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33)
814화 위험한 일 아니오? (2)
어떤 상황이든 좋으니 해 보고 싶은 대로 하라는 투의 강찬, 피 튀는 상황을 예상한 듯한 제라르의 표정, 그리고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느낌의 양범과 중국 요원들, 경호원은 이제야 기가 꺾이는 모양이었다.
미국 대통령 경호한답시고 어깨에 힘 들어갔을 테고, 그 상태에서 바라는 대로 따르던 사람들만 상대하던 인간이니 오죽했을까?
“CIA에서 경고가 없었나?”
경호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진짜 참. 어쩌면 치욕이라고 생각한 CIA가 그날의 일을 입 다물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강찬과 제라르, 석강호에 관해서는 조언을 했어야지 않을까?
“됐다. 내게 말 같지 않은 조건 내세울 거면 이만 돌아가.”
“보고하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야, 뭐.
“총부터 치워.”
“알겠습니다.”
상체를 뒤로 돌린 경호원이 손을 아래로 내리면서 뒤편에 있던 경호원들이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카메라를 어깨에 멨던 남자가 조심스럽게 나섰고, 칼리드 살만 차관이 알아볼 정도로 커다랗게 안도하는 숨을 내쉬는 앞이었다.
“대통령께서 내려오시겠답니다.”
알아서 하란 투로 강찬은 어깨를 들썩였다.
아무렴, 치료제를 구해 오겠다며 온갖 쇼를 했던 놈이 경호상의 문제를 이유로 그냥 돌아갈 수 있겠나? 지지율? 그런 짓을 했다간 아예 떠들지 않은 것만도 못한 상황을 보게 될 거다.
“죄송하지만….”
그 직후에 경호원이 시선으로 제라르와 양범, 중국 요원들을 가리켰다. 하기는, 이렇게 총을 겨눈 상황에서 내려오는 건 강찬이라도 사양이다.
강찬이 시선을 던지자, 제라르와 양범, 중국 요원들이 총구를 내리고 소총을 품었다.
“혹시 외인부대 제라르 드 미르미에 사령관이십니까?”
볼의 흉터도 그렇고 들은 건 분명 있는데, 나이를 짐작해서는 아닌 거 같고, 아직 열리지 않은 비행기를 지켜보던 경호원이 힐끔 던진 시선과 함께 던진 질문이었다.
“알았으면 쓸데없이 자극하지 마라.”
프랑스 억양이 담겼는데도 지금 제라르가 내뱉은 영어는 강했다.
얼른 내리지 뭐 하냐?
강찬은 비행기 문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염병들 떨고 있네.
처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처럼 꾸미려고 이미 경호원이 내린 뒤인데 다시 비행기 문을 처닫는 건 뭔지, 거기에 계단 아래에서 움직인 카메라가 시선을 높다랗게 들고서 게릭 웨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랩에 연결하면 편하게 공항 건물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사다리차를 연결해 놓은 게릭 웨인이 비행기 문을 나서서는 단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또 어깨에 방송용 카메라를 올린 남자가 상체를 젖혀 가며 잡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약을 구하러 왔으면 저 지랄을 떨 시간에 단 몇 분이라도 줄일 생각을 해야지, 연기자도 아닌 인간이 뭔 쇼를 저렇게 하는 건지, 원.
재킷을 쓸어내린 게릭 웨인이 수행원들과 계단을 내려서기 무섭게 경호원들이 그를 감쌌다. 고개를 돌려 이쪽을 확인한 게릭 웨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보좌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답했을까?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보았던 그가 얼른 자리를 옮긴 칼리드 살만 차관의 경례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랄들 진짜.
늘어선 사우디아라비아 군인들 앞을 크게 돌아서 걸은 게릭 웨인이 마침내 강찬의 앞으로 다가왔다. 표시 내지 않으려 애쓰지만, 경호원을 빠르게 돌아보는 것으로 봐서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프랑스 정보총국 부총국장, 한국의 국가정보원 부원장인 무슈 강입니다.”
게릭 웨인보다 반걸음쯤 뒤에 선 보좌관이 나직하게 강찬을 소개한 다음이었다. 게릭 웨인이 이제 좀 알아서 ‘인사해’라는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미국 대통령이 왜 감염균을 퍼트리는 일에 동조한 거지?”
그런 게릭 웨인을 향해 강찬은 명치에 주먹을 꽂는 것처럼 거침없이 질문을 던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CIA 칼튼 숀, 제이어 반 할트, 그리고 게릭 웨인 미국 대통령, 중국의 상하이 3인방이 정권을 잡도록 돕고, 대신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꾸며서 북쪽은 중국이, 남쪽은 일본이 먹게 한다는 계획 몰라?”
게릭 웨인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할 때였다.
“카메라 돌려! 얼른! 아니다! 꺼!”
보좌관이 팔까지 휘저어 가며 카메라를 멘 남자에게 고함을 질렀다.
