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34)
815화 위험한 일 아니오? (3)
문을 들어선 맞은편에 활주로를 품은 창이 기다랗게 놓인 VIP룸이었다. 창을 중심으로 왼편에 게릭 웨인이 앉았고, 그 뒤로 보좌관 셋, 경호원들이 자리했으며, 맞은편에 앉은 강찬의 뒤를 제라르와 양범이 지켰다.
강찬과 게릭 웨인만 앉았다.
마주 본 두 사람을 지키는 인원 모두 실탄이 담긴 소총과 권총을 품은 상태여서 어떻게 보면 정점에 오른 양쪽 갱단이 최후의 협상을 위해 모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미합중국의 국민을 위해 치료제를 구하러 왔소. 이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있소?”
VIP실로 이동하는 틈에 보좌관에게서 조언을 받은 모양이었다. 기다란 코를 앞으로 내민 게릭 웨인이 나름 다부진 태도로 뜻을 밝혔다.
지랄은.
강찬은 오른손 검지를 들어 천장 구석을 가리켰다.
뭐가 있기에?
게릭 웨인과 보좌관들이 시선을 돌렸으나 혹시 속임수일지 모른다고 판단한 경호원들은 더욱 매서운 눈초리로 강찬 일행을 살폈다.
강찬의 손가락이 가리킨 CCTV를 확인한 게릭 웨인과 보좌관이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카메라를 눈에 담은 뒤에 시선을 가져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 안에서 움직임이 모두 녹화된다. 예멘은 또 규정이 달라서 소리까지 녹음되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요?”
억울한 표정의 게릭 웨인을 외면한 강찬은 그의 왼편 뒤쪽에 서 있는 경호 담당을 향해 입을 열었다.
“경호부장이라고 하던데 이름이 어떻게 되지?”
“해밀턴입니다. 윙스 해밀턴.”
“해밀턴. 출신 부대는?”
“지금은 알려 드리기 곤란합니다.”
출신 부대를 알려 주면 특기가 드러날 수 있으니까 경호원으로서 나쁜 답은 아니었다.
“CIA 로버트는 알지?”
“알고 있습니다.”
강찬은 그럴 거 같았다는 투로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런 질문을 하지?
해밀턴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이었다.
“이보시오, 무슈 강?”
“윙스 해밀턴. 지금부터 대통령과 대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끼어드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사살하겠다.”
시간이 아깝다는 투로 부르는 게릭 웨인을 무시한 상태에서 강찬은 냉정한 경고를 던졌다. 그리고는 ‘죽고 싶으면 얼마든지 끼어들어.’ 하는 표정으로 보좌관들을 노려보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이런 장소에서 총질을 시작하면 대개 모두 죽는 결말로 끝난다. 그걸 알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경호부장인 윙스 해밀턴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건 청문회가 아냐. 변호사가 나서서 혐의를 부정하는 재판도 아니고. 그러니 보좌관이든, 경호원이든, 지켜봐. 나서지 말고.”
경고를 던진 강찬은 게릭 웨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치료제를 구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소? 시간이….”
참 말 많네.
맞은편에 앉은 게릭 웨인의 항의를 완벽하게 무시한 강찬은 문 앞에 서 있는 칼리드 살만 차관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하동선을 데려와.”
눈짓으로 답한 그가 방을 나선 다음이었다.
“지금 뭐 하자는…?”
더는 참기 어려웠던 것처럼 분통을 터트린 게릭 웨인이 몸을 세웠고,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제라르를 시작으로 해밀턴, 다시 양범을 비롯한 중국 요원들과 경호원들이 반사적으로 소총을 겨눴다.
이럴 줄 몰랐던 눈치였다.
미국 대통령을 향해 소총을 겨누는 거 말이다.
반쯤 일으켰던 자세에서 딱딱하게 굳은 게릭 웨인이 놀라서 손을 어깨높이로 들었는데, 그 맞은편에 앉은 강찬은 피식 웃었다.
“이 방에서 미국 대통령의 권위를 내세우면 돌아가는 건 죽음밖에 없어. 앉아.”
총구가 달려드는 상황에서 같잖다는 투로 웃는 강찬, 겁에 질린 얼굴로 자리에 앉은 게릭 웨인, 살아온 과정과 역할이 다르다고 해도, 냉정하게 지시 내리는 강찬에게 눌려 얌전히 따르는 게릭 웨인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 윙스 해밀턴의 입술에 힘이 꾹 담겼다.
똑똑똑.
그 직후에 노크가 들렸고, 정말이지 ‘들어갈 테니까 놀라거나 방아쇠 당기지 마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천천히 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들어선 사람은 칼리드 살만 차관이었다. 그 뒤로 사우디아라비아 군인이 휠체어에 앉은 하동선을 밀고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아랍어 통역이 들어섰다.
