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42)
823화 이 정도면 짐작 가는 게 있겠지? (2)
고작 다녀올 곳이 있다는 한마디였다.
“성태야.”
“예.”
침대의 등받이를 세우고 앉아 있던 강철규가 나직하게 강성태를 불렀다.
“부원장이 부른 거지?”
“예.”
“가고 싶어 가는 거고?”
“그보다는 가야 할 길인 거 같아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보고 들은 게 다른 세대에서 나올 법한 대꾸였다. 그런 점을 이해한 강철규가 잔잔한 미소를 얼굴에 담았다.
“나를 비롯해서 네가 기억하는 성원이와 그 이전에 비무장 지대를 지키던 대원들에게 조국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겠냐?”
“죄송합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어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지?
강성태는 반짝이는 눈으로 강철규가 내놓을 설명을 기다렸다.
“가장 힘든 순간에 돌아갈 집, 우리에게 조국은 그런 의미였다. 그런 우리 집에서 너처럼 빛나는 청년들이 서럽게 죽어 가는데 미군의 판단과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모습이 분하고 서러워서 더 악착같이 굴었던 거 같다.”
말로는 들었다. 그러나 정말 어떤 세상인지 강성태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구르카 용병은 몰라도, 너만큼은 용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조국을 위해 가 줄 수 없을까?”
“감성원 아저씨가 그러길 바란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내가 바라는 거다.”
강철규의 눈을 바라보던 강성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이번만큼은 용병이 아니라 조국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고맙다.”
진심인 모양이었다.
왼손을 내민 강철규가 강성태의 어깨를 기분 좋게 다독여 줄 때였다. 병실 문이 열리며 곽철호에게 갔었던 차동균이 들어섰다.
“들으셨습니까?”
“짐작만 했지. 물어봤더니 솔직하게 답해 준 거고.”
작전에 참여하지 못하면 서운해하는 강철규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쉽다기보다는 걱정만 내보이고 있었다.
“서운하지 않으십니까?”
“나보다 더 잘할 젊은 친구들이 많을 테니까, 이제 물러나는 법도 배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짐이 되잖나.”
차동균의 질문에 답한 강철규가 대견한 눈빛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잘생기고 볼 일입니다.”
“그런가?”
눈빛만으로 감정을 알아차리는 강철규와 차동균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차동균이 강철규를 위로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강성태도 분명하게 알았다.
***
샤롤 클루얀은 네델란드계 프랑스인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투자은행에서 능력을 발휘하면서 제이어 반 할트의 실질적인 자금 관리자로 성장했다.
‘이건 아니야.’
뉴욕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그는 기가 부러진 얼굴로 모니터를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자신 있다. 하지만, 구완섭과 강다희는 이미 이쪽 세계에서 맞설 인물이 없다고 평가받는 능력자들이었다.
샤롤 클루얀이 돈을 쏟아부어도 꿈쩍도 않고 버티는 차트의 거래선이 그 증거였다.
– 클루얀. 혹시 이번 작전 당신이 진행하는 거야?
스마트폰을 통해 들려온 강다희의 깜찍한 음성을 떠올렸던 클루얀은 목덜미에 송충이가 내려앉은 사람처럼 귀 뒤를 쓸어내렸다.
– 베이징 쇼크 때 앞에서 먹게 해 줬더니 내 목덜미를 물려고 들어? 마음이 있으면 목덜미를 물지 말고, 당당하게 나타나서 키스를 해! 혹시 알아? 내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할지?
유학 생활로 다져진 능숙한 영어, 한 치도 밀리지 않는 강단, 그리고 베이징 쇼크 이후로 그녀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헤지 펀드들, 그들 모두에게 강다희는 전화 한 통으로 이번에 돈을 빼먹을 대상이 클루얀의 펀드라고 아예 못을 박아 버렸다.
– 마법사가 당신 이름을 기억하던데? 그런 거 보면 능력은 있다는 건데, 잘해 봐. 마법사와 이 바닥의 미친년을 밟으면 한 방에 거물 되는 거잖아?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직접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너는 이번에 죽어.’라는 확실한 경고가 분명했고, 정확하게 5분이 지나서 마누엘 야닉의 계좌가 깔끔하게 비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건 진짜 아니야.’
환율이면 환율, 국채면 국채, 마치 바로 옆 의자에 앉아 지켜보는 것처럼 마법사는 클루얀의 주문을 물어서 흔들었고, 그게 신호라도 되는 양, 떡밥을 던져 놓은 호숫가의 피라미떼처럼 온갖 헤지 펀드들이 구완섭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몰려들었다.
