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39)
820화 블랙 다운(black down) 상황이다 (2)
바그다드를 가로지르는 티그리스강 주변의 아파트와 다리들은 낡아서 외벽이 허름하게 변한 반면, 중세 이슬람 제국 시절 마디나트 알 살람(평화의 도시)이라는 이름으로 영광을 누렸던 시절에 지어졌던 건물들은 화려한 빛을 잃지 않은 채 파란빛에 물든 둥그런 지붕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티그리스강이 보이는 슈와카의 카페에 앉은 최종일은 맞은편에 앉은 박중상과 유인강을 보며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용우, 자밀라와 함께 날아온 참이었다.
감염을 퍼트린 주범 중 한 명이며, 변종 감염균을 퍼트릴 위험을 품고 있는 인물, 모하마드 암만 압둘라 하지즈가 숨어 있다고 짐작되는 주택으로 달려가 그를 확인하거나 제거할 목적이었다. 그런데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총질을 해 대다가 도망쳐 나왔단다.
“다친 곳은 없어?”
“예.”
대답은 잘도 한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불쑥 올라오는 감정에 최종일은 공연히 앞에 놓인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정보총국 요원들은?”
“우리가 출발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후-.”
이라크인으로 구성된 현지 요원들까지 운용하는 정보총국과 매번 빤한 인력으로 급하게 달려와야 하는 국가정보원을 어떻게 비교하겠나. 거기에 외모마저 워낙 차이 나는 지역이라 숨어 들어갈 수 없다는 점도 치명적이었다.
최종일은 슬며시 카페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보총국은 이런 상황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최종일 일행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우선 본부장님께 연락해 보고, 부원장님의 지시를 받을 수 있다면 그대로 움직이자.”
“알겠습니다.”
입맛은 쓰지만, 적이 소총을 들고 달려들었다는 상황에서 이렇게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감사한 일이었다.
“팔은 괜찮냐?”
“예.”
유인강의 답을 들은 최종일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낼 때였다.
“예멘 공항에 미국 전투기가 도착했답니다.”
“뭐?”
무선 이어폰으로 방송을 듣고 있던 우희승이 스마트폰을 보기 좋도록 돌렸다.
어떻게 이런 영상을 구할까?
소총을 품은 경호원들이 둘러싼 비행기 뒤편으로 미국의 전투기들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몸뚱이를 드러낸 채 대기하는 영상이 스마트폰에 가득 올라와 있었다.
그 직후였다.
‘부원장님은 무사하신지 얼른 전화해 보시죠.’
둘러앉은 이들이 비슷한 요청을 담은 시선으로 최종일을 바라보았다.
***
보도 방송을 지켜보던 제이어 반 할트는 내내 뒤집어쓰고 있던 가면이 깨진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졌다.
[치료제를 극적으로 구한 게릭 웨인 대통령이 예멘 공항 현지에서 순국했습니다. 뒤편에 대기하는 전투기는 제7함대 소속으로 확인됩니다.]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소총을 품은 경호원들이 탑승을 위한 계단과 그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공항을 습격한 무장 세력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대통령의 사망 원인 역시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불러온 특수부대 대원들이 공항을 공격했던 용병들을 사살했다는 정보가 있으나 이 또한 진실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활주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보여 주는 영상이 중간중간 멈췄다. 그리고는 정지된 화면 한 부분을 붉은색으로 둥그렇게 표시했다.
[부서진 정문과 초소들입니다.]이어서 영상은 엉망으로 망가진 공항 건물을 보여 주었다.
[두 발의 중형 미사일에 의한 공격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역시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차기 CIA 국장으로 유력했던 죤 피셜 상원의장이 급하게 영국에서 출발했습니다.]장소를 알기 어렵지만, 굳은 표정으로 공항 게이트에 들어서는 죤 피셜의 모습이 영상에 올라왔다.
화면에 백악관의 모습이 담기는 순간이었다.
“이런 멍청이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제이어 반 할트가 분통을 터트렸다.
그 직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잡아채듯 스마트폰을 든 제이어 반 할트는 액정을 확인했고,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보다는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그 이유를 말하라고!”
– 제가 데려온 화이트 울프 대원들이 배신하는 바람에 작전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이게 무슨 헛소리지?
지금껏 이토록 연속해서 실패를 맛본 적 없는 제이어 반 할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매를 비틀었다.
“용병으로 데려온 중국의 특수부대원이 배신했다고 했나? 그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돈을 빼돌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어쩌면 실제로 돈을 빼돌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말하는 도중에 ‘더러운 중국놈들’이라는 욕을 뱉을 뻔했던 제이어 반 할트가 볼을 씰룩일 때였다.
