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41)
822화 이 정도면 짐작 가는 게 있겠지? (1)
양범을 비롯해 함께 왔던 요원들, 속아서 용병이 되었던 대원들이 떠난 다음이었다.
살아 있었냐?
어딘가에 죽어 있는 줄만 알았던 칼리드 살만이 뜻밖에도 점잖은 얼굴로 강찬에게 다가왔다.
“정문과 초소를 정비했습니다.”
“차관.”
“예, 무슈 강.”
알고 있는 거다. 본인의 비겁했던 태도를.
칼리드 살만이 잘못한 일로 선생님에게 꾸중 듣는 학생처럼 시선을 떨궜다.
“현역이 아니라 국방 차관이니까 이해한다. 그렇지만, 대원들의 희생이 단순히 숫자로 여겨진다면 앞으로는 국방 말고 다른 분야를 선택해. 하나 더.”
변명을 하려던 칼리드 살만이 다시금 시선을 떨궜다. 만약 강찬이 야박한 평가를 우즈만에게 전하면 그의 앞날이 어떻게 변할지는 장담할 수 없더라도 새까맣다는 것만은 확실한 일이었다.
“오래도록 내려온 왕족이라고 해서 일반 병사들의 죽음을 가볍게 여길 권리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본국에서 보았을 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우해.”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답은 했지만, 모든 게 잘 마무리된 상황에서 왜 이렇게 날카롭지? 하는 의문이 그의 표정과 눈빛에 가득했다. 어쩌면 칼리드 살만은 본인이 총에 맞아 죽는 그 순간까지도 대원들의 희생을 아프게 받아들이지 못할 인간인지도 모른다.
왕족이니까, 원래 높은 사람이었으니까, 병사의 역할을 맡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 거니까, 이런 식의 개 같은 사고방식이 고쳐지지 않는 한, 강한 군대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양범 같은 인물이 이끄는 군대와 맞붙으면 비참할 정도의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다.
더 말해 뭐 하겠나.
백날 수십조 원대의 무기를 사 대고, 외국에서 강한 부대를 초빙해 훈련시켜도 대원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는 이따위 상관 아래에서는 절대 강한 부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행기가 필요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강찬이 떠나는 게 어지간히 반가운 모양이었다. 훅 반가운 얼굴을 들었던 칼리드 살만이 주눅 드는 사람처럼 표정을 가라앉혔다.
“피난민들 말인데, 옷이야 그렇다고 쳐도 사용하던 담요는 모두 평화유지군 지원 품목이던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지원이 없었나?”
“바로 신청하겠습니다.”
그걸 여태 안 했어?
하마터면 화를 낼 뻔했다. 그러나 바로 떠날 강찬이 화를 내면 그 보복이 오갈 곳 없는 피난민들을 향할 수도 있었다.
“텐트도 다시 신청해. 그리고 후속 조치들을 사진으로 내게 보내. 그래야 우즈만 왕자께 차관의 노력을 보고할 수 있지. 안 그래?”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준비하겠습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행기를 준비하겠다는 핑계를 앞세운 칼리드 살만이 빠르게 사라졌다.
“대장이 가는 게 어지간히 반가운 모양입니다. 저 인간, 끝까지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도 않았습니다.”
칼리드 살만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제라르가 빡빡한 평가를 내놓은 다음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찬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을 확인한 강찬은 먼저 피식 웃었다.
“바실리인데? 함께 듣자.”
그리고는 바로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미국 대통령을 둘이나 해치운 주연 아니신가?
왜 이렇게 흥분했지?
돌아보는 시선 앞에서 제라르 역시 ‘뭔데 이러죠?’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바실리?”
– 생체 인식을 요구해서 마누엘 야닉의 양쪽 눈알을 모두 파냈다. 그랬더니 그 독한 놈이 진통제든, 죽음이든, 하나만 달라고 매달리더군.
절대 군살을 붙이지 않는 바실리의 성격으로 봐서 이건 대단한 뭔가를 잡아냈다는 의미였다.
– 듣고 있나?
“이상하게 집중하게 되는데?”
– 흥!
이거 봐, 점점?
비행기를 준비한 모양인지 기쁜 얼굴로 다가오는 칼리드 살만에게 강찬은 스마트폰을 가리킨 뒤에 그곳에 있으라는 손짓을 던졌다.
– 놈이 함장에게 매달렸나 보더군. 그렇게 해서 내게 전화를 연결했지 뭔가.
뭐냐, 바실리?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 마누엘 야닉이 PMC의 우두머리인 건 우리 주연도 알 테고, 그에 앞서 프랑스 구렁이가 또 한 건 했더군?
이걸 그냥 끊어?
‘참고 들어 봅시다.’
강찬의 눈매를 본 제라르가 고개를 들이밀고는 빠르게 가로저었다.
‘분위기를 맞춰 주세요.’
뭔가 느꼈을까?
평소 나서지 않는 제라르가 손까지 돌려 가며 강찬을 설득했다.
