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38)
819화 블랙 다운(black down) 상황이다 (1)
영국 노팅엄의 외곽 듀크 테라스에 도착한 라노크는 정치인이자 정보국 최고 자리에 군림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 특유의 서양 가면을 뒤집어쓴 오만한 태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클럽이어서, 안에 있는 손님들 역시 정장을 차려입기는 했으나 영국 문화 특유의 편안한 느낌이어서 라노크는 유독 눈에 띄었다.
단정한 슈트와 그 안에 보이는 셔츠와 타이, 그리고 맞은편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아 공손하게 시가를 준비하는 라파엘의 모습을 다른 테이블에 앉은 영국인들이 신기한 듯 바라볼 때였다.
정장에 셔츠, 선글라스를 착용한 중년과 젊은 남자 두 명이 듀크 테라스 안으로 들어와 매니저에게 눈짓을 던졌고, 곧바로 라노크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주저하지 않고 남은 두 자리를 차지하고서 앉았다.
“오랜만이오. 은퇴해서 편안한 삶을 보내시는 줄 알던 분이 바깥나들이를 한 것도 놀랍지만, 미국 상원의장인 나를 급하게 불러낼 배짱을 지녔다는 게 더 놀랍소.”
늙어진 볼과 이중 턱을 돌린 죤 피셜 상원의장이 옆에 앉은 젊은 남자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라노크에게 집중했다.
“CIA가 프랑스에 원한이 많은 거 같은데, 그 일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위해 나를 찾으신 거요?”
그러길 바랐나?
눈썹을 위로 들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라노크가 손을 내밀자 라파엘이 커터칼로 끝을 자른 시가를 건넸고, 이어서 금장이 반짝이는 라이터를 건넸다.
“라노크 의장. 듀크 테라스가 CIA의 위장 업소라는 걸 모를 리 없는 분이 왜 굳이 이곳에 들어와 요원들의 심장을 긁어 대는 거요?”
“후-.”
살포시 시가 연기를 뿜어낸 라노크가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시선을 죤 피셜에게 돌렸다.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특수 작전에 참여했던 그린베레 대원들이 치료는커녕 격리된 채 사망했지.”
“라노크 의장? 당신의 과거 경력과 아직 지닌 이름값을 생각해서 참고 있지만, 내가 먼저 이곳을 나가면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온전히 당신 책임이오.”
“예멘에서 감염이 발생해 최소한 14만 명이 사망했다. 초기에 나선 한국의 노력과 그 뒤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나서지 않았다면 예멘은 지도에서 사라졌을 테고.”
“라노크!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요?”
“방금 말했던 추악한 일의 가장 정점에 미국 대통령이 있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역시 미국인은 전개와 발단을 즐기는 여유가 부족하군.”
라노크의 단호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죤 피셜은 옆에 앉은 젊은 남자를 돌아보았다.
“잠깐 자리를 비켜 주지.”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눈빛은 알 길이 없었다. 거기에 묵묵하게 일어나서 입구로 몸을 돌리는 바람에 표정을 읽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묵묵한 그의 표정과 태도 한구석에 놀라움이 담겨 있다는 걸 구렁이 라노크는 이미 읽었다.
“지금 어떤 말을 하는지 알고 있소?”
“한국의 국가정보원에서 제이어 반 할트라는 인물과 게릭 웨인의 통화를 녹음했더군. 칼튼 숀 전 CIA 국장이 그 두 사람의 하수인이었다는 증거도 지니고 있고.”
늘어진 죤 피셜의 볼이 하얗게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멘 공항 습격 도중,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이 왜 이런 공격을 하냐고 항의했고, 목표는 대통령이 아니니 안심하라는 통화도 녹음했다는데 혹시 듣고 싶은 마음이 있나?”
“후-. 원하는 게 뭐요?”
시가를 짧게 빨아들인 라노크가 입술을 길게 늘이며 웃었다.
“게릭 웨인.”
“라노크?”
“그를 내놓으면 내 이름을 걸고 앞에 말한 모든 증거를 영원히 로리암의 지하에 묻어 주지.”
“당신을 이곳에서 제거하고, 우리 전투기로 예멘 공항을 아예 지워 버릴 수도 있소.”
