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35)
816화 내가 누군지 잊었냐! (1)
솔직하게 말할까?
송창욱이 남긴 색 바랜 태극기를 받지 않았다면, 손가락이 부러진 채 밤새 달리고도 허무하게 죽은 이유슬의 아버지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면 강찬은 나서지 않았다.
하동선, 이동명 같은 개새끼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지랄 떠는데 뭐 얻어먹겠다고 그놈들 배를 채우는 짓을 하겠냐 말이다.
쿠웅. 쿠웅. 쿠웅.
그냥 무시해!
심장이 전하는 악다구니 앞에서 통역에게 매달렸던 나이 든 남자와 며느리처럼 보이는 여자가 강찬을 향해 동정을 바라는 것처럼 손을 모아 흔들었다.
외인부대에서 수도 없이 보았다.
힘없는 사람들이 매달리는 모습을, 억울하게 짓눌리고 당연하게 받아야 할 몫마저 빼앗겼는데 항의는커녕 살려 달라고 매달리는 저런 모습을 말이다.
“의무실이 어디야?”
“3층이랍니다!”
“제라르!”
제라르를 부른 강찬은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달렸다.
“강찬 씨!”
“밖으로 나가세요! 가능한 한 건물에서 멀어지는 게 좋습니다!”
급하게 부르는 양범에게 고함처럼 답한 강찬은 계단을 두세 개씩 훌쩍훌쩍 뛰었다. 바로 뒤편에서 성난 맹수처럼 함께 달리는 제라르가 없었다면 더럽게 외로웠겠다.
2층에 올라선 강찬은 방향을 틀어 곧장 3층을 향해 달렸다.
“허억. 헉!”
느닷없이, 그것도 있는 힘껏 달리는 탓에 폐가 거친 숨을 토해 냈고, 허리와 허벅지가 고통을 뿌려 댔다. 그러나 이런다고 걸음을 늦추면 남는 건 죽음밖에 없다.
2층과 3층의 중간쯤을 달릴 때였다.
저 아래에서 게릭 웨인을 감싸다시피 한 경호원들이 VIP룸을 나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휘익. 휙.
허리를 숙인 강찬은 두 개, 세 개의 계단을 훌쩍 뛰어올라 3층에 도착했다.
“대장!”
고개를 돌려 의무실을 찾는 강찬을 부른 제라르가 오른쪽으로 돌아 달리고 있었다.
저놈이 공항 의무실에 들렀던 적이 있었나?
강찬은 제라르를 뒤따라 악착같이 달렸다.
터억. 휘익!
3층 터미널을 가로지른 제라르가 벽을 잡는 동작으로 방향을 틀어 복도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말이라도 하고 바꾸지.
바닥을 미끄러지는 것처럼 방향을 돌린 강찬이 복도를 향해 달리는 순간이었다.
쿠웅. 쿠우웅. 쿠웅. 쿠우웅.
달리는 것과 별개로 심장이 커다랗게 울었다.
이게 마지막 경고다!
더는 시간이 없어!
다가오는 죽음을 향해 양팔을 벌린 채 버티던 본능이 더는 견디지 못한다며 외치는 경고였다.
그래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는 손길을 외면하라고?
아프리카에서, 한국에서, 그리고 염병할 영국과 미국에서 경험했던 거 잊었어?
콰앙!
문을 밀치고 들어간 제라르를 따라 강찬이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후우욱. 후욱. 후우욱. 후욱.
느닷없이 세상이 느리게 흘러갔다.
“바아앙-소옹 못 드을었-어? 나아-와!”
늘어진 테이프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제라르가 지르는 고함이 길게 이어졌고, 구겨진 놈의 인상이 또렷하게 강찬의 눈에 담겼다.
놀라서 밖으로 나서는 의사와 간호사, 그들이 악착같이 밀어 대는 바퀴 달린 간이침대와 그 위에 누운 남자, 침대 위쪽에서 흔들리는 링거팩, 줄줄이 나오는 남자아이 둘과 여자아이 하나, 제라르가 덥석 여자아이를 들어서 등에 돌리고 있었다.
그 직후였다.
후우욱. 후욱. 후우욱. 후욱.
우리 멋지게 견뎠지?
죽인 놈들도 많지만, 살려 낸 사람들은 그보다 많을 거야.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처럼 처음으로 본능이 다독임을 전했다.
지랄! 누가 죽는대?
이를 악문 강찬은 몸을 날려 남자아이 하나를 당겨 등에 얹었고, 이어서 뒤따라 나오는 남자아이를 옆구리에 들었다.
“다알-려어!”
제라르가 먼저 튀어 나갔고, 그 뒤를 간이침대를 미는 의사와 간호사가 따랐으며, 가장 뒤에서 강찬이 복도를 향해 뛰었다.
소총을 옆으로 내린 제라르의 등에 매달린 여자아이의 몸이 위아래로 흔들렸고, 그 뒤를 따라 달리는 간이침대의 앞쪽이 이리저리 위태롭게 흔들렸다.
