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40)
821화 블랙 다운(black down) 상황이다 (3)
방심하면 죽는다.
총기를 든 사람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진리였다.
철컥! 철컥! 철컥!
강찬과 제라르가 공항 입구의 벽에 붙으며 소총을 겨눴고, 희생된 대원들의 마지막 길을 방해받은 양범과 중국 요원들이 도끼를 박아 놓은 듯한 눈빛으로 몸을 감췄다.
미국의 전투기가 떠나기를 기다렸던 거냐?
부으으응.
지프 한 대와 트럭 두 대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강찬은 총구를 가장 앞에 있는 운전석으로 돌렸다. 지프라서 운전수가 바로 보인다. 그리고 이 정도 거리면 얼마든지 머리통을 터트릴 수 있다. 검지로 방아쇠를 슬며시 당겨 혹시 있을지 모를 유격마저 지워 버린 직후였다.
뭐야, 저건 또?
지프의 조수석에 탄 놈이 앞 유리를 붙들고 일어서서 하얀 타월을 연신 흔들었다. 지랄, 살다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항복 의사를 표현하는 놈은 또 처음이었다. 얼마나 거칠게 흔들어 대는지, 살살 좀 하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부으으응.
활주로를 가로지른 지프가 공항 건물 앞쪽에서 멈췄고, 두 대의 트럭이 좌우를 지키는 것처럼 양옆에 멈췄다. 펄럭펄럭, 하얀 타월을 여전히 흔들고는 있지만, 좌우로 멈춰 선 꼴은 또 그대로 밀고 오기 꼭 좋은 전형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입구를 비운 것처럼 건너편 벽과 기둥에 의지한 양범이 시선을 던졌을 때였다.
모두의 신경이 활주로에 집중되는 그 순간에, “칭원닝스량뿌장마(请问您是杨部长吗, qing wen nin shi Liyang bu zhang, 양 부장님이십니까)?” 하는 중국어 고함이 입구를 향해 달려왔다.
뭐냐, 도대체?
여기에서 왜 중국어가 나와?
다른 건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에 붙은 ‘량뿌장’만은 분명하게 알아들었다.
양범이 중국어로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고, 이어서 맞서듯 고함이 다시 달려왔다. 그리고 그 직후에 양범이 강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중국의 번영을 위해 전역하라는 지시에 따라 제대했고, 이후에 조지아에서 체첸 용병들과 훈련했답니다. 명령을 받아 이곳에 도착했는데, 공항에 들어서고서야 미국 대통령과 제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세요.”
강찬의 요구에 따라 양범이 커다랗게 소리 질렀고, 머뭇거린 뒤에 다시금 답을 하는 듯한 목소리가 공항 건물 앞으로 달려들었다.
“주승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이후에는 그의 아들 주평의 명령을 받았는데, 상하이 3인방을 위해 나선 게 아니어서 제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겠답니다.”
입구에서 침묵하던 이유가 이거였나?
하기는, 강찬을 노렸던 용병들이라면 미국의 전투기가 도착하기 전에 밀고 들어오는 게 맞다. 거기에 심장이 경고하지 않는 것도 저들이 진실을 말한 게 아닐까 하는 믿음이 들게 했다.
강찬이 지프와 트럭을 바라보며 마음을 굳힐 때였다. 또다시 요란한 중국어가 날아왔다.
“우리가 보기에 왼쪽 트럭에 체첸 용병들의 시체가 있답니다. 바깥에 나가서 충돌이 생겼고, 소리 나는 총질 대신 칼로 싸우는 바람에 아군에도 부상자가 꽤 있답니다.”
대원들을 이용해 먹은 주승관과 그의 아들 주평에 대한 분노와 현실을 알고 나서 체첸 용병들과 맞섰고, 그 와중에 위급한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안타까움이 양범의 눈에 진하게 담겨 있었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예?”
강찬을 돌아보았던 양범의 눈에 울음처럼 보이는 웃음이 담겼다.
“저는 대원들을 믿고 싶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의아해하는 양범에게서 시선을 돌린 강찬은 그의 주변에 늘어선 중국 요원들을 눈에 담았다.
“화이트 울프 출신이란다. 양범 국장님이 믿고 싶다고 하셨으니 가서 확인한다. 두 명이 먼저 가서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지원할 사람?”
강찬의 지시가 떨어진 직후였다.
엉망이 된 복장에 소총을 품은 중국 요원들이 거의 비슷하게 손을 들었다.
“이 중에서 화이트 울프 출신?”
염병할, 기껏 질문했는데 모조리 화이트 울프 출신이었는지 한 놈도 팔을 내리지 않았다.
“가장 앞에 있는 두 사람이 간다. 가서 동료인지 확인하고, 무장 해제시킨 뒤에 이쪽으로 데리고 와.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부상자가 있다니까 도착하는 즉시, 안으로 옮겨.”
“알겠습니다.”
가장 앞에 있는 두 사람이 기둥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나이 든 양범이 아직 젊은 요원에게 팔을 뻗어 움켜쥐는 것처럼 그의 왼쪽 귀와 볼을 잡았다. 그리고는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고맙다. 부탁한다.’