“흠흐흐. 흐하하. 흐하하하.”
눈매를 독하게 만든 죤 피셜의 협박이 제법 살벌했는데도 라노크는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정보총국의 총국장이 누구인지 잊었나 본데, 원한다면 그렇게 해. 앞으로 10년 정도 정보국 세계가 피로 물드는 걸 나중에 뭐라 부를지 궁금하기는 하군.”
죤 피셜은 대꾸조차 못 한 채 바라보고만 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부족하군. 아프리카에서 평화유지군이 지닌 위력을 고려한다면 예멘 공항을 지우겠다는 소리는 절대 못 했을 텐데? 또 하나, 폭격에서 무슈 강이 빠져나오면 그 이마에 어떤 흉터가 남을지도 생각해야지.”
“하아.”
대놓고 이를 씹어 대는 죤 피셜이 입구를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대통령을 내놓으면 우리는 뭐가 되겠소?”
“목숨을 던져 치료제를 구해 낸 대통령과 십만이 넘는 희생자를 만들어 낸 희대의 범죄자, 어느 쪽을 택하든 그건 자유지만, 전투기가 예멘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결정해야 해.”
급하게 왼손을 들어 시계를 확인한 죤 피셜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도착했을지 모르는데?”
“그렇다면 예멘 공항 상공을 맴돌며 주변을 지켜보는 것도 좋겠지?”
말을 마친 라노크가 보란 듯이 시가를 재떨이에 거꾸로 꽂았다.
“오는 도중에, 그리고 이 자리에 앉을 때도,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게릭 웨인이 공항을 출발했다는 말이 들리면 증거가 공개될 테니까, 헛된 협상은 생각도 하지 마.”
시가를 누른 상태에서 라노크가 매섭게 눈을 들었다.
“치료제를 구하고 사라진 영웅, 희대의 범죄자, 미국은 어떤 대통령을 선택할 거지?”
실제로 죽음을 각오했구나!
원하는 걸 손에 넣어도 입을 막기 위해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라노크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죤 피셜을 바라보는 라노크의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라노크를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라파엘의 태도가 죤 피셜을 짓누르고 있었다.
***
아무리 억울하고 갑갑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억울한 희생을 외면하지 않았던 강찬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이따위 개 같은 계획을 세우지 않을 교훈이 필요하다면, 처참한 죽음들을 던져 준다.
“전쟁만 일어나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니오?”
“그 계획을 짰던 놈들, 수행하려고 준비했던 놈들, 알고도 입을 처닫고 있던 놈들. 그 인간들 모두가 죽어야지.”
“그렇게 하면…!”
본인도 죽어야 하냐며 항변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는 데 제라르의 눈썹을 자신 있게 건다.
“감염된 사람 본 적 없지? 자식과 손자, 아내의 목을 자르다가 죽어 간 사람들과 격리된 채 죽어 가던 그린베레 대원들이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을 거 같냐?”
강찬은 대놓고 하대를 뱉었다.
“대통령이니까 감염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지간한 사람과는 10미터 안쪽을 허용하지 않는 바실리도 안드레이에게 당할 뻔했었다. 게릭 웨인 당신이 언제까지 버티는지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을 테니까 재주껏 살아 봐.”
“협상이라는 걸 하려면 최소한의 양보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럼 당신이 지은 죄는?”
“뭐요?”
어버버거리는 게릭 웨인을 보며 강찬은 피식 웃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생명과 미국을 위해 나섰던 대원들을 처참하게 죽게 만든 당신의 죄는 어떻게 할 거냐고? 미국 대통령이니까 이 정도는 넘어가야 한다는 거냐?”
당장 주먹을 날릴 것처럼 매서운 태도에 움찔했던 경호원들이 강찬의 눈빛을 받고는 시선을 얼른 돌렸다.
“미국 대통령이어서, 힘이 있으니까, 미국이니까, 다른 사람들의 죽음쯤 별것 아니라고 여긴다면 이번 기회에 반대로 당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죽든가, 한국의 교도소에서 감형 없는 종신형을 받든가.”
“말도 안 돼.”