들어서는 하동선을 알지 못하지만, 주눅 들어 있는 게릭 웨인의 반응이 궁금한 것만은 어쩌지 못한 눈치였다. 언제고 시선을 빼앗기면 안 되는 경호책임자 윙스 해밀턴이 게릭 웨인의 옆모습을 빠르게 살피고 있었다.
방에 들어선 하동선은 고개를 좌우로 돌렸고, 이어서 반가움, 기쁨, 좌절, 공포가 뒤엉킨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요, 이 남자는?”
“국가정보원 원장 하동선.”
게릭 웨인의 질문에 강찬이 짧게 답하면서 하동선을 향해 시선들이 달려갔다.
저 초췌한 남자가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이라고?
그들의 시선에 의문이 담기는 순간이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느닷없이 강찬의 심장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날렸다.
뭐지, 갑자기?
하동선이 몸에 폭탄이라도 둘렀나?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해도 하동선의 상의에는 수상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강찬은 먼저 활주로를 살폈다.
감염 상태를 오래 끌던 감염자들이 수십, 수백 명씩 죽어 나가는 예멘의 현실을 생각하면 바깥에서 밀고 들어올 확률이 가장 높았다. 아니면 사우디아라비아가 배신을 때리든가.
이럴 때 가장 힘이 되는 건 역시 제라르였다.
강찬은 제라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라르?’
‘경고입니까?’
‘그런 거 같다.’
눈빛을 알아차린 제라르가 볼의 흉터를 늘이며 웃었다. 이 미소가 해밀턴과 경호원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주는 경고를 무시해서 좋을 건 없다.
하동선이 멀뚱멀뚱 휠체어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강찬은 다시 칼리드 살만 차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차관. 비상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공항 경비를 최고 수위로 높여.”
“예?”
“외부에서 감염자들이 밀고 들어올 수 있으니까 공항 경비를 최고 수준으로 높이라고.”
“아, 알겠습니다.”
멈칫했던 차관이 강찬의 눈매에 눌린 것처럼 밖으로 나갔다. 칼리드 살만의 반응을 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배신한 것 같지는 않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런 지시할 필요가 뭐 있어?
게릭 웨인 따위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선 나가!
심장의 경고대로 우선 이 자리를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런 순간을 놓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급하지만,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볼을 씰룩인 강찬은 하동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동명 차관과 차장 두 명의 최후를 봤지? 너에게는 특별히 1분을 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그 안에 결과를 얻어 내지 못하면 너도 그들과 같이 죽어.”
하동선은 강찬의 눈빛을 감당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전에 죽어 자빠진 차장 둘과 이동명의 모습이 주는 공포도 한몫한 듯했다.
“대통령님! 미국 정부로 망명을 신청합니다!”
하동선이 외친 우리말을 아랍어 통역이 영어로 전한 직후였다. 게릭 웨인이 시선을 돌렸고, 통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문제는….”
“보좌관에게서 쓸데없는 소리가 나오면 대통령인 당신을 포함해서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
보좌관을 향해 뭔가를 말하려던 게릭 웨인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가져왔다.
“하동선, 30초 남았다.”
“CIA 칼튼 숀 국장을 통해 전달받았던 대로 나는 다 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내가 한국의 국가정보원장 하동선입니다! 중국에서 보내는 인물들을 받아들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쏟아 내던 하동선이 강찬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그런 뒤에 곧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다른 건 몰라도 게릭 웨인의 뒤에서 무기를 품고 있는 경호원들이 자신을 구해 주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 여기는 눈치였다.
“감염으로 한반도가 혼란에 빠지면 지시대로 움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모르는 일이야! 그리고 칼튼 숀은 내 지시를 무시하고 이미 제거됐어!”
“3자 통화 녹음이 내게 있습니다.”
“뭐…? 내가 언제 당신과 통화했다는 거야?”
통화 녹음도 있었어?
강찬마저 시선이 팔려 바라보는 앞이었다.
“나 말고, 제이어 반 할트, 칼튼 숀, 게릭 웨인 미국 대통령의 3자 통화 내용을 내가 지니고 있습니다. 그 정도도 확보하지 않고서 그런 계획에 동조할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닙니다.”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칼튼 숀이 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증거로 보내 준 통화 내용입니다. 그 역시 최후의 상황에 대비한 보험으로 가지고 있다고 했었고!”
“나는 제이어 반 할트라는 사람을 몰라!”
게릭 웨인과 하동선이 추접스러운 모양새로 다툼을 벌이는 틈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염병할!
강찬의 심장이 최후의 경고를 전하는 것처럼 커다랗게 뛰었고, 동시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피가 빠르게 돌았다.
더 늦으면 진짜 죽어! 죽는다고!
여기에서 시간을 끄는 건 멍청한 짓이라니까!
강찬은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게릭 웨인의 죄를 밝혀내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믿고 따라 준 제라르와 양범, 그리고 그의 요원들을 이 자리에서 죽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감염자들이 수십만 명 몰려드는 건 아닐 텐데?