이어서 두 번째 요원 역시 똑같이 얼굴을 돌린 양범이 그의 눈을 향해 정말이지 멋진 미소를 보여 주었다.
저러니 안 따르고 배겨?
저런 미소와 믿음을 보여 주는 상관이 있는 곳에 총질을 할 수 있겠어?
부상자가 있다는 말에 마음이 급한 모양이었다.
씨익, 웃은 두 명의 대원이 거침없이 공항 입구를 향해 나섰고, 이어서 빠르게 달리다시피 지프로 다가갔다.
“양범 씨와 함께 움직인 게 이런 식으로 도움받을지 몰랐습니다. 이런 것까지 짐작하신 건 아니죠?”
혹시 용병에 화이트 울프가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제라르의 질문이었다.
“내가 믿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 지금 내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거밖에 없어. 양범 씨도 그런 인물이었던 거고.”
제라르가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은 직후였다.
지프와 트럭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옆을 걷는 요원 두 명이 얼른 와서 도와달라는 듯 커다란 고함과 함께 팔을 휘저었다.
***
실컷 두들겨 맞은 개처럼 마누엘 야닉은 끙끙대는 신음을 흘려 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있는 항모의 대원 한 명이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눈알을 들고서 스마트폰을 향해 천천히 돌렸다.
“진통제라도 부탁….”
“됐다!”
눈을 감아 놓은 붕대에 핏물이 흠뻑 배어 나온 마누엘 야닉의 간절한 청을 대원의 탄성이 단숨에 짓밟았다.
어쩌겠나.
지금 진통제 따위를 주네, 어쩌네, 하며 시간을 끌다가 생체 인식에 실패하면 항모에 있는 대원들까지 도착하는 대로 줄줄이 강제 노역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 예멘 공항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도착하지 못한 죄까지 덮어쓰면 정말이지 답도 없다.
과정을 지켜보던 세바첸코 함장마저 안도한 얼굴로 대원의 등을 두드릴 때였다.
“함장. 나는 이미 끝났소. 진통제만이라도 베풀어 주시오. 아니면 차라리 깔끔하게 죽여 주시오. 눈알을 파냈더니 쇼크로 죽었다고 보고할 수도 있잖소. 함장이 그렇게만 해 주면….”
“바실리 의장에게 보고할 테니까 생각해서 말하는 게 좋아.”
비굴하게까지 느껴지는 마누엘 야닉의 청을 함장은 단칼에 잘라 냈다.
한때는 PMC를 대표하던 인물이었다.
총에 맞든, 칼에 찔리든,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독기 가득해서 싸웠을 인간이 모든 희망을 잃고 고통스러운 죽음만을 기다리면서 대가 완전히 부러진 모양이었다.
‘한국의 요원들이 대단했나 보군.’
뉴욕에서 잡힐 때도 반항이 대단했다고 들었다. 그랬던 그가 소말리아 객실에서 어떤 인물들과 어떻게 있었는지 기가 제대로 부러졌고, 바실리의 계획을 들으며 공포를 품었으며, 눈알을 잃고 나자 지네와 함께 살아갈 내일이 두려워 어쩔 줄 모르는 겁쟁이로 변했다.
“바실리 의장을 알 것 아니오? 그분이 가장 신뢰하던 안드레이를 감염시켰고, 그를 이용해 목숨까지 노렸던 당신에게 내가 뭘 해 줄 수 있겠소?”
“고트 가가린과 히놀 사키코가 있는 곳을 알려 주면 어떻소?”
“두 사람은 당신을 인계받은 소말리아 해변에서 사살됐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랐던 마누엘 야닉이 통증이 올라오는 것처럼 신음을 흘려 냈다. 그런 뒤에 마지막 끈을 잡는 듯한 태도로 고개를 들었다.
“중국 군부의 실력자에게 용병을 넘긴 일이 있소. 그들이 아마….”
“예멘 공항에서의 일이라면 조금 전에 정리가 끝났다고 들었소.”
귀를 통해서만 세상을 상대하는 마누엘 야닉의 풀죽은 모습을 보며 세바첸코 함장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앞에 말했던 인물 모두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평화유지군이 주도해서 사살했소. 예멘 공항도 마찬가지고. 지금 당신이 유일하게 내밀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면, 무슈 강이라는 인물이 만족할 만한 정보요.”
흥정할 거리를 찾는 게 분명했다.
머리를 갸웃대는 마누엘 야닉이 좋은 정보를 떠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
체첸 용병들은 잔혹하고, 실제 곰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한 근력을 자랑한다. 그들과 대검으로 맞붙은 탓인지 사망한 중국 요원들과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부상자들은 온몸을 난도질해 놓은 수준이었다.
“뿌우장.”
“치료부터 하자! 말은 나중에 해도 돼!”
옮기는 과정에서 피투성이인 손을 뻗어 양범의 팔을 잡은 대원의 눈에 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
“야, 인마! 치료부터 하자고!”
“우리는 중국을 위해서…. 중국의 영광을 위해 나선 줄 알았습….”
“체첸 놈들 처리한 거 보고 충분히 알았다. 알았으니까 치료부터 하자!”