“나는 치료제를 구해 우리 미합중국 국민과 주변국 국민들을 감염에서 구하겠다는….”
“게릭 웨인. 그거 내가 불러 준 거 아냐? 방송에 대고도 그대로 떠들었던 거고?”
“그게 무슨 소리요?”
“내 스마트폰 말이야. 통화 내용이 자동으로 녹음되고, 그 기록이 모두 저장되는데 한번 들어 볼래? 아니다. 그냥 방송국에 전해 줄까?”
뻔뻔한 얼굴을 내밀었던 게릭 웨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경호원과 보좌관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님! 우선 자리를….”
“그랬다가 뒤를 감당할 수 있겠어?”
강찬은 고갯짓으로 뒤에 서 있는 제라르와 양범, 중국 요원들을 가리켰다.
어떻게 된 거야?
시선을 던지는 게릭 웨인과 보좌관을 향해 경호원이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내가 돌아가면 통화 녹음을 풀 생각이오?”
“번거롭기는 한데, 비행기를 격추시킨 이유 정도는 알려 줘야 하지 않을까?”
“격추시킬 생각을 하다니?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상대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움찔하는 경호원과 보좌관 앞에서 게릭 웨인은 진심으로 분노가 올라온 표정이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결정해. 나랑 조용하게 이야기할래? 아니면 이대로 돌아갈래?”
“격추시킨다면서 돌아가라는…?”
조용히 이야기할래, 아니면 죽을래?
강찬의 질문에 담긴 진짜 의도를 뒤늦게 알아차린 것처럼 게릭 웨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
잔잔하게 깔린 안개를 치마처럼 허리에 두른 건물, 그가 지닌 최고의 은신처에 도착한 제이어 반 할트는 곧장 집무실로 들어가 책상에 앉았다.
날이 좋으면 끝없이 펼쳐진 녹색 언덕이 보이고, 건물을 빙 둘러 흐르는 물길과 그 안에서 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감상하겠지만, 오늘은 평소처럼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책상에 올려진 모니터를 확인한 제이어 반 할트는 눈가를 찌푸렸다.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다. 물론, 이따금 고비가 있었지만, 그 역경들은 제이어 반 할트의 능력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장치일 뿐, 지금과 같이 어둠에 갇혀 길을 잃어버린 듯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모니터에 올라온 숫자를 다시금 확인한 제이어 반 할트는 세 대의 스마트폰 중 하나를 들고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였다. 전원이 들어온 걸 확인한 그가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클루얀입니다.
“채권이 왜 이 모양이지?”
– 한국의 증권사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한국의 증권사?”
제이어 반 할트가 사진으로 보았던 천중명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 남부증권이라는 중소 규모의 증권사로, 자금은 사채업자인 ‘시은이양 팍’이라는 인물이 조달했습니다.
발음하기도 힘겨운 이름을 들은 제이어 반 할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천중명과 관계가 있나?”
– 베이징 쇼크 당시에 남부증권 계좌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던 경력이 있는 자입니다.
결국, 천중명이!
모니터를 향해 눈매를 뒤틀었던 제이어 반 할트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국의 재벌이 지닌 힘은 대단하다. 특히, 천중명은 아랍 세상에서 ‘믿을 만한 기업인’으로 통한다. 거기에 중국 삼합회의 수장이 그의 지시를 따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환율을 공략하는 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 마법사 구완섭과 파생계의 미친 여자로 평가받는 강다희가 이미 손을 쓴 상태입니다.
이 정도면 의심할 여지 없이 지경그룹이 나섰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아예 대놓고 작업하겠다는 뜻이 된다.
자리에서 일어선 제이어 반 할트는 창을 향해 돌아섰다.
바깥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걷히면 누구의 시체가 드러날까?
금융이라는 게 물밑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과정을 알기는 어렵지만, 또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드러난 결과를 모두 알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물러나면 천중명과 그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 마법사, 미친 여자, 그리고 입에 담는 것조차 구역질 나는 사채업자에게 내가 패했다는 소문이 돌겠군.”
혼잣말처럼 뱉어서 그런지, 클루얀의 대꾸는 없었다.
“천중명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는?”
– 베이징 쇼크 당시에 중국에게서 보상으로 받은 한화 3천조 원에서 5백조 원을 환율을 방어하는 데 사용해서 현재는 2천 5백조 원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친 인간.”
한국 정부가 나서도 어려운 환율 방어를 개인이 한다는 사실이 제이어 반 할트는 정말이지 믿기 어려웠다.
“그 돈으로 환율을 흔들어 대면 최소 열 배의 수익이 났을 텐데? 돈에 욕심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재벌 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 간혹 천중명 회장이 본인을 도깨비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한국 정서에서 도깨비는 행동을 짐작하기 어렵고, 심술 궂은데, 어려운 사람을 보면 이유 없이 돕는다고 알려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도깨비라니?”
기가 막힌 심정에 제이어 반 할트는 고개마저 저었다.
