이는 제라르, 관록을 뒤집어쓴 양범이 강찬의 좌우를 지켜선 앞이었다. 중국의 요원들은 양범의 행동에 더욱 긴장한 눈치였다.
“감염균이 본격적으로 퍼지면 장소가 어디든 그곳은 끝난다. 다행히 양범 국장이 상하이 3인방을 잡으면서 중국을 지켜 냈고, 우리 한국에서도 감염균을 찾아냈다.”
이미 차장 두 명과 이동명의 머리를 돌리는 광경을 지켜본 다음이었다. 거기에 다음 타깃이 곧 도착할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이들 모두 알고 있었다.
“CIA 수장이 개입된 사건이고, 그 끝에 게릭 웨인 미국 대통령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고트 가가린과 히놀 사키코를 잡았으니, 이제 급한 건 둘이다. 한 명은 이라크에 있는 압둘라 하지즈, 그리고 이곳에 도착하는 게릭 웨인이다.”
정말 미국 대통령을 노리는 거구나.
짐작하는 것과 말로 듣는 건 전혀 다르다.
미국 대통령을 노리며 살기를 바라?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중국 요원들의 입가와 눈빛에 독한 빛이 올라왔다.
“수십만이 될지, 수백만이 될지 모르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머뭇거리지 마라.”
의미하는 바를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요원들이 볼을 씰룩이고 있었다.
강찬은 그들을 향해 다짐처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그 직후에 양해를 구한 양범이 요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승관이 어떤 짓을 했는지 모두 알 거라 믿는다. 이곳에서 일이 잘못되면 조국을 위기에 빠트린 매국노로 남을 테고, 죽음을 담보로 성공한다 해도 이름을 알리지 못한다.”
왼편부터 천천히 시선을 돌린 양범이 마지막에 선 요원을 눈에 담았다.
“임무가 두렵거나 내키지 않는다면 지금 반걸음 뒤로 물러서라.”
숨 한 번을 내쉬도록 물러서는 요원은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양범이 담백하게 미소지었다.
“내 가슴 속에 너희들의 눈빛을 담았다. 언젠가 이 순간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때가 오면 너희는 영원히 중국의 영웅을 상징하는 대형으로 남을 거라 믿는다.”
양범의 말에 피가 끓는 모양이었다.
볼을 씰룩이는 요원들의 숫자가 좀 더 늘어났다.
피식.
강찬이 만족한 듯 웃는 순간이었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거대한 비행기가 활주로 저 앞쪽에서 아래로 내려앉았다.
***
박중상과 유인강은 2층 건물의 옥상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염병, 담장이 가린 탓에 마당은 절반밖에 안 보이고, 회백색 벽에 둘러싸인 주택은 현관문부터 창까지 모두 닫혀서 안쪽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하기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자 서열에 있는 압둘라 하지즈가 어설프게 숨겠나.
주택에서 시선을 돌린 박중상은 2층 건물 앞의 거리를 눈에 담았다. 일부러 이런 장소를 택한 모양인데, 길가에는 카펫부터 놋쇠로 된 그릇들을 파는 상인들이 자리 잡았고, 그 사이를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자밀라가 이 골목에서 시선을 끌면 되겠는데?”
자밀라와 이용우가 장사꾼 사이에서 활보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박중상은 동선을 확인했다.
“정보총국 요원들이 살해됐던 위치 확인해.”
“이미 확인했습니다. 최종일 팀장님까지 오시니까 두 칸 건너 있는 건물 옥상을 확보하면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박중상과 유인강이 동선과 저격을 위한 위치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었다.
철컥.
뒤편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젠장!’
박중상은 더 블랙 요원이었다. 반사적으로 점퍼 주머니 안에 있는 권총을 향해 손이 내려갔다.
덥석.
그리고 그 손을 유인강이 얼른 붙들었다.
‘야, 인마!’
홱 돌린 시선 앞에서 이미 몸을 돌린 유인강이 짧게 고개를 저었고, 이어서 박중상의 손을 놓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쩌겠나, 이미 타이밍을 놓쳤는데.
몸을 돌린 박중상은 그제야 유인강이 말린 이유를 알았다.
네 놈이 AK 소총을 겨누고 있었는데, 그중 두 놈은 제법 훈련까지 받은 자세였다. 사람이 참 희한한 게 달랑 소총 하나 겨누는 자세에도 훈련받았는지 아닌지를 안다.