– 현장에 양범 중국 정보국 부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중국을 위해 전역하고, 또 중국의 영광을 위해 싸우라고 지시했던 게 모두 거짓이었다는 의문이 들면서 체첸 용병들과 다툼이 벌어졌고….
“결론만 말해!”
쩌렁, 이제까지 없던 제이어 반 할트의 고함이 터진 다음이었다.
– 그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에 미국의 전투기가 도착해서 우선 빠져나왔다는 보고였습니다.
“끄응.”
멍청한 것들!
돈에 팔려 사는 짐승 같은 것들이 무슨 의리가 있다고…?
분노에 사로잡히던 제이어 반 할트는 또다시 눈가를 좁혔다.
“부친이 양범이라는 그 사람에게 살해됐다고 하지 않았나?”
–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부친이 부른 대원들이 양범을 보고 돌아왔다는 건가?”
– 부친이 사망하기 전에 은밀하게 실행했던 일이어서 만약 살아 계셨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겁니다.
그건 또 그렇다.
주승관의 지시에 모였던 대원들이라, 그가 죽고 나서 미국 시민권자인 아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했을 수 있겠다.
“하나만 더 묻지. 그들이 어떻게 건물 안에 양범이라는 인물이 있는 걸 알았지?”
– 공항 건물 바깥에서 동료들의 시신을 발견했던 모양입니다. 정치국 소속이고, 정확하게는 정보국을 위해 일하던 요원들이었답니다. 정보국 동료들을 발견하고는 더는 싸우지 못한다고 판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데이비드를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실패했다는 사실과 대원들이 배신했다는 결과에 눌린 것처럼 힘이 풀린 듯한 음성이 그 증거였다.
“잠시 몸을 피하는 게 좋겠지?”
– 가족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좋을 대로.”
– 감사합니다.
중국어 억양이 묻은 영어를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더니 이런 결과를 받으려고 그랬던 모양이었다. 스마트폰을 책상에 올려놓은 제이어 반 할트는 멍한 표정으로 보도 방송에 시선을 돌렸다.
미국 대통령을 살해한다고?
지금껏 이 정도로 막무가내인 인간을 제이어 반 할트는 단 한 번도 만나 보거나 상대해 본 적 없었다. 제법 강단 있게 맞서던 인간들도 결국 그의 재력과 능력을 알게 되면 고개 숙였으니까 말이다. 멀리 볼 것 없이 칼튼 숀과 고트 가가린, 심지어 미국 대통령인 게릭 웨인마저도…!
이럴 수가?
생각이 달리던 제이어 반 할트는 반사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떠올린 사람들이 바로 그 순서대로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생각하면 안 돼!’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억지로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거짓말처럼 아직 살아 있는 데이비드 주와 압둘라 하지즈의 얼굴이 차례로 제이어 반 할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
비공식 방문이었다.
당연하게 후문을 이용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도 홍진용은 육군, 해군, 공군, 경찰 순서의 의장대원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정문으로 김미영과 문바키를 안내했다.
의례적인 검색대를 통과한 김미영과 문바키가 영빈관의 좌석에 앉은 다음이었다. 김미영은 가방에서 손바닥 크기의 반만 한 녹음기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대사님. 보이지 않게 가방에 보관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랬다가 대통령의 면담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잖아요.”
“비밀 회담이잖습니까?”
“언론에 내용을 흘린 곳도 청와대고, 정문으로 들어와서 시선을 끌게 한 것도 청와대입니다. 대화 내용에 착오가 생기면 외교 분쟁이 발생할 수 있어서 이것만은 양보하기 어렵네요.”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문바키에게 김미영은 홍진용과의 대화를 전했다. 급하게 요청한 회담에 응하는 대신, 믿을 만한 통역이 필요하고, 그 핑계로 김미영을 지정한 장본인이 문바키였다.
문바키와 짧은 대화를 나눈 김미영이 어떻게 할 거냐는 투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의전 비서관과 대통령 쪽의 통역을 맡은 여성 통역사가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 김미영 대사님? 맞으시죠?”
“네. 그런데 혹시 뵌 적이 있나요?”
“아닙니다. 프랑스 유학 중에 힘들 때마다 언젠가 대사님 같은 분이 되겠다며 공부했었습니다. 제 인생의 롤 모델이신 대사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대사님.”
“고마워요.”
대통령 신문성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존경심이라니, 두 눈에 존경과 하트를 가득 담고서 김미영에게 인사하는 여성 통역사를 보며 홍진용은 입맛을 다셨다.