“러시아는 그 전에 이미 해 준 게 많잖아. 참! 그 덕분에 맡긴 했지만, 바스첸코를 보면 내가 다 뿌듯하더라고.”
– 흥!
제대로 먹혔다.
직전의 ‘흥!’과 이번의 ‘흥!’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튀어나온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느낌은 정확했다.
– 마누엘 야닉이 두 곳의 훈련장을 마련했다더군. 하나는 조지아에 있는 중국과 체첸 용병들의 훈련장이었고.
이거 혹시?
– 다른 하나는 카자흐스탄의 쿠르차토프에 만든 체첸 용병들과 일본의 합동 훈련장이라고 털어놓았지. 이 정도면 짐작 가는 게 있겠지?
“고맙다, 바실리.”
강찬의 인사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구렁이 같은 프랑스인과 달라서 자신은 늘 감추는 게 없다.’라든가, ‘주연 2가 누구인지 이제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나?’ 따위의 말이 연달아 건너왔다.
“마침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서 비행기를 준비했다니까 바로 카자흐스탄으로 가겠다.”
– 카자흐스탄이야 우리 러시아의 영향력이 먹히는 지역이니까 입국은 걱정 없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군.
“그나마 당장 출발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지.”
–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항모가 예멘 앞 바다에 곧 도착한다고 하더군. 러시아의 최신 기술을 모두 담은 전투기를 싣고 말이지.
“바실리?”
감동이 휘몰아친 강찬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뚝’ 소리가 날 정도로 단숨에 스마트폰이 끊겼다.
***
산 중턱에서 마지막으로 추억을 더듬는 시간이었다.
“후우-.”
엄지환 모친의 봉분 앞에서 마을을 향해 앉은 석강호는 맛있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뱉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김형정과의 통화로 돌아가는 상황이야 대강 들었다.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야 말해 뭐 하겠나. 그러나 희생한 이들을 기리지 않을 거면 부르거나 임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강찬의 성격을 알아서, 어쩌면 너무 초라하고 쓸쓸할지 모를 엄지환 모친의 마지막 길이 걸려서 진득하니 버틴 참이었다.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던 석강호가 바닥에 비벼 끈 꽁초를 담뱃갑에 넣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이 울었다.
이상하게 강찬과 제라르가 건 전화만큼은 알아들을 때가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울기 시작한 순간에 석강호는 전화를 건 상대방이 강찬이라고 확신했다.
액정을 확인한 석강호는 히죽 웃는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미안한데 움직여야 할 거 같다.
“지금 봉분 앞에 있소. 잘 마쳤으니 미안해할 거 없소. 어디로 가면 돼요?”
– 카자흐스탄.
가까워서 좋네!
“여기 애들 데려가는 거요?”
– 청와대에서 승인이 어렵다고 해서 좀 특별한 인원을 데려가야 할 거 같다.
“평화유지군은요?”
– 상황이 워낙 빠르게 흘러가. 평화유지군이 이동하는 동안 숨을 우려도 있고,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 몰라.
염병할, 나라를 지키겠다는데 승인을 안 해 준다고?
석강호가 눈매를 뒤틀었으나 그런다고 바뀔 건 없었다.
– 대신, 라노크 대사님과 바실리가 손을 쓰고 있으니까 일단 오산으로 움직여. 그곳에서 강성태라는 친구와 구르카 용병들을 만나서 함께 오면 돼. 무기는 비행기 안에 있을 거다.
“대장은요?”
– 예멘인데, 5분 뒤에 미그기가 도착한단다. 그거 타고 가면 비슷하게 도착할 거다.
“얼른 오쇼.”
통화를 마치려던 석강호가 엄지환 모친의 주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대장. 한 놈만 데리고 갑시다.”
– 엄지환 후배라는 요원?
“지켜봤는데 도움 될 거 같소.”
– 알아서 해.
“고맙소.”
통화를 마친 석강호는 엉덩이를 툴툴 덜고는 봉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나, 가야 해요.
‘위험한 일 아니오?’
지환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는 달려가야 하는 일이거든요. 함께 오던 분 기억하지요? 그 양반도 함께할 거요.
‘그라소. 장부가 뜻을 세움사 끝을 봐야 안 쓰것소? 장하오, 우리 성님. 나는 지환이랑 있으니께 암것도 걱정 말고 가서 후련하게 털어 버리소.’
일 끝나면 그 양반하고 함께 올게요.
‘일 없소. 큰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뭐 땀시 이런 곳을 또 온다고 그러시오?’
봉분을 바라보던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손사래를 치는 엄지환 모친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거 같아서였다.
***
욕은 습관 된다.
튀어나오려는 욕을 악착같이 삼킨 김형정은 수화기를 내리고서 연신 손짓을 던져 대는 신광선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정보총국과 러시아의 요구를 CIA가 수락했답니다!”
됐다. 오산에서의 출발까지는 확실히 마쳤다.
해결은 됐는데,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세력을 공격하는 작전에 프랑스와 러시아, 미국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이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카자흐스탄에 무단으로 병력을 보냈다가 분쟁이 생기면 국제전으로 번질 수 있잖습니까?”