“억울합… 니다.”
우리말을 하는 요원 한 명이 볼을 씰룩여 가며 강찬과 제라르에게 대원의 말을 전해 줄 때였다.
털써-억.
힘겹게 들고 있던 대원의 머리와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은 듯 악착같이 버티던 팔이 들것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야, 이 새끼야!”
붉게 튄 피에 아랑곳하지 않고 양범은 아래로 떨어진 대원의 양 볼을 잡고서 그 위로 상체를 기울였다.
“미안하다. 진짜 미안하다.”
정보국을 은퇴했던 걸 말하는지, 조금 더 일찍 주승관을 제거하지 못했던 걸 사과하는지는 모르지만, 사망한 대원의 얼굴을 감싼 양범의 온몸에서 분노가 활활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정말 많이 죽었다.
역시나 많은 희생을 받아들여야 했던 사우디아라비아 병력이 부서진 정문과 초소를 대신해 사다리차에 중기관총을 설치하는 모습을 보며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못 할 말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과 손잡은 용병들에게 당한 모양새인데도 잠자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말이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아!
아까 전화가 울렸었는데?
느닷없이 달려온 화이트 울프 대원들과 이후 급하게 이어지는 상황 탓에 전화를 깜빡 잊고 있었다.
“여보세요?”
– 김형정입니다, 부원장님. 지시하셨던 대로 VIP와 차장 두 명, 이동명 차관의 보도 내용을 배포했습니다.
“고생하셨네요.”
강찬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김형정의 보고를 받았다.
아무리 안에서 볼 때 개새끼라고 해도 밖에다 대고 ‘이 새끼가 순 개새끼에요.’라고 떠들 수는 없었다. 앞으로 우리 요원들이 활동할 때마다 ‘너희 원장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냐?’라는 비아냥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 그리고 제이어 반 할트의 중요 통화를 녹음했습니다.
“그래요?”
이어서 강찬은 통화 내용을 들으며 중국 대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앞뒤 모두 의심할 여지 없이 화이트 울프가 이용당한 꼴이었다. 그것도 애국심을 빌미로 말이다.
“혹시 몸을 숨긴다는 데이비드 주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을까요?”
– 디지털 분석실에 문의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꼭 좀 알아봐 달라고, 정말 필요하다고 전해 주세요.”
– 예, 부원장님.
통화를 마친 강찬이 스마트폰을 내린 뒤였다.
손과 재킷의 팔뚝 부분이 피로 범벅이 된 양범이 강찬에게 다가왔다.
“저희는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핏물이 눈에 올라온 것처럼 양범의 눈이 분노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사람은 가슴을 울린다. 한낱 소모품처럼 대원들을 휘두르다 마지막에 죽음의 구덩이로 내모는 인간들이 많아져서 그런가, 라노크만큼이나 소중한 인물로 강찬의 가슴에 담기고 있었다.
“데이비드 주를 찾아가실 겁니까?”
뒤로 고개를 돌려 희생된 대원들과 요원들을 돌아본 양범이 다시금 시선을 가져왔다.
“강찬 씨의 요청을 받고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치료제는 강찬 씨가 약속을 지켜 줄 테니 이후에는 제가 없어도 될 테고, 말씀대로 주승관의 일족을 처리해서 더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고할 생각입니다.”
그럴 거 같았다.
대원들의 억울한 죽음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성품과 피눈물 맺힌 양범의 눈을 보며 이미 짐작한 일이었다.
“미국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숨을 거라는 정보도 있고요.”
“중국에 돌아가는 대로 찾아보겠습니다. 미국 아니라 세상 어디에 숨어 있더라도 찾아낼 겁니다.”
“칼튼 숀이 살아 있을 적부터 활동하던 인물이라 CIA가 만들어 준 신분증이 여러 개 있을 겁니다.”
“참고해서 찾아보겠습니다.”
양범이 다부지게 뜻을 밝힌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강찬은 양해를 구하지 않은 상태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양범을 바라본 채 귀로 올렸다.
뭔가 숨겨 놓은 뜻이 있나?
양범이 궁금한 시선으로 강찬을 바라보는 앞이었다.
“여보세요?”
– 데이비드 주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그가 곧바로 가족들과 통화한 덕분에 줄줄이 연락한 번호들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이동 중이니 10분 단위로 위치를 파악해서 문자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정말 고생했다고 전해 주세요.”
– 감사합니다, 부원장님.
노고를 알아주는 강찬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김형정의 대꾸를 끝으로 강찬은 스마트폰을 내렸다.
“데이비드 주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뭐라고?
더할 수 없이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처럼 양범의 눈이 흔들렸고, 동시에 우리말을 알아듣는 요원들의 고개가 정말이지 홱 소리가 날 정도로 강찬을 향해 돌아왔다.
“강찬 씨. 진심으로 죄송한 요청이지만….”
“정보총국에 요청하겠습니다. 이곳에서 바로 가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강찬 씨!”
무언가를 더 쏟아 내려던 양범이 입술을 굳게 닫고서 인상을 긁었다. 올라온 감정을 요원들과 대원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정보국 수장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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