“환율을 먼저 흔드는 방법은 어때?”
– 마법사와 파생계의 미친 여자가 달려든 이상,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이봐! 아이비리그에서 유명하다는 인재들을 긁어모았고, 천문학적 보상을 주고 있는데 고작 한국에 있는 두 명을 두려워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 지금 말씀하신 아이비리그의 인재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인물이 마법사고, 그들의 수준에 맞추는 게 지겹다며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이 파생계의 미친 여자로 불리는 강다희입니다.
보고를 듣던 제이어 반 할트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천중명의 사람과 통화하는 건가?”
– 죄송합니다. 사실을 알려 드리려다 보니 생각이 짧았습니다.
비틀린 제이어 반 할트의 질책에 클루얀이 얼른 사과를 내놓았다.
“우리가 채권을 매입하는 건 어때?”
– 이미 남부증권이 엄청난 금액을 쏟아붓고 있어서 지금은 비싼 가격에 매입하게 됩니다. 더구나 마지막 순간에 국채를 던져 완벽하게 무너트리려면 예상보다 두 배의 자금이 들어갑니다.
클루얀의 의견이 어쩐지 ‘안개가 걷히면 쓰러져 있는 건 당신이 될 겁니다.’ 하는 것처럼 들려서 제이어 반 할트는 볼을 씰룩였다. 자존심이 걸린 싸움에서 밀리거나 물러서면 앞으로 금융계에서 제이어 반 할트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또 그만큼 천중명의 이름에 신용과 힘이 실리게 된다.
“매입해.”
– 매입합니까?
“다시 말해 주지. 매입해.”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제이어 반 할트는 오른손으로 셔츠의 단추를 두 개 더 풀었다. 안개 때문일까? 오늘따라 숨 쉬는 게 갑갑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가 감정을 가라앉힌 다음이었다. 들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번호를 찾아 눌렀다.
– 데이비드입니다.
“무슈 강의 제거는 어떻게 됐지?”
–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준비를 마쳤습니다만, 게릭 웨인이 도착하는 바람에 어떻게 할지 문의드리려 했습니다.
“무슈 강을 제거할 가능성은?”
– 여전히 80퍼센트입니다. 무기나 병력의 숫자로 계산해 봐도 저들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병력은?”
– 그들은 특수부대가 없습니다. 물론, 명목상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서 미국이나 중국의 정규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좋아. 시행해.”
–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종료 버튼을 누른 제이어 반 할트는 넉넉한 표정으로 창밖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안개가 걷히면 느닷없이 강찬의 시체가 드러난다.
그를 우두머리로 따르던 천중명부터 국가정보원, 평화유지군이 흔들리면 한반도는 ‘T’자형 뼈를 중심으로 맛있는 고기가 붙은 티본 스테이크로 변해서 제이어 반 할트의 식탁에 올라올 거다.
“핏물이 떨어질 정도의 레어로 주문해서 신선한 상태 그대로 천천히 음미해 주마.”
모델처럼 생긴 외모와 달리 흉악한 각오를 뱉어 낸 제이어 반 할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
초소 근무를 나선 감시병처럼 국가정보원 디지털 분석실의 직원 두 명은 온통 검은 화면에 커서가 깜박이는 모니터를 두고서 책상을 지켰다.
디지털 분석실은 업무가 많다.
또한, 각 나라에 퍼져 있는 요원들의 활동시간이 제각각이어서 24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한다. 보안은 말할 것 없어서 어떤 직원도 USB를 비롯해 복사나 촬영에 관련된 장비를 들고 들어올 수 없다.
소진천은 그 방면에 독사였다.
비록 속도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디지털 분석실은 소진천이 만든 시스템을 세 번 거쳐 메인에 연결된다. 외부로 내보내는 자료 역시 거꾸로 세 번을 통과해 나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해킹의 흔적이 있으면 우선 세 대의 시스템이 끊기고, 자동으로 역추적에 들어간다.
“커피라도 준비할까요?”
“그럴래?”
오늘의 전산 감시병 중 부사수가 커피를 타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삐익. 삐익. 삐익.
날카로운 신호음과 함께 화면에 명령어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진천아!”
“확인했어요!”
고함을 지른 사수와 몸을 일으키다가 재빠르게 앉은 두 사람이 키보드를 두드린 직후였다. 메인 스피커에서 괴물이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청된다며?
직원들이 돌아본 자리에서 소진천은 또다시 불타는 눈매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중 보안이에요. 이동한 장소가 어딘지 모르지만, 통신 전체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서 내보내는 장치가 있어요. 위치 추적은요?”
“하고 있어!”
누가 더 빠르게 타이핑하는가를 내기하는 사람들처럼 소진천과 사수, 부사수가 무섭게 키보드를 두드린 직후였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병력은?
– 그들은 특수부대가 없습니다. 물론, 명목상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서 미국이나 중국의 정규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 좋아. 시행해.
–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영어로 오가는 대화가 스피커에서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