“그래? 수백, 수천, 수만 명이 희생되고 나서, 미국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자. 계속된 죽음을 감수하며 자존심을 지키라고 할지, 아니면 당신을 내게 던져 줄지 보면 알겠지.”
지진의 공포에 떨던 과거에도 대통령을 던져 주었던 미국이 이번이라고 다를까?
뭐, 끝까지 게릭 웨인을 지키겠다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면 된다.
모든 걸 털어 버리듯 강찬은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쉐에에에엑! 쉐엑! 쉐에에엑!
확인하지 않아도 전투기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왔다.
개새끼.
그 직후에 강찬은 게릭 웨인의 표정에 감도는 거만과 여유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 인간은 이곳을 나가는 대로 또 온갖 염병을 떨어 댈 거다.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될지 모른다.
수만 명의 희생자를 만든 인간과 그런 놈을 대통령이라고 지키겠다는 경호원들이. 막말로 킬링필드의 살상을 저지른 폴 포트와 그놈을 감싸고 돌던 크메르루즈 군부나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이곳에서 제거하자.’
강찬이 빠르게 던진 시선 끝에서 제라르가 스치는 듯한 미소를 그렸다.
어차피 양쪽 모두 소총을 품고 있는 상황이어서 결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마음을 굳힌 강찬이 이를 지그시 깨무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찬의 스마트폰이 울었고,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동시에 해밀턴의 재킷 주머니에서 진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나왔다.
말이 되나? 이런 타이밍이?
거기에 본능이 발악처럼 전화를 받으라며 강찬을 긁어 대고 있었다. 강찬과 해밀턴이 상대를 바라본 채 스마트폰을 천천히 꺼냈고, 엄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강찬 씨.
정말이지 이런 순간에 라노크의 전화를 받을 줄은 몰랐다.
– 전투기는 에어포스 원을 수호해서 돌아가게 됩니다. 대신 주인공인 미국 대통령은 치료제를 구하는 과정에서 사망했습니다.
“대사님?”
놀라는 강찬의 반응과 무거운 표정으로 통화하는 해밀턴을 돌아본 게릭 웨인이 역겨운 미소를 얼굴에 담고 있었다. 통화 내용을 들었다면 검게 변했겠지만 말이다.
– 제이어 반 할트가 남아 있는 한, 무슈 강이 아직 필요합니다. 게릭 웨인을 영웅으로 만들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내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치욕으로 느껴질 테니까요.
이럴 때 진짜 무섭다, 라노크가.
어떤 협상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도 놀랍지만, 마치 CCTV를 통해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정말이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 경호원들이 연락을 받았을 겁니다. 그들의 요청 사항이 있어서 전합니다. 치료제와 시신만큼은 온전하게 넘겨달라는 두 가지입니다.
시를 읊는 것처럼 부드럽게 넘어온 라노크의 음성 끝에 가벼운 웃음이 달렸다. 그리고, 게릭 웨인이 온전하게 넘어오지 않으리라는 짐작에서 나온 웃음이라는 확신이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라노크가 위험하지 않을까?
정보국 생리대로라면 이런 일을 마칠 때, 관련자를 모두 제거한다. 과거에 로리암에 그를 가뒀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 과거 정보국 위원회에 참여했던 죤 피셜 상원의장이 고생했습니다.
“이름이 독특하네요.”
– 무슈 강에게 기억됐다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참! 라파엘이 좋은 홍차를 구했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사님.”
죤 피셜이라는 이름을 알려 준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는 것처럼 작은 숨소리가 들렸고, 전화가 끊겼다. 통화를 마친 강찬이 시선을 들었을 때, 선글라스 아래만 봐도 참담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해밀턴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래?’
강찬의 시선 앞에서 볼을 씰룩였던 해밀턴이 경호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블랙 다운(black down) 상황이다.”
진짜 놀란 모양이었다.
움찔하는 것을 벗어나 멍한 표정으로 경호원들이 해밀턴을 바라보았다.
“전투기가 무사히 착륙할 수 있도록 우리가 활주로를 지킨다. 움직여.”
“아직 용병이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조용해진 걸 보고도 모르겠어? 전투기와 특수부대가 온다는 걸 알고 사라진 거지.”