‘끄으응.’
등에 얹은 아이의 손길이 목을 조르는 것처럼 매달렸고, 그 와중에 옆구리에 든 아이는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계단을 지나 정면이 엘리베이터였다.
간이침대로는 계단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아예 죽겠다고 작정한 것과 같은 선택이었다.
“제라르!”
계단 앞을 달리던 제라르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뒤늦게 엘리베이터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간이침대와 에스컬레이터를 번갈아 살폈다.
“아이를 받아!”
옆구리에 끼었던 아이를 의사에게 넘겨준 강찬은 소총을 옆으로 돌리고서 간이침대의 뒤를 붙잡았다. 강찬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달려온 제라르가 침대의 머리 부분을 향해 양팔을 뻗었다.
“가! 그냥 가!”
제라르가 내려가면서 침대가 아래로 기울었고, 환자가 놈의 허리로 밀려 내려갔는데 지금은 그걸 배려할 겨를이 없었다.
계단을 억지로 달려서 2층에 도착했고, 놀란 여자아이의 울음이 늘어진 테이프처럼 아득하게 들릴 때였다.
“가아앙 차아안 씨이이이-!”
아이의 울음과 흔들리는 간이침대 소리를 뚫고 달려온 양범의 고함이 강찬을 찾았다.
후우욱. 후욱. 후우욱. 후욱.
강찬은 터미널 안쪽에서 활주로를 향해 난 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염병할!
두 줄기의 새하얀 연기를 뿜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오는 건 확실히 미사일이었다. 그것도 어깨에 걸치는 휴대용이 아니라 트럭을 이용해서 발사하는 헬파이어 계열의 소형 미사일이었다.
“미사일! 미사일!”
강찬의 고함을 들은 제라르가 활주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미 활주로 위를 날으는 미사일을 보고서 늦었다고 생각했을까? 느리게 움직이는 놈의 얼굴에 웃음이 담겼다.
미친 새끼!
정장 입고 돌아다니다 보니까 내가 누군지 잊었냐!
강찬은 뒤따라 오는 의사의 멱살을 잡아 침대 옆으로 던졌고, 이어서 간호사를 아예 패대기치듯 밀쳤다. 그리고는 앞으로 달렸다.
새하얀 연기를 꼬리처럼 단 미사일의 둥그런 앞부분 두 개가 활주로를 향해 난 창을 통해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다가와 있었다.
콰악!
제라르의 멱살을 잡은 강찬은 놈을 간이침대 너머로 힘껏 던졌다. 휘청이며 뒤로 넘어가는 제라르의 시선이 강찬을 향해 있었다.
‘개새끼야!’
놈의 눈을 향해 욕이 담긴 시선을 던진 강찬은 간이침대를 엎을 것처럼 안고서 몸을 던졌다.
휘이익!
침대가 넘어지는 순간에 강찬은 시선을 뒤로 돌렸다.
무슨 소형 미사일의 대가리가 저렇게 커?
둥그런 머리통이 하나는 1층으로, 다른 하나는 2층 유리 위쪽으로 날아왔고, 불쑥 공항 건물을 향해 모습을 감췄다.
콰다당!
간이침대와 함께 앞으로 넘어간 강찬이 환자를 감싸 안는 순간이었다.
콰으으으으-으응! 콰으으으으응!
세상 전체가 터져 나가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파사사사사사사-삭!
유리가 산산이 부서졌으며, 이어서 공항 건물 전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콰응! 콰다당! 콰아앙!
조형물, 바위 크기로 부서진 3층 건물의 잔해들이 거칠게 떨어졌고, 그 사이에서 주먹만 한 시멘트 조각들과 쇠붙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등! 콰드드등!
그리고 떨어져 내린 시멘트 조각들과 쇠붙이들이 엎드린 강찬과 제라르, 의료진을 덮쳤다.
찌이이이이잉-.
강찬은 이를 악물며 귓속에서 울리는 쇳소리를 견뎠다.
쇳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살았다. 그리고 살아 있으니 일단 괜찮은 거다.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나서 허망하게 죽지 않으려면 빨리 공항을 나가는 게 급했다.
“끄으-응.”
강찬은 이를 악물며 팔로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이러다가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왼쪽 날갯죽지에 뭔가 꽂힌 모양이었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달려들었다. 이것도 괜찮다. 살아 있으니까 치료하면 된다.
찌이이이-잉.
귀를 파고드는 쇳소리와 흙가루를 떨쳐 내듯 머리를 좌우로 흔든 강찬이 기어가는 것처럼 제라르를 향해 움직였다.
개새끼.
엎어져 있으니까 더 길어 보인다.
게임에 져서 시멘트 조각들과 쇠붙이들로 ‘인디언 밥’을 당한 놈처럼 제라르는 주먹만 한 덩어리들과 흙가루들을 잔뜩 뒤집어쓴 채 엎드려 있었다.