박중상은 붕대 감은 왼팔까지 머리 위로 높게 든 유인강을 따라 양손을 위로 들었다.
“크흠.”
잔기침을 한 번 했다.
보는 방향에서 왼편에 있는 두 놈을 맡을 테니, 오른쪽에서 두 놈을 해결하라는 의미였다.
“잠시만요.”
박중상을 또다시 말린 유인강이 궁금한 표정을 만들고는 입을 열었다.
“왜 그러는 거요?”
“여기에서 뭘 한 거지?”
“장사하기 위해 온 거 아뇨? 저 아래 골동품을 쓸어서 한국에 가져가면 짭짤하거든. 여기 함께 온 사람들에게 알아봤을 거잖소?”
“그들에게 총기를 요구했다던데?”
그새 떠벌렸냐?
이곳까지 안내했던 놈들과 상관없이 박중상은 왼편에 있는 두 놈의 소총을 눈에 담았다.
“이곳이 위험하다고 겁을 주면서 우리 지갑을 노리는데 어떻게 그냥 와? 그건 그렇고, 얼른 뒤져 보고 그만합시다. 붕대를 감아서 왼팔을 오래 들고 있기 힘들다고요.”
툴툴거린 유인강이 깁스한 왼팔을 오른손으로 받쳤다.
“지갑이랑 여권 확인해 보면 알 거 아뇨? 정 못마땅하면 몸수색하고, 함께 내려갑시다. 지갑에 있는 돈만큼 저 아래 물건들 사서 오늘 밤 떠나면 되잖소? 뭐 해요? 얼른 뒤지지 않고?”
진짜야, 아니야?
압둘라 하지즈를 지키는 임무를 맡은 놈들이 눈가를 좁히는 순간이었다.
“상공회의소에 신고하고 왔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서 사고 나면 한국 정부가 개입해요. 나는 일 만들어서 귀찮은 거고, 당신들은 괜히 평화유지군 불러들이게 돼서 좋을 거 없어요.”
유인강이 떨어 대는 능청을 지켜보던 오른쪽 남자가 턱짓을 날렸다. 소총을 겨눈 두 놈이 몸을 수색하려는 것처럼 다가올 때였다.
“형님?”
유인강이 우리말로 속삭이듯 박중상을 불렀다.
믿는다. 믿어야 한다. 이런 순간에는.
유인강이 불렀을 때는 뭔가 수가 있다는 의미인 거다.
소총을 겨누고 있어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가까이 왔을 때, 소총의 총구를 잡아채서 돌리고…?
박중상이 앞으로 다가온 놈의 소총에 시선을 떨구는 순간이었다.
휘익! 콰윽!
깁스를 받쳤던 오른손을 내린 유인강이 앞에 있는 놈의 목덜미에 사정없이 칼을 꽂았다.
칼을 감췄었어? 깁스에?
휘익! 철컥! 홰액!
놀라는 것과 별개로 박중상은 앞에 있던 놈의 총구를 잡아챘고, 뒤로 돌렸다.
투두두둑! 퍼버버벅!
유인강이 빨랐다.
목덜미를 찍은 놈의 소총을 돌린 유인강이 뒤편에 있던 두 놈의 머리와 목, 가슴을 터트리고는 곧장 깁스한 왼팔을 휘둘렀다.
휘익! 퍼어-억!
그리고는 깁스로 놈의 코를 세차게 갈겼다.
털썩!
놈이 넘어질 때, “씨발!” 하는 욕을 뱉어 낸 유인강이 깁스한 팔을 안고서 몸을 구부렸다.
투두둑! 퍼버벅!
그 틈에 박중상은 또 코를 얻어맞고 쓰러진 놈의 가슴에 총알을 꽂아 넣었다.
끝났나?
소총을 겨눈 박중상이 쓰러진 놈들을 살피는 순간이었다.
“씨발 새끼들. 시아파? 지랄을 해라.”
시원시원하게 욕을 뱉어 낸 유인강이 바닥에 떨어진 AK 소총을 집어 들고서 얼굴과 목이 터진 놈들에게 다가갔다. 그런 뒤에 바로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저? 저…?
투두둑! 퍼버벅!