주문도 그렇다.
해 볼래?
마법사 구완섭은 한화 1,000억 단위의 주문을 개구쟁이가 돌 던지듯 툭툭 던져 댔고, 그럴 때마다 헤지 펀드들이 열광하며 달려들었다.
‘더 들어가면 죽어.’
제이어 반 할트에게 알려야 한다.
이대로 계속 진행하면 제이어 반 할트가 아니라 미국 경제가 휘청이게 되고, 대마법사로 성장한 구완섭과 완벽한 미친년 강다희가 독한 마음을 먹으면 달러의 위상이 바닥에 처박힌다.
도대체 자금이 얼마나 되는 거야?
질려 버린 얼굴로 모니터를 보던 클루얀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욕을 먹든 물러서야 한다. 그래야 훗날 투자은행의 이사 자리라도 얻는다. 샤롤 클루얀은 커다란 잘못을 말해야 하는 사람처럼 스마트폰을 들고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
보도 채널은 게릭 웨인의 일생을 특집으로 편성했고, 성조기를 펄럭이는 배경 위에 대통령 선서를 하는 그의 얼굴을 선명하게 올렸다.
[위대한 미국의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 준 대통령에게 더할 수 없는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차분하지만, 강한 어조로 전하는 앵커의 음성을 들으며 죤 피셜은 가득 찬 불만을 표시하듯 입술을 내밀었다.
“착륙합니다.”
그런 뒤에 다가와 나직하게 보고하는 요원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게릭 웨인의 유고에 따라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절차를 밟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죤 피셜과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 왔던 부통령 로든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전화를 걸어 왔다.
– 죤. 지금 경제 상황을 알고 있나?
“CIA 금융 담당에게서 보고는 들었네.”
– 내가 대통령 대행을 하는 동안,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게릭 웨인이 만든 올가미에 엉뚱하게 내 목이 걸려. 그렇게 내가 무너지면 자네의 미래 역시 밝지만은 않을 걸세.
염병할, 게릭 웨인.
상원의장이 되면서 처음으로 죤 피셜은 “Fuck!”이라는 단어를 뱉어 내고 말았다.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어쩌면 이토록 미련하고 추악했던 건지, 더는 그의 이름조차 듣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아아아아-앙.
– CIA를 맡길 적임자로 자네밖에 없어. 도와주게.
활주로를 향해 내려앉는 비행기 안에서 죤 피셜은 부통령의 마지막 당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직후에 비행기에 올라타서 이곳까지 날아왔다.
뉴펀들랜드섬의 세인트존스 해군 공항이었다.
활주로 구석으로 움직인 비행기가 멈추기 무섭게 죤 피셜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그를 맞이하는 해군 대령의 안내를 받아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비행기로 움직였다.
수치스럽다. 이런 상황이.
미국 상원의장이자, 차기 CIA 수장으로 내정된 죤 피셜이 도착했는데, 라노크는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기다렸고, 심지어 본인의 자리로 오라는 지시마저 전했다.
경호원도 없어?
사다리 앞에서 기다리는 라파엘이 그를 향해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는 오른손을 뻗어 계단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제거할까?
아서라, 강찬이다, 강찬!
미국 대통령을 두 명이나 살해하고도 날뛰는 강찬!
그런 말도 안 되는 인물을 상대로 하는 싸움판에서 라노크를 제거하는 건 뉴욕 한복판에서 핵폭탄의 폭발 스위치를 누르는 꼴과 같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하셔서 기내에 어떤 수행원도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라파엘은 죤 피셜을 따라 움직이던 수행원과 경호원 앞으로 손을 뻗어 그들을 제지했다.
끝까지, 너무하는군.
어쩌랴.
정보 세상이라는 게 원래 힘을 쥔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수행원과 경호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죤 피셜은 묵묵하게 계단을 올랐다.
안으로 들어가 왼편으로 몸을 돌린 그의 앞에서 실제로 홀로 앉은 라노크가 소파에 앉은 채 시선을 들고 있었다.
“귀한 홍차라서 뜨거울 때 마셨어야 하는데 좀 아쉽군.”
로리암의 지하에 스스로 걸어 들어갈 정도로 강단 있는 인물이어서 그럴까?
반듯한 정장 차림의 라노크에게서는 이상하게 감당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풍겨 나온다.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숨을 짧게 내쉰 죤 피셜은 통로를 걸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차를 들어 봐.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라파엘과 함께 홍차를 즐기는 클럽을 만들어 볼까 고민될 정도로 훌륭하지.”