남의 일처럼 대하는 홍진용의 질문에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당신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거 같냐!’라며 고함을 지를 뻔했다.
“장성에서 출발했다는 연락입니다.”
“예멘은?”
“이륙하면 바로 연락 주기로 했는데, 아직 통보가 없습니다.”
상황을 되짚은 김형정은 갑갑한 속내를 긴 숨에 담아 내뱉었다. 대테러팀, 증평 특수팀의 대우가 개차반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대원들이 줄줄이 제대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더라도 보내려고만 한다면 병력이야 충분했다. 그런데도 달려가는 인원이 강찬과 제라르, 석강호, 그리고 나이 든 차동균에 강성태와 구르카 용병이라는 현실에 이게 진짜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정말 강찬이 국가정보원 부원장을 사퇴하는 일이 두렵다.
하동선 같은 원장, 달콤한 소리만 뱉는 부원장, 어떡해서든 자리만 보존하면 된다는 본부장과 차장들이 차지한 국가정보원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기 때문이었다.
“본부장님. 이라크에 있는 팀에는 뭐라고 지시할까요?”
“잠시만 더 대기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국내에 있는 인물들의 움직임이 적의 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해서 지금 김형정은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여유 따위 없었다.
***
세 대의 미그기가 내려앉은 다음이었다.
시간이 없는 데다 다른 사람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강찬은 공항 입구에서 옷을 벗고 파일럿들이 입는 복장을 집어 들었다.
“저스트 모우먼트.”
왜? 뭐 때문에 그러는데?
손짓을 던졌던 파일럿이 강찬의 등 뒤로 움직인 뒤에 어깻죽지 부근의 상처를 가리켰다. 그런 뒤에 인디언 추장처럼 “베리 패스트. 하이 플라이. 쏘 디스 이스 데인저러스.”라는 식의 영어를 쏟아 냈다.
강찬을 몰라서 던진 경고였다.
“노 프라브럼.”
파일럿의 수준에 맞는 짧은 영어로 답한 강찬은 곧바로 파일럿복을 아래부터 꿰듯이 착용했다. 옆에 벗어 둔 재킷과 바지, 구두가 완전히 회색으로 변해 있어서 공항에서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바로 알려 주는 느낌이었다.
“가자.”
“미그기를 타고 이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라르를 향해 피식 웃어 준 강찬은 사다리를 잡고 뒤편 조종석으로 올라갔다. 뒤따라 올라온 파일럿이 벨트와 호흡기를 걸어 주었고, 몇 가지를 확인한 뒤에 아래로 내려갔다.
제이어 반 할트?
다음은 너야, 알았어?
파일럿이 앞쪽 조종석에 들어선 다음이었다.
시선을 돌린 강찬의 왼편에서 헬멧과 고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제라르가 오른손 엄지를 위로 들어 보였다. 속없는 새끼. 전투기를 타는 상황에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
신광선과의 통화에서 예멘 공항의 상황을 모두 들었다. 그리고 대기하라는 지시도 들었다.
통화를 마친 최종일은 말없이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있는데?
강찬은 이런 일에서 지시를 미루지 않는다. 그런데도 빠른 답이 오지 않는 건 그만큼 숨 막히는 일이 있다는 의미였다. 박중상과 유인강은 말할 것 없고, 이용우와 자밀라마저 최종일의 눈치를 살필 때였다.
“자밀라!”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랍 여자가 밝은 표정으로 자밀라에게 다가왔다.
아는 사람인가?
쭈글쭈글하게 구김 간 숄더 형태의 천을 히잡으로 둘러쓴 여자는 녹색 블라우스와 역시나 녹색으로 만들어진 아랍 여성 특유의 기다란 외투를 겉옷으로 둘렀으며, 금팔찌, 금목걸이로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떤 형태로든 이런 곳에서 긴장을 풀면 저 여자가 당길지 모를 폭발물이나 권총에 무조건 죽는다.
지시하지 않아도 이용우부터 박중상, 유인강, 그리고 최종일 팀이 날카롭게 지켜보는 앞이었다.
“웃어요, 자밀라. 반갑게 대하고. 나는 정보총국 이라크 현지 에이전트에요.”
자밀라의 곁에 앉아서 입을 열기 어려운 이용우를 대신해 유인강이 나직하고 빠르게 여자의 아랍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전해 주었다.
“당신이 온 걸 저들이 알았어요. 그리고 조금 전에 당신의 목에 포상금 100만 달러를 걸었어요.”
뭐가 또 이렇게 진행돼?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자밀라에게 인사를 전하듯 나온 내용은 섬뜩했다.
자밀라가 놀라지 않을까?
겁을 먹을 수도 있는데?
힐끔 돌아본 최종일의 시선 앞에서 자밀라는 오히려 태연하게 웃으며 반가운 듯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알려 줘서 고마워요. 이름이 어떻게 돼요?”
“모르는 게 서로 좋아요.”
위험한데?
앞에 서 있는 현지 에이전트처럼 되고 싶다는 자밀라의 소망이 그녀의 커다란 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