강찬이 활주로를 힐끔 눈에 담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얼른 받아요! 급합니다!
마치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재킷 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이 울었다. 뚝 잘린 대화 탓에 이번에는 시선들이 모조리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액정을 확인한 강찬은 통화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여보세요?”
– 김형정입니다. 제이어 반 할트의 통화에서 수상한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우선 들어 보십시오.
김형정의 다급한 음성이 끊긴 다음이었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병력은?
– 그들은 특수부대가 없습니다. 물론, 명목상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서 미국이나 중국의 정규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 좋아. 시행해.
–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영어로 오가는 대화가 스마트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이거였구나!
강찬은 이를 악물었다. 그런 뒤에 으르렁거리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부탁하면 지금 대화를 다시 전해 주세요.”
– 알겠습니다.
마음이 급한 만큼 이거로 정리한다.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 강찬은 “지금 부탁합니다.” 하고 짧은 요구를 전했다.
영어로 오간 대화가 곧바로 스피커폰을 통해 나왔다.
‘이곳을 노리는 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경호책임자 해밀턴만큼은 상황을 알아차린 듯 강찬을 바라보았고,
“제이어가 왜?”
제이어 반 할트의 음성을 알아들은 게릭 웨인이 자신이 있는 공항을 노렸다는 사실에 놀란 것처럼 혼잣말을 뱉었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제이어 반 할트를.
심지어 통화 녹음에서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
알고 있었구나!
해밀턴과 보좌관, 심지어 통역마저 혼잣말을 내뱉은 게릭 웨인을 돌아보았으나, 정작 그는 무슨 일로 그러는지 깨닫지 못한 눈치였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그만하고 나가라고!
결정적인 순간이지만, 심장이 악을 쓰듯 전하는 경고를 더는 무시하기 어렵다.
“해밀턴.”
강찬은 먼저 해밀턴을 불렀다.
“위기 상황이다. 프랑스 정보총국, 한국의 국가정보원, 평화유지군, 외인부대의 명예를 걸고 경호원을 습격하는 일은 없다고 맹세한다.”
무슨 일인데 저런 말을 하지?
해밀턴과 경호원들을 포함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찬은 몸을 일으켰다.
“살고 싶으면 활주로로 움직여! 서둘러!”
짧게 지시를 던진 강찬은 곧장 몸을 돌렸다.
“양범 씨! 건물 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군인들부터 피난민들까지 모두 활주로로 내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 활주로로 나가야 합니다!”
강찬의 날카로운 눈매를 확인한 양범이 고갯짓과 함께 몸을 돌렸고, “공항 밖으로 움직인다! 서둘러!” 요원들을 독촉해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통역! 피난민들이 있는 장소로 안내해!”
“예!”
완전히 바뀐 강찬의 태도에 눌린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 특유의 하얀 원피스를 입은 통역이 급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제라르!”
휘익! 철컥!
문을 나서기 전에 불렀다. 그런데도 알아서 준비했던 제라르가 강찬을 향해 소총을 던져주었다.
“무슈 강?”
문을 나서는 강찬을 부른 건 해밀턴 윙스였다.
“살고 싶으면 활주로로 피해!”
“활주로가 더 위험할 수 있잖습니까?”
미친놈.
죽음이 달려드는 상황에서 질문을 던져 놓고 기껏 답해 줬더니 의견을 내세워?
뒈지겠다면 소원대로.
그의 눈을 확인하듯 들여다보았던 강찬은 말없이 복도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는 먼저 나가서 이쪽을 보며 기다리는 통역을 향해 달렸다.
복도를 나서면서 널따란 터미널이 펼쳐졌다.
“나가! 나가라고!”
악을 써 대는 강찬의 앞에서 양범과 중국 요원들이 활주로를 향해 팔을 저어 댔다.
염병할!
강찬은 점사 버튼을 돌린 뒤에 총구를 하늘로 들었다.
푸슈슈슈슝! 푸슈슈슈슝!
소란이 뚝 끊기면서 어수선하게 일어나던 사람들이 강찬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짐 버리고 나가라고 해! 열을 센 뒤에도 남아 있으면 사살한다고!”
통역이 아랍어를 터트리는 앞에서 강찬은 또다시 공항 천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푸슈슈슝! 푸슈슝!
“숫자 세!”
통역이 아랍어로 숫자를 헤아리는 앞에서 제라르가 독한 눈매로 총구를 돌렸다.
철컥!
하늘로 총을 갈겨 대는 강찬, 눈이 뒤집혀서 총구를 돌리는 제라르, 그제야 짐을 포기한 피난민들이 늑대를 만난 양 떼처럼 활주로를 향해 몰려 나가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지금도 늦었어!
다른 사람들은 포기하고 그냥 나가!
심장이 주는 경고를 이기기 위해 강찬이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의료실에 가족이 있답니다!”
통역이 강찬을 향해 다급한 표정으로 우리말을 던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