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43)
824화 이 정도면 짐작 가는 게 있겠지? (3)
수송기에 오른 강성태는 의아한 눈으로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 줄줄이 달린 침대도 생소하거니와 뒤편에 늘어선 상자들까지, 용병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모습들이었다. 하기는, 오산에서 이런 식으로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조차 전혀 짐작하지 못했었다.
활주로를 달린 수송기가 묵직하게 떠올라 고도를 잡은 다음이었다.
“잠깐들 모이지.”
수송기의 중간으로 나선 차동균이 강성태를 향해 요청을 전했다.
“우리말을 다 알아듣는다고 했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제가 따로 전달하겠습니다.”
이미 병원에서 얼굴을 익혔던 사이라 강성태의 성격을 차동균은 대충이나마 짐작한다. 그래서 믿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우리의 1차 목적지 카자흐스탄의 카르스다. 수송기에서 내린 뒤에 곧바로 러시아가 제공하는 헬리콥터를 이용해 여기 아르디한으로 이동한다.”
카르스를 검지로 찍은 차동균이 아르디한 지역으로 길게 움직였다.
“혹시 용병 시절에 가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어라? 용병 출신이었어?
강성태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힐끔 시선을 던졌던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이곳 아르디한에 체첸과 일본에서 선발한 대원들이 훈련한다는 정보다. 이들의 목표는 대한민국 안에서의 전쟁이다. 우리는 적의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정보와 일치한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제거 작전에 돌입한다.”
설명을 마친 차동균이 시선을 들었다.
“적의 숫자가 대략 80명 선이라는데 정확한 숫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완전 무장한 상태고, 휴대용 미사일을 소지했다는 정보가 전부다. 질문?”
강성태는 물론이고, 구르카 용병들도 입을 열지 않았다.
“뒤편에 군복과 무기를 준비해 두었다니까 확인해서 필요한 대로 소지하고, 도착 이후로는 쉴 시간이 없으니 충분히 먹고 가능한 한 푹 쉬어.”
강성태는 이제야 왜 수송기의 벽에 간이침대가 줄줄이 걸려 있는지를 깨달았다. 마약을 막겠다며 온갖 처절한 싸움을 감당했던 강성태만큼이나 강철규와 차동균, 그 외의 인물들은 또 목숨을 내던져 가며 이런 식으로 싸워 왔던 모양이었다.
“커피 마시자.”
“두 봉짜리로 합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
차동균의 옆에 앉은 석강호가 요구하면서 우원준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어차피 동생들하고 함께 마실 생각이어서 한꺼번에 하는 게 편합니다.”
“같이 하면 되지요.”
강성태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인 우원준이 곧장 뒤로 움직였다.
이왕 움직인 길이었다.
강성태는 구르카 용병들과 함께 뒤편으로 향해서 커피를 준비했고, 이어서 상자들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소총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기름 냄새, 탄환, 수류탄, 휴대용 미사일, 무전기, 권총, 대검, 벨트와 방탄조끼, 헬멧, 고글, 야간투시경, 그리고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많은 양의 컵라면과 군용 식사들이 정말이지 가득 있었다.
구르카 용병들이 필요한 숫자만큼 내용물을 꺼내는 틈이었다. 봉지 커피를 뜯어 종이컵에 붓던 강성태가 고개를 돌렸다.
“부원장님이라는 분도 오십니까?”
“미그기를 이용해서 오신다던데 저도 아직 뵌 적은 없습니다.”
종이컵에 줄줄이 꽂아 놓은 봉지 커피 껍데기 틈으로 뜨거운 물을 받으며 우원준이 솔직하게 내놓은 답이었다.
미그기를 이용해서 온다고?
도대체 진짜 정체가 뭔데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대놓고 나서는 거지?
궁금한 건 산더미인데 더 묻는 건 내키지 않아서 강성태는 물을 부어 넣은 종이컵을 받아 껍데기로 휘휘 저었다.
“숫자에 맞게 꺼냈습니다, 형님.”
그 직후에 상자에서 몸을 돌린 키란이 커피를 타겠다는 것처럼 다가와서 강성태는 고개를 저었다. 조직의 보스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거 원래 싫어하는 성격도 있었고, 아직 남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기들 모두 점검해. 무전기와 투시경도 하나씩 모두 확인하고.”
“예, 형님.”