그 직후였다.
두두두두두!
바깥에서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고?
타다다다다당! 타다다당!
헬리콥터가 공항 건물로 다가오지 못하게 막겠다는 것처럼 요란하게 총성이 울린 뒤였다.
건물 근처로 다가온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일으킨 바람이 깨진 유리들과 흙가루들을 강찬이 있는 곳으로 날렸다.
아프리카도 아닌데!
다예가 이상하게 그립다는 생각을 하며 강찬은 팔을 뻗었다.
콰악.
그리고는 흙더미가 뿌옇게 앉은 제라르의 어깨를 잡아서 돌렸다. 화들짝, 놈의 아래에 깔려 있던 여자아이가 강찬을 보기 무섭게 울음을 터트렸는데 그것 역시 살았다는 증거니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야! 제라르!”
죽었을지 모른다는 소리를 하는 인간이 있으면 아가리를 찢어 준다. 누가 죽음을 결정하는 신인지 기억나게 말이다.
“제라르!”
강찬이 놈의 턱을 잡고서 거칠게 흔드는 순간이었다.
“커흑! 컥!”
흙가루를 훅훅 날리는 기침을 토해 낸 제라르가 번쩍하는 것처럼 눈을 떴다.
개새끼. 낙타냐?
회색 흙가루가 잔뜩 내려앉은 바람에 놈의 속눈썹이 마치 요란하게 꾸민 여자가 붙인 눈썹만큼이나 길어 보였다.
“끄응.”
놈이 인상을 버럭 찌푸리며 상체를 세우고는 바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와 기관총, 소총 소리가 뒤엉켜 소리만 들으면 활주로 방향은 완전히 전쟁터였다.
삐이이-융! 삐이이융! 콰으으응! 콰아아앙!
휴대용 미사일을 날리는 모양인지 RPG 특유의 발사음과 폭발음도 터지고 있었다.
“등에 뭐가 박힌 거 같다.”
“알겠습니다. 저 개새끼들 모조리 죽여 버리죠!”
젠장!
폭발음의 충격에 아직 소리를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강찬은 소총을 옆으로 잡은 상태로 등을 제라르에게 돌렸다.
이 정도는 진짜 눈치로 알아차린다.
강찬의 왼쪽 어깨를 붙잡은 제라르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날갯죽지에 박힌 뭔가를 힘껏 뽑았다.
‘끄으!’
왼쪽 날갯죽지가 짜르르 울리더니 숫제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연달아 달려들었다. 그 직후에 한 뼘 길이의 놋쇠 막대기를 제라르가 눈앞으로 내밀었다.
뽑았으니까 됐다.
살아 있으니까 아픈 거고.
“가자!”
몸을 일으킨 강찬은 겨우 몸을 일으키는 의료진을 향해 움직였다.
의사는 그래도 나았다.
간이침대가 가려 준 덕분인지 바닥에 널브러진 환자도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간호사는 커다란 시멘트 덩이에 맞은 모양으로 얼굴이 완전히 부서졌다.
강찬은 울음조차 터트리지 못하는 남자아이의 시선을 가리는 것처럼 간이침대를 일으켰다. 그런 뒤에 쓰러져 있는 환자를 들어 그 위에 올렸다.
강찬의 움직임에 자극받은 모양이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킨 의사가 흙가루를 뒤집어써서 온통 회색으로 보이는 얼굴 탓에 유독 벌겋게 보이는 눈을 하고는 강찬에게 다가왔다.
미사일이 더 이상 날아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지금은 공항 건물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당장 무너질 것 같지도 않았다.
강찬은 환자를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나가 볼 테니 이 남자를 챙기라는 의미였다.
“아이들은 데리고 가십시오!”
간호사의 처참한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해 달라는 요청이 분명했다.
고개를 끄덕인 강찬은 앞에 있는 남자아이의 팔을 잡아서 등에 얹었다. 염병할, 날갯죽지를 찔렸다는 걸 깜박 잊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만큼 끔찍한 통증을 억지로 견뎌 낸 강찬은 또 다른 남자아이를 당겼다.
그사이, 제라르가 울음을 멈추지 못한 여자아이를 등에 업고 움직였다.
보살펴 주던 간호사가 얼굴이 부서진 채 죽어 있는 광경을 이 아이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선택은 이 아이의 몫이다. 다시는 이런 식의 참혹한 모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냐, 아니면 복수나 체념에 사로잡혀 인생을 망칠 거냐. 잔인하지만 삶이란 놈이 이미 질문을 던진 뒤라서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해답을 찾아야 한다.
두두두두두두! 타다다다당! 타다다당!
어떻게 쏘기에 아직 헬리콥터가 저 지랄로 날고 있는 건지, 원.
시멘트 덩어리와 온갖 파편들이 수북하게 쌓인 에스컬레이터를 산길을 내려가듯 달린 강찬은 1층 터미널에 도착해 활주로 방향을 눈에 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