저토록 뒷수습 생각 않고서 확인 사살하는 인간은 이용우 이후에 처음이었다.
“야, 인마! 확인 사살까지 하면 어떻게 해?”
박중상이 나무란 직후였다.
2층 건물의 옥상으로 통하는 통로에서 꾀죄죄한 셔츠에 허름한 바지를 입은 남자 두 명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철컥!
유인강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들을 향해 소총을 겨눈 유인강이 독한 눈매로 입을 열었다.
“뭐야?”
“총소리가 나서…. 당신이 이랬소?”
“안 그러면? 강도질하는 놈들에게 그냥 죽으라고?”
“여기가 어딘지 알고서 그런 거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과 음성이었다.
“당신들 내가 누군지 알아?”
얼마나 유인강이 당당하게 질문하는지, 지켜보던 박중상마저 순간, ‘네가 누군데 그러냐?’ 하는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내가 한국에서 진짜 중요한 사람이야! 알아?”
미친 거야, 저 새끼는.
이용우 하나로도 벅찬데 너까지 지랄이냐?
유인강을 지켜보던 박중상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에어포스 원이라고 하나?
활주로에 내린 거대한 비행기가 몸통을 돌린 뒤에 공항 건물로 다가왔고, 사다리차를 연결하기 무섭게 방송용 카메라를 어깨에 걸친 남자 한 명과 보조원 두 명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선글라스에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줄줄이 내려왔다.
어깨에 걸친 기관총을 옆으로 안은 모습이나 방탄용 가방을 든 모양새로 봐서 경호원이 분명했다.
“총기를 확인하겠습니다.”
비행기를 둘러싼 사우디아라비아 병력으로 다가간 경호원이 국방 차관에게 당당하게 요구를 전했다.
“이미 탄알은 모두 제거했소.”
“우리가 확인해야 합니다.”
경호원들이 비행기를 둘러싼 사우디아라비아 군인들의 총기를 하나씩 받아서 빈 탄창을 확인하고 노리쇠를 일일이 당겼다.
저게 말이 되는 짓인가 싶은데, 뭐든 강한 놈 마음대로 하는 게 국제사회의 규칙인 거다. 탄창을 다 확인한 경호원이 건물을 나서 바로 앞에 서 있는 강찬 일행에게 시선을 주었다.
칼리드 살만 국방 차관에게 무언가를 물었던 경호원이 선글라스 낀 얼굴을 기울여 가며 다시금 강찬 일행을 살폈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동료 셋을 불러 함께 다가왔다.
“총기를 검사해야 합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강찬은 피식 웃었다.
이것들은 뭐요?
그렇게 묻는 것처럼 칼리드 살만에게 시선을 주었던 경호원이 강찬을 다시 찾았다.
“협조 부탁합니다.”
“헛소리할 거면 얼른 비행기로 돌아가. 그리고 바로 이륙해.”
이상한데?
고개를 돌린 경호원이 제라르와 양범, 뒤편에서 독한 눈매를 빛내는 중국 요원들을 본 뒤에 고개를 갸웃했다.
“실례지만 이름이나 직책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갓 오브 블랙필드.”
멍했던 경호원이 선글라스를 빠르게 내렸다. 노란색 눈썹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눈동자가 제법 강렬해 보였다.
“CIA 건물에서 칼튼 숀을 제거했고, 오늘 게릭 웨인에게 치료제를 주기로 한 사람이다.”
이제야 강찬의 정체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CIA 건물에서의 사건도 떠오르고.
제라르를 돌아보았던 경호원이 긴장한 표정으로 강찬을 눈에 담았다.
“귀찮으니까 빨리 결정해. 가서 대통령을 데려올래, 아니면 돌아갈래?”
“경호 원칙상 총기에 탄알이 들어 있으면….”
“제라르!”
경호원의 요구를 강찬이 잘랐고,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제라르가 소총을 겨누면서 경호원들과 중국 요원들 모두 반사적으로 소총을 어깨에 걸었다. 방송용 카메라로 이쪽을 담고 있던 남자가 급하게 사다리차 옆으로 달리고 있었다.
“무슈 강?”
칼리드 살만 차관이 어떡해서든 분위기를 되돌려 보겠다는 의지로 강찬을 부른 직후였다.
“5분 준다. 그 안에 활주로에서 벗어나.”
강찬은 독한 눈매로 경고를 날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