지시하는 강성태를 우원준이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라노크의 비행기에서 내린 죤 피셜은 기다리던 CIA 간부에게 눈짓을 던졌다. 그사이 변한 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통령에게 연락해야 한다. 아무리 차기 CIA 국장이 확실하고, 오랜 세월 함께해 와 부통령과 막역한 관계라 해도 천중명과의 협상을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건 위험한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무슈 강의 행적을 알아봤나?”
“예멘에서 러시아가 제공한 전투기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목적지는?”
“전투기의 이동은 레이더로 확인하지 않는 한,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말끝을 흐리지만 CIA 간부는 분명 짐작하는 게 있는 눈치였다.
“잘못된 판단이더라도 문책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짐작하는 내용을 그대로 말해.”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던 용병을 찾아낸 게 아닌가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흐음.”
입술을 뒤틀었던 죤 피셜이 시선을 돌렸다.
“현재 환율과 채권 상황은?”
“위험합니다.”
아무렴 위험한 걸 몰라서 물었겠나!
그것도 천중명과의 협상을 위해 날아온 상황에서!
빠직, 이마에 핏줄이 돋아난 죤 피셜이 튀어나오는 욕을 삼키려 볼을 씰룩였다.
“어느 수준인지를 정확하게 표현해 주면 좋겠다.”
라파엘이 지켜보고 있지만 않았다면 벌써 한 바가지 욕을 퍼먹었을 자금 담당 부장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샤롤 클루얀이 한국을 공격하는 무기로 달러를 선택한 게 오히려 비수가 되어 우리 쪽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천중명 회장이 지니고 있던 우리 국채가 시장에 막무가내로 풀리고 있어서 장기 채권의 경우 투매 현상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미국 정부의 디폴트입니다. 공무원 급여, 사회보장기금, 마지막으로 도로를 포함한 공적 자산의 유지보수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미치겠군.’
인상을 찌푸린 죤 피셜이 손을 들어 눈썹 부근을 주물렀다. 곤경에 빠졌다고 여길 때, 그가 보이는 습관 중 하나였다.
라노크는 기다리고, 미국은 곤경에 빠지고 있으며, 야속한 시간은 정직하고 꾸준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죤 피셜이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샤롤 클루얀을 체포할 죄목이 있나?”
“연방 자금운용법 위반, 부정거래와 수수, 증권 및 채권의 거래 왜곡, 세금 탈루 정황을 이미 확보한 상태이고, 말씀드린 죄목이 모두 유죄로 판결 나면 감형 없는 무기 징역, 혹은 170년 유기 징역형을 받게 됩니다.”
“그를 체포해.”
“예?”
죤 피셜의 날카로운 눈매를 받은 자금 담당 부장이 “알겠습니다.” 하는 답을 얼른 내놓았다.
“내가 천중명 회장과 직접 담판을 짓는 건 위험하겠지?”
“녹취될 경우 나중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서 중재할 만한 인물이 있나?”
“베이징 쇼크 당시 천중명 회장과 중국을 중재했던 김준후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그 정도면 적당하겠다.
죤 피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통령과 통화할 테니, 김준후라는 인물의 연락처를 확인해 둬.”
“알겠습니다.”
답답한 속을 기다란 숨으로 토해 낸 죤 피셜이 뒤편에 서 있는 비행기로 시선을 돌렸다.
모든 결정을 내린 시점인데도 죤 피셜은 차라리 이 자리에서 프랑스 구렁이와 그의 시종을 제거해 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베이징 쇼크의 경험이 있으니 천중명은 반드시 엄청난 대가를 요구할 거다.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라노크를 내놓으라고 하면 어떤 답이 올까?
그 직후였다.
죤 피셜은 이마와 목, 가슴을 뚫린 게릭 웨인의 시신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렴 미국 대통령의 목을 부러트리고, 총알을 박아 넣은 강찬이 고작 상원의원이며 차기 CIA 국장 후보인 죤 피셜을 두려워하겠나. 심지어 이전 국장인 칼튼 숀도 그의 손에 제거된 마당에 말이다.
라노크와 라파엘을 제거하는 대신, 이쪽도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면 그건 사양한다.
마지막 유혹을 떨쳐 낸 죤 피셜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라노크가 기다리는 비행기를 향해 걸었다.
***
마법사 구완섭은 미친 인간이거나, 아니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거나, 그도 아니면 주문을 넣으면서 더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는 변태, 셋 중 하나일 게 분명했다.
모니터를 노려보던 샤롤 클루얀은 그가 환율과 채권, 파생상품을 거래한 이후 처음으로 마우스를 잡은 손이 떨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자금은 걱정하지 말고 저들을 짓밟아.