정석대로, 강직하게만 일하는 김미영과 그녀처럼 되고 싶다며 눈에 존경심을 담은 통역사를 봐서는 적당히 넘겨 달라는 요청을 하기 어렵겠다.
홍진용이 곤란한 표정으로 입구를 보았을 때였다.
뿌듯하고 흡족한 표정으로 신문성이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한국 대통령 신문성입니다.”
김미영이 나직하게 신문성의 인사를 전했고, 다음으로 문바키의 대꾸를 여성 통역사가 빠르게 전해 주었다.
이제 앉을 차례였다.
“이분은 전 프랑스 주재 한국 대사로 근무하셨던 김미영 대사님입니다.”
그런데도 문바키는 넉넉한 표정으로 김미영을 소개했고, 여성 통역사가 그 내용을 신문성에게 빠르게 전해 주었다.
“아, 그래요?”
김미영이 고개를 짧게, 그러나 실례되지 않게 숙여 인사했는데, 신문성은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방송 보셨소?”
“예멘 공항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보았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너무 오바해서 벌어진 일 아닙니까?”
차마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전하기 민망했던 김미영이 “미국 대통령이 무리하게 움직일 만큼 애썼는데 아쉽습니다.”라고 말을 바꿨고, 그 모습을 여성 통역사가 힐끔 보았다.
차가 나온 다음이었다.
“치료제를 얻는 데 도움 주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신문성이 앞뒤를 뚝 자르고서 빌려준 돈의 이자를 내놓으라는 채권자스러운 질문을 불쑥 내밀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저는 치료제를 구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드리지 못합니다.”
“그래요?”
어디에서 어떻게 비틀린 걸까?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이해한다. 강찬을 통해 치료제를 구할 수 있으리라 짐작도 하고. 하지만, 이 자리에서 치료제를 언제 주겠다고 답할 건 아니었다.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신문성의 시선을 알아챈 홍진용이 빠르게 다가가 상체를 기울였다.
“부원장이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미국 대통령이 예멘으로 가는 것 이상으로 대통령님께서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물 밑에서 애쓰셨다는 사실을 남기는 자리입니다.”
조용하게 전한다고 하지만, 김미영과 통역사 모두 들을 정도였다. 면담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은 또 뭔지, 대사관에서도 이 정도는 아닌데 어쩌다가 청와대의 의전 수준이 이렇게까지 형편없어진 걸까?
어쩌면 대사 자리에서 밀려난 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김미영은 표정 변화 없이 신문성과 홍진용을 지켜보았다.
“적당히 대화하시고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홍진용의 조언 끝에서 신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런 뒤에 느닷없는 질문을 툭 던졌다.
전 프랑스 정보총국장과의 면담이었다.
그것도 자리에서 물러난 지 채 한 달이 안 되는 인물을 만났다면, 감염에 대한 프랑스의 대처 방안에 관해 묻거나, 그도 아니면 국제 정세라든가, 앞으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정도 되는 모범 질문을 내놓을 수 있을 텐데 신문성은 이미 흥미를 잃은 표정이었다.
“정보총국장으로 일하면서 한국의 삶이 궁금했었습니다. 매번 놀랄 정도로 뛰어난 인물들이 배출되는데, 어떤 교육을 받는지, 평소 생활은 어떤 모습인지를 알고 싶어서 방문했습니다.”
“그럼 많이 다녀 보셔야겠네.”
‘모쪼록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접하시길 바랍니다.’라고 통역한 김미영의 얼굴에서 완벽하게 감정이 사라졌고, 그 모습을 통역사는 또 배우겠다는 의지 가득한 눈빛과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
쉐에에에에엑! 쉐에에엑!
하늘에서 맴도는 다섯 대의 전투기 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게릭 웨인이 타고 왔던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났다.
강찬의 과거 모습을 보며 몸에 밴 모양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확인한 양범은 희생된 요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소매를 직접 묶어 주며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주었다.
진심으로 미안하고, 고맙고, 안타까워야 한다.
대원들과 요원들을 한낱 소모품으로 여기며 함부로 대하는 인간이 필요에 따라, 혹은 눈치가 보여 저런 짓을 하면 단번에 눈에 보인다.
강찬이 보기에 양범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하기는, 저런 모습을 보이니까 화이트 울프가 그를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고 따르는 게 아니겠나.
일단 두 새끼 끝났고.
강찬이 점으로 보이는 비행기를 향해 시선을 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스마트폰이 울렸고, 동시에 부서진 철문으로 처음 보는 차량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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