경호원의 질문에 단호하게 답한 해밀턴이 확인처럼 게릭 웨인을 돌아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이봐! 어디를 가는 거야!”
콰악.
놀라서 따라나서려던 게릭 웨인의 목을 강찬이 움켜쥐었고,
“컥! 나를…! 뭐 하는…!”
강찬의 왼손을 맞잡은 게릭 웨인이 발악처럼 시선을 던졌으나 경호원들은 들리지 않는 듯 부서진 에스컬레이터 아래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원하는 대로…. 뭐든…. 나는 미국… 대통령…?”
피식 웃는 강찬의 얼굴을 본 게릭 웨인이 공포에 물든 눈빛과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대장. 사우디아라비아 병력과 예멘 피난민들이 모두 보고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말이 퍼질수록 좋아. 이 인간이 실제로 어떤 인간이었는지, 어떤 최후를 맞은 건지 아는 사람이 많아야, 이런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 게 얼마나 추악한 짓인지를 깨달을 테니까.”
콰악.
말끝에 강찬은 오른손을 뻗어서 게릭 웨인의 정수리를 붙잡았다.
“커헉! 커흑!”
“두렵지? 다 그래. 다들 끔찍하게 두려워. 너는 죄라도 지었지. 억울하게 죽어 가는 사람들은 죄도 없었어. 그러니까 지옥에 가는 길에 마주치는 희생자들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
빌면 살려 준다고 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모양이었다.
정수리가 잡힌 게릭 웨인이 고개를 끄덕이려 애썼다.
콰악.
강찬은 목덜미를 잡았던 왼손을 올려 게릭 웨인의 턱을 붙들었다.
“무슈 강!”
“잘 가.”
휘익. 콰드드득!
삽시간에 게릭 웨인의 뒤통수가 강찬의 눈앞으로 돌아오면서 그의 몸뚱이에서 힘이 쭉 빠졌다.
털써-억.
죽으면 다 이렇다.
이놈이고 매국노고, 뒈지면 다 같은데, 최고의 명예를 얻을 자리에 앉은 것들이 뭐 그렇게 염병을 떨어 대는지.
이 인간도 다시 살아날지 모르니까.
널브러진 게릭 웨인을 향해 강찬은 소총을 겨눴다.
푸슝! 퍽! 푸슝! 퍽! 푸슝! 퍽! 푸슝! 퍽!
뒤통수에 한 발, 심장과 오른쪽 가슴에 한 발씩, 마지막으로 목덜미를 제대로 뚫었다.
소총을 내린 강찬이 시선을 돌린 곳에서 양범은 이제껏 처음이지 싶을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했지만, 미국 대통령을 이렇게 처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래에서 기다리는 경호원에게 가져다주세요.”
“알겠습니다.”
양범에게 지시한 강찬은 에스컬레이터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간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반 박자 늦게 왼편으로 다가온 제라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아프리카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이놈의 이런 눈빛과 미소는. 작전에 나가서 참혹한 짓을 하던 반군을 끝까지 두들겨 주고 난 뒤에 보였던 감정이었다.
기다랗게 생겨 먹어서 여자 마음 잘 홀리는 프랑스 놈, 무식한데 먹는 부분에서만큼은 더럽게 아는 것 많은 알제리 놈, 두 놈이 없었다면 그동안의 삶과 이런 순간에 얼마나 외로웠을까?
강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머리가 기괴하게 늘어진 채 피로 물든 게릭 웨인을 중국 요원들이 들고 내려가는 저 아래에 경호원들이 시선을 떨군 채 기다리고 있었고, 거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차갑고 더러운 바닥에 하동선이 널브러져 있었다.
할아비가 얻었던 것들에 대한 고마움이 뼈에 사무쳐 은혜를 갚고 싶었다면 일본에 가서 새벽마다 총리 관저 앞을 깨끗하게 쓸든가 하지, 뭔 지랄 났다고 국가정보원장 자리에 앉아 주접을 떨었을까?
“간신 나라 충신 같은 새끼.”
강찬의 혼잣말을 바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뒤를 살피던 제라르가 힐끔 난간 아래로 시선을 던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