간곡하게 청했지만, 제이어 반 할트의 답은 분명했다. 한 번도 실패해 본 적 없는 인물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고, 그렇게 상대를 짓눌러 금융 시장의 절대자가 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대로 미국 환율과 채권의 가치가 곤두박질치면 당장 수입품의 가격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미국의 금융당국과 의회가 조사에 나서면 지금 하는 일은 완벽한 범죄가 된다.
도주라도 해야 하나?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기 위해 클루얀이 짧게 숨을 뱉어 낼 때였다. 블라인드로 가려 놓은 사무실 바깥에서 느닷없는 소란이 일었다.
설마?
클루얀의 심장이 쿵 소리를 내는 순간이었다.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고 선글라스에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우르르 밀고 들어왔다.
“FBI 금융조사부 와이든입니다.”
왼손에 신분증을 들어 보였던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는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눈으로 샤롤 클루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연방 자금운용법 위반, 부정거래와 수수, 증권 및 채권의 거래 왜곡, 세금 탈루 혐의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의 진술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부르겠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만, 지금은 함께 가 주셔야 합니다.”
이미 끝났구나.
얼마나 얼이 빠졌던지 샤롤 클루얀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했다.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한 와이든이 고갯짓을 던진 다음이었다. 그와 함께 들어왔던 요원들이 다가왔고 앉아 있는 그의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다.
짜르륵. 짜륵.
차가운 수갑의 감촉과 더는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경고처럼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샤롤 클루얀은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바깥에서 소란이 일어났을 때, 서랍에 두었던 권총으로 삶을 끊었어야 했다. 더 좋은 방법은 제이어 반 할트에게서 무리한 지시를 받은 시점에 바로 공항으로 향했어야 했다.
양쪽 팔을 안다시피 한 요원들에 의해 자리에서 일어선 클루얀은 책상을 벗어나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시선을 돌렸다.
뉴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 그 앞에 놓인 세련된 책상과 의자, 그의 삶에서 다시는 누리지 못할 사무실의 내부를 그는 악착같이 눈에 담았다.
***
천중명은 팔꿈치를 걸치고 세워 손을 마주 잡은 자세로 모니터에 집중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싸움의 배경이 미국이었다.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자금이 열어 놓은 댐의 물처럼 쏟아져 들어가고 있어서 아무리 천중명이라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천중명이 지니고 있던 3천조 원이 바닥나고, 마누엘 야닉의 비밀 계좌에 있던 1천조 원마저 떨어지면 대한민국은 돌이키지 못할 불행한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싸움에서 비기거나 지면?
지금껏 인류가 경험한 적 없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최악의 사태는 세계를 휩쓸 공황이고, 최선은 기초 체력이 약한 국가의 부도로 향후 백 년은 빈곤국으로 전락하는 정도였다.
막말로 4천조 원을 한국의 경제를 지키는 데 붓는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아파트를 모두 합한 금액이 7천조 원이 조금 넘는다는 걸 사람들이 알고나 있을까?
미국은 무조건 금리를 더 올릴 수밖에 없다.
당장 원룸의 월세가 우리 돈으로 5백만 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돈을 거둬들일 유일한 방법이 금리 인상이기 때문이었다.
모니터를 보던 천중명은 연달아 올라오는 주문을 보며 옅게 웃었다.
붙자!
누가 죽든, 여기에서 결판내자!
마주 서서 달리는 열차처럼 구완섭의 주문은 막무가내였다. 지켜보는 천중명이 기가 막힐 지경이니, 상대하는 인물은 얼마나 소름 끼칠까?
그도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시간을 끌면 불리한 쪽이 천중명과 지경그룹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아예 있는 화력을 다 부어서 일찍 끝장 보자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전쟁만 막으면 됩니다.”
구완섭의 주문 아래를 든든하게 받치는 강다희의 주문을 보며 천중명은 혼잣말로 원하는 점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지전이라도 벌어지면 한국은 헤지 펀드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성질대로 하면 북한 따위 짓밟고 싶지만, 포격이라도 요란하게 일어나는 그 순간에 한국은 부도 수표 수준으로 전락하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구완섭이 더욱 서두르는 이유도 그런 외부적인 위험 요소를 짐작하기 때문일 거다.
강찬이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찬이 막겠다고 했으니 분명 막아 낼 거다.
천중명이 모니터를 향해 눈빛을 빛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책상에 올려 둔 스마트폰이 몸을 떨며 천중명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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