“라노크? 부통령이 선서를 하기 전에 일을 마무리해야 해서 시간이 별로 없소.”
“아쉽군.”
눈썹을 들어 보인 라노크는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처럼 잔을 들어 홍차를 마셨다.
달각.
그가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죤 피셜에게는 어쩐지 판결을 내린 판사가 내리치는 법봉처럼 다가왔다.
“한국의 지경증권과 천중명 회장의 행위를 멈춰 줄 것을 정중하고, 엄중하게 요구합니다.”
“무슈 강에게 직접 말하지 그러나? 그에게 항의하는 일이 부담스럽다면 미연방 금융거래법 위반, 환율조작 등의 혐의를 씌워서 국제 거래를 못 하도록 막아도 되겠지.”
“보복이 없다고 장담하실 수 있겠소?”
죤 피셜의 질문을 받은 라노크가 세상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투로 웃었다.
“미국의 헤지 펀드가 한국의 기업을 노리고 감염과 전쟁을 계획한 건 넘어가는데, 반격했다고 금융 제재를 가한다? 자네와 부통령이 게릭 웨인과 다른 게 있나?”
빌어먹을 게릭 웨인!
표정을 읽히지 않으려 애썼지만, 죤 피셜의 눈 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CIA 국장, 고트 가가린, 마누엘 야닉, 심지어 미국 대통령까지, 제이어 반 할트와 손잡았던 사람들은 모두 제거됐지. 억울한 죽음이라면 미국의 이름을 걸고 보복을 하겠지만, 사실이 밝혀지면 곤란한 건 오히려 미국 아닌가?”
헛소리를 계속하면 죤 피셜 당신을 포함해 미국 부통령도 죽는다. 그리고 미국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치욕으로 남을 모습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라노크의 의도는 분명했다.
“무슈 강 말일세. 중국을 통해 전달했던 감염균을 이미 찾았지. 그런 이유로 양범 정보국 부장이 직접 무슈 강과 함께 예멘으로 향했던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렇소.”
“무슈 강이 예멘에서 러시아의 전투기를 이용해 모종의 장소로 빠르게 이동 중이지. 한국에서 특수부대가 이미 이륙했고. 그렇다면 미국이 계획했던 한국 내 전쟁 음모도 조만간 마무리되지 않을까?”
“미국이 계획한 음모가 아니지 않소?”
“게릭 웨인이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말문이 턱 막힌 죤 피셜이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우리 세계의 불문율을 잘 알지 않나? 적절한 보상, 그 정도면 지경그룹과 협상해 볼 만하지.”
“이미…. 핵잠수함을 세 대나 보내기로 했소. 내가 상원의장이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요.”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그동안 CIA가 했던 모든 작전의 정보가 세상에 알려졌었겠지. 게릭 웨인의 추악하고 더러운 음모와 함께.”
“후-. 어떻게 하면 좋겠소?”
버티면 괜히 조건만 뻑뻑해진다.
언젠가 복수할 순간이 있을 테니, 그때를 기약하며 지금은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부통령의 선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흘러가는 시간마저 라노크의 편이었다.
“지경그룹 천중명 회장이 무슈 강의 경제 담당이지. 그와 통화해서 솔직하게 도움을 청해.”
말끝에서 라노크가 홍차 잔 옆에 내려 둔 스마트폰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무슈 강도 아니고, 그의 멤버와 통화하라는 거요?”
“이런, 죤 피셜! 무슈 강과 통화하면 조건이 더 박해질 텐데, 그걸 원하나?”
라노크의 반문을 들은 죤 피셜은 울음처럼 보이는 웃음을 흘려 냈다. 고작 한국의 미친 인간 한 명과 기업인 한 명 앞에서 이렇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
석강호와 함께 온 우원준이 차동균과 인사를 나눈 다음이었다. 차동균은 강성태와 스무 명의 구르카 용병들을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
“내가 보기보다 나이가 많아.”
“학장님께 들었습니다. 편하게 대하십시오.”
이거 봐?
연예인 뺨을 세차게 때리게 생긴 강성태의 시원시원한 대답과 강렬한 눈매가 석강호는 단박에 마음에 든 눈치였다.
“이번 임무가 위험하다는 건 알지?”
“조국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을 받고 나서 생각이 많았습니다. 내 땅에서 마약만큼은 막겠다고 온갖 일을 다 했던 제게 이번 임무는 그 연장선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땅에서 마약,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을 겁니다.”
히죽.
석강호가 정말이지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그 직후였다.
“준비됐습니다. 탑승하십시오.”
미군으로 보이는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뒤편에 세워 둔 수송기를 가리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